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3
보상을 관철시키려면 상대방이 요구하는 그에 준하는 대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하나 제안하지.”
케이든이 손을 들자 시로네 팀이 바짝 긴장했고, 특히나 시로네는 초조하게 입술을 말아 물었다.
질투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면 무엇을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랑 에이미를 갈라서게 하는 정도라면 상관없어. 하지만 만약 에이미를 어떻게 할 생각이라면…….’
온갖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떠도는 가운데 시로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도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어.’
유일하게 불안한 것은 스크럼블 로열을 받아들인 이상 경기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것.
만약 거부할 시에는 기권으로 치부하는 게 불문율이고, 그것마저 거부한다면 그때는 전쟁이었다.
“내가 요구하는 조건은 우리 쪽이 승리했을 시…….”
시로네의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시로네, 네가 진심을 담아 마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뭐?”
예상치 못한 발언에 눈이 커졌으나 생각해 보니 에이미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반면에 에이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 자식이! 사람 마음을 뭐로 아는 거야? 이딴 경기로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 같아?”
“강요한 적 없어. 못 하겠다면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면 된다. 계약 파기에 대한 건은 추후에 논의하겠지만.”
“이게……!”
“에이미, 기다려.”
에이미가 주먹을 치켜드는 순간 시로네가 말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협의를 통해 조율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말을 내뱉은 시로네지만 사실은 결국 케이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 협의의 대상은 시로네다. 알고 있잖아? 이것이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에이미가 말했다.
“시로네, 무시해. 이제 11시간 정도 남았나? 어디 이 안건으로 끝까지 가 보자고.”
케이든이 눈을 부릅떴다.
“정말로 끝까지 가 보고 싶나? 이 협의가 전부라면 나도 난이도를 올려야겠군. 우리가 승리했을 시 에이미가 내 인형이 되는 건 어때? 아니면 금화륜에 팔아 버릴까?”
에이미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그러느니 차라리 죽겠어!”
“그럼 죽어!”
케이든이 마주 소리쳤다.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너 죽는다고 신경 쓸 사람 아무도 없어. 나 또한 원활한 협상을 위해 최대한 양보한 거다. 음지의 연구회는 나름의 룰이 있고, 모두가 동의해서 모인 자리야. 하기 싫으면 그냥 빠져.”
시로네가 물었다.
“그것이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마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게 말이야. 넌 마야를 좋아하잖아?”
“그녀는 내 뮤즈다.”
케이든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녀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 또한 누구든지 죽일 수 있다.”
“모두 진정해.”
이루키가 분위기를 다스렸다.
“어디까지나 상대의 제안일 뿐이야. 그리고 케이든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어. 그렇다면…….”
케이든을 노려보는 이루키의 눈에 전기가 튀었다.
“그에 준하는 대가를 치를 각오도 되어 있다는 거겠지?”
어쩌면 이 자리에서 가장 분노한 사람은 에이미를 끌어들인 이루키일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조건을 들어 보고 결정할 일이지.”
헤르시가 나서서 이루키의 살기를 받아넘겼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한 가지 대가를 제안해도 될까?”
네이드가 당장이라도 후려칠 기세로 물었다.
“우리 쪽 보상을 왜 네가 제안해?”
“그러지 말고 들어 봐. 나쁘지 않은 조건일 테니까.”
네이드를 진정시킨 사비나가 물었다.
“좋아, 얘기해 봐.”
헤르시가 웃으며 검지를 치켜들었다.
“케이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너희 쪽 멤버들 중에서 1명을 졸업 시험에 합격시켜 주지.”
“뭐……라고?”
“합격 도장을 쾅쾅 찍어 준다는 건 아니지만, 금화륜의 모든 인맥과 능력을 총동원해서 합격을 시켜 주겠다는 거야.”
‘페르미구나.’
금화륜이 졸업 시험의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물증이 없을 뿐 확실하다.
