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82
나 혼자 무한 보급! 182화
마음 같아선 장소를 옮기고 싶었지 만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칼라일의 물리적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 다.
“이게 지구-117의 기호품인가요? 독특한 맛이군요.”
“뭔가 톡 쏘는 맛이 나는데…… 그 래도 신선하네요. 마지막으로 음식 같은 걸 먹어본 게 한 4만 년도 더 전이라.”
연식 봐라. 인류 역사가 추정 2만 년이라는데.
상상하기조차 까마득한 스케일에 질려버린 민수가 혀를 내둘렀다.
“기껏 무게 잡고 나와서는 콜라나 처마시고 있어? 용건 있음 빨리빨리 해결하시지.”
“뭐, 잠깐의 휴식은 괜찮지 않을까 요? 당신을 비롯하여 지구-117의 플레이어들도 그간 대단히 여유 없 이…… “넌 수명이 4만 년도 넘으니까 여 유를 부릴 수 있겠지. 잘해야 100년 겨우 넘기는 인간들은 그렇지 않 아.”
“……하긴 그렇겠군요. 저도 가끔 은 잊곤 해요.”
시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재화 라는 사실을요.
들고 있던 콜라 캔을 내려놓은 칼 라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당신, 김민수. 아카라트의 초월자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였군요. 아 카라트는 이 ‘게임’에 자신들이 손 에 넣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숨겨 놓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드디어 그 안배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름 호의를 품은 미소임에도 그 미소가 소스라치게 무서웠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내 상 식과 어긋나 있다.
칼라일을 바라보던 민수가 오소소 돋아 오르는 닭살을 쓰다듬었다.
‘진짜 외계인이다.’
여태껏 ‘게임’을 헤쳐오면서 외계 인을 못 본 게 아니다.
당장 뉴욕에서는 진짜배기 외계인 들과도 마주쳤고.
넓게 봐서 나브, 갈증혁, 마리아나 알리아도 외계인이라 할 법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통틀어도 칼라 일의 이상성은 독보적이었다.
분명히 우리를 닮은 이목구비에 팔 다리 두 개씩.
하지만 그럼에도 내 머리는 그녀라 는 존재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인다.
‘이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그러니 까……
불쾌한 골짜기.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존재에게 느 끼는 혐오감.
차라리 나브처럼 짐승 귀에 꼬리만 난 인간이든지.
아니면 차라리 뉴욕의 카라그림처 럼 아예 인간이 아니든지.
‘인간이랑 미묘하게 닮아서 더 거 북하단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칼라일은 진짜 외계 인 (Alien) 이라 할 법하다.
그 외형부터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특히나.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계신 모양 이군요.”
“ 약간은.”
“이해합니다. 낯선 생명체들을 마 주하는 이들은 보통 그런 생각을 하 곤 하지요.”
칼라일이 다 이해한다는 듯 싱긋 웃었다.
친절한 미소가 오히려 역겨움을 부 채질했다.
“저 또한 당신들과 같은 인간들을 처음 봤을 때는 마찬가지의 혐오감 을 느꼈죠. 물론 이제는 많이 익숙 해져서 당신들보다 더 끔찍하게 생 긴 자들을 봐도 그러려니 합니다 만…… “그걸 굳이 끔찍하다고 표현하는 시점에서 그러려니 하고 반응 못 하 는 거 아닌가?”
“아, 당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군 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저 또 한 한낱 필멸자에 불과하다는 걸 수 도 있겠고요.”
그렇죠. 우리 모두 한낱 필멸자죠.
살짝 어깨를 늘어뜨린 칼라일이 얼 굴을 옅게 일그러뜨렸다.
“모두가 한낱 필멸자입니다. 황금 의 도그마를 손에 넣고 우주를 무제 한으로 소모하며 신이 된 기분을 만 끽한 아카라트도, 그들을 대신해 이 ‘게임’을 손에 넣은 우리도……
“살아 있는 존재인 이상 한계가 있 고, 타락할 수밖에 없죠. 그런 존재 가 이끌어 나가는 ‘게임’이니, 언젠 가 당신 같은 이를 만나 망가져 버 리는 것도 순리일 겁니다.”
뭐, 지금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죠.
다시금 고개를 든 칼라일이 힘없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저의 한탄이나 듣자고 여 기 온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그래.”
