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2
건조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았어야 했는데.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왜…….’
카인은 무릎을 꿇었다.
“이제 그만해. 나를 놓아줘. 한순간도 버틸 수가 없단 말이야! 그만하라고!”
죄책감이라는 올가미에, 그는 미쳐 가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벨이 나를 죽일 수도 있었어! 누구든지 할 수 있어! 그게 악이라고!”
다시 오열했다.
“신이시여, 제발 살려 주세요. 그 일만 없었으면, 그 일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그때 카인의 눈앞에 자욱한 연무가 깔리더니 황금으로 만든 건물이 탄생했다.
카인은 홀린 듯 바라보았다.
“…….”
미쳐 있기 때문일까, 마치 건물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오라.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악의 전당, 멜키두였다.
미싱 링크 (3)
***
인류의 선악에 대한 시로네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일행은 침묵을 지켰다.
이루키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거였군.’
마음에 통달한 가이아인.
무엇을 하든 전체를 이룰 수 있는 그들에게는 선악도 공과 애도 구별되지 않았을 터.
‘울티마가 깨졌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 행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그 이후에 카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 자욱한 연기와 함께 사라진 것이 오메가의 마지막 기록. 결국 그는 현실을 떠나 언더 코더로 도망친 거야.”
기록에는 남지 않았어도 시로네 일행이 경험한 멜키두가 행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생각하고, 또 고민했지.”
카인이 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아니, 정말 잘못이기는 했던 걸까? 어째서 나는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까? 그게 과연 악인가?”
일행은 듣고 있었다.
“결론은 모든 게 주사위 놀음이라는 거야. 난 그냥 주사위를 던진 거라고. 어떤 숫자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차가운 세계가 아벨을 선택한 것도, 그 순간 동생의 가슴에 칼을 찌른 것도.
“그래, 혼돈이지. 우리는 혼돈의 존재야.”
카인은 머리를 두드렸다.
“내가 나라고 하기 이전에 나를 움직이는 명령이 있어. 이 머리 꼭대기 위에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특별한 신호가 있단 말이야. 전기적인 스파크, 어쩌면 선험적인, 우리가 충동이라 부르는 그런…….”
미싱 링크가 있다.
“결국 인간은 저 먼 곳에서 내려오는 신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이지. 마음조차도. 즉,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고, 따라서 바꿀 수도 없어.”
베론 문제에 대한 악의 결론이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죄책감이 좀 사라지나?”
“……늘 그게 문제지.”
카인은 릴리스의 초상화를 돌아보았다.
“멜키두는 악의 방법론에 기반한 세계. 여태까지 수많은 죄인들이 모여들었지. 비록 나는 이곳에 갇혀 있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 하지만 알고 했든 순간의 실수든, 죄를 지은 인간이 결국 생각하는 것은 똑같아. 그날의 일이 없었으면 하고…….”
쾌락은 한순간이기에.
“물론 이곳이 좋아서 눌러앉은 놈들도 있지. 그런 부류는 별의별 미사여구를 붙여서 멜키두를 신성시하지만…….”
카인은 커티스를 바라보았다.
“감옥에 가지 않아도, 사건이 말소된다고 해도, 내가 저지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악마를 위한 성지는 없기 때문이다.
이루키가 말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데. 시로네의 말에 따르면 릴리스는 아담에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인류의 계보가 여기까지 이어진 거야?”
“죽지 않았으니까.”
시로네가 말했다.
“물론 릴리스는 죽었지만,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
기적.
아니, 어쩌면 저주일까?
콰르르릉!
천둥 벼락이 치던 그날 밤, 아담은 가족들을 살피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가장 먼저 아내의 집으로 향하던 그는 폭우의 소음에서 비명 소리를 들었다.
“무슨…….”
발길을 돌려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아벨의 집이었고,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문을 열었을 때 그가 본 것은 아벨의 시체와 쇼크 상태에 빠진 룰루와였다.
“아…….”
룰루와가 초점을 되찾고 말했다.
“아빠.”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담 또한 전쟁을 치른 가이아인이기에 사망에는 익숙하지만, 적어도 에덴에서는 아니었다.
“카, 카인 오빠가…….”
룰루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일의 전말을 알게 된 아담의 눈에 가이아인의 살기가 무시무시하게 번뜩였다.
“멍청한 놈.”
문을 나서며 아담이 말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나가지 말거라. 날이 밝으면 그때 형제들을 찾아가.”
“네, 알겠어요.”
룰루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담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두 손을 들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왜 내가?”
릴리스가 된 것일까?
아벨의 죽음에 쇼크를 받는 순간 뇌가 열리는 듯 막대한 기억이 밀려들었다.
‘오래전의 내 기억이다. 룰루와를 낳기 전의. 하지만 룰루와의 인생도 뇌리에 남아 있어.’
아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덕분에 아담을 속일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웠다.
‘릴리스의 기억을 가진 룰루와, 룰루와의 기억을 가진 릴리스, 대체 어느 쪽이지?’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가 일어났다.
“나는 이브.”
정체성 같은 것은 없다.
