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 53. 공개청문회(公開聽聞會) (1)
찬 기운을 품은 야밤의 공기가 슬슬 알싸하게 변해갈 즈음.
우리는 정주에 당도했다.
나.
“후우우우우-.”
주주.
“커허어어엉-.”
인면지주.
“기빠빠빠빠-.”
셋이 동시에 뿜어내는 소리가 아직은 찬 대기를 하얗게 가른다. 그 입김에 담긴 여정과 도착에 대한 감상은 제각각이리라.
동계방학 직후 무림대학관에서 절강.
그리고 동영삼왜란이 끝난 후, 절강에서 다시 여기 정주.
주주와 인면지주가 어떤 기분일지는 짐작이 안 간다. 기쁜지 어떤지.
나는 뭐.
‘길었어. 그래도 어쨌건 돌아왔네.’
안도감.
비록 쥐꼬리만큼이었지만,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지친 정신에 위안을 준다.
애증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수도 없이 나쁜, 그리고 나빴던 기억의 산실인데도, 이놈의 정주가 그래도 반가운 걸 보니.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정주의 남대문을 눈앞에서 다시 마주하자 이상한 낯섦이 무겁게 이마에 얹어졌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그러더니만, 이번에도 또 그러네.
‘아마도 그건.’
짧고도 길었던 왜곡의 시간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아 여기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을 넘어서면 또다시 막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런 것이리라.
“후우-. 어쨌건 이젠 진짜 제대로 쉬긴 쉬어야 할 모양인데.”
정신에 희뿌연 습기가 찬 것 같은 기분이랄까. 탈진한 심신의 후유증이 물밀 듯이 밀려든다.
“뭐, 그래도 할 건 하고 누워야겠지?”
일단, 제갈맹주를 만나봐야 해. 그게 당연히 최우선이다.
물론 그전에 정주에서 이런저런 볼 일을 마쳐야 하고.
그런 연후에나, 진짜 조금, 아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쉬도록 하자.
짧고 굵게, 똭-.
그렇게 얼마간 성문을 올려다보던 나는 이내 주주를 몰아 성문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커허어엉~”
주주 녀석도 쉬고 싶은 건지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 섞인 포효를 내뱉었다. 애교라기엔 그 소리가 너무 큰 게 문제였지만.
그에 내가 녀석의 갈기 위쪽 머리를 주먹으로 꽁- 가볍게 때렸다.
“조용해 인마. 아직 다들 자고 있다고.”
“……니야아아옹, 냥, 냥.”
혀를 낼름거리는 걸 보니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술이 고픈 거였구만.
“에이구우-. 내 팔자야.”
진짜 덩치만 컸지. 완전 술냥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녀석의 옆구리에 매달린 주병 하나를 풀어 주주의 입에 꽂아줬다.
“니야아아아아아옹~”
“좋단다, 새끼. 너 임마 호랑이야, 것도 영물 은호라고.”
“니야아아아아아~.”
비로소 빙그레 냥냥거리는 주주 녀석.
덩치가 산만해진 녀석이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고양이다.
피식, 뭐 은호건 냥이건 귀여우니 됐다.
주향을 뿜어내는 녀석의 콧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자니, 뒤에 앉아 있던 지주 녀석이 내 머리를 빵빵 양발로 걷어차며 빠빠빠 거린다.
……물론, 이놈도 밥달라는 거다.
“휴…… 이것들이 아주 단체로.”
뭐, 어쩔 수 없네.
나는 지주 녀석의 입에도 육포 한 덩어리를 크게 찢어주고는 정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제갈총에게 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갔다.
먼저, 일철병기점과 선로주잔을 들러, 병기들과 술독을 한가득 채웠다.
다음으론, 천향루를 들렀다.
오랜만이었기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했다.
떠나기 전에 ‘의뢰했던 건’들에 대한 진행상황을 들어야 하기도 했고.
하지만…….
윤란을 만나 대화를 나눈 지 일 각이나 되었을까?
“제에에에에엔- 자-앙-!”
