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90
나 혼자 무한 보급! 190화
잠시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난데없는 저스틴의 요청에 민수는 그를 데리고 함교로 향했다.
“내가 공군 출신이라는 얘기 언제 했었나?”
“소문은 왕왕 들었습니다. 현역 때 명예 훈장도 타실 뻔했다고.”
“뭐, 결국 못 탔으니까 의미는 없 지. 아무튼, 내 출신이 그래서 뱃놈 들 로망은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이런 거 보면 그 치들 심정도 조금 은 알 것 같아.”
수백m를 넘기는 거대한 함체.
육중하고 중후한 모습에서 느껴지 는 원초적 위엄.
그 거체를 지배하여 대양을 가르는 쾌감.
심지어 그게 바다가 아니라 하늘을 항해하는 배라니.
이 거대한 배를 홀로 이끄는 감각 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짜릿한 전율에 손가락을 떨며 저스 틴이 함교 밑을 내려다봤다.
“그때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싶었는 데, 이젠 이렇게 훌륭한 배를 이끌 고 다니는 사나이가 되었군. 남자로 서 부럽고 존경스럽네.”
“결국 ‘게임’이 만들어준 것일 뿐 입니다. 그나저나 따로 얘기하실 거 라는 게 무슨……?”
“일단 저거부터 보겠나?”
저스틴의 손가락이 함교가 비추는 영상을 가리켰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는 센트럴 파크 한복판.
그 인파 정중앙에서 초췌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엘레나를 끌어안은 채 외치고 있었다.
-엄마는 널 믿었단다! 엄마는 널 믿었어! 결국, 네가 이렇게 성공하 여 정부의 고관이 되어 돌아왔구나!
-어, 엄마. 난 고관이 아니라…….
-이제 네 역할이 막중할 거다. 이 엄마가 도와줄 테니 모녀가 함께 이 뉴욕의 질서를 바로잡자꾸나! 다들 보고 계십니까? 이제 뉴욕의 질서는 우리 요한슨 모녀에게 맡겨주십시 오!
“기껏 시간 내서 돌아온 딸내미 데 리고 한다는 짓이 선동이라니.”
저스틴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역겨 움이 드러났다.
“난 이래서 정치인이 싫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조차도 무기로 삼는 선 천적인 정치 동물들……. 권력만 쥘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부류들이지. 저런 치들은.”
“대령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군요. 브 롱크스 플레이어들로 센트럴 파크 공 격한 건 대령님 지시 아니었습니까?”
“어차피 나도 개새끼 아니냐고 묻 는 거라면 할 말 없네. 하지만 같은 개새끼라고 해도 급이 있는 거야.”
즉 자기는 좀 더 나은 개새끼다, 그 말인가.
할 말은 많지만 지금 중요한 내용 은 아니다.
민수는 굳이 이 자리에서까지 그런 걸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안 좋아하신다는 건 알겠 는데, 그럼 저 사람을 왜 굳이 옆에 두신 겁니까? 분명 요한슨 의원은 제가 실각시키고 갔는데요.”
“나라고 내키는 건 아니었네. 단 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직후 이어진 저스틴의 고백은 이러 했다.
자신이 돌아간 직후 저스틴은 나름 대로 질서를 잡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마침 돌아가기 전 대량의 물자를 뿌려둬서 뉴욕 또한 안정을 되찾은 상황.
더 이상 정령천공포에 목을 맬 필 요도 없으니, 일이 수월하게 풀릴 줄 알았더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 어. 정확히는 내가 요한슨 의원을 좀 얕잡아본 거지.”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보면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같은데요.”
“아무렴! 크게 맞았지. 방심했어. 저 나이에 시의원까지 해 먹는 여자 라면 결코 맹탕이 아닌데 말이야.” 온갖 물자가 솟아나오던 보급고는 없어진 상황.
이제부턴 물자 보급에도 어느 정도 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제한된 물자의 질서 있는 배분.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 또한 있는 법이었다.
“더 많은 물자를 배분받지 못해 불 만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루시는 자 기편으로 끌어들였어. 결국, 나도 자 기와 다를 게 없다고 선동해서, 순 식간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 장시 켰지.”
“그래서 요한슨 의원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거군요. 지지기반을 갖춘 정치인만큼 무서운 게 없으니까.”
“그렇지. 그나마 그 이상 큰일은 벌이지 않는 게 나로서는 다행이었 네. 시나리오 클리어라는 공통의 목 표가 본의 아니게 그녀를 견제해 준 셈이지.”
