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96
제아무리 강력한 방어 마법이라도 전지를 취소시켜 버리면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르시 또한 캔슬레이션과 아르망 중에서 고민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배후에서 헤르시를 조종하는 페르미의 선택은 결국 아르망.
설령 에덴의 전략에 약간의 차질이 생긴다고 해도 아르망의 전투력을 막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에덴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 입만큼은 살아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스크럼블을 잡는 데에는 1초면 충분해. 그 안에 내 전지를 분석해야 하지.”
“1초라. 머릿속으로는 해외여행도 갔다 오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그때 섬광이 휘어져 들어오더니 에덴의 뒤편에 정확히 착지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늦었잖아.”
에덴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자 프링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안하군. 거리가 꽤나 멀어서.”
웃고 있는 이루키의 속이 타들어 갔다.
‘빌어먹을.’
졸업반 서열 3위 프링스와 방어 마법의 에덴이라면 스크럼블을 얻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에덴이 전보다 풀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이래도 할 수 있을까?”
‘이건 약속된 플레이야.’
이루키라면 초반에 간파하고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는 헤르시의 계산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빼지 못하는 이유는, 에덴에게 백색 카드를 더 이상 수집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6단계가 최고인 패의 조합에서 성자(○○)와 종교(○○○)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이루키의 뒤편에서 공간 이동의 소음이 밀려들더니 에이미가 착지했다.
약속된 플레이는 아니라도 같은 생각을 했음을 깨달은 이루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늦었잖아.”
“안 늦었어.”
천천히 일어서는 에이미를 프링스가 같잖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조력자를 잘못 선택했군. 화염의 에이미라면 나, 빙결의 프링스가…….”
에이미가 말을 끊으며 마스터 카드를 들었다.
“프링스, 캉.”
프링스의 머릿속에 전기적 신호가 흘렀다.
“에이미가 캉을 걸었습니다.”
1초 안에 캉과 파오를 결정하지 않으면 개패되는 상황에서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도착하기 전에 확인한 에이미의 패는 ⓇⓇ○이고 프링스의 패는 ●○●로 공화정.
‘자신 있게 캉을 걸었다는 것은 삼부회를 잡았다는 건가? 단정할 수는 없지. 내가 파오를 외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심리의 문제다.’
수많은 언어가 느낌의 영역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압축되어 뇌리에 처박혔다.
‘에이미가 삼부회일 확률은 33.3퍼센트. 무승부만 걸려도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야.’
심리를 배제한 확률의 승부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수치였다.
“캉.”
서로의 캉이 충돌하자 마스터 카드에 에이미의 랜덤 카드가 공개되었다.
○●○(삼부회).
“…….”
루루의 신호가 들어왔다.
“캉에서 패했습니다. 소지한 카드가 개패됩니다. 다음 스크럼블 소환 시까지 에이미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습니다.”
정적 속에서 결정을 내린 프링스가 검지와 중지를 맞대고 관자놀이에 대었다.
“그럼, 나는 이만…….”
“거기 안 서, 이 자식아!”
프링스가 순간 이동으로 멀어지자 에이미가 곧바로 쫓아갔다.
이루키는 두 사람이 떠난 방향을 확인했다.
‘무브먼트 대결은 박빙일 터, 마스터 카드를 빼앗기는 힘들겠지.’
에이미 또한 시로네 팀의 스트라이커라고 할 수 있지만 프링스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쨌거나 이제 다시 둘이 되었군. 붙어 볼까? 네 움직임이 빠를지 내 생각이 빠를지.”
에덴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만약 초반에 이루키를 만나게 되면…….
헤르시의 조언이 귓가에 맴돌았다.
-한 장은 그냥 줘 버려. 7일 동안 이루키와 접촉하지 않는 게 베스트야. 전지를 분석당하는 것보다 카드 한 장의 가치가 높지는 않으니까.
에덴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좋아, 양보하지. 하지만 두 번째도 이렇게 쉽게 뺏을 수 있을까?”
‘아마 어렵겠지.’
