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벽안의 마녀 (5)
마을 북쪽 숲으로 들어온 리아와 나, 그리고 북극이는 산속을 오가며 지형지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등산로 하나 없이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산비탈을 돌아다니며, 함정을 설치할 곳과 적들을 유인할 경로를 파악했다.
그리고는 함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너는 북극이랑 여기 있어. 내가 마을 안에서 재료랑 도구를 좀 구해 올게.”
“그래, 조심히 다녀와.”
헥- 헥- 헥-
나는 북극이와 리아를 북쪽 숲속에 남겨 둔 채,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 저벅- 저벅-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과 각종 작업으로 인해 바빴고, 김종직의 측근들은 마녀를 잡기 위해 동쪽 숲으로 우르르 몰려가 있었다.
굳이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껏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는 상황.
나는 펜션에 두고 온 식량 배낭을 챙겨,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함정을 만들기 위한 끈, 철사를 보이는 대로 배낭에 집어넣었으며, 땅을 파기 위한 삽을 챙겼다.
“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머릿속에 생각해 둔 물건들을 얼추 챙겨 북쪽 숲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나에게 숙소를 안내해 주던 김종직의 측근과 마주쳤다.
“…….”
“한참을 찾았는데, 어디에 계셨습니까?”
“아……. 어제 무리했는지 몸이 좀 안 좋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아까 머무시는 숙소에 들러보니까, 안 계시던데요? 손에 든 삽은 뭡니까?”
“이건……. 제가 배탈이 나서 볼일을 보느라고요. 방금 숲속에 묻어 놓고 오는 길입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추적조에 참가하시기로 해놓고, 말씀도 없이 안 나오시는 건 좀 곤란합니다.”
“앗! 알겠습니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는 말씀드린 대로 나가겠습니다.”
“다들 그쪽을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은 저희 회(會)의 규칙을 따라 주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윽고 배정받은 펜션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늉을 하다가, 김종직의 측근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쏜살같이 북쪽 숲속으로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저벅-
타다다닥- 타다닥-
곧이어 북쪽 숲속에 다다름과 동시에 리아와 북극이를 데리고 미리 봐 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걸로 함정을 만들면 돼. 각자 흩어져서 미리 얘기해 둔 장소에 덫을 설치하자고.”
“그래, 알았어.”
헥- 헥- 헥-
리아와 나는 각자 영역을 나눠, 미리 정해 둔 장소들에 덫을 설치하고 함정을 파기 시작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나고 자라며 채집 활동과 수렵 활동을 어렸을 때부터 해 온 탓에 함정을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함정에 속아 넘어가느냐의 문제가 있었을 뿐…….
“리아야! 이리 와 봐!”
“왜?”
“빨리 와 봐! 나 이것 좀 잡아 줘!”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뭔데 그…….”
부스……. 탁-!
“내가 이런 거에 속을 줄 알았냐? 이 뚱땡이 녀석아!”
리아는 내가 바닥에 수북하게 덮어 둔 나뭇잎 더미 위로 내디디려는 발을 멈추며 말했다.
그 순간.
따악-! 휙-
촤라라라락- 꽈아악-
리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리 위에서 떨어진 올가미가 리아의 상체를 옭아맨 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뭐라고? 공중에 떠서 말하니까 잘 안 들리는뒈에~? 어때? 내 덫을 치는 실력이?”
“으으으으……. 이 나쁜 X끼야!”
리아는 올가미에 얽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풀어 주면 복수하지 않겠다고 얘기해. 아니면, 백훈 아저씨 올 때까지 거기에 묶어 둘 거야.”
“으으으! 알겠어. 풀어 주면 복수하지 않을게.”
“백훈 아저씨를 걸고 맹세해. 아니, 마을 어르신들을 걸고 맹세해!”
“그래, 마을 어르신들을 걸고 맹세한다!”
스릉- 휙- 서걱-! 사박-
나는 리아에게 묶인 올가미 끝을 풀어 주자마자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저 선머슴 같은 녀석의 성격상 올가미에서 풀리자마자 노발대발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쉬이이익- 턱-!
하지만, 올가미에서 풀린 리아는 묵묵하게 자신이 치고 있던 덫을 마저 치러 갔다.
‘후……. 덤벼드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잠시 후.
덫과 함정 설치 작업이 끝난 우리는 숙소에서 챙겨 온 전투식량을 먹기 시작했다.
“너 이런 거 먹어 봤냐?”
“아니, 이건 어떻게 먹는 건데?”
“짜식. 군대를 안 다녀왔으니까 이런 것도 모르지.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해.”
“그래.”
“팩 위에 있는 절취선을 따라서 포장을 뜯고, 안에 있는 발열팩 손잡이를 힘껏 당겨.”
“오……! 완전 신기하네?”
우리는 전투식량 봉투가 부풀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구경한 뒤.
따듯하게 데워진 밥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북극이는 이거 먹어.”
헥- 헥- 헥-
게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우리는 그 자리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어차피 주변에 뭔가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에 북극이가 알려 주었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사방을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 * *
달빛에 의해 사물의 윤곽 정도밖에 구분할 수 없는 어두운 밤.
우리는 나뭇잎 속에 파묻고 있던 몸을 일으켜,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기 위해 피부가 드러나는 부위에는 온통 숯 검댕을 발랐고…….
북극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북극이 역시 하얀색 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신에 까무잡잡한 숯 검댕을 칠했다.