그렇게 지금까지 저스틴과 루시는 불안한 동거를 지속해 왔다고 한다.
나날이 줄어가는 물자를 둘러싼 적 대적 공존이 진행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 불안한 평형 상태 를 깨뜨릴 자들이 나타났다. 거대한 황금 전함, 전차와 강화복 을 입고 나타난 정통 미합중국 정부 의 병사들과.
“자네 말일세. 한 번 뉴욕을 구했 고, 이제는 미국의 후원자가 된 자 네 말이야.”
“ 흐음.”
“루시의 속내는 대충 짐작이 가네. 자기 딸이 금의환향하니까 그 권세 를 업고 자기가 미합중국 정부의 대 리인이라고 포장할 속셈이겠지. 애 초에 전직 시의원이었으니 그녀가 권위를 가진다고 해도 의심할 사람 은 없을 테고.” 그리고 그런 행동이야말로 제일 위 험하다.
그녀의 선동에 미합중국 정부라는 근거가 붙으면 끝이다.
그 순간 다시금 뉴욕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자네가 날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알겠네. 어차피 자네 입장에선 나나 루시나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인 개새끼겠지.”
“글쎄요. 어떨까요?”
“하지만 그 개새끼들 사이에도 급 이 있다는 건 이해해 주게. 이보게.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난 군문에서 반평생 이상을 보냈네. 권위를 존중 할 줄 알고 권위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왔지. 하지만 루시, 그 년은 아 냐.”
그녀는 자기가 권위가 되지 못하면 견디질 못한다.
권위에 복종하는 게 아닌, 권위를 휘두르고 싶어 하는 부류다.
그런 여자에게 권위를 쥐여줘선 안 된다.
그녀는 권위를 위해서라면 제 새끼 조차 팔아먹는 정치중독자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네.”
“루시를 축출해 주길 바라시는 거 군요.” “뭐 대놓고 쫓아내라거나 그런 말 은 안 하네. 단지 그녀를 지지하지 만 않으면 돼. 차라리 자네랑 같이 온 그 그레이엄 대령을 내세우게나. 나 또한 현역 군 장교라면 얼마든 지……
“근데 제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 요?”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기껏 구한 뉴욕이 망가지는 걸 두고 보겠다고?
긴장한 저스틴의 얼굴 위로 무참하 게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그러지는 그를 힐끔 살핀 민수가 함교 창문을 바라봤다.
“아마 제가 나서서 그럴 것까지는 없을 겁니다.”
“왜지?”
“그 따님도 많이 변했거든요.”
함교 창문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지상의 전경.
루시 옆에 있는 엘레나의 눈을 들 여다보며 민수가 슬쩍 웃었다.
“그럼요. 정말 많이 변했죠.”
파란 눈동자가 굳어 있었다. 미동도 없이, 싸늘하고 차분하게.
* * *
“미스터 킴. 오늘 밤 내로 통신망 복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잘됐네요. 아, 함 내 대기 병력은 됐으니까 전부 지상으로 내려주세 요.”
“……지상으로요?” 그날 저녁. 보고를 위해 올라온 대릴이 민수의 의아한 지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며칠 내로 일이 터질 겁니 다.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어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입니 까?”
“아직은요. 아무튼, 좀 마음의 준비 가 필요하실 겁니다. 자세한 건 엘 레나의 연락을 기다리세요.”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물론 군인답게 자질구레한 의문 따 윈 가지지 않았다.
미국의 후원자에게도 그 나름의 목 표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공연히 참견해서 좋을 거 없는 것 이다.
그렇게 납득한 대릴이 물러난 후, 민수가 항한 곳은 함체 하부에 위치 한 격납고였다.
“시원하네.”
활짝 열린 격납고 문 너머로 신선 한 바람이 불어왔다.
1년 가까이 매연과 접하지 않은 깨끗한 바람.
발밑에는 진지와 사령부의 전등 불 빛.
주저앉아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민 수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처음 왔을 때는 나브랑 같이 자전 거 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공중전함에 병사들 까지 끌고 왔다.
격세지감이라는 데에 예시가 필요 하다면 나를 갖다 붙여야 하지 않을 까.
무언가가 완성되고 복구되는 감각 을 지켜보는 건 그리 나쁘지 않았 다.
그렇게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발밑 의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뭘 그렇게 숨어서 힐끗거리고 그 래?”