이루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면 연합 팀은 동선을 더욱 복잡하게 설계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에덴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합 팀은 이동 거리의 총합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거기서 파훼법을 찾는 수밖에.’
에덴이 공간 이동을 시전하여 사라지자 이루키는 스크럼블로 다가갔다.
그는 현재 두 장의 랜덤 카드를 수집했고 오픈한 결과는 ○●으로 무의미한 만패지만, 여기서 백을 선택하면 삼부회가 완성된다.
‘어차피 랜덤을 선택해도 삼부회를 잡을 확률은 50퍼센트나 되지. 게다가 내 패를 완전히 감출 수 있어.’
스크럼블을 랜덤 카드로 바꾼 이루키가 곧바로 오픈하자 흑색 카드가 나왔고 ●○●(공화정)이 완성되었다.
“하아, 난 머리는 좋은데 운이 없단 말이야.”
어차피 지금은 교전을 할 때가 아니기에 미련을 접은 그는 하늘을 향해 샤이닝 마법을 세 번 시전했다.
‘소집 신호다!’
교내에 퍼져 있는 시로네 팀 모두가 하늘을 확인하고 몸을 날렸다.
반응과 대응 (3)
***
알페아스 마법학교 남서쪽에 있는 폐쇄된 훈련장.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훈련장이지만 전장의 영역은 30년 전을 기준으로 하기에 장외 실격을 당하는 위치는 아니었다.
재래식 훈련 장비가 쌓인 곳에 이루키가 멈추자 팀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프링스를 쫓고 있었던 에이미가 씩씩대며 걸어왔다.
“아우! 진짜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네! 몸에 기름칠이라도 했나?”
이루키가 그녀를 맞이하며 말했다.
“좋은 플레이였어. 덕분에 에덴을 막아 낼 수 있었어.”
“삼부회를 잡아서 내가 간 거야. 패가 불리하면 역공을 당할 수 있으니까.”
도로시가 말했다.
“이루키가 포기한 스크럼블은 내가 모았어.”
연락할 수단은 전무하지만 좌표와 현황만 보고서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이었다.
“그럼 도로시는 네 장을 모은 거네?”
“응. 삼부회를 쥐고 있고, 마지막 카드는 아직 오픈 전이야.”
“지금 해 봐. 일단 패를 보고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으니까.”
도로시가 랜덤 카드를 꺼내 들고 말했다.
“오픈.”
흑이 나오면서 4단계 최강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
“나이스. 이거면 되겠어. 다른 참가자들의 마스터 카드에는 도로시의 현황이 ⓇⓇ●Ⓡ로 뜰 거야. 랜덤 세 장으로 최강 패를 맞췄다면 적극적으로 캉을 걸 수 있겠지.”
사비나가 말했다.
“문제는 에덴이야. 아마도 무한을 만들려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소집한 거야. 다음 차수부터는 스크럼블을 포기하고 에덴을 찾아. 찾으면 나에게 샤이닝으로 위치를 알려 줘.”
“괜찮겠어? 그건 우리 쪽에서 너무 손해잖아.”
“알아. 하지만 오늘만 버텨 보자. 도로시가 민주주의를 잡았으니까 캉을 걸면 적어도 적들 중에서 1명을 개패시킬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카드 수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아. 게다가 시로네도 아마 민주주의를…….”
이루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로네는 아직 안 왔나?”
“응. 좌표상으로 추측하면 여기서 정반대쪽에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아지트의 지형은 미리 익혔잖아. 공간 이동을 시전하면…….”
그때 훈련장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경계하며 돌아보는데 시로네가 피곤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시로네? 너 그 꼴이 뭐야?”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로 얼굴이 빨갰고 몸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말없이 친구들을 지나친 시로네가 장비 더미에 쓰러지듯 앉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늦었지? 미안.”
“어떻게 된 거야? 절벽에서 떨어지기라도 했어?”
“케이든이…… 캉을 걸지 않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는데 시로네가 퀭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미친 것 같아. 6시간 동안 계속 싸웠다고.”
친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계속 싸웠다고? 스크럼블은?”
