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30
존재감이 옅어지면서 스피릿 존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물질 이하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시로네의 육체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네피림치고는 제법이구나.”
파이엘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제 너의 세상은 닫히게 될 것이다.”
파이엘의 눈이 졸린 것처럼 내려앉았다.
원래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시로네가 완전히 투명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허억!”
그 순간 시로네의 화신이 강렬한 빛으로 불타올랐다.
멸극의 폐안이 번쩍 열리고 시로네의 모습이 풍경에 새겨지듯 선명하게 나타났다.
다 꺼져 가던 화신을 순식간에 증폭시킬 수 있는 건 역시나 대천사 이카엘뿐이었다.
“시로네!”
“어딜 도망가!”
이카엘의 뒤를 쫓은 사티엘이 그녀의 목을 붙잡고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크윽!”
그런 다음 이카엘을 다리 사이에 놓고 상체를 숙여 짓누르듯이 목을 압박했다.
성광체가 광륜으로 펼쳐지고 분해의 능력이 가해지자 이카엘의 빛의 날개가 힘을 잃고 죽어 갔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힘을 사용한 데다가 조금 전 시로네의 화신까지 되살렸기에 이카엘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카엘! 크윽!”
시로네가 달려가려고 했으나 멸극의 폐안이 또다시 닫히면서 시로네를 옭아매었다.
“파이엘! 죽여 버려! 나는 이카엘을 소멸시킬게!”
하나의 개체를 소멸시키는 데에 최적의 효율을 보이는 멸극의 폐안이지만 파이엘의 정신 또한 세상으로 흩어지기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사티엘이 이카엘을 막아 줌으로써 모든 단점은 상쇄되었다.
“사라져! 천사의 수치!”
사티엘의 눈에는 인간이 물리적으로 비축할 수 없는 유구한 세월의 원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으면……!’
“끄으으으!”
분해되어 가는 이카엘을 바라보던 시로네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법을 시전했다.
“이카에에에에엘!”
사티엘의 몸에 샤이닝 체인이 감겼다.
파이엘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두 눈으로 봤던 그녀는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빛의 체인은 그녀에게 어떠한 구속력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관통해 버릴 뿐이었다.
“크으으윽!”
시로네는 원통하게 이를 악물었다.
멸극의 폐안이 절반 이상 닫히는 바람에 마법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안도의 표정을 지은 사티엘은 다시 독한 눈빛으로 이카엘을 짓눌렀다.
꼴도 보기 싫은 얼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증오하는 이 얼굴!
“소멸시키기 전에 망가뜨려 주지!”
사법 광륜-노스탤지어.
퍼퍼퍼퍼퍼퍽!
이카엘의 얼굴에서 빛의 파편이 튀어 올랐다.
부숴 버린다.
그녀의 권위도, 아름다움도, 증오스러운 기억도, 전부 분해시켜 버린다!
“으아아아아!”
쾅!
사티엘의 관자놀이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어?’
뒤늦게 몸이 밀려 나가는 것을 깨달은 사티엘은 땅을 끌며 중심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눈에 의아한 감정이 깃들었다.
기습을 당했다고는 하나 대천사의 육체를 밀쳐 낼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천국에 그리 많지 않았다.
“카리엘? 당신이 어째서……?”
카리엘이 흥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티엘이 알기로 그의 증오 또한 자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도움을 받은 이카엘조차 말문이 막힌 듯 카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심정을 카리엘은 이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도 왜 사티엘을 공격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카엘을 소멸시키겠다고.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 마음을 던진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끝장내겠다고 날아온 참이었다.
어쩌면 정신력이 약화된 탓일까?
사티엘의 노스탤지어를 본 순간 성광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카리엘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이카엘과 눈을 마주쳤다.
비록 온전한 의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를 구했다.
증오하는 이카엘.
하지만 지금 카리엘이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한 기대감이었다.
“마음은 모순적이다, 라는 것인가요?”
우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실 이타심이란 우주의 대원칙인 적자생존의 기준에서 봤을 때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이타심은 무엇인가? 이타적인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마치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증오할 자격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야.”
간도는 생각했다.
나는…… 우오린을 증오하고 있을까?
“으아아아아아!”
시로네의 비명 소리에 모든 천사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단지 한 인간의 절규에 주목한 게 아니었다.
방만하게 퍼져 있던 시로네의 정신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듯 특정 형태를 잃고 붕괴되고 있었다.
“시로네!”
이카엘이 카리엘을 지나쳐 시로네에게 달려갔다.
증폭의 극단적 형태인 폭발의 말미.
여기에서 멈추지 못하면 시로네의 정신은 갈기갈기 찢어져 다시는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크으으으으!”
시로네는 머리를 부둥켜 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마치 뇌가 찢어지는 것처럼 생각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모탈 펑션을 개방했을 때의 고양감과는 차원이 다른 난폭함이었다.
‘안 돼! 아직은 안 돼!’
어떻게든 집중을 유지하려고 해 보지만 이미 정신의 크기는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이카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아타락시아를 발동했다.