나는 다시금 숨 가쁘게 달음박질할 수밖에 없었다.
― 이 정도면 우선 말씀드릴 건 다 해드렸네요. 하온데 정말 때마침 도착하시었네요?
― 때마침 도착?
― 오늘이 공개변론 날인데…… 혹, 모르셨나요?
― 공개변론? 무슨 공개변론을 말하는 거요?
― 오늘 아침에 공개청문회가 있어요.
누군지는 안 들어도 알겠다, 제기랄!
정주에 도착하면 뭐 여유?
역시 내겐 사치네, 그깟 여유.
[연계임무 : 무림맹 개혁]
[무림맹주와 함께 무림맹의 개혁을 완성하시오(제한시간 : 20년).]
[성공시 보상 : 성공 후 결정]
[실패시 불이익 : 무림맹 파멸]
달리자, 달려!
저놈의 [임무],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물 건너가기 전에!
● ● ●
한참 뒤.
“후우-.”
해가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 새벽 무렵.
제갈총은 대웅전 처마에 올랐다.
그의 눈은 오늘도 저 강 건너 멀리, 정주 북문 쪽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보고 있었을까?
그의 입술이 방금 전보다 더 기다란 입김을 토해냈다.
“날이 이리 찬 데 벌써 나오셨습니까.”
“날이 차니까 벌써 나온 것 아니냐? 근데 이 이른 시간에 뭘 그리 보고 있는 게냐?”
타박, 천기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갈총의 옆자리에 내려섰다.
“며칠 전부터 까치들이 울어대길래 반가운 이가 찾아올까 싶어 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는.”
천기자가 이마를 찌그려 주름을 늘렸다.
“네놈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게냐?”
제갈총이 모르는 체 웃는다.
“오늘입니까?”
“클클, 의뭉스러운 놈. 그래, 네놈 최후변론의 날이다.”
“하하하, 최후라니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얼 그리 멀리까지 나가십니까?”
“멀리까지가 아니다, 이놈아.”
천기자도 긴 입김을 뿜어내며, 원로원을 내려다보았다. 둥글둥글 반구형의 모양과는 달리 수도 없이 모가 난 이들이 집결한 바로 그곳. 지금 그 모서리들이 날을 바짝 세운 채 이쪽 대웅전을 향하고 있었다.
“네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오늘 청문회의 본질…… 저들의 속내를.”
제갈총이라고 어찌 모르랴?
그도 오늘 청문회가 단순히 청문회가 아님을 눈치채고…… 아니, 지난 몇 주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과 귀, 더 나아가서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천무멸마단.
그 천무멸마단의 내부에 암약하던 원로 측의 눈과 귀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아프도록 주시하고 있었음을.
제갈총은 그럼에도 학익선을 부치며 싱그럽게 웃었다.
“네, 십중팔구는 청문회가 아닌 사문회(査問會, 개인의 잘못을 캐물어 따지는 회의)가 되겠지요. 그것도 보통의 사문회와 달리 공개사문회가 될 터이고 말이지요.”
통상, 청문회는 공개적으로, 사문회는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것. 그게 상식이고 원칙이었다. 하나, 이번 청문회는 원로원이, 공개석상에서 제갈총을 비방하기 위해 작정하고 밀어붙였다.
청문회의 탈만 씌운 사문회.
아마 제갈총의 꼬투리를 잡아, 아니 만들어…….
보름 뒤에 있을 최후결표날 확실히 그를 맹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심산이리라.
“그걸 그리 잘 아는 놈이 그래? 이렇게 두 손 두 발 다 놓고?”
그저 고고히 미소만 흘릴 따름인 제갈총.
하지만 이내 그의 미간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어찌 되었건 현재까지 저들의 방식은 매우 정상적이었으니까요.”
“정상적이라. 그렇지. 아직까지는 그렇게 보이는구먼.”
“네, 그래서입니다. 제가 두 손 두 발 다 내려놓고 있는 이유 말이지요. 그리고…….”
제갈총이 조금 더 처마 끝쪽으로 한 발 옮기며 하하 웃었다.
