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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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만나다.
장원은 남명이었고 병든 나무는 정지룡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융무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말해?’
정지룡이 병든 나무라는 사실을 요한도 모르지 않았다.
남명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 병든 나무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도.
다만 그 사실을 요한에게 말한다고 큰 의미는 없었다.
요한은 바로 그 정지룡의 사위가 될 몸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병든 나무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니, 융무제가 그에게 하소연을 해봤자 얻을 게 없을 것이다.
‘아, 나라서 이야기하는 건가? 유일하게 회유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현재 남명의 그 어떤 권력자도 정지룡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이 그 자리까지 올라간 배경에는 반드시 정지룡이 있었으니까.
반면 요한은?
정지룡을 접한 지 겨우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즉, 정지룡의 영향력에서 다소 자유로운 존재라는 의미였다.
신세 진 게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이는 융무제가 요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든 정지룡을 알현할 수 있으면서 정작 정지룡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존재.
그런 존재는 오직 요한뿐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내가 대단해 보이긴 하네.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죽일 수 있으니까.’
아마 융무제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정지룡이 방심한 틈에 그를 암살하는 것.
마침 요한은 무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였으니 그의 마음을 사기만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실제로 요한도 그 같은 계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에겐 융무제의 뜻에 따라야 할 이유가 없었다.
융무제와 손을 잡는 것보다 정지룡과 손을 잡는 게 얻을 것이 많은데 굳이 융무제의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 나무가 병들었다 해서 그 나무를 곧바로 베어버리면 폐하는 그 나무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게 시간을 주고 병든 부분을 치료하면, 그 나무는 다시 힘을 얻어 장원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단호한 거절이었다.
정지룡을 팽할 생각 따윈 하지도 말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으니.
융무제는 잠시 그의 말을 생각하며 침묵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뿐.
그는 이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치료할 수 없는, 죽음이 예정된 나무라면? 그때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기다리는 동안 그 나무 때문에 장원 전체가 썩게 될 것이다.”
“폐하, 그 나무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장원을 지켜왔다면, 그 나무에게 존중을 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프고 병든 나무도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한다면,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장원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나무를 베는 대신, 그 나무를 치료하고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장원을 지키기 위해 모든 나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장원이 이어지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은 억지로 정지룡을 변호하였다.
이미 정지룡의 라인에 선 요한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자 융무제는 마치 최후의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공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지경까지 와서도 관대함을 보이라는 말인가.”
“······.”
“여독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갑자기 불러서 미안했네. 더 붙잡지는 않을 테니, 이만 돌아가시게.”
요한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힐긋 뒤를 돌아보니, 융무제가 생기 없는 얼굴로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
“뭐가 그리 급해서 이 야심한 밤에 저를 찾으신 겁니까?”
융무제를 알현한 이후에도 요한은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황제만큼이나, 아니 황제 이상으로 중요한 인물이 그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폐하와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
“아니, 오랜만에 사위를 봤는데 그런 것부터 물으십니까?”
황제보단 정지룡이 편하게 느껴졌는지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그러자 정지룡이 엄한 얼굴로 말하였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내가 묻지 않았느냐.”
“별 대화 안 했습니다. 그냥 장인을 의심하는 거 같아서 의심하지 말라고만 해뒀습니다.”
“···폐하께서 충신인 나를 의심한단 말인가.”
본인 입으로 충신이라 하다니.
요한은 참 뻔뻔하다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황제 폐하여도 장인을 의심할 거 같습니다만.”
“이주를 대만으로 부른다지?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무튼 잘 해주었다.”
정지룡은 요한의 말을 이 악물고 무시하고는 대만 이야기를 꺼냈다.
“대만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게 상당히 많습니다. 제게 투자한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
“우선 이걸 받으시지요.”
정지룡은 요한이 건네준 문서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게 무엇이냐?”
“전답입니다. 무려 6,000결의 전답이죠.”
“6,000결의 전답이라.”
“이 전답의 가치만 해도 은자로 족히 수만 냥은 될 겁니다. 그 전답이 설령 대만에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요한에게 있어 정지룡은 장인이기 이전에 투자자였다.
대만 정복을 가장 많이 지원한 투자자 말이다.
그런 만큼 대만 정복에 대한 과실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내가 관리할 수도 없는 전답인데, 정지룡이 대신 인력을 보내서 관리해주면 나야 좋지.’
말이 6,000결의 전답이지, VOC가 관리할 때만큼 생산량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이 명확한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고 수만 냥의 은자라고 얼버무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관리만 잘하면 한 해에 수만 석, 많으면 십수만 석의 쌀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지룡이라면 VOC보다 더 관리를 잘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항구에 대한 장인의 지분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3만 냥을 투자해주셨으니, 한 해에 최소 3,000냥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 드리죠.”
요한은 마치 선심 쓰듯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사실 그로선 대단히 속이 쓰린 일이었다.
겨우 3만 냥 투자했는데 5달도 안 돼서 원금을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른 셈이었으니.
하지만 요한은 다음 목표를 필리핀으로 정한 상황이었다.
필리핀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정지룡의 마음을 살 필요가 있었기에 요한은 속이 쓰린 걸 내색하지 않았다.
