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 44. 절체절명(絶體絶命) (2)
섬멸하라.
낮은 음성의 왜어였다.
자연히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심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냉오한 살의가 전역에 전파되었다.
무공의 고수라면 누구나 목소리에 공력을 싣는 정도는 할 수 있다. 허나 머리와 가슴에 저며 들게, 그 의지를 바로 전달하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도 수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동시에.
미야모토 마모루는 그 등장과 목소리만으로 이미 남방군부 전체를 기선제압했다.
그뿐이랴?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아흔여섯의 절정고수들까지.
그들을 맞이하고서 남방군부 소속 장졸들은 모두 깨달았다.
왜 성상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한 이유를.
고작 아흔여섯이 아니었다.
귀신같이 움직이며 병졸들을 도륙하는 시노비들.
수백 년간 그 어떤 중원인들도 겪어보지 못한 진정한 왜의 닌자(忍者)들이었다. 동영에 그러한 집단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봤지만, 그걸 단순히 세작이나 암살자 정도로만 치부했었는데, 오늘에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단단함, 굳건함, 은밀함, 신속함, 잔혹함, 그러면서도 질서정연함까지.
도저히 같이 있기 어려운 속성을 한 몸에 지닌 절정고수 집단, 시노비. 전쟁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갖춰진 살인병기들의 출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분명 물 샐 틈도 없이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파상공세.
검은 물결이 썰물처럼 밀려들 때마다 피보라가 일고, 밀물처럼 빠질 때마다 붉은 시신들이 나뒹굴었다.
‘……이럴 수가.’
적들의 전력은 단유성에게 전해 들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아니, 강하다는 말로는 감히 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전율스러웠다.
반드시 이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적의 숫자가 오천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방어에만 전념한다면 최소한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줄로 판단했다.
단유성이 만년인면지주를 데리고 올 만큼은.
하지만 그런 성상계의 예상은 최초 보고에서 이미 깨어졌고, 지금은 만근거석에 짓뭉개진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으스러지고 있었다.
오천 중에 고작 백 명이 진입한 것뿐인데…….
만이 넘는 병력이 그 백 명을 막고 있는데…….
남방군부가 저 백 명에게 포위된 것 같은 형국이로구나…….
서걱! 서걱!
잇달아 왜도가 바람과 비를 저미는 소리가 무차별적으로 귓전을 때린다. 그때마다 마치 회칼에 저며진 물고기처럼 수십 명의 병졸들이 퍼덕거렸다.
적들은 무참했고, 아군은 무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악귀들과 동두십수의 존재였다.
그들만큼은 무기력하게 밀리지 않았다.
병졸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실력으로 시노비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죽더라도 그냥 죽지는 않았다. 적들의 몸에 최소한 생채기 하나라도 내고 죽어갔다.
개중에서도, 6, 13, 18, 28조와 초려혜가 이끄는 동두십수 정예들의 활약은 발군이었다.
꺼득! 성상계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그는 자신의 중심으로 둥글게 고슴도치처럼 원진을 형성하고 있는 위지휘사들과 남방군부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적들에게 대항해 나갔다.
곳곳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실상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쿠-쿠쿵!
소악귀들의 분전에도 전체 진용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버티려 노력했으나 앞선에서부터 천천히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래지 않아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리라.
파작, 성상계의 망막이 붉게 변했다. 방금 위지휘사 중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키던 황장군의 목젖이 갈라지며 핏물이 튄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끝인가.’
우우우우우우!
그때 천지를 울리는 사자후.
“……!”
여기가 아니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영내를 벗어난 저 먼 밖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한 가공할 존재감이 감지되었다.
살이 떨린다. 심장을 옥죄어올 만큼 무서운 존재감의 주인이 무서운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성상계는 이 가공할 존재감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단……유성!’
그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게 그 만년인면지주인가? 이토록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면, 그래! 이런 괴물이라면 분명 가망성이 있다!
쿠르르르-.
발밑을 쩌르르하게 울리는 요동.
이 또한 괴수가 달려오면서 발생하는 진동이리라.
성상계와 미야모토 마모루의 눈이 마주쳤다.
저자의 존재감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것 또한 만만치 않다!
희망, 두 글자가 뇌리에 아로새겨지던 그 순간.
드디어 그 존재감의 주인이 부서진 요새문을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
척! 척! 척!
일사불란, 칼같이 날카롭게 정렬된 오와 열.
기치창검(旗幟槍劍)을 펄럭이며 왜의 복색을 한 인파가 발걸음을 맞춰 밀려 들어온다.
“……미친.”
누구의 입에서 나온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한 마디.
남방군부와 무림맹 소속 고수들과 소악귀들, 동두십수의 고수들 모두의 얼굴에 아연실색한 표정이 떠올랐다.
병기를 쥔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고 버텼는데, 그 결과가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이미 죽음 따위는 초탈했다 여겼는데……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뒤처져 있던 왜 별동대가 오롯이 합류했음에.
미야모토 마모루는 여전히 처음 종태기를 벤 그 자세 그대로였다.
왜 저자의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었는지를, 왜 저자가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는지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럴 가치도…… 필요도 없었어…….’
척! 척! 척!
왜병들의 걸음은 지극히 일정하고 힘차 그들이 일제히 발을 맞춰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흔들리고, 일시에 입을 맞춰 외칠 때마다 그 함성이 빗물을 헤치고 사방을 뒤흔들었다.
동시다발적인 함성이 사자후로, 일심동체 된 걸음이 지진이 되어 남방군부 전체를 압도했다.
