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면 어째서 지금까지 외신을 만나주지 않은 겁니까.”
“하하, 많이 섭섭했나 보군. 야당이 이해해주게. 워낙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었어.”
그는 웃으며 넘기려 하였으나, 유혁연은 여전히 꿍한 기색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인 포로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지 않는 한, 그의 마음이 풀어질 리는 없으리라.
그리고 유혁연은 바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전하께서는 분명 외신과 약조하셨습니다. 아조의 병사들을 무사히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겠다고!”
유혁연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그리 말하자,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러더니 대뜸 자신의 마차에 올라탔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일단 어차에 타는 것이 어떤가? 여가 갈 길이 멀어서 말이야.”
“…좋습니다.”
요한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모습을 보고 유혁연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에서 왕의 친위 부대인 어영대의 수장이었던 그도 왕의 옆자리에 앉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애초에 조선에는 마차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전하, 출발하겠습니다.”
곧 마부가 마차를 끌고 북쪽으로 향하였다.
마차는 순식간에 안평을 지나더니 새로 완공한 ‘대서로’를 타고 힘차게 내달렸다.
***
“도로가 굉장히 넓은 거 같습니다.”
유혁연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안평이라는 항구 도시도 조선 사람인 그에게는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항구도 항구지만, 화란인(네덜란드)들이 지은 특색 있는 건물들, 특히 광장의 존재는 조선 사람인 그에게 대단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던 것.
그래도 안평만 벗어나면 조선과 똑같은 산과 들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설마 산과 들까지 별천지일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산과 들은 평범해도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요한이 대만을 점령하고 돈에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도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사실 외부 침략을 걱정할 일이 없는 섬나라이다 보니 도로 공사만큼 수지타산에 맞는 공사가 없었다.
빈민의 일자리 문제도 해결될뿐더러, 각 지역에 행정력을 확보하기도 수월해졌다.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요한의 자본이 점점 여유로워지면서 이 공사의 규모는 대단히 커졌다.
여기에 남명의 값싼 노동력까지 대거 합류하자 도로의 폭은 마차 4대가 동시에 가도 될 정도였다.
“아마 대북까지 가는 길은 전부 이럴 것이야.”
“…500리가 넘는 거리라 들었는데, 도로의 길이가 그 정도로 길단 말씀입니까?”
유혁연은 다시금 놀랐다.
아마 그는 수도인 안평 근처의 도로만 제대도 된 도로고 나머지는 조선의 도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대서로라 불리는 도로가 무려 500리나 이어졌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한양에서 전주 정도 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대서로는 시작에 불과하지. 새로운 도읍이 세워지면 그곳을 기준으로 다시 사방팔방 도로를 만들 것이야.”
정확히는 대만의 중심부인 대중 지역을 중심으로 도로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샤먼 덕에 자금은 충분할 테니 도로 건설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리라.
“여가 이토록 도로 건설을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조세를 거두기 위함입니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도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소통이었다.
“이동을 편하게 하여 백성들이 서로 소통하게 하기 위함이다.”
“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대두국은 신생국이라, 대만의 여러 부족은 아직 대두국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지 못한 상태다. 도로를 뚫어 수도를 오가게 한다면 그들의 정체성이 확립되겠지.”
이는 역사가 짧은 대두국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대만의 수많은 부족을 진정한 대두국의 일원으로 흡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
“이 나라에 조선인들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요한이 갑자기 조선인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유혁연은 눈을 부릅떴다.
그가 요한을 찾은 목적은, 조선인 포로를 무사히 조선으로 돌려보낸다는 약조를 재확인받기 위함이었다.
즉, 요한의 마수로부터 조선인 포로를 지키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마침 요한이 조선인 포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그도 눈을 부릅뜨며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대두국은 쓰이는 언어가 너무 많아. 중국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그 외에 수십 개 어쩌면 수백 개는 될 언어가 존재하지.”
“도대체 그것과 아조의 백성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
“나는 이 나라의 공용어를 조선어로 선택했다. 그런데 정작 조선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하여 대두국 각지에 학교를 만들었고 조선인들을 선생으로 임명하였다.”
설명하는 그의 눈에 마침 학교가 하나 보였다.
길가에 커다란 학교 하나가 세워져 있었던 것.
요한이 그 학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바로 저곳이 그런 학교 중의 하나다. 우리는 흔히 초등학교라 부르지. 주로 가르치는 과목은 산수, 역사, 그리고 방금 말했던 조선어다.”
참고로 요한이 대만에서 학교를 세운 지도 벌써 수년째라, 지금은 중등학교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인재들을 중등학교로 보내 더 많은 학문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
요한은 대학교까지 생각하며 서역의 여러 학자를 초빙하는 중이었다.
마카오에서는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넘어와 중등학교에서 초빙 강사로 활약하고 있을 정도였다.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 대만 각지에서 노역을 한다 들었는데, 저곳에서 일하는 병사도 있습니까?”
