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2
“아, 맞다! 이거 봤어? 시로네 선배님에게 편지가 왔어.”
“어? 시로네 선배님이? 나한테는 안 왔는데?”
“아마 왔을걸. 나도 나오는 길에 받아 가지고 왔거든. 아직 읽어 보지도 않았어.”
마리아는 자랑하듯 봉투를 흔들더니 편지를 꺼내 읽었다. 구구절절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내용에 그녀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아, 정말 멋진 사람이야. 강하면서도 다정하잖아. 시로네 선배님하고 사귀는 에이미 선배님은 얼마나 좋을까?”
사드의 얼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솔직히 말하면 마리아가 자신에게 푹 빠졌을 거란 확신을 7할 정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 보니 단순한 존경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드가 우울해하자 마크는 통쾌했다.
대부분의 여자 후배들이 마리아처럼 이야기하기에 시로네에게 질투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시로네의 곁에는 에이미라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좋아! 시로네 선배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목표가 한층 더 강화되었군!’
초조해진 사드가 만회에 나섰다.
“하하! 맞아. 시로네가 멋있기는 하지. 하지만 보통은 연상을 선호하지 않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동갑은 되어야지. 어린 남자는 재미가 없잖아?”
마크가 질세라 받아쳤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국경보다 중요한 게 나이지. 그럼 마리아에게 물어볼까? 연상과 연하 중에 어떤 쪽을 택할 거야?”
마리아는 턱을 받치고 고민하더니 장난스럽게 혀를 빼물고 대답을 회피했다.
“후후, 글쎄요?”
잔뜩 기대하고 있던 마크와 사드는 허탈했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진정한 밀당의 고수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거나 비싼 입장료를 내고 잡담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크와 마리아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열식으로 정신을 예열했다. 그러는 동안 사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시로네를 떠올렸다.
‘방학도 이제 끝이네. 돌아오면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
시로네가 마법학교에 입학한 직후부터 걸어온 행보는 학교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분명 독보적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불안했다.
스승님이 어떤 대답을 받고 올지에 따라 달렸지만 승낙이 떨어진다면 여태까지의 학교생활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다, 시로네.’
2. 개학을 기다리며 (3)
@
수도 바슈카.
제롬 가문은 대대로 훌륭한 교사를 배출한 교육자 집안으로 왕국에서 가장 위세가 좋은 가문 중의 하나였다.
왕보다 높은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왕의 스승이라고 답하는 우스갯소리는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이 키워 낸 제자들만 모아 놓아도 하나의 국가를 운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제롬 가문의 본가에 도착한 알페아스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고대풍으로 지어진 회랑을 걸었다.
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으나 그녀의 방에 찾아가는 건 처음이었다.
집사가 문을 열어 주자 화려한 풍경이 그를 반겼다.
바닥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했고 벽을 따라 3층으로 나누인 선반 위에는 온갖 골동품들이 놓여 있었다.
북쪽에 사람 10명이 눕고도 남을 호피 양탄자가 깔려 있었는데, 가짜를 혐오하는 성격상 진품일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커다란 호랑이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여자는 호피 양탄자 위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이는 50대지만 3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었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소싯적에는 정말로 대단했다. 얼마나 새침하고 깔끔하던지, 남자들은 그녀에게 말조차 쉽게 건네지 못했었다.
“왔으면 문 닫고 앉아. 뭐 구경났다고 멍하니 서 있어? 멍청한 건 여전하군.”
알페아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남자를 깔아 보는 성미는 여전했다. 꾀꼬리처럼 낭랑한 목소리도 그대로여서 시간을 역행한 기분이었다.
“아니, 신기해서 말이야. 어떤 곳에서 살고 있나 했더니 성질머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군.”
“남의 집에 다짜고짜 쳐들어와 놓고 염치없게 헛소리야. 너 같은 촌놈이 내 물건의 가치를 어찌 알겠어?”
양탄자는 분명히 최고급일 것이다. 그래서 알페아스는 신발을 신은 채로 양탄자를 작신작신 밟아주었다.
