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91
나 혼자 무한 보급! 191화
뒤처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수는 둘째 치고 질적 차이가 너무 현격했다.
각종 총기와 마도기갑으로 무장한 플레이어 출신의 노련한 병사들.
심지어 그 전원이 파병 경력을 가 진 해병대원이었으니 결말이야 뻔했 다.
“전에도 이런 적 있었지?”
“설마 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임시 수용소로 사용되는 센트럴 파 크의 천막 막사 내부.
의자에 결박된 루시를 바라보던 엘 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끝냈으니까 조금은 엄마도 변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내가 너무 순진했네.”
“……그 노란 원숭이가 시킨 일이 지?”
“아니. 민수는 아무 것도 몰라.”
물론 어느 정도 심증은 있었을 것 이다.
자신이 요청하자 아무 의문도 표하 지 않고 대릴이 병력을 움직였으니 까.
아마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예상만 하는 것과 내가 직 접 고백하는 건 다른 문제다.
엘레나의 우묵한 눈이 움찔거리는 루시를 노려봤다.
“전부 내가 지시한 일이야. 전부 다.”
“핏줄 어디 안 가는구나. 설마 제 엄마를 반정부 테러리스트로 몰아서 잡아 처넣을 생각을 하다니.”
“원칙적으로 지금 뉴욕에 반정부 세력 아닌 사람이 어딨겠어? 그 대 령님도 엄마도 통제 없이 날뛴다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지.”
차이점이 있다면 태도뿐이다.
저스틴은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일단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눈치를 보기는커녕 이쪽을 직접 이용하려 들었다.
딱히 그녀가 멍청해서 그런 건 아 닐 거다.
그녀는 나를 낳기도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는 건 원 래 힘든 법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지금 이 결과를 만들었지.”
“전부 공익을 위한 일이었어. 뉴욕 과 그 시민들을 위한 결단이었지.”
“나도 마찬가지야. 민수가 구한 뉴 욕을 위해 내린 결단이야.”
자기 엄마 잡아 처넣은 패륜아의 오명을 짊어질 결단이다.
엄마는 딸을 이용하고, 딸은 엄마 를 잡아 처넣고.
참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싶어 엘 레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엄마한테 힘이 실리면 보나 마나 대숙청이 벌어질 테니까. 센트럴 파 크와 브롱크스 플레이어들을 반으로 갈라서 피의 축제를 벌이겠지.”
“그럴 일 없어! 넌 엄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권력에 미쳐서 배 아파 낳은 딸도 팔아먹는 정치중독자.”
움찔.
깜짝 놀란 루시가 비로소 엘레나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신을 고요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 라보는 딸의 얼굴.
이전의 심약하고 순진한 모습은 온 데간데 없다.
“처음 뉴욕을 떠날 때는 아직 내 마음이 약했어. 차마 엄마를 그냥 둘 수 없어서…… 대령님한테 엄마 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한 뒤 떠났 지.”
“에, 엘레나……?”
“그렇게 기회를 줬어. 하지만 엄마 는 그 기회를 이렇게 이용했지. 그 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단호하고 싸늘하고 무지막지한 결 단.
착한 딸이 사라진 자리에, 철혈 같 은 지도자가 나타났다.
‘저게 진짜 내 딸이라고?’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루시 요한슨의 딸 엘레나는 이제 없다.
저 아이는 뉴욕을 떠나서 지금까지 대체 뭘 보고 온 걸까?
“……처분은 그레이엄 대령님이 결 정할 거야. 그것까진 내가 차마 못 내리겠네.”
“에, 엘레나. 일단 진정하고……
“나 엄청 진정하고 있어. 아무튼,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거야.”
“엘레나! 너 진짜 엄마를 가둘 셈 이야? 너 이대로 가다간 절대 좋은 꼴 못 볼 거야! 엘레나! 엄마 말 듣 고 있어? 엘레나! 엘레나아아아아!”
비명 같은 절규를 등진 채 막사 밖으로 나왔다.
문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재1빨리 막사 입구를 닫았다.
저지르면 시원할 줄 알았지만, 생 각했던 것만큼 후련하진 않았다.
몇 발짝 물러나서 한숨을 쉬는 엘 레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끝내고 오셨습니까?”
“ 민수.”
“별로 기분은 안 좋은 것 같네요. 자, 한잔해요.”
그림자, 민수가 들고 있던 콜라를 건넸다.
사양도 않고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따끔한 탄산이 목구멍을 찌르자 비 로소 복잡했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후우우.”
“결국 결단을 내렸군요. 마음은 아 프시겠지만 전 엘레나의 결정을 지 지하……
“뉴욕에 남을게요.”
갑작스런 엘레나의 대답에 민수의 말문이 막혔다.
살짝 눈을 치켜뜬 그의 곁에서 엘 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직접 겪어보니까 알겠어요. 여 긴…… 제가 남아서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가요?”
“엄마는 실각시켰지만, 아직 우드 대령이 남았어요. 지금은 이쪽의 권 위를 인정해서 숙이고 있지만, 그것 도 잠깐이겠죠. 뉴욕 최고 플레이어 캠프의 대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이 쪽을 장악하려 시도할 거예요.”
