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 39. 이이제이 이독제독(以夷制夷 以毒制毒) (2)
“천 명씩 맡으면 됩니다. 참 쉽죠잉?”
언제 온 것인지, 알라봉대가 둘의 옆에 서서 배시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크크크. 그래그래. 아주 쉽네, 쉬워. 이래서 내가 너희들을 좋아한다니까. 흐랴아앗!”
장기후가 앞장서서 왜구들의 추가부대를 향해 진격해 나아갔다. 광폭하게 휘둘러지는 방패에 초전박살 나는 적의 제1열.
파바밧, 바로 뒤이어 천소소가 내리달으며 날렵하게 장기후의 머리를 타고 넘었다.
서걱!
제 2열 가운데 최선두의 목이 나타풍화륜의 새로운 재물이 되었고,
쐐쇄쇄쇄쇄쇄!
그다음은 기대몽의 암기들이 적진을 흐트러뜨렸고, 다시 그 뒤를 장기후의 거악방패가 맡았다.
퍼버버벅!
그의 방패에 분쇄되는 왜구들의 갈빗대,
서걱, 서걱!
나타풍화륜에 난자당하는 왜적들의 사혈(死穴)들,
쐐쇄쇅!
그 둘의 사각지를 노리며 들어오는 왜병들을 사살하는 폭침들.
사괴해 3인방의 절묘한 연수합격이 연달아 이어지며 적의 전열을 무너뜨렸다.
그들을 독려하기라도 하는 걸까?
쿠르르르르. 쏴아아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뭉긋하게 내려앉은 구름이 좀 전보다 훨씬 굵직해진 물줄기를 쏴대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핏물이 섞인 흙탕물 위에 병기들을 이리저리 꽂아대는 알라봉대.
수중기밀진(水中氣密陳).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기문진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비로 인해 대기에 대폭 증가된 수기(水氣)를 끌어올리는 남만 특유의 진법.
왜적들이 죽으면서 흘린 병기들이 사방천지 널려 있었기에, 진로(陳路)를 열 병기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진세(陳勢)는 3장 이내입니다! 그 안에서 싸웁니다!”
“접수!”
사괴해들은 알라봉대의 말대로 수중기밀진 3장 안에서 전투를 이어갔다. 그 원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 안에 있으니 아주 미세하게나마 소모된 내력이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그 덕분이리라.
사괴해의 기세가 옴팡지게 증가했다.
하지만!
동영삼왜 중 영신번(永神藩)의 번주(藩主)인 에도가와 히요시.
충원된 적들 속에 그가 있었다.
그가 영신번 중 공격에 가장 특화된 병력인, 천지홍황(天地鴻荒) 네 개 조(組) 이백 기(騎)와 단련된 왜병 일천여 명을 동원해 남방군부를 맹공하고 있었다.
“저쪽이다! 저놈들부터 조져라!”
비록 이미 성상계군에 대해 승기를 잡았다고는 하나, 완벽한 섬멸을 위해서는 거세게 저항하는 소악귀들부터 잡을 필요가 있다 느낀 히요시.
파바바바밧!
그의 지휘에 따라, 천지홍황의 기병들이 일사불란하게 나누어져 무림대학관생들에게로 보내졌다. 그중 오십 기의 천자조(天字組)가 사괴해쪽으로 충원되었다.
지자조(地字組)는 남궁금, 모용백루, 대평위의 28조쪽으로.
홍자조(鴻字組)는 이시홍의 18조로.
그리고,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히요시의 양허리춤에서 각각 한 쌍씩 잠들어 있던, 도합 네 자루의 도가 빗살을 가르며 허공으로 발출되었다. 그러곤 곧장 용초랑과 원극이 있는 쪽으로 황자조(荒字組)와 같이 뛰어드는 에도가와 히요시.
단시간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제일 활약하는 소악귀들이 누구누구인지 완벽하게 파악해낸 것이었다. 그들만 제압한다면 남방군부 전체를 개미떼 몰살시키듯 끝장낼 수 있다는 것 또한 함께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흙탕물을 튀기며 전장을 휘젓는 천지홍황의 광풍(狂風).
장기후가 어느새 허벅지에 박힌 단도를 뽑아 그들을 향해 던지고는 마주 짓쳐 들었다.
“그래그래, 히밤-! 고작 이거야? 이게 다야? 더 오라고!”
퍼버버버벅!
그의 방패에 두 기의 천자조원이 달려오는 도중에 저승길 특급마차에 올랐다.
“이제 얼추 구백오십 정도만 더 잡으면 되나?”
그때 그의 옆을 스쳐 뛰쳐 오르는 날씬날쌘 인영 하나.
그 인영, 천소소는 창을 찔러 들어오는 천자조원 둘의 목젖을 갈라버렸다.
“구백사십구.”
우중(雨中)을 누비는 전쟁의 여신이 이러할까?
물기 젖은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천소소가 냉철 냉정하게 한 수 한 수 신속정확하게 적을 베어 나갔다.
그에 뒤질세라 장기후가 따랐고, 기대몽의 폭침(爆針)들이 쉴 새 없이 엄호했다.
