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84
어쩌면 먼 훗날, 그의 존재가 크나큰 변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올드는 긴급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거의 한 달 가까이 깨어나지 못했고, 깨어난 뒤에도 기다리는 건 예민해진 신경을 타고 전해져 오는 극심한 고통뿐이었다.
“좀 괜찮냐?”
가올드는 침상에 누운 채 두 주먹을 쥐고 부들거렸다.
치미는 고통을 받아들이느라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쉬어라.”
세인은 몸을 돌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가올드가 그나마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된다.
“꿈을 꿨다.”
가올드의 말에 세인의 걸음이 멈췄다.
“미로에게 가는 꿈을 꿨어.”
어쩌면 먼 훗날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야기.
세인은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물었다.
“그래? 어떻든?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든?”
가올드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난 반드시 갈 거다. 약속 지켜라.”
“너를 위해서가 아니야. 미로를 위해서다.”
그것이 세인의 마지막 문병이었다.
가올드는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고통은 온 신경을 괴롭히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졸업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하려면 일단 마법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올드는 정복을 입고 요르 교회를 찾았다.
원형의 상징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그때 뒤에서 요라가 다가왔다.
“가올드, 오랜만이구나. 몸은 괜찮니?”
“…….”
요라는 대답이 없는 가올드의 등을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신성을 저버린 신도의 이야기는 소문처럼 흘러 다녔다.
그 신도가 가올드라는 것은 자명했다.
“가올드, 신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뜻이 있는 법이야.”
가올드는 그제야 요라를 돌아보며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요라님. 저는 절대로 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요라를 지나쳐 출구로 향하는 가올드에게서 툭 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목에 걸린 펜던트를 붙잡고 가슴팍을 쥐어뜯는 가올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손톱이 살을 파먹으며 핏물을 끌어냈다.
무지막지한 고통에 인상이 구겨지지만, 반대로 입가는 귀밑까지 찢어졌다.
‘신 따위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
세인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시로네 일행은 말없이 타오르는 횃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마치 가올드의 마음과 같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가올드는 신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았다. 강해지기 위해서였지. 한계치가 없기에 적응도 불가능해. 그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훈련을 한다는 건 가히 미친 짓이었다.”
시로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만약 통각이 10배만 늘어난다고 해도 마법 훈련은커녕 걷기조차 싫어질 터였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하지. 놈은 그걸 해냈다.”
“고통을 극복한 건가요?”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통이란 것 자체를 받아들여 버린 것이지.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미로를 구할 수 없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 거야. 천 배의 고통이든 만 배의 고통이든, 가올드에게는 그저 신경을 타고 들어오는 통증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로는 달라. 그것은 일종의 현상이자 사건. 불가능한 것을 꿈꿀 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지옥의 문은 열리게 되는 모양이야.”
시로네는 세인의 말을 곱씹었다.
불가능이란 인간이 만든 말이건만, 또한 인간은 그것을 욕망한다.
사람의 마음이 지옥이다. 시로네는 비로소 줄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펑.
아련한 폭음이 밤하늘 저편에서 울려 퍼졌다.
라의 부름 (1)
“푸우!”
철벽의 라이더가 숨을 불어 내쉬었다.
잠시 후 그의 전기적 방어벽이 유리창이 깨지듯 와장창 터져 나갔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사선으로 핏물이 새어 나오더니 상체가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방어 마법은 됐고.’
가올드는 근육을 당겨 빠진 어깨를 끼워 넣었다.
통각이 예민한 자에게는 무지막지한 고통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오직 주위를 훑고 있었다.
케이지 B팀의 잔상이 폭풍처럼 휘몰아쳤지만 명백히 의도된 움직임이었다.
‘무엇을 노리고 있지?’
아직까지 딜러들의 강력기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물론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을 터.
‘터미네이터에게 걸어 보는 건가?’
아마도 거의 정확할 것이다.
‘케이지급에 규정외식자를 2명 이상 넣지는 않지. 그렇다는 말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뜻.
케이지 B팀은 완벽하게 잡을 수 있는 한 번의 공격을 노리고 있는 것이고, 그것만 막으면 승기는 넘어온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가올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가올드의 손이 금속 마법사 로체를 겨누었다.
퍼퍼퍼퍼퍼퍼펑!
에어 건이 폭발적으로 튀어 나가자 반격의 엄두조차 내지 못한 로체가 전방에 금속의 장벽을 만들었다.
카카카카카카카캉!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강철의 표면에 공기의 탄흔이 생겼다.
“크으으으!”
로체는 전능을 타고 두들겨 들어오는 진동에 이를 악물었다.
장벽의 두께를 계속해서 키우고 있지만 공기의 탄환은 성난 맹수처럼 철판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찰흙처럼 짓눌린 금속 장벽이 마침내 파괴되면서 로체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렸다.
에어 건이 두께 20센티미터의 장벽을 뚫고 들어간 시간은 불과 1초.
하지만 그 1초는 로즈에게 가올드에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이것으로 됐다.’
향기 마법 플레이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향기 마법 최상위에 속하는 마법으로, 인간의 뇌를 자극하여 생애 가장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가올드의 얼굴이 잔혹하게 일그러졌다.
