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34
나 혼자 무한 보급! 134화
“스승님?!”
반응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깜짝 놀란 은비가 민수를 가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목을 베 라니요?!”
“……너에겐 미안하게 생각한다. 은비야. 하지만 이것이 본좌의 바람 이니라.”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어쨌든 시나리오는 끝났잖아요! 키 플레이어건 뭐건 시나리오에서 탈출 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여기 나브 도•…”?!”
“그런 건 없다.”
갈중혁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거기 계신 귀인께서 먼저 얘기를 하셨겠지.”
“ 오빠가……9”
“귀인이시여. 당신이 보시기엔 어 떻소이까? 본좌가 그대들을 따라 다 시 이 ‘게임’의 끝으로 향할 여력이 있다고 보시오?”
나지막한 물음이 민수를 향했다. 삽시간에 그를 향해 쏟아지는 주변 의 시선.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메시지창 을 노려보며 민수가 입술을 깨물었 다.
‘있을까? 그럴 방법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만큼은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이것이 변경된 시나리오 다. 여기까지 온 지금, 더 이상 파 고들 여지는 없다.’
황족 둘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플레이어들의 수가 절 반이 되는 걸 막았다.
하지만 그 계산에 갈중혁은 들어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고려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설마 키 플레이어가 이런 사람일 줄 상상이나 했을까?
“……괜찮으시 겠습니까?”
그리고 왠지 그를 더는 말려선 안 될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을 보는 순 간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슬픈 와중에도 어떤 충족감이 느껴 지는 표정.
비로소 갈망하던 것을 손에 넣은, 만족감이 느껴지는 표정.
“정말 그걸로 만족하시는 건가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때문에 민수의 질문 또한 훨씬 조 심스러워졌다.
고개를 저으며 갈중혁이 대답했다.
“하지만 저물 때를 알았다면 멋지 게 저물어주는 것도 삶의 방식일 세.”
“이런다고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결국 이 시나리오가 끝나는 거지 시 나리오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 요. 앞으로 어딘가에서 또 이 시나 리오가 시작된다면 그때는 어르신 또한……
“귀인께서 이 ‘게임’의 끝에 다다 르시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순간 민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 다.
조금 전 본 퀘스트 로그의 내용이 떠올랐다.
두건 쓴 남자가 갈증혁에게 말해준 진실.
‘이 ‘게임’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그는, 그 진실을 알고 있 다.
떨리는 목소리로 민수가 물었다.
“알고 계십니까? 이 ‘게임’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야 물론이네.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궁금하신가?”
부우웅!
시커먼 검강의 끝이 민수의 미간을 향했다.
검을 향해 불어닥치는 맹렬한 바 람.
극도로 집중된 마기의 검강이 주변 의 공기를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그 대답을 듣고 싶으시다면…… 본좌의 소원을 들어주시게.”
“결국, 그리 나오시는군요.”
“미안하네. 귀인이시여. 젊은이에게 이런 짐을 지워주고 싶지는 않았으 나…… 본좌는 지금 이 순간을 오매 불망 바라왔다네.”
수천 번 넘게 반복된 시나리오의 악몽 속.
언젠가 찾아올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멋진 최후를 거 둘 수 있는 이 순간을.
갈중혁의 입가에 흐린 미소가 서렸 다.
“본좌의 소원을 들어주시게. 단 한 순간이라도…… 무인답게 싸우다 저 물 수 있게 해주시게나.”
“ 바라신다면.”
채앵!
고개를 저은 민수 또한 단검을 뽑 아 들었다.
사실 이기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
총에 기계병까지 있으니 있는 대로 동원하면 어쨌든 죽이긴 하겠지.
하지만 저 고고한 천마를 상대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이걸로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제 전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에 흡 족하실 겁니다.”
“상관없네. 그럼…… 음?”
그때 갈중혁의 시선이 민수의 옆을 향했다.
의아한 민수 또한 옆을 바라보자, 검게 펄럭이는 장포가 그 옆에 섰 다.
“……나도 도와줄게.”
“은비야……?”
검은 옷자락을 펄럭거리는 은비.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서도 까만 검강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검강을 향해 불어닥치 는 바람.
눈앞의 갈증혁이 펼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
깜짝 놀란 민수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무리하지 마. 괜히 너까지 나설 거 없어.”
“아니, 내가 해야 해. 난 차라리 오빠가 빠져 달라고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네 스승님 인데……
“난 저 밑에서 스승님과 960일을 함께 보냈어.”
검을 쥔 은비의 어깨가 바르르 떨 렸다.
그 무거운 기세에 민수 또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960일 동안 가르침을 주신 분이 야. 원하시는 것만큼은…… 직접 해 드리고 싶어.”
“진짜 괜찮겠어?”
“각오는 돼 있어.”
전혀 안 돼 있는 것 같아.
찌르기만 해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말릴 명분은 없었 다.
제자가 스승의 소원을 들어주는 걸 누가 말리겠는가.