아직 미국은 동서로 분단된 상황.
게다가 지금 당장 복구할 수 있는 건 통신망뿐이다.
이대로 민수가 철수하면 한동안 동 서 간의 물자 이동은 불가능하다.
즉 어찌 됐건 그레이엄 대령과 병 사들은 한동안 뉴욕에 고립되어 있 어야 한다.
그들도 각오하고 온 거지만 그 각 오가 언제까지고 굳건할까.
그리고 아마 저스틴은 그런 빈틈을 노리고 부대 장악을 시도할 거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선 누군 가가 남아야 하고, 그건 제가 되어 야 하죠. 엄마를…… 요한슨 의원을 실각시켰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하니까요.”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 으니까요.”
그렇게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엘레 나의 표정은 그제야 좀 후련한 기색 을 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의 입가에 도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엘레나도 결정했구나.’ 평생 자신을 쫓아다니던 엄마의 그 림자.
그 그림자를 벗어나서 시작한 인생 처음이자 최고의 모험.
언제나 몹쓸 장소만 끌고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그녀는 많은 것 을 배우고 성장한 모양이다.
자신을 뒤덮은 그림자를 걷어내고, 스스로 그 자리를 채울 각오를 다질 정도로.
“……그렇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 니다.” 그녀가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진짜였다.
조금 시원섭섭하긴 하지만, 뭐 평 생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고개를 주억거린 민수가 재빨리 보 관함에서 통신기를 꺼냈다.
“결단을 내려줘서 고마워요. 엘레 나. 자, 이거 받아요. 아크라이트 호 출용 통신기에요.”
“ 민수.”
“더 필요한 물자가 있다면 말만 해 요. 일단 적당한 쇼핑몰 하나 보급 고로 지정해놓을 거고요. 병력들이 사용할 총기라거나 장비들도……
“그건 됐고요.”
말을 끊은 엘레나가 뜬금없이 손을 뻗었다.
그대로 민수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 는 가느다란 손가락.
순간 민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 다.
“어…… 엘레나?”
“지금 뭐하려는 건가요?”
글쎄요. 내가 지금 뭐하는 걸까.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이라 나도 내 맘을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붙잡은 민수의 얼굴을 뚱하니 바라봤다.
금발이 된 걸 빼면, 처음 만났을 때와 별로 다른 게 없는 얼굴.
솔직히 엄청 잘생겼냐고 하면 좀 아리송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니 나쁘지 않네.’
내가 눈에 뭐가 씌인 게 분명하구 나.
언제부터 씌였을까.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두 번째 시나리오였나. 세 번째 시 나리오였나.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이었어.’
아주 이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
밤중에 내 방에 숨어들어, 내게 같 이 골탕 먹이자고 제안했던 그 날.
그 제안을 시작으로, 그는 나를 이 상한 세계로 이끌었지.
동료들과 함께 산을 내달리고, 험 한 전장을 질타하고, 미궁을 돌파하 던 나날들.
아아, 그렇구나. 그 나날들이 나를 바꿔왔던 거로구나.
나는 한참 전부터 그로 인해 변해 있던 거로구나.
“엘레나?”
그리고 이제 다시 한번 나도 그도 변했구나.
우리의 이 ‘게임’은 끝을 앞두고 있고.
나는 다시 빅 애플, 뉴욕으로 돌아 왔으며.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와 함께하 던…… 연인이.
“저기, 내 말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언제나 변해왔고, 변화를 갈구하던 시간들.
때로는 변한 이 모습에 그대로 멈 춰있고 싶지만.
이젠 나도, 그리고 그도 그럴 수 없으니.
“언제나 듣고, 보고 있었어요.”
다시 한번 변하자. 변하도록 하자.
말하지 못한 마음을 놔두고, 다시 한번.
살짝 깨물었던 입술을 놓고, 엘레 나가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 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나서 야 손을 놓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수.
보기 드물게 당황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입가를 가린 채 엘레나가 깔깔 웃 었다.
“친애의 키스에요.”
“ 친애••••••
“나를 이렇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요. 김민수.”
말하지 않았으니 없어져도 되겠지.
이대로 조용히 삼켜 버려도 괜찮겠 지.
어차피 그는 평생 알지 못할 테니 까.
엘레나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앞으로도 내 좋은 친구로 남아주 세요.”
그리 말하는 엘레나의 눈꼬리는 어 째서인지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 그녀 자신은 평생 모를 이유 로 인하여.
그렇게 약간 싱승생숭했던 배웅을 마친 후.
민수와 은비는 드디어 순양함 안으 로 돌아왔다.
“엘레나도 남기로 했고, 미국도 슬 슬 정리되는 분위기네.”
“이제 남은 건 유럽인가. 일단 영 국부터 가는 게 절차상 맞을 텐 데…… 은비야? 왜 그런 눈으로
“ 오빠.”
우당탕!
“케흑?!”
