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5
“우리를 공격한 이유가 뭐야?”
“무슨 헛소리야? 큭!”
개판5분전이 상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시로네가 다시 발로 짓눌렀다.
“데스공쥬에게 사과해.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나쁜 짓이야.”
‘이건 또 뭐야?’
개판5분전은 황당했다.
‘콘셉트인가? 아니, 지금이라면 내가 이길 수 있는데? 어차피 내구력은 내가 훨씬 높잖아?’
입가를 씰룩거린 그가 항복을 표현하듯 두 팔을 벌리며 능청을 떨었다.
“알았어. 가서 사과할게. 좀 봐주라. 다음부터는 얼씬도 안 할 테니까.”
데스공쥬가 소리쳤다.
“믿지 마! 저 녀석 사기 치는 거야!”
시로네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 개판5분전이 총구를 위로 겨누었다.
“당연하지, 멍청아.”
에너지 탄을 갈기려는 순간, 그는 싸늘하게 식은 시로네의 눈빛을 보았다.
‘어?’
살기.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빠르게 스쳤고, 시로네의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관통.”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잠, 잠깐만……!”
탕!
시로네의 어깨가 한 번 들썩이고, 에너지 탄이 개판5분전의 머리를 박살 냈다.
“케겍…… 케게겍!”
헤드샷을 맞은 기체가 간질처럼 들썩이더니 기계음을 내며 시동을 멈췄다.
“야, 야훼2.”
달려오던 파괴마신707 일행이 걸음을 멈추었다.
‘분위기가 뭐 저래?’
기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끼어들 수 없었다.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개판5분전의 내구력은 평균 500. 야훼2의 화기로 관통 판정을 받으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리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질문을 던진 거야. 애초부터 사람이니 뭐니,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 철저하게 계산적인 성격이지.”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야훼2가 어떤 성향인지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데스공쥬가 말했다.
“너무 슬퍼 보여.”
누구일까?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시뮬레이션 안에서까지 슬픔을 느끼는 것일까?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겼다. 다들 괜찮아?”
무거운 분위기가 풀리자 파괴마신707 일행이 비로소 걸음을 옮겼다.
“대단했어. 에너지 탄까지 피할 줄이야. 너, 혹시 전투의 천재 아니냐?”
“운이 좋았어. 개판5분전이 영리했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되었을 거야.”
“무슨 소리야? 완벽한 승리였는데.”
시로네는 전투를 복기했다.
“나라면 후퇴하며 싸웠을 거야. 구형 관절은 뒤를 주시하면서 전방으로 전력 질주가 가능하잖아. 출력이 높은 장점을 살리는 거지. 아마 급한 상황이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일단 쓰러뜨린 거고.”
판단력의 차이였다.
“적을 깔보는 마음, 설마 내가 지겠냐는 방심. 이런 것들도 전투에 큰 영향을 미쳐. 결국 레벨만 높지 딱히 강한 상대는 아니었던 거지.”
“…….”
파괴마신707 일행은 랭커를 떠올렸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전투의 문외한들도 모든 콘텐츠를 즐기게끔 해 준다. 그게 큰 장점이지만…….’
그 정도로 랭커가 될 수는 없다.
시스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을 이해하고 철저하게 이용하는 자들.
에너지 탄을 회피하는 능력은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배우는 게 엄청 빨라. 이제는 똑같은 조건으로 한다고 해도 우리가 질 거야.’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하긴 욜가의 아들의 친구라고 하니까.’
그때 시로네가 땅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뭔가 있는데?”
“전리품!”
데스공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적대 행위 판정이 뜬 상태에서 사망하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어. 네가 습득하기 전에는 아무도 볼 수 없거든. 뭐야? 뭐가 떨어졌어?”
시로네는 바닥에 떨어진 파츠를 습득했다.
“이거? 아까 그 녀석이 사용한 오른팔인데. 마론사, 볼트 건-Z204 모델이야.”