“꾸준히 모으기는 했어.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나를 찾아내더라고.”
“헤르시의 능력이군.”
소나의 위치 파악은 계열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해 보니 어때? 부상당한 것 같은데.”
시로네는 이마를 만졌다.
“처음에는 검사라서 당황했어.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할 만한 것 같아. 물론 탐색전이라 더 붙어 봐야 알겠지만.”
케이든이 검을 쓰는 것은 졸업 시험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었기에 시로네의 말만 듣고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페르미 일행은 모두 프로급의 마법사다. 검으로만 상대했다면 조금 더 지켜볼 여지가 있겠군.’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에덴은?’
시로네 또한 적들의 전략을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막았어. 그리고 계속 막아야 하지. 일단 도로시가 민주주의를 완성했어.”
이루키는 작전을 설명했다.
“에덴은 현재 성자(○○). 우리 쪽에서 세 장만 가지고 있다면 만패가 아닌 이상 무조건 이겨. 단, 캉은 걸지 마. 어차피 그녀는 싸우지 않을 테니까.”
만약 그녀가 비폭력주의를 깬다면 강력한 방어의 전능은 오히려 약해질 것이다.
“다음 차수부터는 놈들의 동선이 복잡해질 거야. 반대로 헤르시는 우리의 위치를 간파할 테고.”
도로시가 말했다.
“지금처럼 모여 있을 때는 헤르시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매 차수마다 소집할 수는 없잖아?”
고개를 끄덕인 이루키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건 어떻게 됐어?”
시로네는 카드를 꺼냈다.
“현재 보유한 카드는 세 장. 전부 랜덤을 선택했고, 지금 패는 삼부회야(○●○).”
네이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몇 번 돌렸는데?”
“마지막에는 세 번. 흑이 두 번 연속 나오더라.”
이것으로 확정되었다.
시불상폭매는 확정된 카드를 랜덤으로 되돌릴 수 있다.
“생각해 보니까 1초는 상당히 긴 시간이야.”
“그렇지. 본래 판단이라는 건 0초에 이루어지는 거니까. 어쨌든 스크럼블만 수집할 수 있다면 최강의 패를 보유할 수 있다는 거로군.”
사비나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너희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네이드가 사비나의 어깨를 짚었다.
“이따가 말해 줄게. 아직까지는 우리가 유리해. 오늘 에덴의 독주를 틀어막고, 내일부터 대응책을 마련하자.”
이루키가 말했다.
“우리는 스크럼블을 수집할 수 없으니 시로네와 도로시가 적극적으로 캉을 걸어 줘.”
“알았어.”
루루의 음성이 들렸다.
“4차 스크럼블 소환까지 10분 남았습니다.”
***
“교장 선생님, 판도라입니다.”
교장실의 문을 노크하고 기다리자 알페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너라.”
교장실에는 알페아스와 교감 올리비아, 졸업반 부장 교사인 콜리까지 와 있었다.
특이한 일이었으나, 판도라는 오늘 있었던 학생들의 대거 결석과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또한 그녀가 찾아온 이유하고도 무관하지 않았다.
“면담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지. 그래,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게냐?”
판도라는 심호흡을 하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졸업반 평가의 형평성을 전면 재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사들은 침묵했다.
향기 마법을 전공으로 하는 판도라.
한때는 고급반에서 보일과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였으나 시로네 팀, 단테 팀의 합류와 강력한 졸업반 경쟁자들에게 밀려 현재 23위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제 순위가 낮은 것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제가 못난 탓이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그녀의 물음은 타당하다.
“방학 중에 시간을 내서 자료 조사를 했어요. 왕국 5대 명문의 데이터도 수집했고요.”
“판도라…….”
올리비아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알페아스 마법학교 졸업반의 평균 능력치가 다른 5대 명문 평균보다 무려 3.8배나 높아요. 평균이 3.8배라고요.”
교사회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불합리합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는 졸업 티오가 20명이나 되는 왕립 마법학교보다도 훨씬 어려운 경쟁을 치르고 있어요. 티오를 늘려 주든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