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9
“인의 파동. 그들 모두가 오파츠라면 자기장의 영향권도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군.”
“네. 현재 별관은 경계 2등급 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불가한 상태입니다. 성전 비서실에서 각국 정상을 포함한 2명까지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미래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세계 지도국은 이 자리에서 결정 날 수도 있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내일 아침이면 투표야. 왕이 도망치면 명분을 잃게 된다.’
각국의 비서들만 바쁘게 입을 놀리고 있을 뿐, 별관은 싸늘하리만치 고요했다.
루피스트가 물었다.
“얼마나 위험하지? 피라미드의 인파가 본청을 뚫고 별관까지 오게 될 확률은?”
단테가 분석했을 것이다.
“50퍼센트입니다. 야훼와 하비츠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달렸습니다.”
‘50퍼센트.’
가장 인간적이고 무의미한 숫자였다.
“아니, 100퍼센트야.”
알비노가 말했다.
“이제야 정리가 되는군. 어째서 페르미가 미래의 정보를 각국에 제공했는지. 그 녀석이 두려워했던 것은 아이론 왕국이 세계 지도국이 되는 게 아니야. 마야가 죽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가 두려웠던 거지.”
정보원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럼 케시아 또한 마야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 건가요?”
“아니, 정확히는…….”
알비노는 비어 있는 케시아 국왕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신이 바라는 거겠지.”
루피스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인의 파동이군요. 놈들이 성전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마야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래. 시로네는 막아 내지 못할 거야. 그리고 우리 또한 인의 파동에 휩쓸려 마야를 죽이게 되겠지. 이 자리의 대부분이 마음을 잃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페르미가 신의 뜻에 따르는 걸까요? 케시아가 파라스 왕국과 접선했다는 첩보는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흐흐. 흐흐흐.”
알비노는 허파가 가려운 사람처럼 웃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았어.”
웃음이 뚝 그쳤다.
“페르미는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은 거야. 정보 엔트로피는 언제까지나 제로 상태여야 한다고.”
“그게 이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죠?”
“미래를 아니까.”
알비노가 검지를 들었다.
“정보 갱신의 함정. 미래를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과, 미래를 알면서도 아무 변화도 주지 않는 것. 얼핏 같아 보이지만 정보의 질은 완전히 달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군요.”
“그래. 그게 정보가 가진 힘이지. 예를 들어 길에 함정이 있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함정에 빠졌지.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함정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세.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함정에 빠진 거야.”
“…….”
“결과는 같지. 하지만 정말 같은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왜냐, 후자는 선택했기 때문이야. 페르미는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아. 만약 내가 함정을 알고 다른 길로 갔다면…….”
“다시 미지의 세계죠.”
“그래. 또 다른 함정이 생길 수도 있지. 아니, 그것을 떠나 선택권이 박탈당해.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지는 거니까.”
알비노는 수염을 꼬았다.
“이 설계의 핵심은 시로네일 거야. 세계를 바꾸는 주체이기 때문에 정보는 반드시 차단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시로네와 페르미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일 터.”
루피스트는 정면을 향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미래를 지킨다는 것은…….”
앞으로 훨씬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기에.
“당돌하군.”
루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불가능할 겁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사실만 말하는 거짓말쟁이. 대체 뭐 하는 놈인가 했더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알비노가 입가를 찢었다.
“신을 속이겠다고?”
***
케시아의 국왕 페르미는 별관으로 가지 않고 세리엘의 방을 찾았다.
함께 있어서 좋은 건 세리엘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시나 걱정이 되었다.
“정말 안 가도 돼? 중요한 자리잖아.”
“재미없을 거야.”
페르미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세리엘이 상체를 세웠다.
“너,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표정을 보니까 틀림없어.”
“…….”
페르미의 은근한 시선에 세리엘이 머뭇거렸다.
“뭐, 뭐야?”
“우리…… 결혼할까?”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니? 똑똑한 거 같으면서도 가끔 이상하단 말이야.”
매몰차게 프러포즈를 거절했으나 사실은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리엘이 다시 나긋하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혹시 너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거야? 응? 그래서 결혼하자고…….”
“하하, 이래서 유능한 사람은 피곤하다니까. 다른 의미 없어. 그냥 널 보고 문득 든 생각이야.”
“아니야. 넌 절대로 그럴 인간이 아니야.”
“…….”
페르미는 진심으로 상처 받았다.
“확실히 말해 줘. 그럼 다른 건 묻지 않을게. 너는, 너는 괜찮은 거지? 그렇지?”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지금 당장 책상 모서리에 발이 부딪힐 수도 있는데.”
“말 돌리지 마.”
“말을 돌리는 게 아니라, 여기는 전장이라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는…… 윽!”
