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19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히든 이벤트를 찾는 수고, 게다가 겪어 봐서 알겠지만 전투를 통해 죽이는 건 무조건 손해야. 방어, 회피, 급소 찌르기 등, 모든 행위에 포인트가 들어가니까.”
에덴이 말했다.
“솔직히 나도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커티스 씨의 말이 이해가 되네.”
“악행…….”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명예로운 악행이라고 했어. 우리가 해치운 사람은 흉악한 도적단인데 말이야.”
어쨌거나 악이라고, 너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이드가 위로했다.
“신경 쓰지 마. 이건 악인이 만든 게임이야. 너도 알잖아, 흔들리는 순간 끝장이라는 거. 카타콤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이런 거라고.”
“그래. 물론 그렇지만…….”
어쩌면 그것 또한 진실일 터였다.
“네이드, 나는 끝까지 이 전략으로 갈 거다.”
“당연하지.”
마음을 추스른 시로네는 바닥에 있는 크라임 다이스를 주워 들었다.
발밑에 투명한 지면이 생기더니 마치 물결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난수 구조.’
하비츠를 만든 코드라면 완벽할 터였다.
-보상 내역. 기본 보상, 크라임 포인트 100포인트. 추가 보상, 크라임 다이스를 3회 굴린 숫자의 크라임 포인트 지급. 특전, 명예로운 악행. 모든 보상의 2배 적용.
이루키가 말했다.
“아직까지는 크라임 다이스의 소유권이 시로네에게 있나 보군.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했으면 100포인트에 최대 36포인트를 더 얻을 수 있네.”
네이드가 혀를 찼다.
“엄청 짜잖아? 살인마가 쪼잔하게 굴었던 이유가 이거였군. 본전 찾기도 힘들겠어.”
에덴이 말했다.
“그래도 커티스 씨의 크라임 다이스는 3개였잖아. 면체도 우리보다 많고. 주사위를 강화할수록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커지는 구조야.”
“얘들아…… 있잖아.”
시로네가 멍한 얼굴로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나, ‘더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여기서는 마법이나 화신술의 제약이 없어. 그러니까…… 할 수 있다는 거야. 양자 붕괴.”
하이 기어에서도 전설 등급 아이템을 얻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이루키가 확인했다.
“정말이네.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는 우리를 제약하는 신호도 오지 못하는 거로군.”
오직 확률의 세계였다.
“일단 해 볼게.”
손바닥 위로 주사위를 굴린 시로네는 현처럼 진동하는 지면을 노려보았다.
“우와…….”
마음의 관철.
양자가 붕괴되면서 대지가 얼어붙었고, 그 위를 2개의 주사위가 날았다.
‘완전히 관측됐다. 즉, 100퍼센트 확률.’
요철을 따라 톡톡 튀던 주사위가 좌우로 흩어진 상태로 구르기를 멈췄다.
6과 6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됐다!”
짜릿한 타격음을 내며 숫자가 12로 합쳐지고, 주사위가 다시 눈앞에 떨어졌다.
-더블입니다. 1회의 기회를 더 얻습니다.
“좋았어.”
두 번째도 6과 6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시스템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흠, 그렇군. 더블로 기회를 얻는 건 1회에 한 번뿐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 총 네 번을 굴릴 수 있는 셈이지. 물론 더블이 뜬다면.”
“문제없어.”
시로네는 눈앞에서 떨어지는 주사위를 낚아채는 즉시 멀리 집어 던졌다.
그렇게 해서 얻은 추가 보상은 72포인트,
기본 보상을 더하면 172포인트였고, 특전 2배 적용으로 총 344포인트를 얻었다.
“아싸! 월척이다!”
시로네 일행이 만세를 외치는 가운데 네이드가 펄쩍펄쩍 뛰었다.
“대박이야! 이 방법이라아아아아……!”
시간이 되돌아오고, 네이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정신을 차렸다.
“응? 어라?”
호크 아이, 민간 조사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니, 아니에요.”
본능적으로 정보 유출을 차단한 네이드와 달리 시로네는 솔직히 말했다.
“보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죄송해요.”
정신계로 빠져든다는 것까지 말해 줄 수 있었으나 조사원은 묻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도움을 받았지. 고맙다.”
“다시 기다릴 건가요, 도적단이 마을을 습격할 때까지?”
조사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멜키두의 룰은 우리도 알고 있어. 흉악범은 훨씬 멀리 도망쳤을 거야. 그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주민을 살해할 수밖에.
“사실 진짜 사람도 아니고, 사망한 주민들은 부활한다는 것까지 확인했어.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냥…… 모르겠어. 우리는 가야 해.”
시로네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래서 어려운 거야.’
극선, 극악과 달리 공과 애가 섣불리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인간이 악하다고?’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전에 우리는 이렇게 자문을 해 보아야 한다.
‘시스템이 잘못된 건 아닌가?’
어쩌면 인간은, 사회는, 우리 스스로를 악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쟁하고, 어쩔 수 없이 남을 끌어내리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나도 악인이 밉다. 미로 씨가 악에 대해 느끼는 부당함, 똑같이 느끼고 있어.’
다만 완벽한 시스템.
‘합리적인 지성 안에서, 질병도 에너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도 인간이 타인을 해치고 기만하고 괴롭힌다면…….’
얼마든지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아니야. 우린 아직 그 정도의 지성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야.’