“초월자 김민수.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건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기 때 문입니다.”
제안이라.
‘개발’이 직접 와서 할 정도니 보 통 제안은 아닐 거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민수가 물었 다.
“그게 뭐지?”
“이 ‘게임’의 끝이 알고 싶지 않으 십니까?”
“다른 ‘개발’들은 당신을 두려워하 죠.”
의자까지 가져와서 칼라일 앞에 자 리를 잡고 앉았다.
지그시 눈을 감은 칼라일을 바라보 던 민수가 주변을 살폈다.
‘ 하아아.’
건물 창문마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몰려 있다.
플레이어와 비 플레이어의 구분조 차 없다.
중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일단 사람들을 물렸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이 이야기를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무거운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김민수, 제 말 듣고 있나요?”
“음? 아아, 미안. 주변 시선이 좀 신경 쓰여서.”
“장소를 옮길 수 없는 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보시다시피 제 물리적 실체는 어딘가에 수납되기 좀 힘든 사이즈거든요.”
사방 10m 넘게 퍼진 검은 치맛자 락을 들어 올리며 칼라일이 웃었다.
“물론 정 원한다면 잠시 제 안에 흡수되어서 의사를 교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쳤냐? ‘개발’한테 내 몸을 내주 라고?”
“……그럴 줄 알았죠. 아무튼 감수 하신 줄로 알고 계속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섭섭한 미소조차 없었다.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 칼라일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다른 ‘개발’들은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개발자, 아카라트의 초월자 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 순간 자 신들이 사라질 걸 두려워하는 거 죠.”
“말하는 거 들어보니 아카라트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모양인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당신보다 먼저 이 ‘게임’의 끝에 다 다랐던 플레이어였습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다,
그거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것도 잔 뜩이고.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라일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아카라트가 도그마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정 도로 강대한 도그마를 가진 플레이 어를…… 과연 아카라트는 어떻게 대했을까요?”
“설마•…”
“예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갑자기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는 칼 라일.
폐부 깊숙한 곳에서 스며 나오는 분노가 그녀의 얼굴에 가득 드러났 다.
“이 ‘게임’의 우승자는 아카라트의 가축이 됩니다.”
“그들이 약속한 이 ‘게임’ 끝에 있 다는 신은 거짓말입니다. 아니, 완전 히 거짓말은 아니군요. 분명 그 끝 에는 신적인 존재가 있었죠. 단지 그것이 아카라트가 만들어낸, 아카 라트를 위해 봉사할 뿐인, 신이란 이름의 노예라는 게 문제일 뿐.”
우주의 법칙을 바꾸는, 수많은 차 원의 도그마들.
그것들을 한데 모은다면 얼마나 강 대한 존재가 될 것인가.
그것이 필멸자의 인지를 초월한다 면, 그것이 바로 신이 아닌가?
“아카라트는 ‘게임’의 끝에 다다른 우승자를 자신들이 만든 신의 부품 으로 소모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게임’의 끝에 존재하는 신의 부속품이 되었고, 그 렇게 그들은 아카라트의 노예가 되 어 자신의 전능성으로 그들에게 봉 사했습니다.”
“이런 X발……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신을 만 들어낸 것입니다. 영원히 자신들에 게 베풀어주는 신. 영원히 자신들을 지켜주고, 영원히 자신들을 품어주 는 신. 전능한 노예와도 같은 신. 하지만……
그들이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전능한 건 신의 힘이지, 그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영혼을 기워 붙여 만든 신은 필멸 자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이 영원히 자신들에게 봉사하리라 믿었 죠. 참으로 터무니없는 오만이었습 니다.”
“……잠깐, 그 말은.”
거기까지 들은 민수의 등골이 서늘 하게 물들었다.
우승자의 영혼을 적출해서 신의 부 품으로 써왔다.
그리고 눈앞의 칼라일 또한 먼저 ‘게임’의 끝에 다다른 우승자.
그렇다면, 지금 저 칼라일은…….
“……설마 네가 신인가?”
“표현이 부정확합니다, 김민수.”
그 의혹 가득한 시선도 대수롭지 않은 것인지.
의연한 표정으로 칼라일은 고개를 저었다.
“말했다시피 신의 부품입니다. 기 어나 나사 하나 이상의 가치는 없습
니다.”
“……부품이라.”
