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5
나 혼자 무한 보급! 015화
‘위업?’
이건 또 뭐야?
퍼스트 킬 보상이 다가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떠올리는 민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도움말 – 현시점에서 불가능한 목 표를 달성할 경우 위업으로 판정됩니 다. 위업을 달성한 플레이어에게는 일 정 시간이 지난 후 큰 보상이 주어집
니다.]
‘그러니까…… 업적 달성 같은 건 가?’
퍼스트 킬과는 별개로, 뭔가 대단 한 짓을 했을 때 주는 보상.
어쨌든 ‘게임’의 탈을 쓰고 있으니 이해도 빨랐다.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생한 만큼 챙겨준다는데 나 쁠 건 없지.’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 다.
일단 격렬하게 뛰고 구르면서 몸과 마음 양면이 지친 상태였고.
그게 아니라도 지금 중요한 건 그 게 아니었다.
“이야아! 잘 했다! 임마!”
‘ 왔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호들갑에 천 천히 시선을 돌렸다.
양손 검을 등에 진 환일이 벙싯벙 싯 웃으며 민수에게 손을 흔들고 있 었다
“이놈 이거 물건이네! 그런 시뻘건 놈이 달려드는데 겁도 안 내고.”
“곧 내려갈게. 거기서 좀만 기다 려!”
그렇게 말을 마친 환일의 모습이 옥상 난간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느긋하게 내려온다고 해도 2분을 넘기지는 않을 터.
고민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민수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여기서 갈라지느냐.
아니면 잠깐이나마 같이 가느냐. 원래 동료 같은 걸 만들 생각 따 윈 추호도 없었다.
보급고 스킬 덕에 혼자서도 의식주 해결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고.
게다가 도저히 동료가 될 사람들을 통제할 자신이 없었다.
당장 동행하다 보면 보급고 스킬의 정체를 들킬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만약 내 스킬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만큼은 안 되지. 하지만……
막상 레인저와 싸우고 나니 또 다 른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황당한 강적.
만약 이런 놈과 앞으로 한 번 이 상 더 마주친다면?
‘혼자서는 대처 못 할 거다.’
어쨌든 간에 환일의 도움이 있었기 에 사냥 가능했던 강적.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동료의 도 움이 필요해질 수 있다.
‘고려해야 하는 가능성은 두 개.’
보급고 스킬을 들킬 수도 있다는 디메리트.
혼자서 대처 못 할 강적과 마주할 디메리트.
둘 중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어느 쪽이 힘을 줘야 하는가는…….
“이야! 그놈 진짜 더럽게도 질겼 네. 그보다 민수 학생. 코인은 얼마 나 들어왔……?”
“아저씨.”
“으, 응‘?”
“내기 제가 이겼죠?”
판단은 빨랐고, 행동은 즉시 이루 어 졌다.
내려오기 무섭게 눈을 휘둥그레 뜨 는 환일을 향해 민수가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약속대로 점심 한 끼 사주세요.”
먼저 잡는 놈이 밥 한 끼 사기.
내기는 그런 내용이었다.
* * *
당연하지만 영업하는 식당이 있을 리 없었다.
민수가 환일과 함께 향한 곳은 이 미 약탈로 폐허가 된 사거리의 생활 용품점이었다.
“에이. 뭔 빵 쪼가리를 팔고 있어? 이걸로 배가 차나?”
“아쉬운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요. 주는 대로 먹는 거지.”
“하긴 그렇긴 하지만.”
환일이 내민 핫도그를 받아든 민수 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지만 오늘 아침 출발하기 전 경매장에 채워 넣은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자기 손에 돌아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혹시 부족하면 말해. 한 개 더 사 줄게.”
“얻어먹는 처지에 그럴 수는……
“내기는 내기잖아? 게다가 네 덕분 에 겨우 그놈 죽일 수 있었으니까. 핫도그 한두 개야 싸지.”
푸근한 미소와 함께 환일이 대답했 다.
다소 지친 기색은 있지만, 그래도 보고 있자니 마음 편해지는 미소.
조금 뜻밖의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세상이 망했다 해도 아직 한 달조 차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천성이 착한 사람도 아직 도처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경계하고 있는 걸까?’
살짝 자학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핫 도그를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그렇게 폐허가 된 가게 안에서 낯 선 아저씨와 겸상하길 잠시.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판단한 민수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서울로 가신다고요?”
“응? 아아, 그렇지.”
“댁이 서울에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우리 딸이 지금 서울에 있어서.”