“지분만 인정한다는 건, 소유권은 네가 갖겠다는 것으로 보이는군.”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유권은 당연히 장인 것이지요. 다만, 섬을 관리할 때만큼은 저에게도 떨어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요한이 정지룡에게 대만을 정복하자고 할 때, 그를 설득한 방법이 ‘대만을 영지로 삼아라.’였다.
그래서 정지룡은 아마 대만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같은 인식을 요한도 당장은 깰 생각이 없었고.
물론 요한은 정지룡에게 대만을 넘겨줄 생각 따위는 일절 없었다.
단물을 쪽쪽 빨아 먹고 체급이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때, 과감하게 정지룡과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 전에 사람을 보내 내가 가진 권력을 빼앗으려 한다면 문제인데···.’
남명의 최고 권력자인 만큼 정지룡에겐 인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았다.
일개 선장이었던 시랑조차 엄청난 인재였을 정도니.
그렇기에 정지룡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가 허튼 생각을 품지 않게끔 하여야 하는 것이다.
“왕이 될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니고?”
“왕이라니요. 장인도 아직 왕이 안 되셨는데, 사위인 제가 왕은 무슨 왕입니까?”
“내가 왕이 아니라서, 이미 왕위에 앉은 자를 새로운 장인으로 두려는가 보군.”
정지룡이 서랍에서 담배를 꺼냈다.
요한은 그 모습이 마치 마피아 영화에서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마피아 보스처럼 보였다.
‘설마 아슬라미에와의 관계를 알아차린 건가?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차렸지?’
아슬라미에에게 그의 사위가 되겠다고 약조를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와 단둘이 있을 때 한 이야기였다.
설령 누군가가 엿들었다고 해도 언어가 달랐다.
아무리 정지룡에게 사람이 많다고 해도 파포라 어에 능통한 이까지 수하로 두기는 어려울 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장인 말고 또 누구를 장인으로 둔다는 겁니까? 저는 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입니다.”
“일단 너의 말을 믿어주지. 너도 이제는 내 가족이니까.”
요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점에서 정지룡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필리핀을 포기하는 것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씨 가문의 상단 전체를 적으로 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이 바다를 장악한다면 설령 요한이 얼마나 많은 군대를 가졌든, 굶어 죽는 미래밖에 남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대만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잖아?’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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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은자가 더 필요하겠지? 병력도 많이 모았다고 하니 말이야.”
정지룡은 확실히 고단수였다.
채찍과 당근을 너무도 잘 사용하였다.
요한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기색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장인께 더 많은 투자를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좋아. 그럼 10만 냥을 더 투자해주겠다.”
10만 냥.
실로 거금이 아닐 수 없었다.
흑기군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10만 냥이면 5,000명의 흑기군을 1년 가까이 고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고급 용병이자 친위대 장교인 오번병과 달리, 일반 병사는 한 달에 주는 돈이 2냥이 채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10만 냥의 가치를 알면서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적습니다.”
“뭣이?”
“통 크게 50만 냥을 투자해주시지요.”
정지룡이 처음으로 요한의 앞에서 노여움을 드러냈다.
아까 장인 이야기를 꺼내며 요한을 압박할 때도 이런 표정은 짓지 않았으니, 그가 돈 문제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구나. 그깟 작은 섬을 관리하는데 뭐 50만 냥?”
“대만으로 만족할 거면 10만 냥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송(필리핀)이란 땅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송?”
“대만보다 훨씬 부유한 섬입니다. 인구도 많고 당연히 개척된 전답도 훨씬 많습니다. 그곳을 점령하면 수천 결이 아니라, 단번에 수만 결의 전답을 얻게 되실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정지룡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노여움을 지우고 흥미를 드러낸 것.
남중국해의 지배자인 정지룡은 아마 요한이 설명하기도 전부터 여송이란 섬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정보를 더 묻지 않고 바로 흥미를 드러낸 것일 터.
“물론 여송 정복을 원치 않으신다면 10만 냥만 받겠습니다. 단, 추후 제가 여송을 정복했을 때, 어떤 것도 바라지 마십시오.”
요한은 마치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대만에서의 성과만 본다면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요한이 정지룡에게 소유권을 넘겨준 6,000결의 전답만 해도 이미 본전 이상의 성과였다.
같은 1결의 토지라 해도 강남의 전답과 대만의 토지가 가격까지 같을 수는 없겠으나, 3만 냥 이상의 가치를 지닌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항구의 지분을 인정한다며 매년 3,000냥이라는 배당 수익을 지급한다고 하였다.
정씨 상단이 대만에서 네덜란드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행위하는 것도 엄청난 이점이었고 말이다.
“좋다. 50만 냥의 은자를 지원해주지.”
요한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50만 냥이면 당분간, 아니 최소 몇 년은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마닐라로 원정을 가는 동시에 대만 내에서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했다.
즉, 정복 전쟁과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기분을 내색하지 않고 정지룡에게 추가로 하나를 더 요구하였다.
“이왕이면 함대도 지원해주십시오.”
“···뭣이?”
“섬을 정복하러 가는데 함대도 없이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지룡은 그런 요한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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