설령 그것이 스승의 죽음이라 하더 라도.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고맙다, 은비야.”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민수.
그 맞은편에서 검강을 뽑아 든 갈 중혁이 껄껄 웃었다.
“비록 다른 차원에서 나고 자랐다 고 하나, 너 또한 본좌의 제자를 자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스승님.”
“사실 귀인께 부탁하는 와중에도 내심 네가 나서주길 바랐단다. 본좌 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는 것이 말년 에 거둔 마지막 제자라니.”
참으로, 참으로 잘된 일이야.
“본좌도 복이 없지는 않구나.”
그리 말하고 쓸쓸하게 검을 들어 올리는 갈중혁.
그 맞은편에 선 민수와 은비 또한 검을 들었다.
푸르게 타오르는 뇌전의 검강.
시커먼 묵처럼 번들거리는 마기의 검강.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갈중혁의 눈에 살짝 눈물이 감돌았다.
“강대한 적수에 맞서 치열하게 검 을 겨루다 근사한 마지막을 맞이한 다.” “실로 노년의 흥복이로소이다.”
이걸 바랐다.
이것이 천마의 죽음이다.
천마의 죽음은 땅속 깊은 곳에서 말라죽는 것이 아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검 을 논하며.
치열하게 투쟁하다, 뜨겁게 사라지 는 것.
이것이 바로 천마의 삶.
무인의 삶.
그리고.
“……무릇 큰 것은 하나뿐인 것이 천하의 이치라!”
이제부터 먼 길을 떠나게 될 제자 에게 보여주고픈 삶.
무림의, 강호의, 협객의 삶.
은비를 바라보며 외치는 늙은 천마 의 눈에 눈물이 맴돌았다.
“땅도 하나이고 물도 하나! 이렇듯 모든 것이 하나뿐인데, 어찌 하늘이 둘 있을 수 있겠는가!” “하여 마교의 133대 교주, 천마 갈 중혁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본교의 마인, 서은비는 교주의 명 을 받들라!”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달려가는 천마 의 걸음.
느릿했던 걸음에 무게를 싣고, 무 거웠던 발바닥에 품격을 실으니.
“정말로 본교의 하늘, 천마에 도전 하겠는가!”
“천하의 이치를 받들어, 하늘은 오 로지 하나뿐임을 증명하겠는가!”
천마군림보 (天魔君臨步).
오로지 마교의 교주, 천마에게만 내려오는 비전.
세상을 군림하는 하늘 아래 으뜸가 는 마인의 상징.
“그렇다면 천마의 이름에 도전하 라!”
그렇게 스스로를 모조리 드러내 보 이며.
늙은 천마가 젊은 천마를 향해 외 쳤다.
“본좌에게서…… 그 이름을 뺏어보 아라!”
무림 마지막 천마의 싸움이 시작되 었다.
예진은 무공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 한 건지 잘 몰랐다.
시나리오 진행 내내 다른 플레이어 들과 따로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 다.
굳이 상상해 보자면, 그냥 검으로 펼치는 조금 센 마법 정도.
상식도 편견도 없는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이었지 만.
“마, 맙소사……
설마 그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대 묘기 대행 진에 예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 무공이라는 게 저렇게 강 했어요?”
“아니, 보통 저 지경으로 강하진 않아.”
“그, 그렇죠? 하긴 무공이 그렇게 셌으면 애초에 제국에게 밀리는 것 도 말이 안……
콰아아아앙!
재차 지면을 때리는 묵직한 굉음. 예진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허둥 지둥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사거리 일대는 난장판이 되 어 있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아스팔트 바닥 위.
시커먼 검강이 드리워진 검을 든 갈중혁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하! 귀인이시여! 젊은 대 장부가 왜 이리 힘을 못 쓰시는가? 그래도 명색이 플레이어인데 힘 좀 써보셔야지!”
“그래도 은비는 검을 잘 다루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본좌가 말년에 좋 은 제자를 거뒀다! 아무렴! 천마의 이름에 도전할 마인이라면 응당 그 래야……
“흐읍!”
쩌어엉!
격돌하는 검강과 검강.
갈중혁과 은비의 검강이 충돌한 순 간, 구형의 충격파가 퍼졌다.
유리창이 깨지고, 갈라진 아스팔트 조각들이 튀어 오른다.
그저 검을 맞댄 결과라고는 믿어지 지 않는 파괴.
코앞에서 빠직거리는 검강들을 바 라보며 갈중혁이 희열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거다! 마인은 갈망이다! 더욱 크게 갈망하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후우, 크읍! 아직 다 안 보여드렸 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자, 어서 네 스승을 즐겁게 해보아 라! 내게서 천마의 이름을 앗아갈 자라면 당연히 숨겨둔 한 수 정도 는……
“하앗!” 그때, 갈중혁의 옆구리를 노리고 푸른 뇌전이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갈중혁이 다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그보다는 뇌전의 검강이 근소하게 한 발짝 빨랐다.
“한 수 받아갑니다!”
뇌천비검(雷天飛劍) 제육검(第A劍).
