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10
“이 서류 좀 봐.”
리리아가 서류를 훑어보더니 바로 내려놓았다.
“몰라, 나는 정보는.”
“그래서 다 설명해 놨어. 내가 제시한 몇 가지 패턴 중에 어느 쪽에 속하는지 분류해 줘.”
그녀는 다시 서류를 유심히 살폈고 비로소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네. 정보가 변한 것은 알겠는데, 왜 변했는지는 모르겠다는 거지?”
“바로 그거야.”
“하지만 이거라면 적임자가 있잖아. 시로네 씨. 정보와 율법, 둘 다 통달하신 분인데.”
단테가 담배를 물었다.
“그렇기는 한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 믿는데,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대충 뭔지 알겠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왕국을 위해 싸울 수는 없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인류의 평화 때문이야.”
“괜찮아, 그것만 분류해 주면.”
리리아는 암호를 해독할 수 없기에 오히려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었다.
갈등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 이게 맞아. 시로네에게 맡겼다가는 울티마로 전부 해독해 버릴 테니까.’
적은 아니지만 추구하는 바는 달랐다.
“알았어. 해 볼게.”
리리아는 펜을 꺼내 들고 서류를 넘겼다.
“흐음. 이건 길조고, 이건 복이 화로 변한 경우네. 이 구간에서는 대길이 이어지고…….”
단테가 분석한 정보가 완벽하다면, 리리아의 말은 틀리지 않을 터였다.
‘날씨 예측이랑 비슷한 거지.’
단테는 담배를 피우는 척하며 그녀가 분석하는 서류의 암호를 해독했다.
‘그런 거였군.’
비로소 사건에 담긴 의미가 이해되었다.
“이 지점에서 크게 틀어졌네. 마가 끼었다고 하는데, 여기 붉은 선이 말이야.”
빠르게 서류를 넘기던 리리아의 손이 어느 페이지에서 우뚝 멈췄다.
“…….”
한참이나 말이 없자 단테가 담배를 끄고 물었다.
“왜 그래?”
“이거…… 흉살이야. 여태까지 끌고 온 길조들이 전부 말라 버릴 정도의 엄청난 대흉.”
“잠깐 줘 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단테가 서류를 빼앗아 들고 암호를 읽어 나갔다.
‘동맹 코드잖아. 문 왕국에 대한 11개국의 동맹 구도. 이게 왜 좋지 않다는 거지?’
단테가 분석하기에 현재 가장 위험한 국가는 중동의 파라스 왕국이었다.
리리아가 덧붙였다.
“대흉도 그렇지만, 피라미드 건설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첫 번째 율법이야. 맨 밑에 있는 정보. 뭔지는 몰라도 그게 흉을 대흉으로 키우고 있어.”
단테는 말없이 그곳을 확인했다.
‘동맹 코드…….’
카샨.
왕들의 만남을 이렇게 부른다.
“코드 원.”
관리들이 접선하는 방식인 코드 투에서 코드 포하고는 차원이 다른 무게였다.
“만반의 태세를 갖춰라.”
델타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임시 막사의 문을 열고 문룡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문의 왕이시여.”
원탁의 끝에 앉아 있던 우오린이 미소를 지으며 건너편의 자리를 권했다.
문룡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여황께서 친히 나와 주시니 제 면이 서는군요. 용단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좀 놀랐지요, 문 왕국에서 코드 원을 제안할 줄은. 하지만…….”
시녀들이 술을 내왔다.
“그만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답니다. 배포가 크신 분이니까요.”
문룡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잔하시죠.”
카샨은 성전 12개국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지만,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흉살을.
격발 (3)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까지도 우오린과 문룡은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허허, 승마는 건강에도 좋지만 마음의 병이 있을 때도 아주 특효약입니다.”
“문 왕국의 말은 빠르고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카샨에서는 말이 참 귀하답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양국 근위대장은 기 싸움이 한창이었다.
‘밀리면 안 돼.’
코드 원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은 국왕을 제외하고 오직 근위대장뿐.
