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요한과 대두국은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 선비들이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명의 후신을 자처하는 남명이란 국가의 존재였다.
“남명이라. 복주, 아니 복경을 수도로 둔 명의 후신이라고?”
불과 한 달 전, 청나라 칙사가 조선을 찾아왔었다.
호부의 계심랑이란 직급을 가진 포당이란 자가 칙사로 온 것.
그리고 포당이 전하기를, 청나라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천자의 통치에 반하는 역도들을 모조리 토벌하였다고 하였다.
당연히 포당의 이 같은 말에 조선 조정은 청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으로선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이미 2년 전에 남경까지 점령했던 것이 바로 청나라였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미 남경을 평정하였고, 유적(流賊)은 또 팔왕(八王)에게 쫓기어 두목 이자성(李自成)이 변복(變服)을 하고 도망쳤습니다.’
2년 전 칙사로 온 이의 말을 정명수가 통역해서 전해준 말이었다.
이로부터 2년이나 지났으니 명의 후신을 자처하던 남명 정권이 토벌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거제도에 표류한 일본인들이 전한 소식은 조선인들이 알고 있던 정보와는 사뭇 달랐다.
남명 정권은 아직 존립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존립하는 것을 넘어, 청나라를 상대로 반격까지 가했다고 하였다.
기어코 남경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고 하니,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명이 살아있다는데, 우리도 무언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소! 재조지은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오!”
“만절필동! 황하(黃河)가 수만 번 굽이쳐 마침내 동쪽으로 흘러가듯이 충신의 절개도 꺾을 수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북적이 강하다 해도, 우리 조선은 충신의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가 허무하게 망하고 청나라가 순식간에 명나라의 주요 영토를 점령하자, 숭명배청을 주장하던 척화파 인사들은 기세를 잃었다.
이미 조선은 두 번이나 청나라에 패배하였다.
그런데 명나라까지 망했다고 하니, 척화파 인사들이 봐도 청나라와의 전쟁은 승산이 없어 보였다.
물론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척화파는 여전히 숭명배청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나중을 기약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명의 존재가 조선에 알려지자, 이런 여론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일모도원이란 말이 있듯, 명을 돕기 위해 하루빨리 북벌을 준비해야 합니다!”
척화파는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명나라를 제때 돕지 못하여 그들의 멸망을 허무하게 지켜봤던 2년 전의 일을 얼마나 후회하였던가.
남명이 버티는 지금, 당장에라도 남명을 도와 청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여론이 척화파의 대세가 되었다.
***
훗날 인조로 불리게 될 조선 국왕, 이종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여 통제사 김응해가 올린 장계에 관해 논하였다.
“근일 민간에는 왜적의 소문으로 자못 소란스럽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단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진정시키고자 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묘당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영의정, 김자점이 이종에게 그와 같이 아뢰었다.
마치 그는 김응해의 장계를 별거 아니라는 듯, 사람들이 괜히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쿨럭.”
이종은 김자점의 말을 듣고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짓다가 작게 기침하였다.
“금번 왜인들의 일을 작은 일이라 여기는 비국의 견해는 어떤 소견에서인가. 모든 일은 형세를 자세히 살펴서 대응해야 하는데, 한결같이 미봉책을 쓴다면 한갓 모욕을 당할 소지만 될 뿐이다.”
“왜인들은 교활하여 간사한 계책을 곧잘 쓰니, 대두국란 나라를 거짓 하여 알린 것도 우리를 모욕하기 위한 계책이 분명하옵니다.”
김자점은 김응해가 전해준 정보를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였다.
즉, 요한이란 자가 남방에서 대두국을 세웠다는 정보도, 복주를 수도로 둔 남명 정권이 청나라를 상대로 반격에 성공했다는 정보도 모두 거짓이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김자점을 돕기 위해 조경이 이종에게 아뢰었다.
“지난번 임오년(1642년)에 신이 통신사로서 대마도에 갔을 때 대두국이란 나라는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 대두국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김응해의 장계가 모두 거짓이라는 논리였다.
이렇게 대신들이 김응해의 장계를 거짓으로 치부하자 이종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 생각으로는 김요한이란 이가 별로 대단한 이는 아닐 듯한데, 묘당에서 너무 지나치게 우려하니, 나는 매우 우스울 따름이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대신들이 왜 김응해의 장계를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인지.
이종이 언급한 것처럼 대신들이 요한을 의식하여 거짓이라 치부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요한을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 요한이란 존재가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요한이 세웠다는 대두국은 유구보다 멀리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은 유구조차 먼 나라라는 이유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이 사쓰마 번의 침략을 알려 도움을 청할 때도 조선은 철저하게 뭉개버렸었다.
유구 왕실에서 조선에 적대감을 보였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든, 조선인이 나라를 세운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긴 했으나, 대신들이 이렇게까지 우려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신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뻔했다.