“물론 그 부품들이 전부 제각각의 의지나 욕망을 가지고 있으니 단순 히 무언가에 속한 존재로 뭉뚱그리 는 것도 부정확하군요. 대표적으로 “그라지아가 있지. 대뜸 날 죽이려 하더군.”
“그렇죠, 그라지아. 그는 특히나 당 신을 두려워하더군요.”
칼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라지아뿐만은 아닙니다. 당신을 두려워하고 당신을 죽이려 하고 당신이 ‘게임’의 끝에 다다르 는 걸 마지막까지 막아서려 하는 이 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당신이 ‘게임’의 끝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개발’ 또한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고요.”
“이유가 뭐지?”
“공적인 이유와 사적인 이유가 있 습니다.”
칼라일이 손가락 두 개를 뻗었다.
인제 와서 확인해 보니, 그녀의 손 가락은 네 개뿐이었다.
“우선 공적인 이유. ‘개발’들은 당 신들이 이 ‘게임’의 끝에 다다르는 것으로 자신들이 완전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완전해져?”
“이 ‘게임’을 만들어낸 아카라트의 도그마, 무한의 섭리를 가지는 황금 의 도그마는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긴 사용자가 아카라트 의 초월자들이었으니 굳이 여기에 힘을 보태줄 이유가 없었겠지요.”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 만들어낸 신 에게 채우는 목줄이기도 했을 거다.
강대한 도그마의 집합체인 신.
거기에 자신들이 가진 황금의 섭리 까지 더해지면 더는 통제할 수 없을 테니까.
“이 ‘게임’의 진짜 주인이자 개발 자인 아카라트. 그가 스스로 격을 낮추어 우리와 같은 신의 부품으로 서 가세한다면, 그 순간 완전한 신 이 창조되리라 믿는 겁니다.”
“……신이라.”
“무한하지 못한 신은 절대적이지도 못하며 그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니 까요. 당신이 ‘게임’의 끝에 다다라 신의 부품이 된다면, 아마 그때는 진정한 신이 창조될 것입니다.” 가장 강대하고 전능한 힘을, 무제 한으로 다루는 진짜 신.
모든 신화가 꿈꾸는, 그 절대적인 신이.
“그런 것을 바라는 이들 또한 있습 니다. 물론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사적인 용건이 있다 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때 갑자기 칼라일의 얼굴이 미묘 하게 변했다.
속병이라도 앓는 듯, 무언가 잔뜩 쓰린 표정.
그냥 봐도 어색한 얼굴이 저런 표 정으로 변모하니 무서울 지경이다.
슬쩍 닭살을 쓰다듬는 사이 드디어 결심한 듯 칼라일이 입을 열었다.
“……저는 우리가 속죄하길 원합니 다.”
“속죄?”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무서운 소리 잔뜩 늘어놓더니 인제 와서 속죄?
깜짝 놀란 민수가 눈을 휘둥그레 치 떴다.
“탐욕스럽고 오만했던 아카라트를 대신하여 우리는 이 ‘게임’을 손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또한 필멸자. 신 흉내를 내며 수많은 세계를 거느리는 이 ‘게임’ 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는 망가지고, 타락했습니다. 아카라트를 몰아내겠다는 열망이 사 라진 자리에 이제는 사사로운 탐욕 만이 남았습니다. 수많은 차원 세계 를 자신의 가학적인 유희를 위해 가 지고 놀고, 누군가는 완벽한 신을 만들겠다며 플레이어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아카라트와 전혀 다르지 않 다.
자신들의 노예를 만들기 위해 ‘게 임’이란 이름으로 다른 세계를 침공 한 아카라트.
그들이 사라지고 남겨진 ‘게임’을 사리사욕을 위해 남용하는 우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이제 무슨 차 이가 있는가?
“우리는 아카라트의 잘못을 반복해 선 안 됩니다. 이미 그들의 탐욕으로 희생되어 이용되었던 우리가,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됩니다.”
“칼라일……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 런 의미에서 초월자 김민수, 당신에 게 부탁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칼라일이 갑자기 민수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빛나는 긴 머리가 폭포처럼 쏟아지 며 그녀의 앞을 가렸다.