“물론이다. 노역이라기엔 상당한 품삯을 받으며 일하고 있지. 아마 은자로 한 달에 1냥은 받을 것이다.”
“허어. 1냥이라니. 일개 병사가 그리 많은 돈을 받는단 말입니까?”
유혁연이 기겁하고는 그리 되물었다.
많은 수의 병사들이 귀국을 원하지 않는 건 그 역시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몰랐는데, 그저 중국인들이 귀국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일거리도 많고 기후도 나쁘지 않으니 그래서 대만에 남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반 병사들조차 조선어를 가르치며 한 달에 은자 1냥을 받는다 하자, 그제야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받는 대우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조선어를 안다는 이유로 이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면, 제대로 된 기술을 가진 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겠는가?
아마 유혁연도 같은 처지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에선 일개 백성이겠지만, 이 나라에선 대단히 귀중한 인력이다. 그러니 품삯을 많이 줄 수밖에.”
“그래서 외신을 장강에 붙잡아 둔 채 아조의 백성들을 포섭한 겁니까?”
“부디, 우리 사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요한은 거의 부탁조로 그렇게 말하였다.
남명에도 강하게 구는 요한이건만, 정작 조선의 일개 장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그만큼 조선인 포로들은 요한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
유혁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그는 요한이 얼마나 걸출한 인물인지 조선의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남명과 청나라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요한이 이렇게까지 굳은 의지를 보이자, 그도 이 이상 강하게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자는 이미 아조의 병사들을 자국 백성으로 여기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병사들을 데리고 가려 고집한다면 이자와 적대 관계가 될 수밖에 없어.’
요한은 너무도 분명하게 조선인 포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물론 조선의 백성들이니 계속 원론을 고집한다면 결국 요한도 포기할 수밖에 없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요한이 이 일로 앙심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훗날 조선이 북벌에 나서려면 대두국과의 협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와의 관계를 악화해봤자 득보다 실이 크다는 뜻이다.
애초에 유혁연이 병사들에게 같이 귀국하자고 지시한들, 얼마나 많은 병사가 따라올지도 의문이다.
대두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던 병사 중 일부는 도원수인 그를 동네 아저씨 취급하지 않았던가?
“…조건이 있습니다.”
하여 그는 과감하게 조선 포로들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대만에 남으려는 조선군이 못해도 수천 명은 될 텐데, 그 많은 인원을 아무 대가도 없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지?”
“조선에서도 흑기군을 만들고 싶습니다. 흑기군이 사용하는 총기를 비롯하여 흑기군의 무관을 파견해주십시오.”
흑기군이 무적의 팔기를 상대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그는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당연히 유혁연으로선 북벌군의 롤모델을 흑기군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바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혁연은 이와 같은 제안을 하였다.
조선군 포로를 포기하는 대신, 일종의 훈련 교관을 파견해달라 제안한 것이다.
사실 일반 병졸 수천 명을 넘겨서 흑기군 같은 부대를 만들 수만 있다면 조선으로선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
유혁연의 말을 들은 요한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흔쾌히 대답하였다.
“좋다.”
“저, 정말입니까?”
“대신 파견된 훈련 교관의 급료는 조선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
“그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은 조선군이 흑기군을 따라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단순히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흑기군의 전술을 따라 한다고 해서 그 군대가 흑기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흑기군에게 직접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하였다.
흑기군이 이토록 강군이 된 것은 단순히 무기가 훌륭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거쳤기 때문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무언가란 한 가지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요한이란 존재가 그 무언가일 수도 있었고,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는 무적의 군대라는 자부심이 그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물론 공을 세우면 반드시 그 이상의 보상이 따른다는 서로 간의 암묵적 약속도 그 무언가 중의 하나였다.
지금껏 흑기군은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여 조금만 공을 세워도 한 계급 정도는 금방 승진하고는 하였다.
당연히 조선에서는 이런 식의 빠른 승진이 불가능할 테니, 흑기군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예 귀국을 희망하는 병사들을 따로 추려 지금부터 그들을 훈련하는 것은 어떤가?”
오히려 요한은 이런 제안까지 하였다.
대만 정착을 거부하고 조선으로 귀국하기로 한 천여 명의 조선 포로를 미리 훈련해주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외신은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 정도는 도와주지. 물론 조선으로 무관도 몇 명 보내주겠다.”
청나라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청나라의 보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선과 동맹할 필요가 있었다.
즉, 조선과 대두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라는 의미였다.
조선의 가치가 이리도 중요하기에 요한은 조선군을 훈련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조선과 싸울 일은 없으니 조선이 강해지면 오히려 좋아할 일이야.’
흑기군에 비견되는 군대는 만들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팔기를 상대로 쉽게 패배하지 않는 군대 정도는 만들어줘야 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