헥- 헥- 헥-
리아를 잡기 위해 이틀 연속 산속을 헤집고 다닌 탓인지, 기진맥진해진 추적조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없이 조용해진 마을.
우리는 김종직이 머무는 관사 근처로 다가갔다.
관사 주변에는 여전히 K2소총으로 무장한 김종직의 부하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북극아, 여기 서서 기다려. 다른 데 가면 안 돼.”
헥- 헥- 헥-
북극이를 수풀 속에 숨겨 놓은 뒤, 리아와 나는 관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약초꾼과 사냥꾼 생활을 오래 해 온 리아의 움직임은 귀신과도 같았고.
나 역시 수많은 변종과 감염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만큼, 감쪽같이 인기척을 숨긴 채 움직였다.
관사 주변을 순찰하는 부하들이 있다고는 하나.
고작 두 명이 커다란 건물 주변을 도는 만큼, 건물 안으로 들어갈 기회는 많았다.
이윽고 김종직의 관사로 진입하자, 1층에 있는 휴게실에는 김종직의 부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리아와 나는 한껏 몸을 낮춘 채, 관사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 복도에 오르자,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와 함께 젊은 여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휘익- 찰싹-! 휘릭- 짜악-! 휙- 철썩-!
“꺄아아악-! 아악-!”
그리고는 김종직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비명소리를 들으니까 한결 낫군. 오늘은 ‘마녀’ 그 외국 계집년의 비명을 들어 보나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냐? 하악…….”
“제발 살려 주세요……. 맞는 것만 빼면 뭐든 다 할게요. 흐윽……. 흑…….”
“하악……. 내가 널 죽이긴 왜 죽이겠냐? 이렇게 기분 좋은 소리를 내지르는데. 걱정하지 마라. 내일은 쉴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어차피 너 말고도 날 즐겁게 해 줄 사람은 많아.”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김종직의 말을 듣고 있던 리아는 분노에 차, 몸을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또한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내 가족과도 같은 리아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도 있나 본데? 그 사람들도 구해 주자.”
“그래.”
김종직이 머무는 관사는 3층짜리 리조트 건물.
1층과 2층에 없으면, 3층에 갇혀 있는 게 당연했다.
계단을 이용해 한층 더 올라가자 10개의 방이 보였으며, 각 방에서는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종직과 부하들이 1층과 2층에 있는 이상, 이곳에 갇힌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역할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내가 김종직을 제압해서 부하들을 유인할 테니까. 리아,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 줘.”
“할 수 있겠어?”
“그럼, 당연하지. 내가 여기까지 운으로 살아남은 줄 아냐? 김종직을 방패 삼아서 부하들을 북쪽 숲으로 유인할 테니까, 거기서 만나자고.”
“그래, 알겠어.”
김종직과 부하들을 북쪽 숲속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우리가 미리 설치해 둔 함정을 이용해 녀석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오케이. 그럼 고고!”
“그래, 조심해.”
“너도!”
나는 3층에 리아를 남겨 둔 채, 2층 김종직의 방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때마침 김종직의 기척이 출입문 쪽으로 가까워지는 상황이었다.
철컥- 끼이익-
곧이어 출입문이 열리며, 김종직이 문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마체테를 힘껏 휘둘러, 손잡이의 끄트머리로 김종직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저벅- 저-벅……. 휘익- 빠악-! 털썩-!
이윽고 내 기습을 받은 김종직은 의식을 유지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반쯤 열려 있는 문틈으로 보이는 광경은 참혹했다.
나체로 벽에 묶인 채 기절해 있는 여성.
여러 종류의 채찍과 회초리.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들.
그리고 여성의 몸에 나 있는 수많은 상처.
김종직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덥썩-! 꽈악-!
나는 김종직을 뒤에서 끌어안고, 목덜미에는 마체테 칼날을 들이민 채 리조트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리조트 주변을 경계하던 김종직의 부하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 회장님이 붙잡히셨다!”
타다닥- 타다닥-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
.
곧이어 K2소총으로 무장한 사내 예닐곱이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움직이지 마! 내 허락 없이 움직이면, 회장님 손가락 하나씩 날아간다.”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 지금 당장 마녀가 잡아간 내 개 데려와!”
“…….”
질- 질- 질-
나는 김종직을 방패 삼아 리조트 부지를 빠져나온 뒤, 마을 북쪽을 향해 쉴 새 없이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김종직의 부하들은 일정 거리를 둔 채 나를 쫓아왔다.
이윽고 마을 북쪽 숲에 다다를 즈음, 내 팔뚝에 억류되어 있던 김종직이 의식을 되찾았다.
“뭐야? 역시 너였군……. 추적조에 무단으로 불참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뭔가 조치를 해야 했는데……. 잃어버린 개 때문에 이러는 건가? 내가 새로운 개를 주겠네. 아니면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주지.”
“응, X 까! 뒤지기 싫으면, 부하들한테 거리 좀 두라고 해.”
나는 마체테를 쥔 손에 거세게 힘을 주며, 김종직의 턱밑에 놓인 칼날을 더욱 세게 들이밀었다.
“크윽! 다들……. 더 멀리 물러서.”
저-벅-! 저-벅-! 저-벅-!
나는 김종직을 방패 삼아 꾸준히 뒷걸음질 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숲 초입에 다다랐다.
그사이, 나와 김종직 부하들이 벌이는 소란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눈앞에 벌어지는 인질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종직의 부하들과 살벌한 대치를 이어 가는 한편,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부스럭- 부스럭-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