요새 바깥에는 비록 완성된 건 아니나, 알라봉대의 간단한 오행팔괘진이 펼쳐져 있었다. 미야모토 마모루나 시노비들이야 고수들이라 영향권 밖이라고 쳐도, 저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하고 있다는 건 저들 또한 단순한 왜병은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성상계는 생각했다.
저들이 별동대가 아닌 만약 동영삼왜 본대와 같이 움직였다면 남방군부가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으리라…….
저들이 동해를 돌아 항주를 친 이유가, 급습이나 본진의 정벌이 아닌 아군의 도주를 미연에 막는 것이거나 단번에 남하하면서 모조리 죽여 황실 쪽으로 정보가 가기 전에 싸그리 통제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세(勢)의 차이, 압도적인 무(武)의 차이.
범과 개의 차이.
개는 범을 이기지 못한다. 하물며 범을 돕는 수천의 늑대떼까지 있으니.
이제는 가장 용맹하게 싸우던 병사조차도 바들바들 떤다.
절망이란 그런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
무릎을 꿇고 병장기를 놓친 채 바지를 적시는 자가 나오기도 했다.
“다 죽이라.”
미야모토 마모루의 짧은 명.
왜 별동대가 일거에 돌격해 들어왔다.
굶주린 늑대떼가 지친 개들을 덮친 듯한 대규모 살육전이 펼쳐졌다. 심지어 부서진 요새입구로 왜병들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성상계는 더 이상의 반전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우우우-!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천지를 떨어 울리는 사자후.
미야모토 마모루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처음이었다. 그의 시선이 돌아간 것은.
이건 별동대가 합류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별동대의 함성은 이미 멈춘 지 오래니까.
지이잉-, 지이잉-.
그의 양손에서 무라마사와 마사무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울어 젖힌다.
그리고,
콰앙!
유성이라도 떨어진 걸까?
저 멀리 별동대의 최후방 쪽에 엄청난 크기의 녹색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콰과과과과과광-!
별동대원들이 조각조각 난 채 허공에 떠오른다.
이어서 하늘로 연사되는 수십 대의 화살. 그와 함께 바다가 갈라지듯 별동대 한가운데에 길이 났다.
파파파파팟-.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그 길 정중앙을 돌파해 이쪽으로 한달음에 치달았다.
빠르다. 너무 빨라 웬만한 사람은 육안으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기세가 너무도 엄청나 시노비 셋이 일시에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마침내 별동대를 다 뚫고 장내에 모습을 드러……!?
사라졌다.
분명 기묘한 화살에 별동대가 혼란에 빠졌는데, 정작 활을 쏜 장본인은 보이지 않고, 그를 태우고 있던 걸로 보이는 은호 한 마리만이 그들에게 쇄도해 들고 있었다.
[순간발동 무공 : 은잠술(隱潛術)]
Lv. 3 : 숙련도 17%
마도인은 언제 어느 때고 적을 암살하는 임무에 동원될 수 있다. 암살의 성공적인 수행의 선행요건은 은밀히 숨고 비밀스레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전 시, 적의 시야를 교란한다.
지속시간/쿨타임 : 5/20(분)
회당 내공 소모 : 내공 최대치의 10%(1할)
※Lv.에 따라 교란의 방식이 진화합니다.
시노비들이 당황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쉭쉭쉭쉭-.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선두의 시노비가 황망한 가운데서도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왜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한 사내.
하지만 공격은 사내만 하는 게 아니었다.
콰드득!
사내의 공격은 막아냈으나 은호의 발톱에 전신이 난자되었다.
그 바로 뒤를 따르던 시노비가, 쓰러지는 시노비의 등에 보이지 않게 곧바로 왜도를 찔러넣었다. 그것이 지극히 은밀하고 비로소 닌자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그 결과는 허탈했다.
상대의 도끼와 검에 맺힌 응축된 기가 번뜩이며 도와 함께 몸이 수직으로 양단(兩斷)되었으므로.
파팟.
사내와 은호는 네 조각이 난 둘의 시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마지막 세 번째 시노비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다 벌어진 사태에 세 번째 시노비도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푸푸푸푹-.
분명 대처했고 대항했으나, 단 세 수만에 사내의 창과 도에 심장에 바람구멍이 났고, 도끼와 검에 팔이 날아갔으며, 은호의 이빨에 목덜미가 물어뜯겼다.
둘의 공격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추호의 자비심도 없다.
절망 속에서 펼쳐진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남방군부 측은 경악했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죠?”
이시홍이 경악했다는 걸 감추지 못한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너도 아는 사람이야.”
천소소의 말에 이시홍이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설마는 짜샤.”
장기후가 이시홍의 어깨를 툭 치며 비죽이 웃었다.
“집 나갔던 탕아가 이제야 돌아온 건데, 저 정도는 해야지.”
남방군부 전 인원들의 시선이 사내에게 모아지는 가운데.
후-.
이윽고 사내, 단유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미야모토 마모루 앞에 주주를 멈추어 세웠다.
그는 온몸을 검은 빛깔을 띤 장구류로 감싸고 있었다.
[마인의 피풍의], [마인의 피혁혜], [마인의 장갑].
[전직 기본세트]였다. 그로 말미암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온통 피투성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의 피와 왜적들의 피로 범벅이 된 그 모습은 평상시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야성적이고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단유성은 호소다 유이치와 1천의 왜적병단을 모조리 무찌르고 왔다. 그 과정에서 또 한 차례의 벽을 넘고 이곳에 도달했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한 차례 휘- 둘러보고는 미야모토 마모루에게 고정되었다.
무한 레벨업 in 무림
지은이 : 곤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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