천하에서 가장 콧대가 높다는 그녀를 한때나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게 했던 장본인으로서 부려 본 호기였다.
그녀는 알페아스를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지금 뭐 하니? 아, 됐고. 용건만 간단히 말해.”
알페아스는 장난스럽게 입가를 찢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습이었다.
제롬 올리비아.
공인 제2급의 대마법사에 현재 교사회의 감사. 게다가 4년 전에는 왕립 마법학교의 교장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용건이랄 게 있나? 응답이 없어서 직접 찾아왔네.”
“날더러 어쩌라고? 네가 사고 쳐서 교직을 정지당해 놓고 왜 날더러 수습하라는 거야? 시골 마법학교 교장? 그것도 6개월 임시직?”
“꼭 그렇게 못 박은 건 아니잖아. 더 있고 싶으면 있어도 되고.”
“그러니까 왜? 내가 무슨 이유로 이 좋은 집을 놔두고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한가로이 차라도 마시면 좋지.”
올리비아가 차가운 분노를 드러냈다. 그러자 젊었을 때의 모습과 더욱 비슷해보였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내가 너를 사모했던 것도 30년 전의 일이야. 게다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지는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너는 더 이상 멋있지가 않아.”
“하하! 그렇게 됐지.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예쁘군.”
올리비아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래서 남자가 싫은 것이다. 마음 한번 줬다고 다 가진 것처럼 구는 어린애.
교장직까지 박탈당해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백수 주제에 뻔뻔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도대체 네가 뭔데 이렇게 당당하니? 나는 왕립 마법학교 교장을 지낸 공인 2급의 대마법사야. 너는 4급 마법사에 시골 학교 교장이고. 돈을 벌어도 내가 더 벌었고 존경도 내가 더 받아. 그런 네가 부탁하러 온 주제에 뻔뻔하게 굴 수 있는 이유가 뭐야?”
“흐음, 글쎄? 네가 날 좋아해서일까?”
“미……친……놈.”
올리비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 늙어 가지고 소름 돋는 말을 내뱉다니. 나이 먹어서 늦바람이 들었나? 예전에는 입에도 담지 않았던 말들을 술술 늘어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 오랜만에 만나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슬퍼할까 봐 그랬어.”
“어머, 전혀 아닌데? 나는 네가 나에게 찾아와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했거든.”
알페아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보다는 그녀의 상처가 더 컸을 것이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시원하게 부탁하지.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으면 되나?”
올리비아는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이제 와 무릎을 꿇는 게 무에 대수겠는가?
“요즘은 뭐 해? 직장도 잘리고. 정말 늦바람이라도 난 거야?”
“그냥 뭐,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에리나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올리비아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충격이 가해졌다.
알페아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에리나가 살고 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니. 천하의 멍텅구리.’
아내를 잃고 10년을 떠돌다가 돌아온 알페아스는 교사의 꿈을 품고 나이 어린 올리비아의 제자로 들어갔다. 광양자 이론을 정립시킨 희대의 천재였던 만큼 올리비아도 애정으로 가르쳤다.
애정.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재능도 뛰어난, 무엇보다 잘생긴 그를 제자로 받지 말았어야 했다.
커져가는 사랑을 주체할 수 없었던 올리비아는 결국 알페아스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아내를 잊지 못하던 알페아스는 단칼에 거절했고, 그날 이후로 그녀의 인생이 180도 변했다. 구겨지는 자존심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로 화가 나는 건 세상에 없는 여자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 한심함이었다.
20대의 불타는 사랑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알페아스가 보는 앞에서 에리나의 그림을 훼손시키는 짓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올리비아는 처음으로 알페아스의 살기를 느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지만 그날 이후로 알페아스는 그녀를 사람 취급조차 해 주지 않았다.
차라리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올리비아는 너무나 절박했고 또한 뜨거웠다. 자신에게 찾아온 첫 번째 사랑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날 밤 알페아스의 방을 찾아간 것은 평생의 실수였다.
