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5
침대에 폭신한 이불,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수족관에는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제트가 말했다.
“일행은 걱정하지 마세요. 메인 시스템의 문을 개방했으니 무사히 들어갔을 겁니다.”
제트가 자신의 차를 타서 테이블에 앉자 시로네의 시선이 찻잔으로 향했다.
“네, 저는 마실 수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마실 필요가 없지요.”
안면 스크린에 코드가 흘렀다.
“차를 마셨다는 코드만으로 이미 차를 마신 것이니까요. 그래도 결과는 같을 겁니다.”
시로네는 자신이 차를 마신 것과 제트의 행위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저를 도와준 거죠?”
“이상합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당신의 기준에 의하면 우리는 생명이 없는 기계일 뿐이니까요.”
제트는 수족관을 돌아보았다.
“강이라는 것이 사라지기 전에 데려온 애들입니다. 3만 세대나 지났지만, 저 아이들은 끝없이 대를 이어 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물론 형태나 습성은 많이 달라졌지만요.”
이곳은 얼마나 먼 미래일까?
“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는 죽음을 보았습니다. 탄생이라는 것도 보았지요.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저 또한 다른 제트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어떤 부분에서 다르죠?”
제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삶이란 무엇이죠?”
대신 시로네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살아갈까요? 생명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
“그런 의문이 생긴 이후로 삶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얻은 결론은, 삶은 죽음을 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로네는 경청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오직 그 화두를 위해 삶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이런 의문이 생기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트가 검지를 들었다.
“후회하지 않는 것. 마지막 순간 일말의 회한도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역설이었다.
“그럼 최선은 무엇일까요? 저는 중용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금욕적인 삶은 미련을 남기죠. 반대로 방탕한 삶은 집착을 남기게 됩니다.”
제트가 수인을 맺었다.
“따라서 공. 공은 허무가 아닙니다.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되, 또한 가두어 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완성시키면, 생과 사를 초월한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계에게 설법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지만 또한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네. 저는 생명이 없습니다. 기계니까요.”
제트는 수족관을 가리켰다.
“저 작은 생명이 저를 이루는 시스템의 무언가를 바꿔 놓은 것일 수도 있죠. 어쩌면 저는 이 세계의 거의 유일한 오류일지도 모릅니다.”
“오류.”
시로네는 또한 생각했다.
‘마음.’
기계에게 마음이 깃들 수 있는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완벽한 율법의 세계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
제트는 웃었다.
“그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기 전까지는 완벽한 게 아닙니다. 개념적인 문제예요. 이 도시에 한 마리의 벌레도 없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과 같지요.”
도시 자체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그렇군요.”
제트의 안면에 경고 코드가 떠올랐다.
“당신의 일행이 메인 시스템에 접속을 시도하고 있군요.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도와줄 수 있나요?”
제트는 고개를 저었다.
“권한 밖입니다. 저는 다른 제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하지만,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요. 마음과는 정반대의 개념이죠. 메인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오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떤 오류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신의 관점이 세계를 여기까지 몰아넣은 것이었다.
제트가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당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수족관의 작은 생명이 저를 바꾸었듯, 이 세계에 당신이 들어온 이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트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당신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왔으며, 또한 어디로 향하는지.”
바깥 세계의 진실이었다.
***
태양의 코어.
정신체의 상태에서 대천사들은 사력을 다해 우주의 율법을 되돌리고 있었다.
“흐으으으!”
물리적인 영역은 아니라도 우주 전체의 순행을 바꾸는 일이었다.
“할 수 없어.”
감히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강력한 율법이었다.
“우리는 고작 이런 존재였던 거야. 톱니바퀴 속의 하찮은 부품.”
사티엘이 대천사의 의지를 잃어 가자 레이엘이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야. 너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천사들이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된다고.”
그렇게 격려해 보지만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오래 버틸 수 없어.’
변화의 각은 크지 않지만 우주 전체의 무게를 받아 내는 일이었다.
‘한 걸음 양보하면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지키려고 버티는 순간…….’
짓이겨지고 만다.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신의 뜻에 따라, 천사의 권위를 내려놓고 필멸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대체 왜?’
우리는 왜 이 세계에 존재했던 거지?
‘싸운다.’
전심을 다해 저항하는 순간 그의 정신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레이엘!”
동료의 참담한 모습 앞에서 사티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다!’
육체가 있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고작 이런 거야? 우리는 이렇게 나약한…….’
“포기하지 말아요.”
그 순간 엄청난 힘이 율법을 밀어냈다.
“이카엘.”
숨통이 트일 정도로 압박이 줄어들자 사티엘과 레이엘은 새삼 깨달았다.
‘엄청난 위력이다.’
모든 개념의 어머니,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태어난 증폭의 힘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찮은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는 겁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만큼이나, 사티엘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거핀을 빼앗아 간 장본인.’
하지만 또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존경했던 천사였다.
‘이런 건 싫어.’
영원히 가슴에 고여 있을 것 같던 증오가 새어 나가는 기분이 못내 끔찍했다.
그렇게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까?
“손을 잡는 건 지금뿐이야! 율법을 되돌리면 다시 싸울 테니까.”
