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04
리안의 허리가 뒤틀렸다.
“그렇게 하면 되잖아?”
알루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아.”
그렇구나.
대직도가 섬광처럼 풍경을 가로 그으며 알루아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나는, 할 수 없었던 거구나.’
허공으로 날아간 얼굴이 회전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 느껴지는 건 약간의 아쉬움이었다.
‘그래, 알고 있어. 설령 다시 태어나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적어도…….’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땅에 떨어진 머리가 데구루루 굴렀다. 알루아는 차분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후우!”
리안은 온몸에 퍼진 열감을 잠시 견디다가 몸을 틀었다. 테스가 다가와 있었다.
“괜찮아?”
“보다시피.”
리안이 어깨를 으쓱했으나 그녀가 봤을 때에는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발 쉬어. 이제 할 만큼 했잖아. 덕분에 서쪽은 완벽하게 봉쇄했으니까.”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파계를 반복하며 느낀 것은 테스의 생각과 달랐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뭐가 남았는데?”
리안은 말없이 바슈카로 돌아섰다. 깊이 파고들어 봤자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건 시로네가 알고 있겠지.”
***
“게임?”
에이미와 성음은 핏빛 공간을 둘러보았다.
치아가 매달린 곳 사이사이에 살점이 움푹 파여 있고, 놀이방처럼 보드 게임이 놓여 있었다.
이사칼이 말했다.
“여긴 사탄의 놀이방이야. 물론 그런 설정일 뿐이지만, 이곳에서 36종의 기초 게임을 배운다고 해. 그러니 우리도 하나 골라 보자고.”
성음을 살핀 에이미가 물었다.
“제약이 있겠지?”
“오직 게임으로만 승부를 내야 하지. 마법이나 화신술은 쓸 수 없어. 게임의 종류는 내가 정할 거고, 룰은 매뉴얼 그대로 따를 거야.”
사탄의 방식이었다.
“싫다고 하면?”
이사칼은 어깨를 으쓱했다.
“돌아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하지만 제르비스는 절대 찾지 못할걸. 여긴 내가 만든 공간이라, 히든 코드를 직접 파훼해야 할 테니까.”
에이미는 입술을 질겅거렸다.
‘사탄의 이름을 걸었다면 치트 수준의 밸런스 붕괴는 없겠지. 하지만 게임은 이사칼이 정한다. 매뉴얼대로 한다고 해도 불리한 건 사실이야.’
생각을 마친 그녀가 말했다.
“어떤 종류의 게임인지는 미리 들어야겠어. 그 후에 결정해도 되는 거겠지?”
“후후, 꽤 신중하네. 좋아, 그래야 나도 노는 보람이 있지. 어디, 그렇다면…….”
이사칼은 놀이터를 돌아보았다.
모든 게임이 익숙했기에, 선택의 기준은 얼마나 쾌락을 느낄 수 있느냐였다.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흠, 참가 인원은 여자 3명. 분위기로 봐서 저 둘은 그렇게 친하지 않아. 아니, 처음에는 오히려 약간의 적대심까지 느껴졌었다. 그렇다면…….’
이사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폭탄 돌리기.”
“폭탄?”
이사칼은 벽면으로 다가가 시뻘건 살점 속에서 사과 크기의 폭탄을 꺼냈다.
검은색이고 양쪽에 패널이 있었는데, 디지털 숫자로 000이라 적혀 있었다.
‘세 자릿수.’
이사칼이 말했다.
“룰은 간단해. 서로 이 폭탄을 돌려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쪽이 이기는 거야.”
성음이 물었다.
“우린 2명이다. 불리한 거 아닌가?”
“걱정 마. 팀전으로 할 거니까. 나는 너희 둘을 전부 죽여야 승리, 너희들은 나 하나만 죽이면 돼. 물론 폭탄은 구분 없이 터질 테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는 거지. 싫으면 개인전으로 가든가.”
에이미는 이사칼의 의도를 깨달았다.
‘악질이네, 이 여자.’
3인 게임의 특성상 2명이 팀인 쪽은 결국 아군에게도 폭탄을 돌려야 한다.
‘그것도 쌍방이 아니야. 순서에 따라 1명은 넘기고, 1명은 무조건 받는 구조.’
폭탄을 받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분이 일어나면…….
‘서로 싸우게 되겠지. 이 여자가 보고 싶은 건 우리가 공포에 파멸하는 거야.’
이사칼이 눈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네? 이 게임이 그래. 룰이 단순할수록 감정은 더 깊어지는 거거든. 폭탄 돌리기가 뭔지는 대충 알 테고, 세부적인 룰을 말해 줄게.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무작위로 타이머가 설정돼. 한계는 999초까지. 그리고 초가 늘어날수록 폭탄의 위력도 강해져.”
“…….”
시간을 끈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시간을 끌다가 자신의 차례에 터지면 오히려 자살행위가 된다.
“자신의 턴이 되면 정면에 폭탄이 있을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10초 룰이야. 빨간 램프로 표시되는데, 그때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 간단히 말해서, 무조건 10초 동안은 폭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자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다음 사람에게 폭탄을 넘기는 꼼수를 막는 룰이었다.
“물론 10초 룰이 적용되는 동안에도 카운트는 계속 올라가. 1초에 터질 수도, 500초에 터질 수도, 999초에 터질 수도 있겠지. 10초 룰이 끝나면 램프는 녹색으로 바뀌고, 이때부터 플레이어는 두 가지 명령어를 쓸 수 있어.”
이사칼이 폭탄을 내밀며 말했다.
“기폭과 이동. 기폭은 그냥 자신의 차례에 폭탄을 터트리는 거야. 이동은 당연히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거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명령어를 적용하려면 반드시 몸에 폭탄이 닿아 있어야 한다는 거야.”