“이 대웅전의 정상은 이리도 크고 넓어 보이지만, 편안하게 앉아 쉴 공간은 없더군요.”
“…….”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표결에서 정당하게 패한다면, 저는 이 허울만 좋은 무림맹주라는 껍데기를 홀가분하게 털 작정입니다.”
“그게 정당하지 않을 것임이 너무도 자명하지 않느냐?”
답변을 하려던 제갈총이 입술 대신 눈으로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까치가 그리도 울어댄 것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공의 등장을 예고한 모양이로군요.”
“주인공?”
천기자의 시선이 제갈총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곤 발견했다.
저 정주 북대문을 통해 부리나케 튀어나와 이쪽으로 내달리는 새하얀 인영을.
“클클클, 주인공은 무슨 주인공. 세상에 어느 이야기책의 주인공이 저리 무식하고 재능이 없다더냐?”
“하하하, 일전 관주님께오서 그러시지 않으셨사옵니까? 무식하디 무식한 녀석이, 천하제일인이 되어 멸망을 막고자 설친다고요.”
“흘흘흘, 그놈의 기억력은. 그래, 노부가 그랬지.”
그때 저쪽 대웅전 본당의 문이 열리며 이쪽 처마 아래로 다가오는 맹주직속 비서관이 둘의 눈에 뜨였다.
아주 굳은 비서관의 표정.
듣지 않아도 그가 전할 말이 짐작이 간다. 갈 시간이 되었음이다.
제갈총은 이제 거의 무림맹 맞은편의 나루터에 근접한, 단유성에게서 시선을 걷었다. 대신 기꺼이 처마 아래로 뛰어내리며 말했다.
“만약 저들의 방식이 정당하지 않다면, 저는 반드시 저 아이의 방식을 취할 것입니다.”
“저 아이의 방식?”
그리 반문했던 천기자가 곧 괴소를 지었다. 비서관을 따라 대웅전을 나서는 제갈총의 등을 향해.
그 방식이 짐작이 갔기에.
무식하디 무식한 노력, 그리고 그러한 방식.
끼익, 탁.
제갈총이 사라짐과 동시에 저 아래를 보니.
“하여간에 무식한 놈. 강 위에서도 저리 무지막지하나 그래? 클클.”
포구를 떠난 배가 강의 반의반도 오지 않았건만, 단유성의 신형이 벌써 도약하고 있었다.
강 맞은편으로.
● ● ●
“그럼 이쯤에서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노사공이 노를 젓던 팔을 멈추고는 단유성을 기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봤더니 자기보다 더 허옇게 백발이 되어 나타난, 그.
헌데, 아직 강을 다 건너려면 아득하건만…… 건너가겠단다.
“……아직 반의반도……!?”
“제가 바빠서요.”
그러곤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뽑아들어 시위를 메기는가 싶더니…….
대뜸 쏜다.
핑-.
또 화살이 쏘아진다 싶은 찰나,
스르륵-.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흐트러지더니,
어느새 강 위에 닿을 듯 말듯 날아가는 화살 위에 올라탄 단유성.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화살과 강물의 마찰에 포말이 일며 기묘한 파공음이 강 위를 가른다.
포말은 마치 신화 속 구름 같이, 소리는 신 나는 노랫가락처럼.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
노사공의 이마주름이 놀람에 더욱 자글자글해지던 순간.
이미 단유성은 저 맞은편 육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 복 받으십시오!
단유성의 전음이 노사공의 귀에 닿을 때쯤.
단유성의 신형은 벌써 저 아스라이 보이는 무림맹의 무문관을 향해 한달음에 치닫고 있었다.
“반의반도 안 왔…… 는 게 아니라 벌써 다 갔구먼. 허허허, 손오공이 따로 없네, 따로 없어. 허허허.”
● ● ●
따그닥따그닥.
무림대학관주 관저, 와룡상호각 앞 마차장(馬車場)에 멈춰서는 이두마차 한 대.
곧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렸다.