균형이 기우는 것은 전쟁에서 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팽팽한 분위기였다.
‘보통이 아니네, 저 여자도.’
키도는 문 왕국의 근위대장 령령을 노려보았다.
시체처럼 하얀 얼굴에 유일한 생기는 피처럼 붉은 입술밖에 없었다.
‘적강시라고 했던가?’
키도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 내며, 령령이 귀밑머리를 살며시 넘겼다.
청색의 나팔소매가 내려가자 손목에 새겨진 불길한 붉은 글씨가 드러났다.
‘문 왕국은 강시 기술이 발달했다고 했지. 인간의 몸에 율법을 새기는 작업.’
령령의 몸에 어떤 율법이 새겨졌는지 모르는 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문 왕국에 비풍이라는 명마가 있는데 하루에 천 리를 달리고 화살 비도 무서워하지 않지요. 조만간 종마를 선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우오린은 입을 가리고 활짝 웃었으나 내면의 눈은 뱀처럼 차가웠다.
‘더럽게 끄네. 대체 무슨 일인데?’
카샨은 동맹국이 없다.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설픈 동맹 체제는 훗날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문 왕국에 무슨 카드가 있다는 거야?’
반드시 설득시킬 수 있다는 확신 없이는 코드 원을 발동하지 않았을 터.
기대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시간파.’
파라스 왕국이 율법을 뒤트는 바람에 그녀의 미래시도 현재 무용지물이었다.
“참을성이 대단하시군요.”
기습처럼 말한 문룡이 눈웃음을 지었으나 우오린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호호, 시간 가는 줄 몰랐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밤이 깊었네요.”
문룡이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동맹을 맺읍시다.”
“뭘 가지고 있죠?”
“당신이 원하는 것.”
“그게 뭔데요?”
“글쎄. 재앙?”
“…….”
“충격파? 거대한 공포? 뭐가 됐든, 현재의 정세를 파괴할 수 있는 어떤 것.”
공격적으로 상체를 들이밀고 있던 우오린이 슬그머니 의자로 물러섰다.
술잔을 들고 입술을 적신다는 것은, 문룡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신호였다.
“성전의 왕들에게 살을 날릴 것이오.”
경청! 경청!
우오린의 귀가 쫑긋 세워진 가운데 장장 20분 동안 설명이 이어졌다.
“살은 준비가 끝났소. 날리기만 하면 되지. 다만 이 시점에서 하나 제안하고 싶소. 하비츠.”
문룡이 상체를 내밀었다.
“이면 세계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살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고 들었소. 또한 그렇게 된다면, 성전 11개국의 모든 왕을 암살할 수 있을 터.”
우오린은 손톱 살을 긁어 댔다.
‘또라이 같은 새끼.’
심장이 거칠게 박동하면서 비로소 온몸에 피가 도는 듯한 기분이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올라가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그녀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비츠의 수하인 시옥을 통해 가능하겠죠. 그럼 저는 살을 피할 수 있는 건가요?”
“여황께서 나를 너무 얕보는군. 이미 설명을 들었으니 협박은 의미가 없지. 그럼에도 제안을 했던 것은, 당신이 거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분명 그렇다.
‘세계 지도국은 오직 하나고, 어설픈 동맹은 등 뒤에 적을 두는 형세가 될 수도 있다. 양날의 검. 하지만 문룡의 제안은 매력적이야.’
무려 10개의 국가를 붕괴 직전까지 몰 수 있다면 동맹의 가치는 충분했다.
“……살을 날리는 시기는?”
“오늘 자정이오.”
우오린이 생각하기에도 정답이었다.
‘정보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지. 빠를수록 파괴력은 극대화된다. 단점이라면, 사건의 규모에 비해 변수를 고려할 여유가 없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키도가 우오린을 흘끔거렸다.
‘야야, 이건 좀 아니잖아.’
대략 2시간 후, 세계 최고의 권력자 10명을 동시에 죽인다는 내용이다.
‘너무 급해. 우리 생각 좀 하자.’
