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2
리안의 눈이 부릅떠지고, 연결된 사슬을 통해 막대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야아아아!”
용암처럼 이글거리던 벽이 통째로 증발하며 지하의 풍경을 완전히 날렸다.
‘엄청난 정화 능력.’
마그리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된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 진성음의 카르마를 전부 정화시킬 수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심령권이 열린다.’
신인류 (3)
***
밀실.
측근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페르미는 앵무 용병단이 채굴한 상자를 열었다.
채 흙이 제거되지 않은 메모지들과 쓰임을 알 수 없는 금속 쪼가리가 담겨 있었다.
“…….”
과거에서 온 미래였다.
‘메모리 칩은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군.’
오랜 세월 묻혀 있었기도 하거니와, 하드웨어 자체도 심각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페르미는 칩을 내려 두었다.
‘조심, 조심.’
완전 복구는 어렵지만 단어 하나라도 알 수 있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핀셋으로 메모지를 집은 페르미는 책상 위의 전등에 살며시 비추었다.
누군가의 일기.
“어디 보자.”
혹은 죽음을 앞두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휘갈긴 마지막 기록일지도 모른다.
“신인류?”
그 단어를 머릿속에 담아 둔 페르미는 두 번 접힌 종이를 핀셋으로 펼쳤다.
공문서였고, 파기된 듯 절반이 찢어진 상태였으며, 동방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하여튼 정치인들이란…….”
세계가 멸망해도 타국에 정보를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투철한 사명감.
그는 유연한 사고로 글자를 해독했다.
‘두 번째 짐승. 짐승의 숫자 666. 종말에 도달하는 3단계 필터. 아르고네스의 폭주 가능성.’
문서를 내려놓은 페르미는 턱을 괴었다.
‘역시 종말은 피할 수 없다. 특이점에 도달한 인류의 사고는 바깥 세계를 외면하지 못해.’
그 특이점은 3단계 필터로 구분된다.
‘1단계는 바깥 세계에 대한 인식. 2단계는 바깥 세계의 증거물과의 접촉. 그리고 3단계가…… 광자계 이탈.’
페르미가 분석하기로 현재 인류는 이제 막 2단계 필터를 지나는 중이었다.
‘그 시작이 바로 신인류.’
자세한 정보는 더 많은 채굴을 해야 알겠지만 바깥 세계와 연관이 있는 건 분명했다.
‘3단계에 도달하면 세계는 어떻게든 끝난다. 하지만 어떻게든이라는 말은 좀…….’
그의 생각에 종말이란 인류가 울티마로 통합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사건이든 극단으로 치닫기란 아주 어려운 법이지. 게다가…….’
거핀은 이미 광자계를 이탈하지 않았던가?
“흠.”
페르미는 핀셋을 톡톡 내리쳤다.
“광자계를 이탈했다고 해서 꼭 바깥 세계로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그렇게라도 사유의 빈틈을 메우고 싶었지만.
“혹은…… 바깥 세계라는 개념이 거핀이나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경계할 수는 없었다.
‘완벽한 종말이라고? 인과를 뛰어넘는 강제성? 이 세계가 그런 걸 허용하는 시스템인가?’
실제로 나네가 세계를 닫으려고 했을 때도 시로네라는 존재가 방어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룰이다. 극단에는 그에 대응하는 극단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계야.’
따라서 종말은 세계를 초월하는 어떤 것.
‘상상할 수 없다. 뇌의 기능을 떠나서, 우리의 뇌로 처리할 수 없는 종류일 것이기에.’
과연 어떤 형태일까?
“수의 끝.”
상상할 수 없는 형태가 무엇이든 결국에는 숫자로 귀결될 터였다.
탁 하고 핀셋이 책상에 고정되고, 페르미의 시선이 메모지 중의 하나에 꽂혔다.
‘두 번째 짐승.’
첫 번째 짐승을 영접하기 위해 먼저 태어나 세계를 파멸시키는 존재.
‘어디지?’
시로네는 그곳에 있을 터.
핀셋으로 공문서를 든 페르미는 찢어진 부위에 찍힌 인장을 유심히 살폈다.
“북전.”
***
북전의 성문을 무사히 통과한 보르보르와 탄주라는 양조장으로 들어갔다.
양쪽 허리에 검을 찬 백면서생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군요.”
탄주라의 위성 대호였다.
“미카는?”
내실의 천막이 걷히면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항아리를 들고 나왔다.
별들을 확인한 그가 말했다.
“주민 중 상당수가 신인류로 교체된 상태입니다. 이 양조장 주인도 신인류더군요.”
보르보르의 위성 미카는 전자기 생물체로, 타인의 육체에 기생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정이랄 것이 없기에 보르보르도 미카를 대할 때는 무심했다.
“메커니즘은?”
“정신 방사를 통해 주위의 생물체를 변이시키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오대성이 사용하는 기술과 유사합니다. 탁한 마음이 주위의 생물체를 괴물로 바꾸는 식이죠.”
“상당히 위험하군. 마계가 열린 지역만 폐쇄하면 된다는 생각이 안일했어.”
“돌연변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게다가 이번 놈은 마음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원하는 대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탄주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물체 변이를 일으키는 능력이라. 심각하군. 북전에서 제거하지 못하면 대륙이 엎어지겠어.”
보르보르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 어디 있지, 신인류의 수장?”