단둘이 되기 무섭게 냅다 달려든 은비가 민수를 밀어 넘어뜨렸다.
뜻밖의 습격인 데다가, 애초에 상 대가 천마였다.
벌렁 나자빠지는 민수 위에 은비가 털썩 걸터앉았다.
“서, 서은비! 너 지금 뭐하는 거……?!”
부딪쳐서 깨졌으면 깨진 걸로 끝난 거고.”
“뭐, 뭐야?”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지?”
그렇게 근성 충전한 은비가 처박듯 얼굴을 팍 숙였다.
당황한 나머지 몸이 굳어 제대로 대처조차 할 수 없었다.
거의 들이받을 기세로 은비가 민수 와 입을 맞췄다.
“•…”파하!”
호쾌하게 키스를 마치고 참은 숨을 토해내는 은비.
그 와중에 부끄러운 건 아는 건지 귀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 를 올려다보던 민수가 물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미안해, 오빠. 나도 성질 좀 많이 버려서.”
“뭐?”
“천마씩이나 돼서 이러고 있는 것 도 꼴사납잖아.”
그래, 어제 내가 차이긴 했지.
그런데 차인 건 차인 거고, 그걸로 끝난 건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천마다.
뭐건 간에 한 번 임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끝을 봐야 한다.
그게 굳이 싸움이 아니라 해도 말 이다.
“까짓 거 절초 한 대 맞고 내상 입 은 셈 치지. 누구 한 명 나자빠질 때까지 비무 끝난 거 아니니까.”
“천마 천마 하더니 이제 머릿속까 지 무협지로 범벅이 됐구나. 너 “그래, 그렇지. 오빠 때문에 이렇게 돼버렸어.”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민수의 옷깃 을 불끈 쥐었다.
고개 숙인 그녀의 눈이 전의로 불 타올랐다.
“그러니까 책임지라고. 난 절대 오 빠 포기 안 할 거야. 그 사이에 누 가 있다고 해도.”
“얘 당당한 것 봐라. 그 각오 언제 까지고 계속될 것 같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그리 대답하는 은비의 목소리는 경 쾌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해맑아서 지적조차 하기 무안 할 정도로.
저 분위기를 깨는 것도 왠지 못 할 짓인 것 같다.
게다가 방향만 좀 다를 뿐이지, 어 쨌든 기운을 차리긴 했으니까.
결국, 포기한 민수가 혀를 차며 고 개를 돌렸다.
“후련해졌으면 비켜. 오빠 무겁다.”
“싫어. 한 번 더 할 거야.”
“얘 자꾸 이러네. 이런다고 골 안 들어가.”
“그래도 골을 넣으려면 슈팅은 해 봐야지! 그리고 지금 아니면 기회 없다고. 가면 예진 언니가 눈 시퍼 렇게 뜨고 감시할 텐데!”
“하아. 이건 뭐 힘으로 어쩔 수도 없고……
배가 커봤자 겨우 수백 미터고, 상 대는 천마다.
힘도 힘인 데다가 기감도 보통 이 상이다.
적어도 배 안에 있는 한 이 녀석 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다.
결국, 포기한 듯 민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좋을 대로 해라. 에휴. 돌아 가서 예진이 얼굴 어떻게 보려고.”
“바로 그거지. 오빠는 이럴 땐 결 단이 빨라서 좋아.”
“그렇다고 잡아먹지는 마. 지금 너 표정 보면 나 아주 뼈째 씹어 먹……”
[아크라이트로부터의 긴급 보고입 니다.]때마침 다나의 목소리가 선내를 울 렸다.
화들짝 놀라서는 민수에게서 후다 닥 물러서는 은비.
그 모습을 흘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민수가 옷자락을 탁탁 털었다.
“긴급 보고?”
[태평양 일대에서 이상 현상 발생. 현재 아크라이트가 현장을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현장 감시 가능해?”
“준비해.”
이상 현상.
뭔지는 몰라도 느낌이 안 좋다.
허둥지둥 몸을 돌린 민수가 은비와 함께 함교로 향했다.
[현장 영상 띄우겠습니다.]함교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전방 유리에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 안을 가득 채운 막막한 푸른 바다.
그 안에서 꿈지럭대는 검은 모습을 본 민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저건?”
* * *
해발 고도 500m 위. 섬 한 조각 없는 막막한 창해에서 아크라이트가 고개를 들었다.
“시작되었나.”
수면을 내려다보는 황금색 눈동자.
날카로운 눈빛이 수면에서 올라오 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수면 지척까지 올라온 날카로운 무 언가.
이 속도면 곧 수면을 뚫고 솟구칠 것이다.
황금빛 날개를 크게 홰치며 아크라 이트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촤아아아아!
날갯짓에서 일어난 바람이 수면을 거칠게 때리고.
철렁이는 바닷물을 헤치며 무언가 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고 뾰족한 황금색의 무언가.
그 번뜩이는 빛을 바라보며 아크라 이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최종 시나리오가.”
수면을 뚫고 솟구친 뾰족한 황금 빛.
황금으로 빚은 첨탑의 꼭대기가 고 개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