우오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틀렸어, 키도. 이건 급하니까 먹히는 거라고.’
테라제의 진정한 강점은 기억 유전이나, 히스토리 서치 같은 게 아니었다.
‘리볼버에 탄환을 딱 한 발만 넣어. 그런 다음 총구를 머리에 대고 있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거든.
‘불필요한 감정은 사라지고, 사고는 차가워지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빨아들이듯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거야.’
물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여섯 번 당기면 한 번은 터진다. 총알이 나가면 거기서 끝나는 거지만 말이야.’
대략 16.6퍼센트.
‘83.4퍼센트의 확률로 살아. 사실 엄청나게 쉬운 도박이야. 하지만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거지.’
하지만 테라제는 다르다.
‘끝없이 당겼다. 거기서 깨닫고, 리볼버를 돌린 다음, 다시 16.6퍼센트의 죽음을 향해…….’
딸깍.
‘키도, 할 수 있겠니? 해야 돼. 성전의 모두가 그런 자들이니까. 16.6퍼센트의 공포를 넘지 못하는 자는, 세계를 삼킬 자격이 없는 거야.’
우오린이 말했다.
“좋아요, 문 왕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하비츠에게 요청해서 살을 증폭시키겠습니다. 단, 전략을 조금 수정하고 싶은데요. 이제 동맹을 맺었으니 의견을 개진할 자격 정도는 있는 것이겠죠?”
“물론이오. 경청하겠소.”
“기존 10개 국가의 수장을 암살하려는 계획은 후폭풍이 클 수 있어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살에 맞지 않은 국가는 의심을 받게 될 테니까요.”
“과연, 나도 생각은 했소. 하지만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는 건 아깝지 않을지.”
“대신 특정 국가를 범인으로 몰아갈 수 있다면 득이 실보다 클 거라 생각하는데요. 적국의 왕을 죽이고, 또한 적국의 왕에게 누명을 씌우는 이중 전략이지요.”
“흐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 정도의 공작이 즉시 가능하겠소? 역술사도 인간의 마음까지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오.”
“저를 알잖아요.”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눈빛을 빤히 들여다보던 문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살을 맞을 국가와 살을 피해 갈 국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해 주시오.”
10분 안에 설계를 끝내야 한다.
키도와 령령까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키는 가운데 우오린의 입술이 열렸다.
“처음 살을 맞을 국가는…….”
판단이 섰다.
“토르미아입니다.”
문 왕국이 빠져나간 임시 막사는 고요했고 촛불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오린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불안하지?”
키도가 물었다.
“솔직히 불안하잖아. 그러게 왜 그런 제안을 승낙한 거야? 카샨의 입지는 아직 괜찮아. 안정적으로 가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고.”
“괜찮은 정도로는 안 돼.”
테라제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키도, 괜찮다는 것은, 실제로는 추락하고 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괜찮은 상태에 만족감을 느끼는 동물이 아니거든.”
“…….”
“쉬지 않고 위를 두드려야 돼. 이대로 가면 자이브가 지도국이 될 거야. 나에게는 판도를 뒤흔들 힘이 필요해. 강력한 위력 말이야.”
“그게 국왕 암살이라는 거야?”
“어차피 문 왕국은 살을 날려. 파국을 피할 수 없다면 재앙을 일으키는 쪽에 서는 게 훨씬 좋다. 정보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
“뭐,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카샨의 여황에게 훈수는 필요 없을 테지만 키도는 전사로서 느끼고 있었다.
‘일단 누군가 죽게 되면…….’
그 뒤에는 칼이 칼을 부르는 피바다의 복수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오린의 눈에 생기가 반짝였다.
“그나저나, 하비츠 이 녀석은 하루 종일 어디에 있기에 안 보이는 거야?”
밤의 정치가 한창인 시각, 구스타프 4기예 전원은 시내로 나왔다.
“여기에 하비츠가 왔다고?”
발칸은 건물의 외벽을 따라 수백 개의 전구가 켜져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제타로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