“아아, 따님……
확실히 중요한 이유긴 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민수 앞에서 환일 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면……
묻지도 않았는데 시작된 환일의 넋 두리는 이러했다.
택시기사를 하던 환일에게는 수아 라는 이름의 딸이 있다.
나이는 스물일곱. 금천구청에서 일 하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공부 잘했나 보네요.”
“아무렴. 잘했고말고. 엄마 없이 자 랐는데도 아주 똑 부러졌지.”
문제의 그 날, 수아는 야근을 마치 고 외박을 한다고 했다.
주말 앞두고서 으레 있는 일이었기에 환일은 별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고.
야간 운행을 하던 중에 눈앞에 떨 어진 고블린을 얼떨결에 택시로 치 어버렸다고 한다.
“그때 플레이어로 각성했지.”
“차가 다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 다시 시동 걸 어봤는데, 가스탱크에 가스가 싹 다 말랐더라고.”
“ 가스가요?”
“다른 차들도 보니까 기름 한 방울 없더라. 심지어는 주유소까지. 세상 이렇게 될 때 전기랑 같이 기름까지 말라 버린 모양이야. 빌어먹을.”
왜 지금껏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었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입을 꾹 다문 민수 앞에서 환일이 넋두리를 이어나갔다.
“물론 애가 똑 부러지니까 그렇게 걱정은 안 돼. 어쩌면 지금 이러고 있는 나보다 더 잘 먹고 잘살지도
몰라.”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아비 된 입 장에서 어떻게 걱정이 안 될 수 있 겠냐. 세상이 이렇게 돼버렸는 데……
살짝 말꼬리를 흐린 환일이 주섬주 섬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고무줄이 붙어 있는 걸 보아 아마 자신이 경매장이 올린 것이리라.
간접흡연은 싫어하지만, 굳이 지적 하진 않았다.
묵묵히 타들어 가는 그의 담배를 바라보던 민수가 말했다.
“따님 어디 계신지는 아세요?”
“그 뭐냐, 구청 앞에 원룸텔인지 뭔지. 거기서 묵는다고 하더라고. 친 구가 거기서 산다고.”
“원룸텔……
야근 끝나고 친구 사는 원룸텔로 놀러 간 딸내미.
얘기만 들어도 견적이 훤히 나오지 만, 눈치 없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 았다.
흠흠 헛기침을 한 민수가 말을 이 었다.
“그럼 아저씨. 이렇게 된 거 저랑
같이 가실래요?”
“응?” “저도 웬만하면 혼자가 편한데, 보 니까 앞으로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가다가 어떤 놈이 나올지도 모르고 요.”
금천구청 앞이라니 목적지는 뻔하 다.
코앞의 시흥대교에서 좌회전해 조 금만 걸으면 금천구청이니.
반면 자신은 독산역을 지나 가산디 지털단지로 향하는 중.
완벽히는 아니지만, 중간까진 동선 이 그럭저럭 겹친다.
“일단 금천구청역까지만 같이 가는 거로 해요. 거기서 더 같이 갈지 어 떨지는 그때 가서 정하고요.”
“흐으음……
“아저씨 말마따나 이것도 인연이 고, 한 번 호흡도 맞춰봤잖아요? 기 왕 누구랑 같이 가라면 전 아저씨 쪽이 나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다른 걸 다 떠나, 이 사람 진짜 착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유쾌하고, 잘 웃고,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사람 보는 눈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은, 적어도 먼저 뒤통수 치는 일 없을 거다.
“어쩌실 거예요?”
“……나야 뭐 상관없지!”
조금 고민이라도 해볼 것 같았지 만, 바로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빈 도시락 용기를 치워버린 환일이 민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울이 코앞이니 그래 봐야 하루 이틀 정도겠지만, 그동안 잘 부탁한 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아저씨.”
“자는 중에 뒤통수치지 말고.”
“아, 진짜 사람을 뭐로 보고.”
그렇게 악수를 나누며 흐뭇하게 웃 는 두 남자.
서울을 목적지로 하는 잠깐의 동맹 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 * *
점심도 먹었으니 더는 미적거릴 이 유가 없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민수와 환일 은 생활용품점을 나섰다.
“이 길 끝나면 바로 시흥대교에요. 거기서 좌회전하면 금천구청역이고 요.”
“알아, 인마. 내가 그래도 택시를 10년을 넘게 몰았는데.”
남자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말 이 있지만, 그게 꼭 서로 주먹다짐 을 하면서 친해진다는 의미만은 아 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함께 싸우 는 사이 두 남자의 심리적 거리는 퍽 가까워져 있었다.
