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단독 주택 (2)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얼굴을 비춰 잠을 깨웠다.
두리번- 두리번-
드르렁- 푸우-
민수는 한 뼘이 넘는 두께의 이불에 짓눌린 상태에서도 잘만 자고 있었다.
무려 7겹의 이불.
여름 이불, 겨울 이불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덮은 이불은 크게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온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두껍게 덮은 이불 덕에 추운 겨울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생수통의 물에 살얼음이 언 것만 보아도 지난밤의 추위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커튼을 젖힌 후 창밖을 살폈다.
겨울밤의 혹독한 추위에 감염자들은 웅크린 자세로 담장 주변에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새우잠을 자다가 동사한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반 팔과 반바지 차림인 것과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피 칠갑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점이었다.
감염자들이 밤 추위에 얼어붙어 있는 지금이 이곳을 탈출하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민수야, 일어나.”
“…….”
“이민수! 빨리 일어나.”
“넵! 일어났습니다.”
민수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신 차렸어? 지금 감염자들이 얼어 있으니까 탈출하기 좋은 기회야. 옥상으로 가서 탈출할 경로 좀 확인해 보자.”
“알겠습니다.”
끼익- 저벅- 저벅-
주택의 한쪽에 자리한 계단은 1층에서 시작하여 2층을 지나 옥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상의 중앙에는 몇 종류 화분들이 있었고, 구석에는 뿌연 먼지가 잔뜩 쌓인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흠…… 시야가 좁네.’
난간 주변을 서성이며 단독 주택을 탈출할 경로를 살펴봤지만, 인접한 빌라들에 비해 단독 주택의 높이가 낮은 탓인지 다른 골목길로 빠져나갈 경로를 찾기가 불가능했다.
옥상에 올라온 보람도 없이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려는 찰나 마당 구석에 있는 차고가 눈에 들어왔다.
민수를 옥상에 대기 시킨 후, 최대한 인기척을 숨긴 채 차고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고는 실제 차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창고로 활용하고 있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특이한 점은 차고 출입구가 굳게 닫혀 있다는 것이다.
승용차가 드나들 수 있는 정면 출입구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측면 출입구의 손잡이는 잠겨 있었다.
‘안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꼼꼼히 잠근 거지?’
꼼꼼하게 잠겨 있는 차고의 자물쇠가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담장 너머에 얼어붙어 있는 감염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차고를 열 방법을 고민하던 중 화분 밑에서 찾아낸 열쇠 꾸러미가 생각났다.
얼핏 떠올려 봐도 열쇠 꾸러미에는 5~6개의 열쇠가 달려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재빨리 1층 식탁 위에 두었던 열쇠 꾸러미를 가져와 차고의 자물쇠에 하나씩 넣고 돌려 보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끼릭- 철컥-!
역시 예상대로 열쇠 꾸러미에 차고 열쇠가 달려 있었다.
생각 없이 편의점 창고를 열었던 것이 떠올라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민수는 옥상에서 석궁으로 차고 출입구를 조준하고 있었고, 나는 차고 앞에 서서 석궁을 조준한 채로 차고의 문을 당겼다.
끼이이익-
묵직한 차고 문이 열리며, 그토록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만들던 내부가 드러났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진회색 SUV 한 대가 차고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차고 측면으로는 잡다한 잡동사니들이 벽면에 정리되어 있었다.
‘오…… 대박인데? 시동만 걸리면 이걸 타고 탈출해도 되겠다.’
천천히 차고 내부로 들어가 감염자나 위험요소가 있는지 확인한 후, 제일 먼저 SUV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진회색 SUV의 문은 열려 있었고, 자동차 키도 운전석 좌석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차량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을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었다.
“아…… 좋다 말았네. 어떻게 살려 볼 방법이 없나?”
자동차 키까지 있는 차량을 획득할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이대로 포기하기는 뭔가 아쉬웠다.
어떻게든 시동을 걸 방법을 찾기 위해 차고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지만, 전기가 끊긴 시점에서 자동차의 배터리를 살릴 방법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뒤적- 뒤적- 툭-!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미련에 점점 더 차고 내부로 깊숙이 뒤지다 보니 검은색 천으로 뒤덮인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꽈악- 휙-
손에 잡히는 검은색 천을 잡아당기고 나니 커다란 오토바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고 내부가 어둡기도 했지만, 검은색 천으로 뒤덮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이런 보물이 있는지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횡재했다!”
재빨리 랜턴을 꺼내 오토바이의 외관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BWM을 상징하는 엠블럼이 부착되어 있었고, 외관에는 F830GS라는 모델명이 표기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라고는 고향에 있는 백훈 아저씨의 배달용 오토바이를 몇 번 빌려 타 본 것이 전부였지만, 조작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흔하게 생긴 차고 안에 SUV와 오토바이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생겼다 하더라도 시동을 걸어 움직이지 못하는 이상 무겁기만 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뜻밖의 아이템을 얻었음에도 정작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망연자실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아깝기는 해도 도보로 탈출할 수밖에……. 아! 잠깐, 혹시? 가능하려나?’
순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몇 년 전, 지자체에서 재생 에너지 지원 사업이랍시고 일반 가정집에 태양광 패널 설치 지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신청하는 가정집마다 태양광 패널 몇 장을 설치해 줬던 지자체 공익사업.