그러나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인(人)의 장막(帳幕). 살상가상으로, 천자조원들은 상당한 고수들이기까지.
쉭! 쉬이익! 카랑! 카창!
사방에서 날아드는 무기의 날벼락.
빗물을 동반한 가지각색의 병기들이 기의 광채를 날름거린다.
기상인(氣傷人).
천자조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병기에 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의미. 이건 어쩌면 병력의 머릿수가 밀리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천소소가 하나를 베고, 그 기세를 이어 장기후가 둘을 베고, 다시 기대몽이 셋을 쏴 떨어뜨리고, 알라봉대가 기밀진의 범위를 넓혀나가도 소용없었다. 어느새 그 이상의 적들이 사방팔방에서 각종 무기들을 뻗어왔기에.
스팟!
천소소의 아리따운 목선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자칫 잘못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를 부위.
하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날아든 철퇴.
쾅!
“큭!”
외마디 비음과 함께 천소소가 입가에 핏물을 흘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에 흉소(凶笑)를 토해내며 말을 몰아 따라붙는 천자조원 셋.
그런 천소소를 구하기 위해 장기후가 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퍽석!
철퇴를 휘둘렀던 자의 가슴이 말머리와 함께 함몰되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둘이 휘두른 왜도(倭刀)에 그의 팔과 옆구리에 긴 자상이 생겼다.
“크크큿. 후끈후끈하구만.”
장기후는 웃고 있었지만, 결코 얼굴색이 좋지는 않았다.
비단 안면의 혈색뿐만 아니라, 온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절로 이가 악물어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팍, 그는 방패의 뾰족한 부분을 바닥에 꽂아 세웠다. 그리곤 두 발을 술에 취한 것처럼 어그러진 입 구(口)를 그리며 방패를 기묘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입전(立轉).
세워 돌린다.
거악진공벽의 회전력을 잔뜩 머금은 방패가 인(人)이건 마(馬)건 할 것 없이 폭풍같이 주변을 휩쓸었다.
콰자자자자작-!
대여섯 명의 전신과 대여섯 필의 말이 발기발기 찢겨나갔고 십여 개의 무기가 짓뭉개졌다. 핏물과 빗물, 흙탕물이 뒤섞여 전장을 후두둑 수놓는다.
그렇지만 금세 그 물벼락을 짓 찢으며 들어오는 왜구들.
후욱후욱.
막대한 내공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초식을 펼치느라, 장기후가 가쁜 숨을 흘리며 팔을 늘어뜨린다.
쉬쉬쉬쉬쉭!
그런 허점을 놓치지 않고 다섯 방향에서 날아드는 천자조원들의 창과 도. 장기후가 간신히 다시 방패를 휘둘러 둘을 쳐냈지만 아직 셋이 남았다.
‘……마지막인가?’
절로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따당! 소리와 함께 기대몽의 폭침들이 막간의 차이로 도 두 자루를 쳐냈다. 하지만 여전히 날아들고 있는 섬찟하게 번뜩이는 창 하나.
장기후가 급히 고개를 좌로 틀었다.
찌이익, 우측 뺨에 길고 깊숙한 상처가 나는 건 피할 수가 없었지만, 죽음의 위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위기일발.
장기후는 안간힘을 써 앞으로 달려 나가며 방금 자신을 공격했던 천자조원 중 한복판에 있던 자에게 방패와 함께 박치기를 감행했다.
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말과 함께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 사이, 그에 발맞춰 다른 넷에게 들이치는 천소소와 기대몽.
서겅, 차차창! 쒜쇄쇅!
둘의 목과 가슴이 쩍 갈라졌고, 둘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크크큿. 반반인가?”
“넌 이 와중에도 농이 나와?”
“야야, 이럴 때 하는 농지거리가 진짜배기야.”
심하게 무리를 한 탓에 장기후의 복부와 팔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물컹물컹 쏟아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천소소가 아랫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쉬고 있어. 내가 1900명 맡을게.”
“야, 신경 쓰지 마. 겁나 시원하니까. 바람구멍 몇 개 났더니 정신이 번쩍 드네. 흐흐.”
그러면서 주위를 휙 둘러보며 악을 써대는 장기후.
“몇 명까지 셌더라?”
그에 천소소가 콧잔등에 실금을 그리며,
“모르겠으면…….”
서걱! 또다시 왜구 하나를 날려버리며 외쳤다.
“처음부터 다시 세. 999?”
장기후가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의 옆을 메우는 동시에 방패를 휘저어 적의 골통을 빠갰다. 폭침이 다 떨어진 기대몽도 창을 뽈끈 쥐고는 둘의 뒤를 곧장 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적은 온 사방에 그득그득.
왜구가 밀물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여기뿐만 아니었다. 다른 모든 전선이 위기에 봉착했다.
인해전술(人海戰術).
퍼버버버벅! 서컹! 끄아아악!
온갖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한 시진이나 이어졌다.
사괴해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때까지 버텨냈다.
촤랑! 서겅!