파괴마신707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 녀석, 제일 비싼 걸 떨어뜨렸네. 꼴좋다. 지금쯤 속이 부글부글할 거야.”
“복구할 수 없는 거야? 그럼 데스공쥬의 왼팔도?”
“응. 사망 시 전리품이나 내구력이 0이 된 파츠는 영구 손실에 해당되거든. 괜찮아. 내 왼팔은 단품으로도 파니까 상점에서 구입하면 돼.”
“흠, 그럼 이건 어떡하지? 오른팔이라 데스공쥬가 쓸 수도 없잖아. 팔아서 은하로 바꿀까?”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그것도 가능하지만, 권장하지는 않아. 상점에 팔 경우 수수료가 세거든. 그렇다고 사용자에게 팔자니 딱히 인기 있는 모델은 아니라서. 어차피 20레벨에 쓸 수 있는 양산형 제품은 한계가 있어.”
파괴마신707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네가 써. 그게 제일 남는 거야. 아토그램에 가서 엔지니어를 찾자. 어차피 탄도 보충해야 하니까.”
“응. 그런데 엔지니어?”
“상점의 물건은 즉시 교체가 가능하지만 사용자가 개발한 파츠나 전리품은 엔지니어가 직접 장착해야 돼. 대형 길드는 전담 엔지니어를 고용할 정도야.”
“어차피 경험할 일이라는 게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지. 상점에서 파는 파츠도 좋지만 전설 템이나 장인 템은 사냥이나 듀얼을 통해 얻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오른팔 정도는 기괴하지도 않아.”
최강코드명이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안구 교체가 제일 짜증 나지.”
“동의.”
아토그램에 돌아온 일행은 마론 상점에서 데스공쥬의 왼팔과 에너지 탄을 구입했다.
그다음으로 엔지니어를 찾았다.
“파츠 상점에도 엔지니어가 있지만, 가격이 비싸. 사용자에게 의뢰하는 게 이득이지.”
“응. 아끼자.”
은하가 궁핍하지는 않아도 기본부터 익히는 게 시로네의 스타일이었다.
아토그램에서 유명한 엔지니어인 ‘헤르메스’의 가게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응?”
개판5분전이 동료들과 함께 새로 구입한 볼트 건을 장착하고 있었다.
시로네는 긴장했으나 디스트로이에서처럼 과격한 태도는 나오지 않았다.
파괴마신707이 웃음살을 볼록였다.
“파츠 하나 장만하셨나 봐요? 결국 다시 고른 것도 볼트 건이냐? 좋아 보인다?”
“너 이 자식…… 이대로 끝날 것 같아?”
시로네는 초보자 팁을 검색했다.
도시 안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지 않고서는 전투가 불가능했다.
‘흐음, 그런 거로군.’
개판5분전의 동료들이 턱짓을 했다.
“야, 저 녀석들이냐?”
“그래. 얼굴 똑똑히 기억해 둬. 너희들, 동국 골라라. 제대로 한판 붙게.”
시로네는 그들의 코드명을 확인했다.
‘개판1분전. 개판2분전…….’
둥그런 몸체에 고릴라처럼 굵고 긴 팔을 가진 기체가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개판1분전이었다.
“야훼2, 전장에서 나 마주치지 마라. 걸리는 족족 박살을 내 버릴 테니까.”
‘아마라 일체형. 70레벨 넘네.’
일행이 긴장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개판1분전이 문으로 걸어 나갔다.
“가자.”
수리를 끝낸 개판5분전이 밖으로 나가고 시로네는 오른팔을 교체했다.
엔지니어는 출력이 따라갈지 모르겠지만 한 부위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 했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덧 어둑해졌다.
“슬슬 자유 광장으로 갈까? 개판 놈들이 떼로 덤벼드는 것도 짜증 나니까.”
파괴마신707을 따라 도착한 자유 광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고, 길드원을 스카우트하는 사람도 보였다.
“언제쯤 오는 거야?”
증강현실로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리는 그때 광장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우와! 랭커다!”