악하다는 말에 상처받고, 선하다는 말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이 인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왜 모르는 거야? 악보다 선에 가치를 둔다는 것은…….’
아주 먼 훗날.
‘결국 우리가 그곳에 도달한다는 뜻이잖아.’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벌써부터 인간을 정의해서는 안 돼. 미리부터 자포자기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언젠가 악은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인간이니까.’
고작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네. 건투를 빌게요.”
시로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의 이상은 모든 개인에게 망상일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인류가 고통의 폭탄 돌려 막기를 하고 있기에.
‘나네는 옳은 거야.’
현재를 사는 자들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닫아도 그만인 것일 터였다.
민간 조사원들이 절뚝거리며 멀어지자 에덴이 다가와 나직하게 속삭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응.”
선악공애, 모든 게 통합되기 전까지는.
“자, 그럼 출발해 볼까? 한 사람이 연속으로 주사위를 굴릴 수는 없다고 했지. 다음엔 누가 할 거야?”
이루키가 말을 꺼낸 네이드를 가리켰다.
“어차피 시로네가 아니면 인위적인 더블은 만들 수 없어. 누가 굴리든 상관없겠지.”
“아, 그러네. 제길, 날로 먹을 수 있었는데.”
에덴이 위로했다.
“그래도 354포인트가 있어. 정상적으로 플레이 했으면 100포인트 정도가 고작이었을 거야. 스타트치고는 좋다고 할 수 있지. 커티스 씨를 만난 것도 행운이고.”
네이드가 주사위를 건네받았다.
“좋아. 화끈하게 쭉쭉 뻗어 나가 보자고. 주사위의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거든.”
“알았어. 빨리 던지기나 해.”
“간다! 찬란한 우리의 운명이여!”
네이드가 있는 힘껏 주사위를 던지자 길 저편에서 붉은 숫자가 떠올랐다.
1과 2였다.
“이런 씨이이이이이이……!”
빛으로 변한 시로네 일행이 3칸을 전진했다.
미제 사건 (4)
***
이면 세계.
화공사의 본사가 지옥의 심장이라면 시스템제어 지부는 지옥의 두뇌였다.
통칭 컴퍼니, 모든 사건을 시스템적으로 처리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기관이었다.
“한가하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멜키두의 시스템 로그를 바라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직급은 말단 임플로이지만, 그들 또한 에이전트라는 이름의 관리자였다.
“한가하기는 뭐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그냥 안 하는 것뿐이지.”
컴퍼니에 해고는 없지만…….
“쳇, 이 짓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알아?”
퇴사도 없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경비직은 좋겠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야훼가 왔다고 하더군.”
“흐음, 야훼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머리를 다시 가동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뭐! 야훼?”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으나 동료는 그저 무심할 뿐이었다.
“조용히 해. 이 시설이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야훼는 멜키두에도 있다고.”
모니터를 살핀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팀장이 말하기를, 입구에서 수십 명의 에이전트가 당했다고 하더군. 똑같이 치받았다면 컴퍼니 공장 부지는 초토화가 되었을 거야.”
“나 참, 그렇다고 야훼를 사옥으로 들여? 아니, 그 전에, 지부장님 승인은 떨어진 거야?”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인데, 그런 수준이 아니야. 사장님이 직접 지시한 일이니까.”
“레테 님이…….”
“야훼가 온 건 진성음 문제 때문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사장님도 통곡의 골짜기 근처에 계셨던 모양이야. 컴퍼니로 오실 때까지 시간을 끌라는 지시야. 그래서 야훼를 무혈입성시킨 거겠지.”
남자는 미간을 구겼다.
“레테 님이 직접?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이면 세계는 가장 많은 관리자가 근무하는 시스템이야. 전 세계의 흑승과 에이전트를 총동원하면 못 막을 일도 없다고.”
“놈들이 비서실장, 모노라스 님을 소멸시켰어.”
남자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거짓말.”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레테 님이 지옥의 모든 것을 마魔로 환원한다면, 모노라스 님은 지옥의 모든 마魔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먹은 것은 다름 아닌 현실계 최강의 생물체, 이미르.”
동료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한테 당했을 것 같아? 야훼? 아니, 야훼와 함께 다니는 한 인간이야. 게헨나의 사슬을 통제할 수 있지. 그건 좁은 범위에서 레테 님과 똑같다고.”
남자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레테 님이 담판을 지을 때까지 조용히 있어. 쉽게 결착이 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결착이 나지 않으면?”
“그때는 뭐…….”
동료는 다시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그들과 우리,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는 거지.”
“왜 이렇게 늦지?”
공장 부지를 지나 사옥으로 들어간 시로네 일행은 게스트 룸에서 2시간 정도를 대기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손유정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모르타싱어를 만나러 가겠어. 방해하는 놈은 쳐부수면 그만이야.”
시로네가 짧게 내뱉었다.
“손유정.”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가만히 있어. 일을 그르치지 마라.”
“끙. 알겠어요.”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돌린 손유정이 의자에 다시 앉으려고 하더니.
“……라고 할 줄 알아!”
갑자기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문을 향해 오른쪽 여의봉을 쭉 하고 내질렀다.
그때 문이 열렸다.
“너희들은 여기서…….”
시로네에게 익숙한 레테의 얼굴이 보이는 즉시 손유정이 이빨을 드러냈다.
“비켜!”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