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31
“오대성님을 믿어야겠군요.”
루버는 말이 없었다.
를 발동했을 때, 시로네는 바깥 세계의 신호를 받은 게 분명했다.
‘현실의 오대성님은 바깥 세계에 대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신의 관점에 대해서도.’
하지만 무언가를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접촉한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신호를 분석할 수는 없었겠지만, 닫힌 세계가 깨졌을 때의 충격은 남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대한 허무.
‘그 느낌이 1.5층에 반영되어 의지를 잃었다, 이렇게 보는 게 타당하겠지. 반면에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다시 일어나려는 불씨도 싹트고 있을 터.’
열린 세계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시로네는,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계기가 촉발되면 그 불씨는 무섭게 되살아난다. 거대한 허무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아르망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지, 루버는 관리자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타모 조직의 본거지에 도착한 강난이 철문 안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쪽이야!”
아리우스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시로네와 미로는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저, 저게 뭐야?”
상인 연합은 상상을 깨는 타모의 능력을 보고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어이! 이래 가지고 죽이겠어?”
사방으로 연사하는 총알이 관성을 무시하듯 휘어지며 날아가고 있었다.
세인은 깨달았다.
‘미로처럼 능력을 각성한 거야. 저런 놈을 상대로 정상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아.’
그렇다고 가올드를 각성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철문을 향해 돌진했다.
“갑시다!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용감한 자가 선봉에 서자 상인 연합도 철문을 지나 맹공을 퍼부었다.
“그래! 고작 1명이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은 불과 3초 만에 망상으로 끝났다.
“크하하하! 무슨 일 있나?”
몇 발의 탄환이 타모를 명중시켰으나 그는 긴장하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상인 연합을 향해 대놓고 머신 건을 갈기자 순식간에 4명이 쓰러졌다.
“으아아! 괴물이다!”
등을 보이며 달려가 벽 뒤에 숨은 그들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강난이 소리쳤다.
“반격해요! 공격이 통한다고요!”
“아니, 절대로 못 하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타모가 삐딱한 자세로 서서 머신 건을 빙빙 돌렸다.
“백날 좋은 무기가 있어도 말이야, 전쟁이란 인간이 하는 거야. 공포에 진 놈은 죽은 거나 똑같다고.”
강난이 입술을 깨무는 가운데 미로와 시로네가 세인 쪽으로 달려왔다.
“아빠!”
미로를 끌어안은 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전방을 살폈다.
“물러서 있어. 우리가 할게.”
“안 돼! 저 자식 엄청 강하단 말이야. 나랑 시로네 오빠의 도움이 필요해.”
미로의 말이 옳지만, 이대로 싸우다가는 1.5층이 붕괴되고 말 터였다.
“아빠가 하는 말 잘 들어.”
세인이 설명을 하기도 전에 타모가 머신 건을 장전하고 땅을 박찼다.
“슬슬 끝내 볼까!”
사방으로 흩어진 일행이 포위망을 구축했으나 타모는 두려움이 없었다.
한동안 교전이 이어졌다.
탄환이 세인의 무릎을 관통하고, 강난의 오른팔에도 핏물이 튀었다.
“크윽!”
그리고 30분이 지났을 무렵에는 누구 하나 제대로 서 있을 상태가 아니었다.
“히히! 히히히히!”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타모가 승리의 쾌락을 만끽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뭐야? 겨우 이거야? 슬슬 화나려고 하네? 나는 아직 재미도…… 응?”
달의 중심이 열리더니 마치 사람의 눈처럼 생긴 것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
엄청난 압력이 그의 몸을 짓눌렀다.
“크아아아!”
고통은 없지만, 자신의 몸이 심각하게 망가진다는 공포가 뇌리를 강타했다.
처음으로 들은 타모의 비명에 미로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마찬가지로 총에 맞은 가올드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야 되네. 짜증 나게.”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얼굴의 신경이 널뛰는 모습은 흡사 악귀였다.
“아빠, 아저씨가 어떻게 된 거야?”
“미로야, 가올드는…….”
세인이 설명을 하는 그때 가올드가 주먹으로 타모의 얼굴을 강타했다.
턱이 돌아간 타모가 바닥을 뒹굴더니 정신을 차리고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대체 뭐야?’
조금 전의 압력도 그렇지만 일격에서도 뇌를 강타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고통.”
살아 있다는 증거.
“크하하하! 죽이는데! 어이! 너 다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공기가 그의 육체를 땅 밑으로 처박았다.
가올드가 악을 질렀다.
“으아아아!”
연달아 터지는 에어 프레스에 땅이 쿵쿵 흔들리자, 미로가 일어섰다.