시로네 일행도 절로 눈이 돌아갔다.
수많은 인파를 몰고 오는 것은 신장 160센티미터의 아담한 여성이었다.
창백한 얼굴, 등을 반쯤 덮은 연보랏빛 생머리, 눈썹 라인에서 수평으로 자른 앞머리.
코드명을 볼 필요도 없었다.
“이지스다.”
사용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듀얼 랭킹에서 전체 8위를 지키는 실력자였다.
“이지스가 왜 아토그램에 왔지? 금화륜 멤버들은 나스카시에서 놀잖아.”
“그러게. 내가 모르는 이벤트라도 있나?”
이지스는 주위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시로네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파괴마신707이 마음으로 침을 삼켰다.
‘기체 진짜 쌈빡하다. 저게 다 얼마짜리야? 우리는 평생해도 못 맞추겠네.’
마침내 걸음을 멈춘 이지스는 시로네의 코드명을 신중하게 확인했다.
“야훼2…….”
“저기, 누구시죠?”
두 팔을 몸에 붙인 이지스가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유 광장이 거대한 정적에 휩싸였다.
유일한 기회 (1)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은 어느 순간 시끄러운 웅성거림으로 변했다.
“뭐, 뭐야? 이지스가 왜?”
하이 기어에서 사용자가 실제로 저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설령 랭커에게 위협을 당한다고 해도 코드명을 세탁하고 말지 자존심까지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야훼2가 누구야? 너는 들어 봤어?”
“아니, 처음인데. 파츠도 엉망이잖아. 마론사 기본 패키지에 볼트 건이라니…….”
고철이나 주워다 팔 것 같은 외형에 사람들이 넋을 잃은 가운데 시로네가 물었다.
“그 녀석이 직접 올 줄 알았는데요.”
페르미를 사장님으로 호칭했을 때부터 이지스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현실의 금화륜이구나.’
이지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야훼2 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조용한 편이 더 좋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시로네는 이해했다.
“좋아요. 지금 출발하죠.”
이지스는 군대식으로 돌아서더니 광장 북쪽의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시로네는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으나 파괴마신707 일행은 달랐다.
‘으, 이렇게 관심 받는 건 처음인데. 그나저나 야훼2, 이 녀석 대체 뭐지?’
처음부터 평범한 사용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하이 기어 안에서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사장님은 또 뭐고? 어쩌면 우리는…….’
가상 세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거겠지?’
파괴마신707이 고개를 돌리자 친구들의 표정에서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아우우. 아으…….”
신음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도시 북쪽의 슬럼가 골목이었다.
약에 취한 정키들이 제집처럼 바닥을 구르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저들은?”
“약물 프로그램에 중독된 자들입니다. 하이 기어는 기본적으로 배틀 시뮬레이션이지만, 언더 코더에 있는 만큼 응용의 범위는 크죠. 또한 플로어 코더라 추격이 어렵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사장님도 이곳에서 임상 실험을 하셨죠.”
천사의 눈물, 엔젤이었다.
“키야아아아!”
벽에 쓰러진 민머리 커플이 시로네를 향해 혀를 길게 내밀며 소리를 질렀다.
7개의 기계식 안구에서 전기가 흘렀다.
‘여기서는 약에 대한 반응을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 생체 실험보다 효과적이야.’
페르미가 하이 기어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곧 네온이 반쯤 꺼진 허름한 모텔이 보였고, 이지스는 곧장 307호로 올라갔다.
“사장님, 모셔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앉아 있는 섬뜩한 인상의 남자가 보였다.
“페르미?”
사용자 코드명, 욜가의 아들.
붉은 머리를 반삭하고 검은 염료로 괴물의 얼굴처럼 보이는 타투를 새겼다.
눈은 동공이 없이 하얗고, 악마 숭배자들이나 입을 법한 가죽 털 코트를 입고 있었다.
“……무슨 악당 대장이냐?”
현실에서 페르미는 말끔한 사업가를 연기하지만, 내면의 자아는 다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