끝없이 대를 거듭하며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생명 그 자체의 총칭이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 없는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날이 밝았으나 아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릴리스의 집으로 향했다.
적막한 고요 속에, 목이 부러진 자신의 시체가 체액을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하하.”
남편이 자신을 죽인 이유는, 아마도 카인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하하하! 하하하하!”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끝났어.”
그렇게 에덴에서 가이아인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으나, 이브의 삶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녀는 형제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때로는 정숙하게, 때로는 활달하게, 수많은 인격을 연기하며 자손을 퍼트렸다.
‘잊자.’
이브가 누구를 사랑하든 근친이 되기에, 그것은 사랑이 아닌 탁한 욕망일 뿐.
‘전부 다 잊는 거야.’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녀의 자손은 동물적 욕망만 남은 원시 형태로 변해 갔다.
‘사랑해 줘! 더 많이!’
금기를 깰 때마다 마는 강해졌고 딸들은 새로운 이브가 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쾌락을! 감각을! 끝없는 욕망을!’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여성에게만 유전되는 이유는.
“으르르르! 킁! 킁!”
그들 모두가 이브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시로네가 말했다.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든,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인류는 이브의 자식이 되는 거야.”
이루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역학조사를 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했지만…….’
개념적으로는 이브가 인류의 어머니인 셈이다.
“그래. 사실 어머니가 꿈꿨던 것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어. 하지만 모든 인류가 자식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것뿐. 그러다가 결국 만난 거야. 시로네, 바로 너를.”
모두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헥사, 너는 원인이 없지. 인류에서 오직 너만이 이브의 자식이 아니라는 뜻이야. 처녀가 애를 낳은 것처럼 모순적이지만, 그것 또한 마음을 가진 신이 이 세상에 보낸 신호이자 증거. 어머니에게 너는 특별한 존재야.”
“그래서 우오린이…….”
일행은 깨달았다.
카샨의 여황이 어째서 시로네에게 집착하는지, 그리고 시로네는 왜 그녀를 피하는지.
성 뇌, 아담이 말했다.
“여전하군, 그 눈빛은.”
키도가 긴장을 놓지 않는 가운데, 우오린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날 함부로 대하지 마.”
원시 형태에서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인류로 진화하며 에덴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넌 날 죽였어. 목이 부러진 내 모습을 봤다고.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아니.”
우오린이 비소를 지었다.
“사실 낯짝도 없지. 비루하게 살아 있는 이유가 뭐야? 그런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아담은 키도를 돌아보았다.
“저 고블린이 지금 너의 연인인가? 예나 지금이나 취향은 변하지 않는군.”
우오린이 이빨을 드러냈다.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역시 부부 사이는 녹록지 않았다.
“헛소리하지 마.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야. 내가 얼마나 많은 세대를 거쳤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나도 이런 모습이 되어 너와 함께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왔으니까.”
아담은 육체를 버렸다.
릴리스가 이브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면, 그는 환영으로 인간을 모방했다.
남녀노소, 정치인, 의사, 거지 등, 수많은 인간이 되어 이브의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왜?”
우오린이 물었다.
“이유가 뭐야? 나 따위, 혐오스러워했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책임을 지는 것.”
에덴을 떠났을 때, 그는 죽으려고 했었다.
“릴리스, 너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저질렀어. 그것이 네가 만든 악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담이 손을 내밀었다.
“나와 가자. 우리가 만든 세계의 마지막이 오고 있다. 한 번쯤은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나?”
“싫어.”
“시로네 때문이라면 포기해. 그는 너에게 오지 않아. 네가 한 짓을 알고 있으니까.”
“흥, 상관없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길고 지루한 세월을 견뎠다고 생각하는 거야?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 완성한 이 육체와 능력을 당신을 위해 쓰느니…….”
우오린은 키도의 팔을 끌어안았다.
“차라리 이 고블린에게 바치고 말겠어. 마지막 경고야.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맑은 눈을 가졌군.”
아담은 키도를 돌아보았다.
“릴리스를 사랑하지 마라. 저 여자는 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끝없이 말라 갈 거야.”
“닥쳐.”
키도가 창을 내밀었다.
“전남편인진 뭔지, 난 하나도 신경 안 써. 내가 사랑하니까. 물론…… 난 고블린이지만.”
굳이 뒤의 말을 붙인 이유야말로 전남편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젠장! 어쩔 수 없잖아!’
자신이 절대로 가질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을 이미 오래전에 차지했던 남자니까.
아담은 웃었다.
“지금 나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드나? 멋지군. 걱정하지 마라. 릴리스는 네가 고블린이든 아니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뭐?”
키도는 이해하지 못했다.
“너…….”
살기로 가득한 우오린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아담은 뒤로 걸음을 옮겼다.
“릴리스, 인류를 위해 살 수 없다면 그 고블린과 떠나라. 너의 역사가 하비츠의 손에 통째로 넘어가는 순간, 너는 또 하나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
아담은 미워도 말의 중대함은 알았다.
가이아인의 육체가 사라지고 회백질의 뇌가 둥둥 떠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
긴장이 풀린 키도가 우오린의 어깨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