“뭐 훔쳐 먹었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르자, 격납 고의 그림자에서 슬그머니 그림자가 빠져나왔다.
칙칙한 검은 장포에 머뭇거리는 얼 굴.
망설임 가득한 은비의 표정을 그제 야 돌아보며 민수가 입을 열었다.
“와서 바깥 구경이나 하자. 보고
있으니까 나름 재밌더라.”
“……으 ”
O •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은비가 민수 옆에 쪼그려 앉았다.
보관함에서 커피 한 캔을 꺼내 내 밀자,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윽고 조 용히 그걸 받아들었다.
“그나저나 용케도 나올 생각을 했 네. 너 요새 통 조용해서 걱정했는 데.”
“……그냥 좀 그래서.”
조그맣게 대답한 은비가 동그랗게 만 무릎을 꿇어안았다.
여기 올 때까진 나름 각오를 다졌 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옆에 앉고 보니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렸다.
‘그래도 마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 어.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출발하기 전, 갈중혁과 이 문제로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다.
비단 무위만 고강할 뿐인 스승님이 아니었다.
오래 살아온 인생 선배답게, 그는 자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늘어놨다.
‘무인도 사람이다. 희로애락을 가 지고 감정이 널뛰는 사람이지. 감정 이 없는 무학이란 그저 학습된 기예 를 신체로 재현할 뿐인 한낱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본교의 무학도 갈망을 기 원으로 하지 않느냐? 갈망을 가지기 위해선 감정을 가져야 하는 법. 그 렇다. 무인 또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이이기에 협(依)이라는 개념이 생겨 난 것이지.’
출발 전날. 은은한 바람 부는 건물 옥상에서.
나를 옆에 두고 내 스승님은 뭐라 고 하셨더라.
‘하지만 모든 감정을 충족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이룰 수 없는 마음 이 있고, 채울 수 없는 갈망이 있 지. 그렇기에 감정은 무인을 무인답 게 하는 것이나, 동시에 무인을 누 구보다 무인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 려야 하겠습니까?’
‘다스려? 마치 소림의 땡중들이나 할 법한 말이로구나. 제자야. 감정을 다스리는 건 수행자의 것이지 무인 의 것이 아니란다.’ 스스로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이 못난 제자에게.
상냥하지만 엄한 스승님께선 뭐라 말씀하셨더라.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기에 너처럼 고민하는 이가 생겨나는 법이지. 그 리고 말했다시피 그런 건 소림의 영 역이다. 마교의 하늘인 네가 땡중들 처럼 고행이라도 할 셈이냐?’
‘다스리지도 못하는데 고행조차 하 지 말라면 제가 어찌해야겠습니까? 칼 들고 예진 언니한테 쳐들어가기 라도 할까요?’
‘쯧쯧. 마교의 하늘이 어찌 이리
마음 약하단 말이더냐.’
‘ 네?’ ‘제자야. 그 감정을 왜 품고 있으 려 하느냐?’
그래, 그리 말씀하셨지.
나의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차라리 부딪쳐서 박살이 나던 지 하라고.”
“응‘?”
“ 오빠.”
진지하게 표정을 바꾼 은비가 냉큼 몸을 돌렸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움찔 놀란 민 수가 고개를 뒤로 뺐다.
“예진 언니 말이야.”
“예진이가 왜‘?”
“가장 먼저 만났다고 했지? 파출소 라고 했나?”
“그랬지. 그때부터 이래저래 주고 받았어.”
왜 그때, 그 자리에 나는 없었을까.
터럭도 없는 원망 따윈 내다 버리 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때부터 좋아했던 거야?”
“그건 아닌데, 그간 서로 합 맞추 며 고생한 게 있다 보니까.”
“만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야? 뭔가 극적인 계기라던가 그런 건 없 었고?”
“은비야, 잠깐만.”
“나, 나도 오빠랑 좀 일찍 만난 편 인데. 평소에 나는 어떻게 생각했 어? 왜 있잖아? 조금 보다보면 미 묘한 생각 든다거나 뭐 그런 거 하 나라도 있……
“서 은비.”
순간 굳어진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허둥지둥 고개를 뒤로 빼는 은비를 바라보며 민수가 한숨을 뱉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 오빠.”
“혹시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거니까, 어쩌면 너랑 좋게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결국 만약의 일일 뿐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결국 가정으로 만 남을 뿐이다.
가정에만 매달려 있으면 사람은 나 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결정에 후회 없어. 예진이 좋은 사람이고, 내가
사람 잘못 본 건 아니라고 생각해.”