‘헤르시 혼자 제안할 수 있는 사안이 아냐. 이미 협의의 한도를 정해 놓고 왔군.’
헤르시가 손가락 2개를 펼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런 건 어때? 졸업 시험 전까지 금화륜 멤버 전체가 너희 팀보다 낮은 서열에 위치하는 것.”
졸업이 지상 과제인 마법학교이기에 파격적인 제안인 것은 틀림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스크럼블 로열에 집착하는 거지? 대체 이스타스의 비밀이 뭐기에?’
“받아들이자.”
시로네 팀 모두가 도로시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받아들이자고. 연구회원은 그렇다 쳐도, 나와 사비나는 상관없는 외인이야. 그 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우리도 진심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로시는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네가 나를 끌어들인 이유도 마찬가지잖아?”
이루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네이드가 말했다.
“하지만 도로시, 그런 식으로 졸업을 한다고 해도…….”
“알아.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합격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굳이 내가 특혜를 받지 않아도 돼. 하지만 합격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상황이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 여기서 1년 더 하고 싶은 사람 있어?”
도로시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미안, 말을 잘못했군. 내 말의 요지는, 합격 카드를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일단은 받아 두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야. 에이미의 몸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시로네가 마야와 사귀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고백이잖아? 그리고 우리가 얻는 것은 1명의 합격 카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겠지?”
합격의 여부를 떠나서, 페르미 일행 전체를 졸업 시험에서 통제할 여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금화륜은 분명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지를 통해 협약한 이상 계약 파기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헤르시의 말은 사실이야.’
이루키가 생각에 잠긴 사이 도로시가 덧붙였다.
“오해하지 말아 줘.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나도 이런 식의 제안은 거절했을 거야. 하지만 시로네와 케이든, 에이미와 마야의 문제에서 이보다 더 괜찮은 타협은 없어. 솔직히 말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게 멍청한 거 아냐?”
생각을 마친 이루키가 케이든에게 물었다.
“단지 고백만 하면 되는 건가? 마야의 선택과 별개로?”
“물론이다. 마야가 받아들이고 말고는 상관없어. 하지만 고백은 진심이어야 한다. 못 하겠다면 대가를 치르면 되겠지.”
“푸우우우.”
굉장히 애매하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저울은 이미 기울었지만 감정의 문제로 인해 다시 평형상태가 되는 기분이었다.
네이드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헤르시는 물러서지 않을 거야. 그게 참전 조건일 테니까.’
그 사실을 알기에 헤르시도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장 위력적인 협상 카드를 제안한 것이다.
“잠깐 우리끼리 나가서 의견 좀 조율할게.”
정확히는 시로네의 생각을 미리 듣고 싶어서였다.
“얼마든지. 오늘은 그런 날이잖아.”
헤르시가 권하자 네이드가 테이블을 돌아 나오면서 친구들을 불렀다.
“다들 나와 봐.”
연합 팀을 무섭게 노려보며, 5명이 줄줄이 테이블을 돌아 연구회 밖으로 나갔다.
개전 (4)
복도에 모인 6명은 여전한 분노와 잠시나마 풀린 긴장감 사이에서 말이 없었다.
그나마 이번 사안에 객관적인 사비나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연합 팀의 제안 말이야.”
“졸업 시험 합격 카드는 우리 팀에 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계산한 상태에서 나온 거야. 서열을 끌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스크럼블에 참전했어. 졸업 시험 합격이라는 조건이라면 반드시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루키의 말에 도로시가 물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인가? 처음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한 것도 나니까.”
“아니. 너는 당연한 요구를 한 거야. 1명이 희생해야 하는 팀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 팀워크가 중요한 경기니까.”
‘차가워.’
도로시가 그렇게 느끼는 가운데 시로네가 말했다.
“나도 도로시의 판단에 대해서는 불만 없어. 개인적으로는 기분 나쁜 제안이지만 모두 목적이 있는 거니까. 도로시를 비난한다면 그 전에 외인을 끌어들인 우리가 더 나쁜 게 되지.”