“아저씨가…… 아프다고?”
세인의 설명은 짧았지만 괴물로 변해 가는 가올드의 모습이 하나의 서사였다.
“끄아아아!”
쇼크로 탈색된 머리, 동공이 올라간 흰자, 찢어진 목구멍에서 튀는 핏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만해.”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지만, 어린 마음에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 남자는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이제 그만해. 그런 짓을 한다고 해도 나는 바뀌지 않아. 솔직히 나…….”
당신이 싫지는 않지만.
“이럴 때마다 아저씨가 무섭단 말이야.”
온 힘을 다해 에어 프레스를 시전한 가올드는 그에 준하는 후폭풍을 맞았다.
“끄아아아!”
저절로 사지가 뒤틀리고, 아프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반면에 타모는, 생애 최고의 자극을 받았다.
“크하하하! 더! 더!”
강력한 공기압을 이겨 내며 벌떡 일어선 그의 육체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세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 돼.”
울티마의 눈동자가 마침내 절반을 넘어 완연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으으으!”
타협이 깨지면서, 시로네 일행 전원에게 현실의 기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전멸이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생각으로 세인이 전방을 향해 철륜안을 돌렸다.
일월광륜의 힘에 의해 타모의 동작이 느려지자 강난이 야수처럼 날아갔다.
“이야아아아!”
무릎으로 타모의 옆구리를 지르는 순간, 엄청난 반탄력이 그녀를 밀어냈다.
“크윽! 더 강해졌어!”
타모의 육체에서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좋아, 끝까지 가 보자 이거지.”
땅을 박차는 순간 그의 육체가 사라지고 허공에서 탄환이 소나기처럼 쇄도했다.
가올드, 세인, 강난이 협공하는 가운데 미로와 시로네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게 뭐야?”
현실의 기억이 밀려들었고, 꿈의 기억과 5 대 5로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아저씨.”
미로는 깨달았다.
‘그랬구나. 아저씨는 정말로 나를…….’
“으아아아!”
가올드는 거의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로 타모에게 에어 프레스를 먹이고 있었다.
“약해! 약해!”
1.5층의 룰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타모의 실력은 모두를 압도할 정도였다.
“우에에엑!”
결국 버티지 못한 가올드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미로가 앞을 가로막았다.
“덤벼!”
아직은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 그림 속에 똑같이 남아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올드.”
기억 속에 흐릿해지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올드의 고개가 벌떡 쳐들렸다.
탄막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크윽!”
한편 시로네도 꿈과 현실의 기억이 중첩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인류를 지키겠다는 이상과 그것조차 무의미하다는 허무가 뒤섞인 상태였다.
‘싸워야 해. 마지막까지.’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 시로네의 의지를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싸울 수 없어.’
자신의 마음은 텅 비어 버린 상태였다.
-한 남자가…….
그때,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리기 시작했다.
-있었다.
몸이 불같이 뜨거워지고 폐에 물이 차는 듯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전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으아아아!”
시로네는 미로를 향해 쏘아지는 탄환을 마음의 기술로 정지시켰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알게 될 이야기.
그만큼 슬프고, 그만큼 거대했던 누군가의 꿈이 머릿속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시로네의 눈이 풀리면서 앞으로 쓰러지고.
“미로!”
악귀의 얼굴을 드러낸 가올드가 타모에게 최강의 에어 프레스를 날렸다.
“크하하하!”
타모의 몸에 불이 붙었다.
‘아프다.’
육체가 망가져 가는 과정이 선명했다.
‘살아 있다.’
뼈가 짓이겨져서 절반으로 압축되어 있는 그가 가올드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그리고 다시 절반의 육체가 바닥으로 꺼지며 핏물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쿠우우우우웅!
땅이 움푹 꺼지면서 그 안에서 무지막지한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피해!”
세인의 일월광륜이 열과 충격을 막는 순간 가올드가 미로를 안고 굴렀다.
강난이 쾌재를 불렀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아니, 이미 늦었어.”
원통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세인의 눈에 무수한 눈동자가 있었다.
“세계가 붕괴된다.”
1.5층이 사라지면 이곳에 있는 모두는 이미르의 무의식에 쓸려 버릴 터였다.
‘끝난 거야.’
세인이 눈을 감는 그때, 미로가 가올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소녀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이제 그만 싸워도 돼요. 아저씨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알았으니까.”
가올드의 표정에 충격이 깃들자, 울티마의 눈동자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살아요. 내가 크면…… 아저씨의 신부가 될게요.”
완벽한 타협이었다.
사탄의 제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