“미안하다. 잔인한 줄은 알지만, 더 이상 빼면 나도 너 갖고 노는 게 될 것 같아.”
변명의 여지없는, 딱 자른 거절.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할 말을 잃은 은비가 어물어물 고 개를 숙였다.
‘끝났다.’
하긴 이렇게 될 것 같았다.
민수는 자기가 한 번 정한 거에 대 해선 요만큼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끝을 낸다고 하지 만, 그 끝이 좋을 리는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단지 이건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 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끝난 걸까.
그냥 이렇게 딱 잘라 끝낼 수 있 는 걸까.
이 오빠야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난 정말 그렇게 끝을 내버릴 수 있어?
‘꼭 이렇게 끝내야만 하는 걸까?’
결국 거절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 민 건지.
아니면 생각보다 내가 끈질긴 여자 였던 건지.
아무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감정 들이 무럭무럭 치밀어올랐다.
한층 상기된 얼굴로 은비가 민수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그건 오빠 마음이지.”
“뭐, 뭐?”
“난 그런 거 몰라. 알겠어? 오빠가 뭐라 하건 난……
쿠르르르릉!
그 때, 조용했던 밤을 찢으며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광등을 밝힌 채 센트럴 파크를 빠져나가는 전차들의 행렬.
소음에 깜짝 놀란 은비가 잽싸게 몸을 일으키는 가운데.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민수 가 고개를 저었다.
“시작됐군.”
“시작돼?”
“왕위계승이.”
“뛰어! 뛰어!”
“전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저 항할 경우 발포하겠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건물들을 에워싸는 전차들.
총기과 마도기갑으로 무장한 병사 들이 일제히 문을 박차며 밀려들었 다.
“다, 당신들 뭐야! 이게 뭐 하는 짓인데?!”
“상부의 지시입니다. 현재 이 건물 이 반정부 세력의 지휘부로 이용되 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뭐, 뭐야?!”
“반정부 세력? 그럼 우리가 반란군 이라도 된다는 거냐?!”
“그건 모릅니다! 아무튼 저항하지 마십시오! 이쪽의 통제만 따라주시 면 발포하지 않겠습니다!”
곳곳에서 제압된 플레이어들이 결 박된 채 쓰러지고.
산탄총을 앞세운 병사들이 파죽지 세로 건물 상층을 향해 달려갔다.
10층짜리 건물 최상층까지 다다르 는 건 실로 순식간이었다.
문짝 걸쇠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우 렁찬 산탄총의 총성.
기다렸다는 듯 밀어닥치는 병사들 뒤에서 대릴이 뒷짐을 진 채 걸어들 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요한슨 전 의원 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10층에 위치한 너른 회의실 안.
벌벌 떠는 플레이어들의 중앙에서 루시가 표독스럽게 눈을 치떴다.
“우리 플레이어들에게 들었습니다. 대령. 반정부 세력이라고요? 시의원 인 제가 미합중국 정부에 반기를 들 었다는 겁니까?”
“상부의 지시입니다. 저는 명령받 은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반정부는 무슨 얼어 죽을. 보나 마나 그 깜둥이 노 인네의 수작질이겠지!”
첩보에 의하면 낮에 저스틴이 잠시 그 황금 전함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분명 안에서 김민수와 무언가 정치 적인 거래를 했겠지.
평소부터 이쪽을 눈엣가시로 여기 던 노인네다.
반정부 세력 같은 어처구니없는 혐 의를 뒤집어씌울 사람은 그밖에 없 다.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루시가 날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엘레나 불러오E 엘레나랑 얘 기를 해야겠어.”
“유감입니다.”
“유감? 감히 네놈이 유감 따위를 말해? 닥치고 내 딸 불러오라고! 엘 레나가 이걸 알면 가만있을 것 같……?!” “이 지시가 누구한테서 내려온 것 같습니까?”
그렇게 멋대로 말을 끊은 대릴이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뻥 뚫린 복도 너머에서 천천히 다 가오는 금발의 실루엣.
병사들의 칼 같은 경례를 지나치며 다가온 그 모습에 루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어••••••?”
“엄마는 변한 게 없네.”
화려한 금발. 감정 없는 파란 눈동 자.
굳어버린 입가. 유감 따윈 한 톨도
없는 표정.
경악해서 주춤거리는 루시를 바라 보며 그녀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이럴 때만 자기 딸이지.”
“에, 엘레나……?”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
엘레나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얼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