작게나마 농담도 주고받으며 두 남 자는 텅 빈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딱 100m 정도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뚝 굳어 버린 두 남자가 길 끝을 노려봤다.
“저게 뭐야?”
“털……이네요.”
시흥대교로 향하는 야트막한 2차선 언덕길 위.
차 한 대 없는 그곳에 털 뭉치가 웅크리고 있었다.
비유도 묘사도 필요 없는, 문자 그 대로 새하얀 털 뭉치였다.
크기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버스 한두 대 정도.
팔다리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눈구멍 숨구멍이 어디 뚫려 있는지 도 알 수 없는, 그냥 동그랗고 커다 란 털 뭉치.
“딱 봐도 몬스터이긴 한데……
“어떡하지?”
“……일단 좀 지켜보죠.” 덩치부터 너무 커서 함부로 덤벼볼 생각도 안 들고.
불과 한 시간 전 벌였던 혈투의 기억 또한 생생했다.
정체도 모르는 몬스터에게 객기로 덤빌 생각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뗀 민수가 바로 옆의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너무 서두를 건 없어요. 해 떨어 질 때까지는 시간도 좀 있으니까 요.”
“그, 그래.”
얼른 따라붙는 환일과 함께 2층으 로 향했다.
여기 오면서 눈여겨봤던 2층의 정 육식당 안.
폐허가 된 내부를 들여다보고 문고 리를 잡자, 민수 앞에 메시지가 떠 올랐다.
[정육식당 – Lv.1]
[분류 : 일반 보급고]
[점령 시 획득 가능 보상 : 없음]
‘그러고 보니 고기 먹어본 지도 꽤 됐네.’
정육식당이라는 단어를 보자 갑자
기 고기 생각이 떠올랐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기 름진 돼지고기, 소고기.
‘저 아저씨만 없었다면 보급고 지 정해서 몇 점 구워 먹었을 텐데.’
텅 빈 식당 안을 거닐며 혀를 차 는 환일을 슬쩍 쏘아봤다.
물론 스스로 자처한 거니 불만을 가져본들 의미가 없다.
고개를 저은 민수가 바로 주방 쪽 으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까 주방 한 번 뒤져볼 게요. 뭐 남은 거 있을지도 모르고.”
“난 창밖 보고 있으면 되나?”
“일단은요. 교대로 1시간씩 감시하 죠.”
그렇게 창가를 한일에게 맡긴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당초 예상했던 대로 별 소득 은 없었다.
냉장고부터 찬장까지 모조리 텅텅 비어 있고.
남은 거라고는 소금이나 간장 같은 조미료 정도.
‘하긴 그렇겠지.’
아파트 단지 코앞의 식당에 뭘 남 겨놨을 리가.
그렇게 아쉬운 입맛을 다신 민수가 홀로 나왔을 때였다.
“ 민수야.”
“뭐 보여요?”
“저기. 여기 와서 저기 좀 봐라.”
환일의 손짓에 얼른 허리를 숙이며 민수가 창가에 달라붙었다.
조금 전 혈투를 벌이며 지나왔던 사거리 방향.
텅 빈 그 위에서 10여 개 정도의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플레이어?”
“근처에서 보고 있던 모양이야.”
과연. 레인저가 정리되는 거 확인 하고 나왔다 그 말이군.
잔뜩 눈매를 구긴 민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속내 훤히 보이네. 승냥이 같은 놈들.”
“여기도 썩 안전하진 않아. 빠져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다간 들킬 수도 있어요”
환일의 제안에도 민수는 고개를 저 었다.
들어오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건물에 후문은 없다.
출입구라고는 지금 저들이 다가오 는 대로 방향의 정문뿐.
“약탈자가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덤벼오면 곱게 보내줄 수 없겠죠.”
“……하아. X발. 결국, 이날이 오 네.”
“맘 약해지지 마세요. 살려면 싸워 야 해요. 저는 저기 카운터 뒤에 숨 을 테니까 아저씨는 정문 바로 옆에 서 대기……
찌이이이익!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두 남자의 귓가를 찔렀다.
생쥐의 찍찍거리는 소리를 수천 배 는 키운 것 같은 울음.
식욕과 분노가 뚝뚝 묻어나는 그 울음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 를 돌리자.
“……어, 어어? 저거 뭐야?”
“털 뭉치가……
시흥대교 앞을 가로막고 있던 털 뭉치가.
천천히 다리를 꺼내며 말고 있던 몸을 풀고 있었다.
“찌지지지직!”
하얀 몸 위로, 검은 눈을 번뜩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