우간대와 두초희였다.
우간대가 와룡상호각의 꼭대기층, 즉 관주집무실을 올려다보며 논두렁처럼 쩍쩍 갈라진 입술을 흉하게 비틀어댔다.
“혀혀혀. 맹주 녀석의 공개청문회가 오늘이지?”
“네, 부관주님.”
“어허, 네가 보기엔 내가 아직도 부관주로 보이느냐?”
“아참, 소녀가 결례를 범했네요. 관주님. 호호.”
“혀혀혀, 글치. 오늘만 지나면 그 꼴 보기 싫은 천기자 영감도 아예 정리될 터이니, 관주 자리에 앉을 사람은 이 우간대 밖에 더 있겠느냐? 자공대사의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다음에는…….”
마침 딱 그때.
파파파파파파팟-!
우간대의 눈길을 관주집무실에서 다른 쪽으로 돌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누군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무문관을 달려 들어오고 있었…….
아니, 그런가 싶은 순간 이미 순식간에 와룡상호각을 지나쳐 숭무당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정문 위사에게 신분을 증명할 와룡패 하나만 휙- 던져주고는…….
무엇보다도, 우간대의 안구에 흙먼지를 잔뜩 끼얹고는!
“이…… 이-! 저 자식 누구야! 저놈! 낙제! 저 새끼! 낙제! 아무튼 낙제!”
듬성듬성 잡초 같은 머리 사이사이에 낀 흙먼지를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우간대. 그 신경질이 입에도 튄 건지 쉴 새 없이 열불을 토해냈다.
하지만 두초희는 우간대의 뒤편에 있었기에 어깨에만 살짝 먼지가 앉은 정도.
탁탁, 그녀는 가볍게 먼지를 털며, 덥수룩한 백발 뒤통수를 보며 야시시 미소 지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네?”
단유성.
급하게 숭무당으로 뛰어가는 이유야 짐작이 가…… 응!?
흙먼지의 방향이 급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그 방향은…….
● ● ●
딱, 딱, 딱…….
바둑돌이 정갈하게 바둑판 위에 수 놓인다.
원로원 내 대원로 본실.
바깥의 상황과는 별개로, 주름진 검지가 한가로이 바둑판 위를 때리고 있었다.
비록 일인대국이었으나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듯한 긴장감이 넘치는 팽팽한 대국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 동안 착수가 이어졌을까?
아침 해를 받은 긴 그림자가 바둑판 위에 드리워졌다. 그림자는 이내 한쪽 무릎을 굽혀 그 키를 낮춘다.
영비단주 도회남이었다.
“대사, 맹주가 숭무당에 들었습니다.”
숭무당(崇武堂).
무림맹 내 최대의 대련장이자, 졸업식, 입관식 등의 대규모 행사를 치를 때 사용되는 건축물.
오늘 숭무당에서 치러질 행사는 공개청문회였다.
맹주에게 마지막 언도를 확정 지을 그런 대대적인 연극 한판이 잠시 후 그곳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다.
딱-.
마지막 착점을 끝으로 자공의 일인대국이 매듭지어졌다.
흑의 대마가 완전히 끝장이 난 채로.
“그럼 가세나.”
“네, 대사.”
도회남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는 자공의 길을 안내하려는데.
“도단주, 기다리게나.”
“네?”
“객이 오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봄세.”
“…….”
“청하진 않았으나 죽지 않고 돌아온 귀신한테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줘도 좋지 않겠으이. 허허.”
도통 이해하지 못할 자공의 말에 의아해하는 도회남.
그 의문은, 밖에서 들려온 영비단원의 음성이 금방 풀어주었다.
“대원로님. 단유성이라는 무림대학관생이 지금 당장 꼭 좀 뵙고 싶다 청하는데 어찌할까요?”
톡톡-.
자공은 바둑판을 가벼이 두어 번 두드리고는 인자한 음성으로 답했다.
“들라 하게.”
잠시 뒤.
전신이 뿌옇게 변한 단유성이, 마침내 대원로 본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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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곤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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