하지만 옥상이나 베란다 난간에 설치된 작은 태양광 패널로는 헤어드라이어 하나 제대로 동작시키기 어려웠기에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방치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자체 국비로 설치된 수많은 태양광 패널 하나가 이 집 옥상에 설치되어 있었다.
태양광 패널에서 생성되는 전압은 12V.
자동차와 오토바이 배터리의 전압도 12V.
태양광 패널과 충전 컨트롤러만 제대로 동작한다면,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배터리를 충전시킬 수 있었다.
길이 보인 이상,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는 거칠 게 없었다.
차고 선반에 놓여 있는 수공구를 이용해 자동차와 오토바이 배터리를 분리한 뒤, 주택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민수는 나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본인의 임무인 주변 경계에 집중했다.
제일 먼저 먼지가 잔뜩 쌓인 태양광 패널을 깨끗하게 닦은 후, 충전 컨트롤러의 동작 여부를 확인했다.
충전 컨트롤러에 ‘Solar Panel Port’라고 적힌 단자와 ‘Load’라고 적힌 단자에 정상적으로 LED가 들어온 것으로 보아 태양광 패널과 충전 컨트롤러는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태양광 패널 아래에 있는 축전 배터리가 고장 난 모양이었다.
기존의 배터리에 표기된 전압이 12V인 것을 확인한 후, 충전 컨트롤러와 연결되는 커넥터를 SUV에서 뗀 자동차 배터리 단자로 옮겨 달았다.
배터리와 연결되는 컨트롤러 포트의 LED가 점등된 것을 보아 자동차 배터리가 정상적으로 충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 그게 뭐예요?”
“이거? 자동차 배터리. 저건 오토바이 배터리.”
“자동차 배터리요? 어디서 난 거예요?”
“차고에 SUV가 한 대 있고, 오토바이도 한 대 있더라. 배터리가 방전인 것만 빼면 나머지는 멀쩡한 것 같아서 살려 보려고.”
“형, 그런 것도 할 줄 아셨어요?”
“그럼, 형이 기계공학과 전공했어. 기초적인 전기이론도 다 배웠다고.”
문제는 태양광 패널의 전기 생산량이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데다 컨트롤러에서 배터리로 보내는 충전 전류로는 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럼 얼마나 기다리면 돼요?”
“지금 전압이랑 전류를 잴 수 있는 측정장치가 없어서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려운데, 내 추측으로는 엄청 오랜 시간을 충전해야 할 거야.”
“얼마나요?”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서 자고 가야 할걸?”
“알겠습니다. 일단 식량이랑 식수는 충분하니까 하루 더 있어도 상관없겠죠.”
자동차 배터리가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쓸 만한 것들을 찾아 SUV 트렁크에 싣기 시작했다.
여분의 식수과 식수, 각종 수공구류, 차고에 있는 각종 소모품류, 여벌의 옷가지 등을 챙기다 보니 SUV의 트렁크와 2열 좌석이 꽉 채워졌다.
배터리 충전을 제외한 탈출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
“뭐야? 이제 12시야? 민수야! 점심이나 먹자.”
“넵, 알겠습니다.”
민수와 함께 부엌으로 이동해 봉지 라면과 통조림 햄을 점심 메뉴로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쩝- 쩝-
생라면이 주는 고소함과 라면 스프의 매콤함, 그리고 물에 씻어 염분을 빼낸 통조림의 짭조름한 맛은 훌륭한 만찬이었다.
제법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점심을 먹고 나니 기운이 돌았고, 남는 기운을 탈출 준비에 쏟기로 했다.
“민수야, 화살은 몇 발이나 남았어?”
“저는 12발 정도 남았어요. 형은 얼마나 남으셨어요?”
“나는 7발 정도 남았어. 그리고 아까 보니까 주방에 식칼이 몇 자루 있던데, 밥 다 먹으면 바깥에 감염자들 머릿수 좀 줄이자.”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 화살을 넘겨줄 테니까 옥상에서 감염자들을 좀 쏴. 나는 담장 위에서 식칼로 감염자들을 처리할 테니까. 옥상에서 세 보니까 주택 주변에 서른 명이 좀 넘게 있는 거 같던데, 딱 반 만 줄이자. 화살은 10발 정도만 남기자고.”
차량과 오토바이로 이곳을 탈출한다 해도 감염자들과 아무런 마찰 없이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아직 배터리가 충전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남는 시간 동안 담장 바깥에 얼어붙어 있는 감염자들의 숫자를 좀 줄여 볼 생각이었다.
민수가 옥상에서 감염자들을 처리하면, 나는 담장을 넘나들며 식칼을 감염자들의 두개골과 경추 사이에 박아 넣을 계획이었다.
저벅- 저벅-
각자 맡은 자리로 이동한 후, 아직은 얼어붙어 있는 감염자들을 처리할 준비를 마쳤다.
피잉- 퍽- 콰직-!
휙- 사악- 푹- 푹- 푹-
민수가 쏜 화살을 신호탄 삼아 얼어붙은 감염자들에게 달려들어 식칼을 후두골과 경추 사이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덜- 덜- 덜-
부들- 부들- 부들-
담장을 넘나드는 인기척과 화살이 두개골에 박히는 소리에 반응하여, 얼어붙어 있던 감염자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온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수십 명의 괴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은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이제 남은 화살은 8발, 여분의 식칼은 5자루.
처리해야 할 목표는 13명.
지금 감염자를 하나라도 더 처리한 만큼 내일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스윽- 푹- 푹- 푹-
감염자의 발작이 멈추기 전에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