천소소는 간신히 왜구 하나를 더 베고는, 문득 고개를 들어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까진가 봐.”
장기후가 그녀의 달아오른 등에 지친 척추를 맞대었다.
“야야, 아서라. 아직 멀었다고.”
기대몽과 알라봉대도 둘의 옆으로 와 등을 기대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공통된 이름 하나.
“늦습니다?”
“그러게.”
“다, 다행이다.”
기대몽의 어눌한 말에 장기후가 반문했다.
“뭐가?”
“이, 이쯤 되면 안 오는 게 낫잖아?”
피식, 천소소가 가볍게 웃는다.
“하긴 그러네.”
지친 건지, 아니면 빗물이 눈을 덮어서 그런지 모두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괴해 모두 마지막을 직감했다.
아마도 이런 게 죽어가는 거겠지?
쉬이이이이익!
더 몰려온 수십 명의 왜적들이 일제히 사괴해를 마무리 지으려 달려들 그때.
콰르릉, 쾅!
온 천지를 찢어버릴 듯한 소리와 함께 천둥번개가 쳤다. 동시에 지진이 난 것처럼 안탕산 인근 전체가 흔들거렸다.
사괴해는 그런 느낌을 그저 죽어가는 과정이라고만 여겼다. 온몸이 탈진해서 일어나는 떨림 정도?
한데,
쐐애애애애애애액! 펑!
안탕산 쪽에서 빗발치듯 상공으로 치솟는, 정체 모를 붉은색 신호탄.
펑! 펑! 펑!
신호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쉴 새 없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적들이 물러간다?”
“왜……!?”
누군가의 읊조림.
그게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고, 밀물처럼 밀려들던 왜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한 글자.
왜?
그에 대한 ‘해답’은…….
안탕산의 꼭대기 쪽으로 눈을 돌리자마자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일식(日蝕)?”
왜? 대신에 떠오른 이 한 마디.
그것이 그 해답을 갈음했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살짝 갠 뒤, 살짝 드러났던 해가 시커먼 무언가에 의해 집어삼켜 지고 있었으므로.
● ● ●
“선배, 근데요.”
“뭔데?”
“진짜진짜 이게 최선이에요?”
“아니.”
초려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안탕산의 최고봉 쪽을 올려다본다.
그들이 데리고 온 ‘생체병기’가 여덟 개의 팔인지 다리인지를 휘적이며 미완성의 석성을 부수고 왜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는데 저걸 안탕산에 데리고 왔단 말이에요?”
“다른 방법 없어.”
“최선이 아니라면서요? 그럼 최선이 있었던 거 아니에요?”
최선? 지금 그런 게 있긴 한가?
내가 이 방법을 택한 건, 알라봉대의 말을 들은 것도 있고 이게 최선이 아니라,
“최선 따위는 없어. 저건 최악이야.”
“……!?”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고.”
초려혜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무리 왜적들이라고는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이 죽어 나갈 거예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이라…….
“글쎄. 감당했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야.”
전생에서는 몇 명을 죽였는지 모른다.
그럼 이번 생에서는?
대충 오백 무렵까지는 셌었던 것 같다.
아마도 천은 가뿐히 넘겠지. 하나, 이제 더는 세지 않는다.
“나한테 신조가 하나 있거든.”
“……뭔데요?”
“착한 놈에게 나쁘지 말자. 대신, 나쁜 놈에겐 절대 착하지 말자.”
왜구 중에도 어쩌면 착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짓이 무조건 옳지도 않다는 것도 안다.
협이니 정의니 선이니 하는 허울 좋은 헛소리?
그딴 건 더더군다나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미 내게 저 왜구들은 나쁜 놈이고, 저놈들을 죽임으로써 내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최악의 수를 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척, 그렇게 나는 동두에서 데리고 온 동두십수의 잔여인원들과 함께 안탕산을 넘었다.
해를 잡아먹는 괴물을 남기고서.
● ● ●
“……일식?”
“일식이 아닙니다.”
기대몽의 말에 알라봉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그에 대한 답변은 그들 중 가장 눈이 좋은 장기후에게서 나왔다.
“다리가 여덟 개인 동물이 뭐가 있냐?”
“문어와 낙지가 다리 8개입니다.”
“그건 물에 살지 않나? 다른 건?”
알라봉대의 눈이, 철수하는 왜구들의 한참 위쪽, 일식이 벌어지는 안탕산 꼭대기 쪽을 똑바로 향했다.
“거미가 있습니다.”
“……거미라고 저게? 저렇게 큰 거미가 있어?”
천소소의 반문에 알라봉대의 입가의 헤실거림이 넘실거렸다.
“있습니다.”
일시에 알라봉대의 입술에 모아진 세 쌍의 눈동자.
그리고 비로소 토해진 한 마디.
“만년인면지주.”
“만년인면지주!?”
모두의 안구가 해연히 커졌다.
“그런 게!”
“어떻게!”
“저기에 있어?”
셋의 입에서 합쳐진 최종질문에,
“도미노 골패인가 봅니다.”
알라봉대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놈이 남쪽에서 데리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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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곤붕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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