“초월자 김민수, 당신은 아카라트 의 힘을 가졌으나 아카라트의 사람 이 아닙니다. 지구-117에서 태어난 당신은 이미 멸망한 아카라트의 은 원에서 자유롭지요. 당신은 앞서 있 었던 다른 초월자와는 달리, 사적인 분노로 우리를 단죄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카라트의 초월자 가 된 시점에서 이제 이 ‘게임’은 당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습니 다. 설령 우리라고 해도 당신의 행 동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제 플레이어가 아니다.
엄연한 이 ‘게임’의 상위 관리자. ‘개발’과 동급 혹은 그 이상.
이제 그에게 이 ‘게임’의 진행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로 하여금 ‘게임’의 끝으로 향하 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부탁합니다, 김민수. ‘게임’을 속 행해 주십시오.”
“속행••••••
“이 ‘게임’의 끝에서 우리를 바로 잡아주십시오.”
이런 부탁밖에 남은 게 없다.
칼라일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민수 와 시선을 맞췄다.
“당신을 위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클리어 할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시나
리오.”
“최초이자 최후?”
“이 ‘게임’의 첫 번째 시나리오이 자, ‘게임’의 끝으로 직행할 수 있는 최종 시나리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당신이 원하는 게 있습니다.”
원하는 거?
눈썹을 꿈틀거리는 민수를 바라보 며 칼라일이 옷차림을 바로잡았다.
쫙 펴진 치맛자락이 파도치듯 흔들 거렸다.
그 중앙에서 기이한 검은색 눈동자 를 빛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게임’의 끝에서 당신이 어떤 판단을 내리건…… 가능할 겁니다.”
“뭐가?”
“지구-117을 ‘게임’ 시작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것 말입니다.”
* * *
“그럼 지구-117 시간 기준으로 이 틀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대답은 그때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용건을 전한 칼라일은 씻은 듯 자취를 감췄다.
쳐들어왔을 때도 그렇고, 돌아갈 때도 참 일방적인 여자였다.
“하아아아아……
한숨을 쉰 민수가 빛나는 사거리의 풍경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말세라고 하지만 사람은 적 응의 동물이다.
안전도 식량도 확보되니 이제 밤이 깊어도 사람들은 제법 밖으로 나다 니고 있었다.
“……골치 아프네.” 작게 한숨을 쉬고는 옆에 놓인 캔 맥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힘껏 한 모금 마시자 쌉싸래한 탄 산이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갔다.
이 ‘게임’이 시작되고 술을 입에 대는 건 처음이다.
그나마도 맥주니까 마시는 거지, 소주는 마실 엄두도 안 난다.
반쯤 빈 캔을 옆에 내려놓은 민수 가 답답한 한숨을 토해냈다.
선택지는 두 개다.
하나. 여기서 ‘게임’ 진행을 포기한 다.
바보 같은 얘기지만 분명 가능하다.
‘게임’은 멈춰버렸고, 칼라일은 이제 나에게 간섭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개발’조차도 내 허락을 받고 지구 에 들락거려야 할 지경이다.
‘이대로 ‘게임’ 같은 건 잊고 내 나 름대로 세상을 재건하는 건……
중분히 가능하지.
보급고 능력 이전에 이제 나는 상 위 관리자 아닌가.
말마따나 이제 지구에서 나는 신적 인 존재다.
원한다면 나라도 세울 수 있고, 세 상을 바꿀 수도 있다.
상상만 하던 이상향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두 번째 선택지의 가능성을 묻어버 리는 것이다.
망가져 버린 세상을 복구할 궁극적 인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끝에 다다르면 지구를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한다.’
죽은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이 모 든 파괴를 없었던 것으로.
세상을 깔끔하게, 아무 일도 없었 던 것처럼 되돌릴 수 있는 단 하나 의 선택지.
하지만.
“만약 클리어에 실패한다면……
“여기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꼬부라진 발음. 공기를 타고 흘러오는 술 냄새.
고개를 돌린 민수의 눈이 살짝 흔 들렸다.
“예진 씨……?” “아, 맥주 마시고 있네에. 왜 이런 데 혼자 처박혀서 궁상이에요?”
언제나 걸치고 다니던 갑옷은 벗어 던진 채.
편한 사복 차림을 한 예진이 붉어 진 얼굴로 손에 든 검은 봉투를 팔 랑거렸다.
“마실 거면 나랑 같이 마셔요. 생 각해 보니 민수 씨랑 술 한잔 같이 한 적 없네.”
“나름 같이 목숨도 건 사이인데, 괜찮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