“착각하지 마, 알페아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건 너 때문이 아니야. 그냥 남자라는 생물이 귀찮아서일 뿐이지.”
“그래서 요상한 물건이나 모으고 있나? 올리비아, 사랑을 원하지 않는 인간은 없어.”
“저급한 감정이야. 예전에 구애를 했던 것도 자존심 때문이었어. 죽은 여자에게 홀려서 관심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문득…… 그날 밤의 일이 떠오르는군.”
올리비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 방에 찾아와 옷을 벗고…….”
“그만!”
올리비아가 손을 내밀고 소리쳤다.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알몸을 보였던 순간이다.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알페아스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만 안아 달라는 부탁조차 그는 들어주지 않았다.
‘나쁜 자식…….’
지금 생각해도 서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평생에 가장 부끄러운 일을 자랑처럼 떠벌리다니. 왜 항상 당하는 쪽은 여자여야 하는가?
‘용서할 수 없어.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겠어.’
기선 제압에 실패한 올리비아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소파에 놓인 서류 봉투를 들었다.
“좋아. 어디 한번 볼게.”
문서에는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 마법학교 5대 명문 중 서열 4위. 전체 특수 목적 학교 중 서열 11위. 얼간이치고는 꽤나 올렸네. 개교했을 당시에는 정말로 못 봐 줄 꼴이었는데.”
“운이 좋았지. 좋은 제자들이 많았어.”
올리비아는 능글맞은 알페아스의 머리를 사제 관계였을 때처럼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얘기는 들었어. 시로네라는 아이가 있다지?”
“많이도 조사했구먼. 처음부터 승낙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건가?”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내가 궁금한 건 초반에만 치고 올라왔다는 거야. 지난 10년 동안의 성과만 놓고 보면 5대 명문에서 간당간당한 수준이야.”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학교의 순위는 중요하지 않아.”
“하하! 여전히 고리타분하네.”
올리비아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내밀었다.
“좋아. 6개월. 내가 맡아 주지. 지금보다 훨씬 명문으로 만들어 주겠어.”
“호오? 그거 듣던 중 불길한 소리군. 그래 주면 나야 고맙기는 하지.”
“대신에 조건이 있어.”
알페아스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처음부터 대가 없이 부탁을 들어주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내가 왕립 마법학교 교장일 당시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있어. 그 아이들을 당신 학교에 전학시켜 줘. 여기 프로필이야.”
알페아스는 대답을 미루고 프로필부터 받았다.
17세의 동갑내기 소년 둘과 소녀였고 왕국 최고의 명문인 왕립 마법학교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성적이었다.
세 장의 프로필을 하나씩 넘기며 살피는데 마지막 장에서 알페아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단테? 내가 알고 있는 그 단테가 맞나?”
올리비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당신 학교에 다니기에는 과분한 학생이지. 하지만 이제 교장은 나니까 뭐.”
알페아스는 바보처럼 눈만 깜박거렸다. 천하의 올리비아가 이 정도로 전력투구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올리비아가 알페아스를 가리키며 선언했다.
“에어하인 단테 외 2명을 전학시킨다. 그게 바로 내 조건이야.”
@
험지의 산속을 5명의 마법사가 질주했다.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구성된 젊은 파티였고 모두 공인 자격증을 취득한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었다.
급습하는 장소는 수도 인근의 산맥에 터를 잡은 산적들의 아지트로, 현상범 랭크B라는 간과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산적단을 궤멸시키면 명성은 물론 보상도 받을 수 있지만 오늘 그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평소와 달랐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벌써 죽은 거 아냐?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애들인데.”
“흥! 상관있겠어?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닌데. 너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그 자식들이 얼마나 우리를 무시했는지. 왕립 마법학교면 다야?”
“맞아. 아무리 철이 없어도 현역에서 뛰는 공인 마법사를 무시하다니. 요즘 애들은 너무 건방지다고. 한번 크게 데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막상 아지트에 도착하자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의아한 심정으로 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40명에 달하는 B급 산적들이 전부 바닥에 퍼져 있었다.
원탁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그들을 반겼다.