다시 한 번 화신의 힘을 증폭시켜 폭발을 유예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밑이 터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셈이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5분만이라도, 아주 조금만이라도 시로네를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었다.
‘어째서…….’
카리엘은 망연자실하게 서서 곁을 지나간 이카엘을 시선으로만 쫓았다.
그녀는 자신을 보아 주지 않는 것일까?
“파이엘! 시로네를 죽여!”
사티엘이 표독스럽게 돌진하며 소리쳤다.
이카엘이 시로네를 위할수록 사티엘의 분노 또한 더욱 커질 뿐이었다.
‘내 것이어야 했어! 저 모든 게 내 것이어야 했다고!’
카리엘은 이카엘의 배후를 노리는 사티엘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법광륜-시뮬라르크.
압축된 가죽 주머니에서 치즈가 새어 나오듯 수많은 기계 부품들이 공간을 비집고 튀어나와 동시에 조립되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라락!
3만 6천 개의 공정을 순식간에 완료한 끝에 나타난 물체는 인간의 청동 방패 크기에 표창처럼 8개의 칼날이 달린 무구였다.
시뮬라르크-멈추지 않고 회전하며, 회전할수록 강해지며, 강해질수록 단단해지며, 단단해질수록 빠르게 회전하는 것.
창조의 대천사가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조잡한 이름의 물체였으나 그만큼 상황은 다급했다.
노스탤지어-피직스 붕괴.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메커니즘을 깨달은 사티엘은 눈을 부릅뜨며 능력을 발동했다.
무기가 덜컥 흔들리더니 완제가 기관으로, 기관이 구성물로, 구성물이 부품으로 빠르게 분해되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마치 불꽃도 폭음성도 없는 폭발처럼 보였다.
세부 부속물의 단계에서 사티엘을 지나친 무기는 다시 합금에서 광물로, 광물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원자로 퍼져 모습을 감추었다.
“흥!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여태까지 카리엘과 붙어 본 적은 없지만 대천사 중에서 전투력 최하위를 상대로 밀릴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이카엘이 시로네를 가로막자 파이엘은 결국 멸극의 폐안을 유지하기를 포기했다.
“이게 무슨 꼴인가, 천사장이여.”
대천사들끼리 얽히고 얽혀 모든 게 심란해진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로네. 그리고 거핀.
인간이라는 변수만 끼어들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끝을 내야겠군.”
텅!
땅을 박찬 파이엘의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사티엘과 싸우고 있는 카리엘을 그대로 짓밟으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카, 카리엘?”
허리가 부러진 상태로 땅에 파묻힌 모습에, 여태까지 치열하게 싸우던 사티엘도 표정을 풀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아니, 한편으로는 함께 이카엘을 적대하던 동지애를 느낀 적도 있었던 그녀였다.
“권위를 잃은 천사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 말을 남겨 두고 파이엘이 자리를 떠나자 가슴이 박살 난 카리엘의 상태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카리엘…… 괜찮아?”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하던 사티엘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아마도 너무나 오랜만이라 그럴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카리엘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행복했던 그때처럼…….
전심全心 (4)
“카리엘…….”
사티엘은 믿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녀의 기준에서는, 대천사 중 가장 지성미가 넘치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미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카리엘에게서는 더 이상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파이엘에게 우악스럽게 짓밟히면서 그의 허리는 완전히 반대로 접혀 상체에 깔렸다.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이 있었고, 가슴은 소멸의 기운으로 완전히 파헤쳐진 상태였다.
그렇게 반신만 땅 위에 드러낸 채로 하늘을 보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몰골일 터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전에 볼 수 없을 만큼 깊었고 또한 평온하기만 했다.
‘아, 그렇구나.’
허리가 부러진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파이엘의 소멸의 기운은 쇠약한 카리엘의 존재감을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어차피 이대로 오래 유지하기는 그른 상황.
하지만 존재의 말미에 되찾은 평온은 여태까지 이카엘을 증오했던 긴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달콤했다.
‘처음부터…… 다 줘 버렸으면 됐을 것을.’
이토록 미워할 것을 알았다면, 수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증오심에 낭비할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것을.
‘뭐, 이제는 상관없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줄 알았다. 어떤 논리로도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카엘을 구한 순간 증오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증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그녀를 구했다는 자기도취와 진한 아쉬움뿐이었다.
“카리엘, 괜찮아?”
사티엘의 목소리에 카리엘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전쟁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그는 대천사로서의 역할을 생각했다.
“이카엘을 소멸시키면 안 돼.”
사티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무슨……!”
“나는 곧 소멸할 거야. 알고 있잖아.”
사티엘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메타트론과 메티엘이 소멸했고 카리엘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만약 이카엘마저 소멸한다면 대천사 4명이 사라짐으로써 율법의 시소는 사탄에게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사의 레벨에서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사탄을 막아 낼 수가 없다.
“심정은 이해해. 나와는 다르지. 당신에게는 마음을 던질 수 있는 대상조차 없으니까.”
사티엘은 그 사실조차 증오스러웠다.
“마음? 고결한 정신체인 천사가 마음 따위에 휘둘릴 것 같아?”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