에이미가 물었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 타이머가 작동하면? 그냥 눈앞에서 폭발하는 건가?”
“아니. 그때는 플레이어의 신체에 무작위로 설치되어 터지게 되어 있어. 만약 머리 쪽이라면…… 초반부터 게임 오버지. 이 게임이 재밌는 건 이렇게 확률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야.”
퍽이나 재밌겠다.
“어쨌든 이게 룰의 전부야. 일단 폭탄이 가동되면 자동으로 게임이 진행될 거야. 내가 죽든가, 너희 두 사람이 전부 죽을 때까지 말이야.”
데스 매치였다.
“자, 이제 너희들이 선택할 차례야. 이 게임을 받아들이든가, 그냥 돌아가든가.”
에이미는 성음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칼에게 말했다.
“좋아. 그게 룰의 전부라면.”
매뉴얼 자체로는 딴지를 걸 만한 게 없었다.
‘물론 노림수가 있겠지. 하지만 이사칼이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2명은 오히려 큰 이점이야. 게다가…….’
에이미의 두 눈이 붉게 타올랐다.
‘홍안은 된다.’
유전적 특질이 허용된다면 폭탄 돌리기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이사칼은 여유 만만이었다.
“그럼 순서를 정할까? 매뉴얼대로 팀원이 적은 내가 1번이고, 그다음은 둘이 정해.”
초반 순번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에이미와 성음의 경우는 다르다.
누가 선을 잡느냐에 따라 폭탄을 넘기는 자와 받는 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성음이 말했다.
“내가 2번을 하지.”
그리고 에이미를 보며 물었다.
“괜찮겠느냐?”
아직 완벽한 신뢰가 쌓인 사이는 아니기에 먼저 말해 준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좋아.”
그렇게 1번, 2번, 3번이 정해졌다.
폭탄은 이사칼에서 성음으로, 성음에게서 에이미로, 다시 이사칼에게로 돌아간다.
이사칼이 폭탄을 쥐고 말했다.
“작동하면 승부가 날 때까지 절대 끌 수 없어. 다들 즐길 준비 됐어?”
대답은 없었다.
“그럼 시작.”
버튼을 누르자 끼리리릭, 소리가 들리더니 폭탄이 이사칼의 앞에 떠올랐다.
빨간 램프가 깜박거렸다.
이제부터 이사칼은 10초 동안 폭탄을 터트릴 수도, 남에게 넘길 수도 없다.
틱…… 틱…… 틱…….
3초, 4초, 5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9초, 10초.
램프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곧바로 폭탄을 잡은 이사칼이 명령어를 말했다.
“이동.”
폭탄이 손에서 사라지더니 어느덧 성음의 정면에서 카운트를 하고 있었다.
빨간 램프가 깜박거렸다.
‘다시 10초 룰.’
에이미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터지지 마. 터지지 마.’
한계치인 999초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매초가 죽을 맛이었다.
2초, 3초, 4초.
이사칼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포지션상 진성음은 내 공격을 막아 내는 쪽. 그렇다면 에이미에게 빨리 넘기는 게 좋을 테지만, 바로 넘길 경우 의심을 사겠지.’
너 죽으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뭘 하든 감정은 쌓여. 에이미는 계속 네 공격을 받아 내야 한다고. 그렇게 폭탄이 터지고, 분노하고, 절규하다가 절망에 빠져…….’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 아아.’
이사칼의 동공이 위로 말려들어 갔다.
‘벌써 갈 거 같아.’
9초. 10초.
램프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성음은 곧바로 폭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팔을 끝까지 펼친 채 말했다.
“기폭.”
“응?”
펑! 하고 폭발이 터졌다.
성음의 팔이 뒤로 밀리고, 몸을 되돌린 그녀는 경련하는 손을 확인했다.
“그렇군.”
손바닥이 파열되었고, 새끼와 약지가 첫 번째 마디쯤에서 끊어져 있었다.
에이미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성음이 그녀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20초에 손가락 2개…… 정도인가?”
이사칼의 눈동자가 이성적인 빛을 되찾았다.
‘일부러 터트렸어.’
폭탄 돌리기 게임은 시간이 늘어날수록 폭발의 위력이 강해지는 룰이다.
‘위력 계수를 측정하려고.’
999초에서 20초를 확인하는 것으로, 성음은 폭발의 위력을 미리 가늠한 것이었다.
빛을 달리는 소녀 (2)
새로운 폭탄이 허공에 나타나 자동으로 다음 순번인 에이미에게 향했다.
그러는 동안 이사칼은 생각했다.
‘최소의 피해로 폭탄의 위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보통 이렇게까지 하나?’
손가락 2개를 날린 것이다.
‘아니, 이게 맞아.’
두려움 때문에 초반의 고통을 미룬다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메타인지라는 거지.’
모든 사건은 갑자기 닥치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원인들의 결합인 것.
‘미래를 가정하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본다. 결국 이 타이밍이 최적이었어.’
눈 밖의 변수를 인지하고 최선의 결과를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강한 녀석들이야.’
이사칼은 기분이 좋았다. 그 강한 생각이 꺾였을 때야말로 최고의 희열을 줄 테니까.
폭탄은 18초를 지나고 있었다.
녹색 불이 켜진 상태였으나 에이미는 미동조차 없이 카운트를 보고 있었다.
이사칼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이야. 수비만 해서는 이길 수 없지. 에이미는 모험을 걸어야 한다.’
그녀가 공격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42초. 43초.’
이미 폭탄의 위력은 성음이 당한 것의 최소 2배를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 넘겨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에이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