바로 남명 때문이었다.
김응해의 장계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청나라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
안 그래도 세자를 입조시키라고 협박받은 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세폐가 적다며 으름장을 내기도 하였는데, 여기서 청나라와의 관계가 악화할 일을 해서 좋을 게 없었다.
“마치 예절 없는 가정처럼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졌구나.”
이종은 그런 자신의 신하들을 보며 한탄하듯 말하였다.
청나라의 눈치를 보는 신하들의 모습이 그저 한심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문제를 더 키울 생각은 없었다.
누구보다 청나라를 싫어하는 그였으나,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청나라를 두려워하는 게 그였으니 말이다.
***
사람들이 괜히 ‘묘당이 깊은 잠에 빠졌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정은 김응해의 장계에 어떤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청나라와의 외교적 충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야는 여전히 왜인들이 알려준 소식들로 큰 파문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왕세자인 이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의 왕이 조선인이라 하는데, 놀랍지 않으냐?”
“실로 그렇습니다.”
지도를 보는 이호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격앙되어 있었다.
“절대 작은 땅이 아니다. 하긴, 그러니 왜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어렵게 구한 지도였다.
물론 정확도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대만이 이주라 적혀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래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대두국이란 나라가 어느 정도의 영토를 가졌는지, 그 위치는 어느 나라와 가까운지.
영토 자체는 당연히 조선, 일본, 청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지도로 구현된 조선은 청나라와 비슷한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 모두 고려해도 대두국은 그 영토가 절대 작아 보이지 않았다.
지도로만 보면 일본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였다.
“소인이 듣기로 여송이란 지역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일본과 전쟁하는 이유도 바로 이 여송이란 지역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송이라. 이곳인가?”
“그렇사옵니다.”
자신이 아끼는 신하, 장현의 말에 이호는 더욱 감탄하였다.
“이 정도면 왜보다 더 클 수도 있겠구나.”
물론 지도에서는 일본의 크기를 축소해서 표현하여 그리 보이는 것일 뿐, 실제 영토는 일본이 훨씬 컸다.
요한이 진짜로 필리핀 전체를 점령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소인의 추측이 맞는다면, 남명의 승리에는 김요한이란 자가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호오, 김요한이 이끄는 대두국이 남명을 도와 청나라와 싸웠다는 것이냐?”
“위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두국이란 나라, 남명과 대단히 가깝지 않습니까? 특히 이곳이 남명의 수도라는 걸 생각하면 두 나라의 거리는 배로 하루 이틀 거리밖에 안 됩니다.”
“두 나라의 거리가 가깝다는 건, 그만큼 두 나라의 관계가 밀접할 거라는 말이로군.”
이호는 장현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지도만 봐도 두 나라의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 큰 영향을 끼쳤을 터.
요한이 조선인이니, 동맹 관계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추측하였다.
“김요한이란 자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요한이란 인물에 대한 흥미가 커졌다.
요한이 어떻게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지, 그는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두국은 정확히 어떤 체제의 나라인지.
그는 이 모든 것이 궁금하였다.
기회만 된다면 요한을 직접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요한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적인 목적이 더 컸다.
‘어쩌면 그는 나의 대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어.’
곧 그는 대리청정을 시작할 것이다.
이종의 건강이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종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호가 즉위할 날도 머지않았을 터.
당연히 이호는 자신이 즉위한 이후의 계획을 진지하게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
요한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그 계획을 위해서였다.
그의 대계, 북벌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한의 도움이 꼭 필요하였으니 말이다.
***
시마즈 미츠히사는 요한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그 즉시 차선책을 선택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차선책이란 막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말하였다.
그는 신중한 성격을 가졌으나, 일단 결정을 내리면 남다른 행동력을 보여주는 성격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에도로 향할 인선이 마무리하여 지체하지 않고 출항시켰다.
하지만 그가 에도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하고자 하였을 때, 에도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방문하였다.
의외의 인물이란 다름 아닌, 남명의 칙사로 일본을 찾은 정성공이었다.
척, 척, 척, 척.
정성공을 호위하는 흑기군 병사들은 마치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였다.
“대국의 병사들이라더니, 그야말로 천군(하늘의 군대)이 따로 없구나!”
“철포(조총)를 보게.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군!”
흑기군의 행진을 지켜보던 일본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문외한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정병 중의 정병이란 사실을.
실제로 사무라이들 역시 흑기군을 보고 감탄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달단(청나라)을 무찔렀다더니,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멀리서 흑기군의 모습을 지켜보던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눈에 이채를 띄웠다.
원래 그는 남명을 경시하였었다.
남명의 소식을 듣다 보면 경시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일본에 도움을 청할 정도니, 남명은 과거의 명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였다.
하지만 정성공을 호위하는 흑기군의 모습을 본 순간, 남명을 경시하는 마음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런데, 저러고 또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겠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기군의 기세를 보면 어딘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