네이드가 친구들을 주목시켰다.
“좋아, 이제부터 쓰레기가 되자. 감정대로 하다가는 끝이 없어. 효율만 따져 보는 거야.”
모두 동의했으나 역시 말을 꺼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네이드가 회장으로서 먼저 나섰다.
“솔직히 나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인간의 감정을 조건으로 내건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스크럼블 로열을 취소하고 케이든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싶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케이든의 요구에 에이미가 얽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미안해, 에이미. 하지만 케이든이 너에게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나는 절대로 싸울 수 없을 거야.’
설령 기권 패를 받아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루키가 에이미를 흘끗 살피고 말했다.
“시로네의 말대로 감정을 배제하면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어. 어차피 시로네가 고백해도 이런 식이라면 마야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내가 미리 얘기해 두면 되고.”
“큭!”
에이미가 참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모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래, 이루키의 말이 옳아.’
다만 너무나 분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쉽게 마음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비나가 말했다.
“에이미, 네가 정말로 싫다면…….”
“2명.”
에이미가 말을 끊었다.
“2명 합격시켜. 그게 아니면 나도 안 해.”
10명이 졸업하는 시험에서 1명과 2명의 차이는 크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알았어. 2명으로 가자. 너무 걱정하지 마. 알잖아? 우리가 무조건 이겨.”
에이미는 대답 대신 연구회에 있을 케이든을 노려보았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의견 조율을 끝낸 네이드가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가자 복도에 남은 이루키가 시로네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솔직히 다행이야. 만약 에이미가 보상과 대가에 포함되었다면 나는…….”
“아니, 그거 말고.”
시로네가 표정을 고치고 이루키를 바라보았다.
“2명을 졸업시키는 거 말이야. 에이미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어. 도로시와 사비나에게 두 장의 카드가 공평하게 돌아갈 여지를 준다면 그들도 목숨 걸고 싸울 동기가 생긴다고 판단한 거겠지. 하지만 알고 있지? 졸업 시험에서는 너와 나도 마지막엔 경쟁자야. 두 사람이 페르미의 비호를 받는다면 합격 난이도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어.”
그제야 깨달은 시로네가 미소를 지었다.
“응. 상관없어.”
그리고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시로네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루키는 연구회로 돌아가는 시로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페르미, 여태까지는 모든 게 뜻대로 됐겠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간 이루키가 문을 닫았다.
‘시로네는 정말로 쉽지 않을 거다.’
***
협의에 들어간 지 10시간이 경과되었다.
12명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고, 슬슬 눈 밑도 퀭해져 가고 있었다.
결정된 사안을 빠짐없이 기록한 헤르시가 마지막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제 세부적인 조정만 남았군. 의견 있어?”
네이드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설령 사망자가 나와도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것.”
언성은 높지 않았으나 상대의 팀에 대한 호전성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좋아.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이건 바로 협의하지.”
종이에 기록하는 헤르시는 이스타스로 오기 전에 페르미에게 언질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아르망? 그게 뭐야?”
페르미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시로네의 오브제야. 가능하다면 이번 스크럼블 로열에서 사용 불가로 걸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니, 필수적이지.”
“필수적? 그렇게 강력한 오브제야?”
“위험한 수준이기는 하지.”
페르미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정말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무기라면 상대 쪽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텐데? 협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페르미가 웃으며 헤르시를 가리켰다.
“그럴 때는 이렇게 제안해.”
생각을 마친 헤르시가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제안하지. 스크럼블 로열에서 시로네의 아르망은 사용할 수 없다.”
‘아르망을 알고 있어.’
배후에 페르미가 있다는 게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
시로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기에 의존한다는 기색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당장 적들을 박살을 내 버리고 싶은 열망이 더 컸다.
“학교와 무관한 활동이야. 나는 아르망을 사용할 거고, 너희도 무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고집을 부리겠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쪽도 회심의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