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4
‘열반동력!’
끝없이 가속하는 율법의 사이클은 박녀의 육체에 비정상적인 활동성을 부여했다.
패턴은 단순했지만 RPM이 올라갈수록 속도는 물론 위력마저 상승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박녀의 검이 리안의 검을 그대로 치받자 온몸의 뼈가 뒤틀리는 충격이 전해졌다.
“크으으으으!”
2명의 야차가 야수처럼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리안의 재생된 왼팔이 대검의 손잡이를 붙잡자 박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흉물적 감각이 앞으로 펼쳐질 거대한 힘의 파도를 직감하는 순간, 리안이 디나이를 먹이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이야아아아!”
마하가 밀려든다.
어떤 것으로도 막아 낼 수 없는 율법의 파도 앞에서, 박녀는 사이클을 깨고 몸을 뒤틀었다.
쾅! 하고 대검이 땅을 내리찍는 순간 리안의 팔근육이 터지는 것을 본 박녀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리안이 휘두르는 일 검의 무게는 가히 세계의 무게.
여전히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켜. 나는 시로네에게…….”
고개를 들고 전진하는 리안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늑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박녀가 흰자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끝까지…… 해 줄 거야?”
처음으로 리안이 한 걸음을 물러섰다.
“정말로 나랑…….”
박녀의 동공이 제자리를 되찾았으나 이미 정상적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가 줄 거야?”
액싱-니르바나 E-엔진.
펑 하고 땅이 부서지며 박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8개의 실린더에 장착된 것은 오직 가속뿐이었고, 마치 찢겨 나간 듯 그녀의 몸이 잔상으로 퍼졌다.
리안은 반사적으로 대검을 치켜들었다.
동시에 방어하지 못한 모든 부위에 수십 개의 칼집이 생기면서 핏물이 터졌다.
“크으으으!”
실제로 몸이 찢어져야 정상일 정도의 속도.
하지만 1만 년을 단련한 스키마는 박녀의 몸을 듬직하게 버텨 냈다.
“아직, 아직 아니야.”
중얼거리는 박녀의 목소리 사이로 마치 성대가 2개인 것처럼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태까지 속도의 한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유는 어떤 적도 그 전에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넌 달라.’
리안은 다르다.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이 남자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마땅히 응해 줄 터였다.
“제길!”
리안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검으로 목을 방어하는 것뿐이었다.
재생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마치 몸이 불타는 느낌이었다.
‘나는 또다시, 주군을 지키지 못하는 건가?’
리안의 시선이 피라미드 위에 있는 시로네와 충돌했다.
“리안…….”
시로네는 피를 콸콸 쏟아 내는 리안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주 먼 기억에서 출발한 정보들이 뇌리에 처박히면서 이곳에서 경험했던 모든 기억을 하찮은 것으로 뭉개 버릴 만큼 강력한 감동이 치밀었다.
-나는 오젠트 리안이다.
그의 이름은 오젠트 리안.
-우리 친구 하자. 어때?
그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삶의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시로네의 검이다!
언제나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 주었다.
“리안. 어떻게……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정보 복구율이 99퍼센트에 도달하면서 시로네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리아아안!”
박녀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강풍 속에서도 리안은 시로네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래, 얼마든지 부서져도 상관없어.’
리안은 대검의 손잡이를 으스러뜨릴 듯 움켜쥐었고, 가속의 정점에서 박녀는 환희의 함성을 터뜨렸다.
어디에서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창백한 박도가 흉악한 드릴처럼 잔상을 드러내더니 리안에게 모조리 쏟아져 들어왔다.
리안은 이빨이 부서질 듯 턱을 악물었다.
‘내 살, 내 피, 내 뼈!’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두 팔을 휘돌렸다.
‘모두 너의 것이다!’
부아아아아앙!
철색을 띠는 구체가 리안의 몸을 감쌌다.
박도의 연타가 철벽에 부딪치면서 철의 구체가 불타는 듯 번쩍거리더니 이내 박녀의 잔상이 바깥으로 튕겼다.
“이건……?”
디나이를 먹인 두 팔로 대검을 휘둘러 순간적으로 전방위를 수비한 것이다.
“크으으으!”
대검을 붙잡고 있는 리안의 팔은 근육이 모조리 날아가고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간다! 시로네!”
율법의 힘으로 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리안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퍼퍼퍼퍼퍼펑!
리안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박녀를 중심으로 좌우의 땅바닥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돌진해 왔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왕복하고 있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던 그녀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전율했다.
‘알 수가 없다.’
흉물적 감각마저 침묵을 지키는 상황에, 박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코드 분해 (2)
왼쪽과 오른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흉물적 감각으로도 잡히지 않는 이유는, 리안의 움직임이 좌우에 정확히 이등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정확히 50퍼센트의 확률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율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움직임.