대호가 말했다.
“미카 씨의 능력으로 도시의 거점을 탐색했으나 위치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북전 태수 황각의 곁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혹은 황각 그 자체이거나.”
“그렇겠네. 그럼 태수를 만나서 확인해 보지.”
미카가 물었다.
“육체는 어떻게 할까요?”
“죽여.”
지시가 떨어지는 즉시 미카가 수도를 들더니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잠시 후, 시체에서 빠져나온 전기체가 전하를 타고 보르보르에게 스며들었다.
-뇌파를 장악했습니다. 제가 생각할까요?
“아니,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처리해 줘. 특이한 변이체가 느껴지면 보고해.”
-알겠습니다.
양조장을 나선 2명의 별과 2명의 위성은 곧장 내성 문으로 향했다.
여태까지 말이 없던 미카가 보르보르의 뇌에 강력한 신호를 전달했다.
-인간이 아닙니다.
겉모습은 사람과 똑같지만 병사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겨누어진 창을 보며 탄주라가 말했다.
“태수 황각을 만나러 왔소. 고이 들여보내 준다면 우리도 대화를 할 의향이 있소만.”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러서십시오.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미카가 여태까지 기생했던 생물체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위압감이었다.
보르보르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변이의 강도가 세지는 거라면…… 신인류의 수장은 성에 있다.’
정신 방사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상아탑의 별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
“껄껄! 인간도 아닌 것들이 위세가 대단하군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보르보르는 결정을 내렸다.
“강행 돌파.”
동시에 병사들의 피부가 찢어지더니 인간과 메뚜기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 드러났다.
“키에에에!”
벌어진 턱에서 들리는 괴성에 탄주라가 흥분한 눈빛으로 침을 삼켰다.
“흥미롭군.”
“위!”
대호가 소리치는 순간 성벽 위에서 하늘을 가득 메우는 메뚜기 떼가 날아들었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들렸다.
“음. 음.”
태수 황각의 시체 앞에서 팔을 뜯어 먹는 자는 17세의 소녀였다.
어둠을 모를 것 같은 순박한 인상이었으나 눈동자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맛있다.”
쩍 하고 팔근육을 뜯자 뼈가 드러났다.
“피리 님.”
부모가 준 이름은 아니다.
신인류로 진화한 그녀는 자신에게 이치에서 벗어났다는 뜻의 이름을 부여했다.
“바드벨브, 이런 거 더 없어? 강한 인간의 고기 말이야. 계속 먹고 싶은데.”
피리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신장 2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메뚜기 인간이 서 있었다.
갑각 안에 감추어진 날개가 펄럭거리고 전갈의 꼬리가 정수리보다 높게 일어섰다.
“섭식을 즐기실 때가 아닙니다. 성문 밖에 상당히 강력한 자들이 왔습니다.”
피리의 얼굴에 기쁨이 넘쳤다.
“정말? 맛있는 고기 더 먹을 수 있겠네? 뭐 해, 빨리 가서 잡아 오지 않고?”
“……너무 오래 계시는 거 아닙니까? 슬슬 이 도시도 궤멸시키고 떠나야 합니다.”
“하하! 괜찮아. 우리는 강해. 너도 알잖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인류 전체와 싸워 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능력, 그런 지성.
‘신이 되어 버린 것인가, 우리는……?’
피리가 손을 내밀었다.
“더. 고기.”
메뚜기의 눈이 그것을 빤히 지켜보더니 날개를 펼치며 창문으로 돌아섰다.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내성 문 앞을 가득 메운 메뚜기 인간이 탄주라를 포위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키익! 키익!”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탄주라에 의해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분란을 조장한 죄, 징역 600년! 무고한 주민의 정신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죄, 징역 987년!”
판결이 내려지는 즉시 율법적인 구속력이 메뚜기 인간들을 옭아매었다.
“고로 모든 죄목을 종합하여…….”
탄주라가 입가를 찢었다.
“사형.”
동시에 대호가 바람처럼 날아들어 양손에 쥐인 쌍검을 좌우로 휘둘렀다.
‘작두.’
마치 가위로 풍경을 베고 지나가는 것처럼 메뚜기의 얼굴들이 뭉텅하게 썰렸다.
“껄껄! 오늘도 일벌백계했구먼.”
지렛대의 율법을 이용하는 작두의 절삭력은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다.
탄주라는 흐뭇하게 수염을 만졌다.
‘무한히 긴 장대와 고정대만 있으면 행성을 옮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
또한 그렇기에 ‘수감’ 상태에서도 물리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르보르가 다가왔다.
“방심하지 마세요. 이 정도로 청룡 산맥의 북쪽 관문이 궤멸되지는 않습니다.”
대호가 검을 갈무리했다.
“이들은 북전의 변이체일 겁니다. 청룡 산맥의 변이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걸까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성문이 열렸다.
“…….”
사람 같지 않은 존재가 마치 사람처럼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았을 때.
-도망쳐야 합니다.
미카가 경고를 보냈으나, 보르보르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그런 확신이 들 정도로 기괴한 느낌이 메뚜기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강하다? 그래서 이길 수 없다? 아니, 이건 그런 종류의 기질이 아니야.’
모르겠다.
우주를 전부 돌아본 것도 아님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뭐가 문제지? 형태의 아우라? 진화의 기괴함? 아니, 전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야.’
유일하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