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249
영국은 작년까지만 해도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왕은 찰스 2세였으나, 찰스 2세는 내전에서 크롬웰에게 참패하여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왕을 내쫓고 정권을 장악한 크롬웰은 개인의 숨통을 짓누르는 독재 정치를 펼치며, 내전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영국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1657년 말, 크롬웰이 병사하였고 크롬웰에 의해 쫓겨났던 찰스 2세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왕정이 복고된 것이다.
그리고 찰스 2세는 영국을 빠른 속도로 안정시켰다.
사실 찰스 2세보단 그가 총애하는 귀족인 에드워드 하이드의 역할이 컸다.
부왕인 찰스 1세는 참수되어 죽고 자신은 오랜 망명 생활로, 왕답지 않게 갖은 고생을 하며 지냈던 찰스 2세다.
그는 왕이 되기 전부터 자신은 왕이 되면 원 없이 즐기며 살 거라고 선언하였었다.
그리고 왕이 된 그는 진짜로 모두가 놀랄 정도로 여색에 푹 빠지며 살고 있었다.
하여 국정은 그가 임명한 총리인 에드워드 하이드가 주도하였다.
“네덜란드의 제안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에드워드 하이드는 내각의 각료들을 향해 그와 같이 물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사절이 런던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제안하였는데, 그 제안은 다름 아닌, 대두국과의 전쟁을 도울 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가란 대두국의 영토를 말하였다.
“사실 네덜란드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미다그 왕국을 한 번쯤 응징할 필요가 있기는 할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동인도 회사(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수익은 나날이 커지는데, 미다그 왕국의 성장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의 이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작년까지 네덜란드와 영국이 왜 그토록 치고받고 싸웠던가.
크롬웰 정권이 친프랑스 정권이라 그런 것도 있으나, 주된 이유는 무역 때문이었다.
조지 멍크라는 영국의 지휘관은 이런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전쟁에 이런저런 논리가 뭐 중요하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네덜란드가 하는 무역에 우리가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여기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무역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무역을 말하였다.
영국 지휘관이 이런 발언을 할 정도로 인도와 아시아 무역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은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대두국이라는 제3자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이익이 침해받기 시작하였다.
아니, 단순히 이익을 침해받는 수준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수준이었다.
대두국의 확장 속도를 보면 그들의 세력이 언젠가 인도까지 닿을 것이니 말이다.
내각 각료들이 네덜란드의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를 위해서라기보단, 영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대두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지원은 약속하되, 1년 뒤에 원정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때 한 사람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에드워드 하이드의 차남인 로렌스 하이드였다.
“1년이라. 왜 하필 1년이지?”
“미다그 왕국은 아시아에서는 무시 못 할 강국이라 들었습니다. 네덜란드를 상대로도 2년 정도는 버텨주지 않겠습니까?”
“호오.”
로렌스 하이드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이른바, 공멸을 기다리자는 뜻이었다.
두 나라가 모두 힘을 잃을 때, 단숨에 아시아를 장악할 수 있게끔 말이다.
“나쁘지 않은 의견으로 보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에드워드 하이드가 각료들에게 그리 묻자, 각료들은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들은 찰스 2세에게 결재도 구하지 않은 채, 원정군의 규모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였다.
유들유들한 성향의 찰스 2세라면 대세를 얌전히 따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정 함대는 전열함 10척, 프리깃은 25척으로 구성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전열함 10척이라. 노란 원숭이들이 깜짝 놀라겠군요. 네덜란드의 그 40문도 안 달린 전열함 같지 않은 전열함만 보다가 진짜 ‘3급’ 이상의 전열함을 보게 된다면 말입니다.”
***
대두국에 대항하는 삼국 연합(스페인-영국-네덜란드) 중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아시아로 원정을 보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한 나라인 스페인은 영국과 달리, 중립을 선택하였다.
스페인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는 터라, 외부로 군대를 보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대두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프랑스에서 대두국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미다그 왕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네덜란드와 잉글랜드가 저리 반응하는 것이오?”
머지않아 태양왕이라 불리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가 될 루이 14세였으나, 아직 그의 왕권은 미약하였다.
5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터라, 수석 대신(재상)인 마자랭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고, 그가 성인이 된 지금도 마자랭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였다.
그래도 마자랭은 루이 14세를 무시하지 않았고, 정치와 외교를 교육하는 것에도 열성적이었다.
하여 그는 루이 14세의 질문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본래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으나, 차이나의 장수인 장(Jean)이 네덜란드를 무찌르고 미다그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장은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스페인의 식민지인 필리핀을 점령하였고, 몇 년 전에는 네덜란드의 세력권인 보르네오 섬까지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장이라. 그가 왕이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오?”
“대략 12년에서 13년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다그 왕국의 역사가 13년 정도밖에 안 됐다는 건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무찌르고 영토까지 확보했다는 것이오?”
프랑스 사람들도 대두국에 관해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 나라만큼은 아니어도 프랑스 역시 아시아 방향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나라였다.