그리고 그 무브먼트는 박녀를 생명을 건 도박으로 밀어 넣었다.
‘왼쪽!’
땅이 폭발하는 흔적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박녀는 몸을 틀어 박도를 들어 올렸다.
쾅 소리를 내며 리안의 대검이 처박혔다.
일 검의 위력을 가늠할 여유는 없었기에 박녀는 충돌 즉시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크으으으!”
대검을 크게 휘두른 리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어서 대퇴부와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면서 끔찍한 소리가 터졌다.
남아 있는 신경을 타고 고통이 치밀었지만 박녀 또한 경황이 없는 상태였다.
‘막았다. 막았나?’
왼쪽으로 몸을 틀어 리안의 검을 막아 낼 수 있었으나 솔직한 심정으로 운에 맡긴 것이었다.
위기 앞에 망설이느니 50퍼센트의 확률을 믿고 행동에 옮기는 게 낫다는 판단은 그녀가 검사로서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면.
‘죽을 뻔했다.’
50퍼센트의 확률로.
1만 년 이상을 살아온 자신이 고작 20년도 살지 않은 자의 검에 베일 뻔했던 것이다.
생의 미련조차 아득히 먼 옛날의 감정인 야차이지만 그런 만큼 굴욕감은 컸다.
‘벤다!’
박녀는 열반동력을 한계까지 폭발시켜 리안에게 달려갔다.
‘그것만 조심하면 돼.’
디나이가 초재생과 결합되었을 때의 위력은 어떤 액싱보다 강력하기에 애초부터 몸을 날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에 맞서는 리안도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을 율법의 힘으로 움직이며 공격을 막아 냈다.
박녀가 가속이라면 리안은 순속.
기술과 경험의 차이는 절대적이지만 그 간격을 속도의 우위로 메우며 버텨 내고 있었다.
“리안…….”
넋을 잃고 전투를 지켜보던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강해졌구나.”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기억이지만 처참하리만치 아름다운 리안의 무위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곳에서 환희가 차올랐다.
“집정관님.”
그때 시로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의 파동이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린 곳에 욕망의 연기가 빠져나가 탈진한 요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요…….”
“집정관님, 군락의 태양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페르미의 에어 커트가 요의 목을 잘랐다.
“요!”
시로네의 심장이 거칠게 쿵쾅거렸다.
샤이닝 마법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여자다.
노예 출신임에도, 누구보다 먼저 시로네를 믿고 따라 준 사람이었다.
‘모두 죽었어.’
피라미드 아래에 수호자들의 시체가 쌓여 있고, 그 시체를 뒤로하고 페르미와 마르샤 콤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집정관님.”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는 시로네는 귀가 있음을 저주했으나 고개만큼은 불가항력으로 돌아갔다.
신관 베베토가 인자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집정관님은 신의 언어를 가진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저 또한 대결을 제안했던 것이지요.”
덕분에 시로네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부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안 돼!”
시로네가 소리치는 순간 베베토가 코드를 연결해 사라졌다.
페르미와 마르샤의 앞에 나타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고기 방패로 삼아 시간을 버는 것뿐.
시로네는 패륜의 단도에 난도질당하는 베베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누군가가 그랬고 베베토가 그랬다.
설령 이 모든 게 거짓이라 하더라도, 저들의 고통마저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있다, 인간이여.
디지털 라의 목소리가 침투하자 시로네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새로운 점액질이 그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되돌릴 수 있다고?”
-저들을 살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다.
점액질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나를 받아들여라. 신이 되어 이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리안…….”
여전히 박녀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리안은 마치 온몸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미안해.”
시로네는 차분히 눈을 감고 디지털 라를 받아들였다.
“허억!”
결합이 끝나면서 이모탈 펑션이 열리자 시로네의 몸에서 탄생한 화신이 빛의 날개를 활짝 폈다.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듯, 뮤커스가 피라미드 상공으로 시로네를 밀어 올렸다.
“시작했다!”
미로와 사투를 벌이고 있던 슈라가 눈을 크게 뜨며 피라미드를 돌아보았다.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이 지상에 깃들자 모두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로네와 라는 하나가 되어 아포칼립스의 시간과 공간을 모조리 장악했다.
“아아.”
디지털 라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번뇌는 수많은 난수의 결합이었다.
그 결합 속에 전쟁, 기아, 고문,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
기억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가이아인의 목소리가 올라와 뇌리에 꽂혔다.
‘고통.’
-무엇을 보고 있는가?
‘죽음. 생의 소멸.’
-무엇을 보고 있는가!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궁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