풍천지 검 (風天之劍).
그 이름대로, 가히 바람과도 같은 기세였다.
돌풍을 일으키며 갈중혁의 몸을 쓸 고 지나가는 민수의 검강.
가까스로 검을 잡은 갈중혁의 입에 서 신음이 터졌다.
“큭!”
슬쩍 내려다본 옆구리에서 붉은 피 가 배어 나왔다.
깊지는 않지만 충분히 싸움에 영향 을 끼칠 만한 부상.
그 익숙한 고통에 다시 한번 갈중 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이를 먹고 노쇠하였으나…… 결 국 본좌 또한 어쩔 수 없는 마인이 로군.”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즐거워서 견 딜 수 없다네. 비로소 본좌가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든다네.”
피 묻은 손으로 입가를 스윽 훔쳤 다.
삽시간에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갈중 혁이 껄껄 광소를 터뜨렸다.
피로 물든 얼굴을 한 채 광오하게 웃는 천하제일인.
이제야 비로소 상대가 천마라는 게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민수와 은비를 바라보며 그가 검을 들었다.
“……자! 젊은 무인들이여! 부탁이 네. 날 더 살아 있게 해주게나!”
광소와 함께 검은 검강이 충돌한 다.
뇌전의 섬광이 그 사이를 파고든 다.
검과 검이 얽히고, 무학과 무학이 충돌한다.
무와 무가 격돌하고, 마음과 마음 이 엮인다.
‘그래. 이것이야.’
수도 없이 오가는 검격. 그 속에서 온몸에 늘어만 가는 상처.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이 오히려 갈 중혁을 고양시켰다.
이런 싸움을 해본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던가.
이 근사한 마지막을…… 얼마나 꿈 꿔왔던가.
“하하하! 하하하! 이걸세! 바로 이 거야!”
온몸이 늘어나던 자잘한 상처가 점 점 깊어진다.
옆구리의 검상이 조금씩 벌어지며 피가 흐른다.
집중력이 무뎌지고, 조금씩 칼끝이 흐트러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젊은 무인들 의 검이 밀려온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보아라! 본좌는 아직 살아 있다!”
“본좌는 이렇게 죽길 바랐다!”
“단 한 순간이라도, 무인답게 살고 죽길 바랐노라!”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검에 맞서 싸우고 있다.
저 땅속에 처박혀 언제 을지 모를 구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보아라!”
이 푸른 하늘 아래.
나의 무학을 마음껏 펼치며.
무인답게 싸우고, 천마답게 죽으리 니.
“본좌도! 아직 살아 있지 않느냐!”
콰아앙!
우렁찬 외침을 집어삼키는 시커먼 검강.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눈 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이미 도로는 완전히 까뒤집다시피 된 지 오래.
이를 꽉 깨문 은비가 검강을 거두 자, 그 너머에서 한풀 꺾인 목소리 가 들려왔다.
“은비야.”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갈중혁의 입에서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명백한 내상의 징후.
턱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갈 중혁이 말을 이었다.
“천마신공은 갈망의 무학. 기억하 고 있느냐?”
“네. 스승님.”
“그럼 묻겠다. 그 말을 뒤집으면 무엇이 되느냐.”
“……갈망하는 바가 약해지면 그만 큼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렇다.”
피범벅이 된 노구가 연기 너머에서 비틀거렸다.
두 남녀를 바라보는 갈중혁의 눈에 총기가 서렸다.
“그렇기에 네가 본좌보다 강한 것 이다. 본좌는 이미 이룰 만큼 이루 었으나, 네게는 아직 갈망하는 바가 있기에.”
“스승님……
“사실 이만하면 되었다. 본좌의 뒤 를 이어 천마의 이름을 이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눈을 부릅뜬 순간, 갈중혁의 검에 서 배는 기다란 검강이 솟구쳤다.
“……정말 마지막으로, 본좌 또한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구나.”
“스승님 그거 설마…… 진원진 기?!”
진원진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기운.
비유하자면 인간의 생명력 그 자 체.
그리고 지금, 갈중혁은 그것을 쥐 어짜서 휘두르고 있다.
즉 지금 그는 이 일 초에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
대경한 민수와 은비가 검을 든 순 간, 갈중혁이 외쳤다.
“은비야, 그리고 귀인이시여! 부디 건식해 주시게!” 하늘을 가를 기세로 높이 치솟는 마기의 검강.
사방에서 불어오는 폭풍 같은 바 람.
시야를 가리며 자욱하게 풍기는 흙 먼지.
“본좌의 목숨을 바쳐 펼치는 절초 일세!”
그리고 강대한 마기를 못 이기고 갈라지기 시작한 대지.
쩍쩍 갈라지는 아스팔트를 힘껏 디 디고 뛰며.
갈중혁이 자신의 삶이 담긴 검을 내리찍었다.
“그럴 수 있다면…… 받아보시게나!” 그리고 뒤를 잇는 폭발.
시커먼 마기가 그 주변을 모조리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