가뜩이나 취약한 감정적 여파가 방만하게 커지면서 그를 괴롭혔다.
“크으으으!”
마음속의 지옥문이 열리고 무지막지한 극기가 펼쳐지며 사위가 지옥으로 변했다.
가뜩이나 난폭한 맹수를 더욱 날뛰게 만든 셈이지만 로즈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차피 가올드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흥분하게 만들어 인지적 사각을 만든다.
그 사각만이 가올드를 제압할 유일한 빈틈이었다.
“로체에에에!”
하지만 로즈에게는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알고 한 일이 아니기에 가올드에게는 행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죽은 자가 로체라는 것은 완벽한 급소였다.
로체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타르반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그 감정은 가올드의 분노와 충돌하여 새로운 간극을 탄생시켰다.
“컥!”
로즈의 목이 바람의 칼날에 뎅겅 잘려 나가고, 가올드의 뒤집어진 흰자가 타르반의 동선을 따라잡았다.
‘끝났군.’
호르킨은 작전과 별개의 움직임으로 가올드에게 튀어 나갔다.
타르반은,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마법사는 젊고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다.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것으로 끝내 주게.’
호르킨은 타깃의 반응과 상관없이 기폭 마법을 발동했다.
스스로를 폭발시켜 일시적인 마력 동화 효과를 일으키는 수어사이드가 시전되면서 강력한 폭발이 일대를 휩쓸었다.
배틀 아레나처럼 스케일이 줄어든 게 아니기에 반경은 어마어마했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난 케이지 B팀은 폭연이 떠다니는 장소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호르킨의 메시지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케이지 B팀의 최연장자로서 수많은 마법사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던 사람.
“영감탱이가…….”
타르반은 이를 악물었다.
본래 자신이 수행해야 했을 임무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전술사였다.
수어사이드의 위력은 타르반의 카이저 블래스트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으니까.
“죽었을까?”
성녀 모리악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폭연이 사라지고 시커먼 형체가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가올드가 찝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살았군.”
이것으로 임무는 실패로 끝났다.
전략을 구사할 로즈가 죽었고, 딜러인 로체와 호르킨을 잃었다.
“남은 건 한 가지군요.”
통신 마법의 웨이건이 말했다.
“끝까지 갈 것인가,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호르킨의 의지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끝까지 간다.”
타르반의 말에 곤충 마법사 빔이 나섰다.
“상부에 보고는 해야 돼. 전부 갈 수는 없어.”
“아무나 골라. 나는 남을 테니까.”
웨이건이 손을 들었다.
“제가 갈게요. 저는 전투에 별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어차피 가올드를 상대로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테지만 웨이건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케이지 B팀에 들어올 정도로 자존심 강한 마법사.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사는 것을 택해 준 것만으로도 남은 일행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럼 가 볼까?”
남은 자들이 몸을 돌리는 그때 가올드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더 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음을 그도 깨닫고 있었다.
“멋진 팀이었다. 너희치고는 말이야.”
타르반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정말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수어사이드를 막을 정도라면 카이저 블래스트도 효과가 없다.
하지만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터미네이터니까.
“그만둬라.”
가올드가 몸의 긴장을 풀며 허리를 세웠다.
“놀이는 끝났어. 원하는 대로 실컷 해 줬잖아?”
“놀이? 놀이라고?”
타르반의 양손에 진동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가올드는 관심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너희는 돌아갈 수도 없어.”
케이지 B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통신 마법사 웨이건이 물었다.
“돌아갈 수 없다고요? 어째서죠?”
“너희, 협회에서 받은 메타게이트로 돌아갈 생각이었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전 마법협회장인 가올드 앞에서 기밀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아마도 미로의 시공은 사라졌을 거다. 그러니 메타게이트의 좌표도 교란되었을 거야.”
웨이건의 미간이 좁혀졌다.
천국의 군대가 인류를 위협할 수 없는 이유는 두 차원 간에 미로의 시공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끼어들어 정보를 교란시키기 때문.
따라서 시공의 주인인 미로를 제외하고는 천국의 어떤 존재도 미로의 시공에 걸린 암호를 풀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메타게이트는 고정 좌표값을 갖기에 미로의 시공이 존재하는 상태의 좌표를 통째로 기억한다.
하지만 가올드의 말대로 미로의 시공이 사라져 버렸다면 현재 기록된 좌표는 공좌표가 되어 버렸을 확률이 높았다.
“미로의 시공이 사라졌을 확률이 얼마나 되죠?”
성녀 모리악이 물었다.
물론 케이지 B팀이 그를 죽일 방법이 이미 사라진 이상, 가올드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하지만 메타게이트가 발동되는 시간은 고작해야 1분.
가올드의 말이 틀렸다면, 꼼짝없이 돌아갈 기회를 날리는 셈이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 하지만 80퍼센트 이상은 될 거다.”
“그렇게 높다고?”
케이지 B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미로는 대천사 카리엘의 손에 잡혀갔다. 창조의 대천사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겠지.”
미로가 천국에 있다.
새로운 사실에 모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미로의 시공이 파괴되었다면 천국의 군대가 지상에 온다는 얘기.
조만간 협회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늦는다. 분초를 다투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