페르미를 침대로 쓰러뜨린 세리엘이 허리에 올라탔다.
“아야! 아프잖…….”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말해.”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포칼립스의 정보에는 내가 특별히 잘못된다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또! 사실로 나를 속이려고 하지 마! 나는 잘못되지 않는다, 이 전쟁이 끝나도 세리엘의 곁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란 말이야!”
페르미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
“거봐! 역시, 너…….”
“나는.”
또박또박 말이 이어졌다.
“잘못되지 않을 거야. 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반드시 네 곁에 있을 거야.”
세리엘은 훌쩍이며 덧붙였다.
“……살아서.”
“하하, 그래. 살아서.”
그제야 긴장이 풀린 그녀가 페르미의 가슴에 쓰러졌다.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죽여 버린다.”
그렇게 싫었을까?
“미안.”
페르미는 창밖을 돌아보았다.
“……비 온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비가 왜…….”
세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순간 쏴 하고 장마 같은 빗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미래를 안다는 건 힘든 거군요.’
페르미는 생각했다.
지금 들리는 이 빗소리마저 거짓이었으면 좋겠다고.
***
델타 정문의 과격한 소음도 갑자기 내린 비에 지하까지 파묻히는 듯했다.
“…….”
순식간에 흠뻑 젖어 버린 시로네와 하비츠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로네가 물었다.
“왜 도망치지 않았지?”
탄생 초기의 율법에 따라 사탄은 야훼를 피해 영원히 도망칠 수 있다.
“그러는 너는?”
하비츠의 시선 또한 차가웠다.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단지 배니싱을 파훼할 생각이었다면 사탄은 은타라를 그대로 베었을 터였다.
“내가 맞혀 볼까?”
하비츠가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1시간에 한 번, 너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야. 내가 네 공격을 피하면 그때는 끝이거든.”
“피할 수는 있고?”
“…….”
“아무 말이나 내뱉지 마라. 너 같은 겁쟁이가 애써 버티는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
사실과 거짓, 그 마지막 대결이 끝나는 것도 이제 2시간이 남지 않았다.
‘그동안 하나의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비츠가 제시한 명제는 자정까지 우오린을 죽이거나, 시로네를 죽이는 것.
‘여기서 시로네를 죽이면 우위를 점하지.’
물론 위저드의 명제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클리어 할 수 있는 종류다.
‘나를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를 사랑한다면 굳이 이길 필요 없어. 증오한다면 그때부터는 나도…….’
마음대로 해 버리면 그만이다.
“겁쟁이라고?”
하비츠의 기질이 변하면서 보랏빛 살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시옥.”
12명의 광신도가 땅에서 솟구쳤다.
“사탄이시여.”
“잡아.”
사탄의 지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12명이 시로네의 주위를 포위했다.
‘그리고 나는…….’
배니싱.
율법에서 벗어난 하비츠가 시로네의 등 뒤를 겨누는 가운데 시옥이 속삭였다.
“야훼여.”
12개의 히든 코드는 세계를 조롱하는 힘.
“주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희열과 열망, 정복과 지배, 인간으로 태어나 바랄 수 있는 모든 소원이 너에게 있다.
“…….”
시로네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
‘통하지 않겠지.’
그 모습을 후미에서 관찰하며 하비츠는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이긴다.’
여태까지 배니싱이 파훼되었던 것은 하비츠가 룰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런 건 재미가 없잖아.’
그렇지, 발칸?
하비츠는 시로네의 인지 바깥에 있는 터널을 통해 검을 겨누고 돌진했다.
오늘따라 야훼의 등이 더욱 넓어 보였다.
‘할 수 있어.’
무엇보다 신의 주파수.
굉장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지만 하비츠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전 세계의 인간 중에 가장 근접하다. 확실히 짜증 나는 놈이야.’
마침내 시옥을 뚫고 들어간 하비츠가 눈에 힘을 주며 검을 쭉 내밀었다.
‘끝났다.’
그 순간 엄청난 전율이 등골을 타고 치밀었다.
“어?”
시로네의 등에 칼이 닿는 순간, 하비츠의 팔꿈치가 전진하는 속도와 똑같이 구부러지고.
“크으으으!”
그것도 모자랄 것 같자 황급히 시로네를 지나쳐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사, 사탄이시여…….”
배니싱이 풀렸으나 시로네는 그저 서 있었다.
‘역시 그런가?’
세계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되다니.
“괜찮으십니까?”
시옥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하비츠는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째서 죽이지 못했지?’
그 순간에 들었던 느낌은 하나였다.
도망쳐.
하비츠는 자신의 손가락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기에 공포라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지만.
“왜 이래?”
좋은 느낌은 절대로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