단지 루이 14세가 대두국을 잘 모르는 이유는 대두국과 관련해서 워낙 뜬소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두국을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또 어떤 이는 대두국이 오히려 중국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이야기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두국이 조선이란 나라와 같은 나라라고 말하였다.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이 다 달랐으니, 대두국의 문화나 풍습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에선 대두국이 미개한 나라라면서 식인 풍습까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대두국에게 돈을 받고 이민 사업을 하였던 네덜란드는 대두국이 유럽 국가와 크게 차이가 없는 문명국가라고 이야기하였다.
그 증거로 도자기와 유리, 비단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두국과 관련된 나라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였으니 프랑스 사람들로선 대두국이 어떤 나라인지 종잡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석 대신인 마자랭은 정치와 외교에 대해서 상당한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세 나라만큼 대두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루이 14세의 의문을 해결할 정도의 정보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자랭은 대두국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나라를 상대로 이겼다고는 하나, 아시아는 변방 중의 변방입니다. 두 나라 모두 3선급 병력밖에 배치하지 않았으니, 패배하는 것도 그리 특별하게 여길 일은 아닙니다.”
마자랭은 대두국을 너무 고평가할 필요 없다는 듯 말하였으나, 루이 14세는 마자랭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대두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설령 그렇다 한들, 상비군이 10만이라니. 우리 프랑스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 아니오?”
“미다그 국왕, 장이 차이나 재상(정지룡)의 사위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차이나와의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고 그 부를 통해 상비군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직 유럽 국가들만이 문명국이라 생각하는 프랑스지만, 적어도 위정자들은 중국이나 인도 등을 멸시하지 않았다.
멸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두려워하였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강국으로 알려져 있었고, 최근 들어 중국과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더욱더 중국을 고평가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마자랭은 대두국이 두 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것도 중국의 후원 덕이라고 생각했다.
“중국과 어떤 관계이든 간에, 미다그 왕국이란 나라는 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구려. 우리 프랑스의 절반에 달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으니.”
“폐하. 프랑스 군인과 미개한 동양인을 비교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음. 짐이 실언했군.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소, 튀렌 대원수.”
작위가 튀렌이라 흔히 튀렌 자작 또는 튀렌 대원수라고 불리는 사내의 이름은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였다.
불과 몇 개월 전, 뒨이란 지역에서 고작 1,000명이 안 되는 피해로 2만에 달하는 스페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장군이 바로 그였다.
프랑스에 단 두 명밖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대원수라는 직책을 갖게 된 것도 그만큼 그의 능력과 공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튀렌을 마냥 좋게 보지는 않았다.
튀렌은 루이 14세가 무척 싫어하는 ‘위그노’였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속으로 불쾌함을 느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미다그 왕국을 우방으로 두는 것은 어떻겠소? 그 정도의 국력을 가졌다면 저 역겨운 저지대의 것들을 견제하는 도구로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요.”
“프랑스와는 너무 거리가 멀리 떨어진 나라라 특별한 관계를 맺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마자랭의 그 같은 답변에 루이 14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여 모처럼 의견을 제시했건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자랭은 루이 14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와 같은 말을 꺼냈다.
“다만 그들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민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니, 국내의 무능력하고 불만 많은 빈민들을 미다그 왕국으로 보내는 것은 괜찮을 듯싶습니다. 그 정도야 상인들만 동원하면 되는 일이니 말입니다.”
“호오, 이민 사업이라. 경제력이 좋으니 그런 쓸데없는 짓도 하는 모양이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마자랭이 추기경답지 않은 발언을 하였으나, 루이 14세는 그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프랑스에선 추기경 역시 여느 귀족이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관심을 보인 부분은 바로 이민 사업에 대한 것이었다.
‘위그노들을 미다그 왕국에 보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루이 14세는 먼 훗날 자신이 국정을 장악하면 국내의 위그노를 머나먼 나라로 추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위그노는 하나같이 말이 많고 따지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절대 권력을 바라는 루이 14세로선 장애물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두국은 최고의 대안처럼 여겨졌다.
머나먼 나라로 위그노를 추방하는데 그 대가로 돈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까지 미다그 왕국이 생존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10만의 상비군을 가졌다 한들, 전쟁의 향방은 해전으로 결정이 날 것이다.
제해권을 잃으면 교역이 막힐 것이고 교역이 막히면 10만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렇다 보니 루이 14세도 대두국의 미래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대두국의 국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상대는 영국과 네덜란드였다.
심지어 대두국에는 그 흔한 전열함도 없다고 하니, 더욱 승산이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번 전쟁에서 국체를 보존한다면, 그때는 미다그 왕국과의 동맹을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루이 14세가 생각하기에 대두국은 프랑스가 동맹으로 삼기에 가장 적절한 나라였다.
하여 그는 자신이 국정을 주도할 때까지 대두국이 살아남는다면 대두국을 프랑스의 동맹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정작 대두국의 생각은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
VOC의 함대를 지휘할 총사령관은 마르텐 브리츠였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발의 노장이었다.
대두국과도 몇 차례 부딪친 적이 있었기에 그는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VOC의 이사회 멤버들이 보여준 촌극처럼 대두국의 힘을 두려워하거나 과대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10만의 군대와 200척에 달하는 함대는 분명 위협적이었다.
함대 규모만 따지면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
‘하지만 그래 봤자, 프리깃은커녕 코르벳(초계함) 수준의 전장 범선이 주력 전함이지 않은가. 나머지는 논할 가치조차 없는 정크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