“어라? 늦었네요? 한참이나 기다렸잖아요.”
용병들은 할 말을 잃었다. 출발선에서 고작 10분을 늦게 출발했을 뿐이다. 그 안에 B급 산적단을 궤멸시키는 것은 학생 수준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 너희는 도대체?”
“별것도 아닌 일에 정색을 하고 그러시나? 어른들이 쪽팔리게. 킥킥!”
마법사답지 않게 키가 크고 근육이 붙은 체구의 소년이 웃음을 터뜨렸다.
왕립 마법학교 학생인 보니파르 클로저였다.
구릿빛 피부에 얼굴은 샤프했고 뒤로 넘긴 흑갈색 머리는 고슴도치처럼 일어서 있었다.
“깔깔깔! 며칠 전에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겁나서 일부러 늦게 온 거 아냐?”
고양이를 닮은 소녀, 빅터 사비나가 눈웃음을 치며 용병들을 조롱했다. 키는 또래에 비해 작았으나 발육은 왕성했고 허리 라인은 밧줄로 동여맨 듯 잘록했다.
용병들은 이를 악물었다. 현직 마법사가 학생에게 패했다는 것은 굴욕이었다. 무엇보다 사실이 알려지면 용병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슬슬 인정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우리가 이겼죠?”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인 에어하인 단테가 말했다. 비구름을 연상시키는 회색빛 머릿결에 외모는 사나우면서도 지적으로 보이는 미남자였다.
용병들은 고개를 숙였다. 현직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판과 업적이다. 학생에게 패배한 마법사를 어떤 의뢰인이 돈을 주고 고용하겠는가?
2. 개학을 기다리며 (4)
“우리가 졌다. 부탁인데 이번 일은 비밀로 해 다오.”
“하아? 언제는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서 우리를 퇴학시키겠다더니?”
굴욕감에 몸이 떨렸지만 용병대의 리더는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미래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
“미안하다! 한 번만 도와 다오! 너도 마법사가 될 거잖아. 그래도 명색이 선배인데 밥그릇까지 깨트릴 필요는 없잖아?”
단테는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용병들은 소년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결국 뒤편에 서 있는 네 사람까지도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사정을 봐 다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
비로소 만족한 단테가 리더의 어깨를 짚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방학 중에 무료해서 잠깐 놀아 본 것뿐이니까. 그나저나 너무 방심한 거 아니에요? 공인 자격증은 어떻게 땄을까 몰라?”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용병들은 굽혔던 허리를 반사적으로 세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딴청을 부렸다.
“어머! 벌써 끝났네. 아아, 아쉬워라.”
곱슬곱슬한 단발머리를 뺨에 붙인 여성이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은 20대 초반처럼 어려 보였으나 실상은 서른이 넘은 나이였다.
“당신은…… 킬라인?”
교사회 예하의 학술지 편찬부에 근무하는 여자로 전국의 마법학교를 돌아다니며 르포를 작성하는 특파원이었다.
그녀가 쓰는 기사는 이라는 잡지에 수록되는데, 전국 마법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에 실리기만 하면 유명세를 타는 건 시간문제였다.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역시 멋지게 해냈군요. 단테, 이 참담한 현장이 모두 당신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건가요?”
킬라인이 과장된 몸짓을 선보이자 동행한 사진사가 광학 사진기를 찍었다.
용병들은 낯부끄러운 상황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에게 잡지는 한때의 추억일 뿐이지만 전국에 배포되는 메이저 잡지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추태가 기사로 실린다면 가문의 망신이었다.
“아니에요. 어떻게 선배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물리칠 수 있겠어요? 실전 훈련을 하고 싶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많이 배웠고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단테가 돌아보자 눈치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마법사들이 얼른 낯빛을 고쳤다.
“하하! 이 정도야 뭐. 그래도 대단하더라. 역시 왕국 최고의 스타답던데?”
킬라인이 눈을 빛내며 돌아섰다.
“어머! 단테를 알고 계시나요? 역시 왕국이 자랑하는 유망주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아직 학생인데 일선의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