만약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때는 이카엘의 말을 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요.”
물론 여기가 끝이라는 것은 이카엘도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존재했다.’
그 훈장만이라도 달아 주기 위해 이카엘은 율법으로 정신을 밀어 넣었다.
“안 돼! 가지 마!”
‘미안합니다, 시로네.’
정신체가 아스라이 흩어지고 한낱 신호로 분해되려는 순간이었다.
“…….”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자 1명의 대천사가 그녀의 앞에서 율법을 받아 내고 있었다.
“카리엘?”
탄생의 대천사 카리엘이 그녀를 돌아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카리엘…….”
늘 호기심이 넘쳤던, 그녀가 기억하는 선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어서 소멸의 대천사 파이엘이 그녀의 어깨를 짚고, 좌우로 메타트론과 메티엘이 다가와 힘을 보탰다.
‘헛되지 않았어, 내 삶은.’
그렇게 마음은 이어진다.
7명의 대천사가 힘을 합치자 조금씩 율법이 역행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티엘은 전율했다.
‘된다. 우리가 할 수 있어!’
그리고 태양의 코어에서 일어난 변화는, 시로네의 행성은 물론 아포칼립스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
지진이 일어난 듯 건물이 흔들리자 시로네는 놀란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파편들이 후두두 떨어지고 있었다.
“뭐야?”
어떤 방법으로도 균열조차 내지 못한 구조물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시작입니다.”
원인을 통하지 않고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제트만의 통찰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언어보다는 기계의 언어로 설명하는 게 빠르겠군요.”
제트가 바닥에 가부좌를 틀자 시로네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주 앉았다.
“…….”
진동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 (1)
이제는 제법 굵은 파편이 시로네의 눈앞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트가 말했다.
“이 세계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였다.
“그리고 바깥 세계는 반입자로 이루어져 있지요.”
“…….”
“물론 이쪽 세계의 기준입니다. 물질과 반물질은 유와 무의 개념으로 서로가 서로를 정의하니까요.”
제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입자는 광자 신호와 양자 신호로 분류되죠. 광자 신호는 율법을, 양자 신호는 마음을 처리합니다. 물론 저에게는 오류가 되겠지만요.”
시로네는 이해했다.
“그렇게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떤 존재가 더 높은 위상을 가질까요? 전체 계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느냐가 되겠죠. 이 기준의 척도가 에너지입니다.”
존재는 에너지다.
“또한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광속의 제곱. 따라서 에너지는 질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질량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맹렬히 존재하느냐, 이런 문제입니다. 무겁다, 가볍다 같은 표현은 인간의 감각이 내린 정의일 뿐, 실제로는…….”
제트가 주먹을 쥐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
주먹을 중심으로 배경이 구겨지더니 파편과 먼지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중력이라고 하죠. 그리고 이 중력이 너무, 너무 강해져서 우주가 받아들이는 허용치를 넘어서면…….”
제트가 손바닥을 펼치자 작은 점이 검은 구체가 되어 주위의 먼지를 빨아들였다.
“세계의 장막을 뚫고 바깥 세계로 가게 됩니다.”
블랙홀이었다.
“만들 수 있지요? 부피 0, 밀도 무한대의 특이점을.”
“……네.”
존재의 대천사 메타트론도, 시로네도, 특이점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다.
“딱히 특별한 성질은 아닙니다. 그저 어떤 물질이 우주의 한계에 도달한 것일 뿐이에요. 그 어떤 것도 무한하게 강해질 수는 없다는 얘기죠. 존재가 한계를 초월하면 우주는 그 신호를 감당하지 못하고 장막 밖으로 뱉어 내는 것입니다.”
제트는 블랙홀을 소멸시켰다.
“따라서 만들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죠.”
빛조차 가두는 공간이었다.
“특이점에서 시간은 끝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반입자의 세계가 펼쳐지죠. 따라서 바깥 세계는 허수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관점이군요.”
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자가 유의 개념이라면 반입자는 무의 개념. 따라서 입자는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고, 소멸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반입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고, 탄생의 시간은 극히 짧습니다.”
우주에서 반입자를 관측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그렇게 입자와 반입자가 쌍생과 쌍소멸을 거쳐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우주가 탄생하게 되는 메커니즘입니다.”
시로네는 제트의 말을 곱씹었다.
“신이 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 또한 반입자입니다. 여전히랄지, 지금도라는 말은 소용이 없어요. 허수 시간이니까요. 시간이 허수라는 것은 공간 또한 0보다 작다는 뜻. 즉, 광속을 넘어 작용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을 거슬러 율법을 바꾼다는 것이죠.”
시로네는 진리의 피라미드를 떠올렸다.
“그게 오파츠군요.”
초고대 문명의 유물들이 원인 없이 탄생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였다.
“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적용되는 신의 의지. 이 신호를 타키온이라 합니다. 무의 세계에서 탄생한 허수의 신호인 것입니다.”
시로네는 침음성을 흘렸다.
“무無의 세계.”
바깥 세계를 이루는 반입자가 무의 개념이라면, 그곳에서 보는 우리의 세계는…….
거대한 착각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