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5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오스카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으나 황당하게도 주먹이 날아온 것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뺨에 주먹이 꽂히자 오스카의 몸이 핑그르르 돌면서 볼품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굴욕감.
“으아아아!”
비로소 살의에 눈을 뜬 오스카는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벌린 다음 장기인 화염 마법을 두 손에 장착했다.
“죽여 버리겠다!”
큰소리치기는 했으나 화를 풀 대상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스피릿 존이 반경 수십 미터를 잠식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네이드의 존재감은 포착되지 않았다.
‘더 멀리 있다고?’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스트레이트 펀치에 오스카는 바닥을 굴렀다.
“크윽!”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엎드린 그에게 고양이처럼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접근했다.
“일어나.”
말과 달리 이어진 것은 잔혹한 구타였고, 죽이려고 작정한 듯 네이드의 발이 오스카를 작신작신 짓밟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몸을 웅크린 채로 신음 소리를 내뱉자 천천히 거리를 벌린 네이드가 즉각 달려와 명치를 걷어찼다.
“크아악!”
오스카는 벌러덩 뒤집어져서 꿈틀거렸고, 그제야 네이드도 머리를 넘기며 숨을 골랐다.
“일어나.”
고작 이 정도의 분풀이로 현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마법적 성취였지만 기분만큼은 사상 최악이었다.
“일어나라고. 부탁이다. 여기서 끝내게 하지 마.”
“너, 너 이 자식……!”
오스카가 사지를 밀어내며 엎드리는 것과 동시에 네이드의 발이 턱을 걷어찼다.
“끄아아악!”
“일어나.”
불가능한 주문 앞에서 눈앞이 깜깜해진 오스카는 꿈틀대며 기어가 나무둥치에 등을 기댔다.
“그냥 패. 패고 싶으면 얼마든지 패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와 싸울 도리는 없었기에 수준의 차이를 가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이냐? 발버둥이라도 쳐 봐.”
“흥. 어차피 너도 그냥 내가 짜증 나는 거잖아? 똥 밟았다고 생각할 테니 마음껏 풀어. 그리고 내 인생에서 꺼져 줘.”
“그렇게는 못 하지. 알다시피 나는 양아치잖아?”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오스카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를 몰락시켜서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리즈와 헤어지면 너에게도 좋은 거 아냐?”
“빌어. 그녀에게 가서 싹싹 빌어. 정신이 나갔었다고, 이제부터는 안 그러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오스카는 잠시 멍해졌다.
“순진한 자식. 그래서 너에게 남는 게 뭔데? 그깟 순애보가 통할 거라고 생각해? 여자가 원하는 건 달콤한 거짓이지 별 볼일 없는 진심이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오스카의 앞에 쪼그려 앉은 네이드가 말했다.
“쿨한 척 넘어갔으면, 질질 짜지 않았으면, 네가 말한 그 달콤한 거짓을 남발했으면, 선배가 나에게 올 수도 있었겠지.”
네이드의 손이 오스카의 목을 조였다.
“끄으으윽!”
“하지만 말이야, 너무나 소중해서 오직 진심으로밖에 대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거야.”
기도가 막힌 오스카가 사지를 버둥거렸다.
“너도 처음에는 그랬겠지. 숨소리마저 감미롭고, 눈만 마주쳐도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겠지. 그랬으면서 그녀를 성공과 저울질해?”
네이드의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하나는 포기했어야지. 네가 말한 그 달콤한 거짓에는,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얻었다는 만족감에는…… 정말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거냐?”
‘이 자식, 제정신이 아니야.’
네이드의 눈빛에는 인간이 담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여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현실화되면서 비로소 사고가 도망칠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난 공인이야. 이건 정당방위라고.’
상대는 마법사 자격증도 없는 무뢰한이었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도 자신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라는 대로 할게.”
네이드가 천천히 물러서자 오스카가 멍든 목을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나도 인생을 건 베팅이었어. 그냥 이렇게 끝내면 서로에게 좋은 거 아냐?”
“그건 리즈 선배가 판단할 일이야. 사실을 말하고 빌어. 너는 절대로 마법협회에 취직할 수 없어.”
“하아. 진짜 답답하네.”
체념하듯 고개를 숙인 오스카는 등 뒤로 넘긴 손으로 차고 있는 반지를 어루만졌다.
‘스피릿 존에 들어가면 끝이다.’
상당한 수입을 벌어들이는 공인 마법사라면 비상시에 사용할 마법 무구 정도는 소지하고 다니는 법이다.
“그래, 지금은 리즈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겠지. 하지만 나이를 더 먹어 보면 알 거야. 학생인 너는 모르겠지만…….”
오스카가 주먹을 내밀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거든.”
마법 반지에 담겨 있는 라이트닝 선더 마법이 발동되면서 네이드의 정수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누군가에게는 (4)
***
오스카를 기다리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리즈는 식어 버린 커피를 방치한 채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었다.
“하아.”
장기 휴가를 내고 크레아스에 왔을 때만 해도 마음이 이토록 심란해질 줄은 몰랐다.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네이드에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오스카가 기별도 없이 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네이드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그저 오스카와 평생을 약속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보고 싶었을 뿐이다.
“움직이지 마!”
연금술사 위즈의 창고에서 네이드는 6명의 마법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남은 1명의 마법사마저 처리하려는 그때, 리즈를 구속하고 있는 불길의 동심원이 괄하게 불타올랐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마. 허튼짓하면 이 여자가 죽는다.”
길드 출신 마법사에게 시분할이란 기술은 요원했고, 남은 방법은 리즈를 인질로 삼아 네이드를 위협하는 것뿐이었다.
“쳇.”
네이드가 몸에 휘감은 전격을 가라앉히자 위즈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지어졌다.
“됐어! 처리해 버려!”
리즈를 붙잡은 상황에서는 다른 마법을 시전할 수 없기에 마법사는 우물쭈물했다.
그렇다고 ‘이것밖에 못하는데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래서 길바닥 출신들은…….’
눈치를 보는 마법사의 표정에서 깨달은 위즈가 인상을 구기더니 이내 새로운 해법을 찾아냈다.
‘저거다!’
전기에너지를 방출시키는 울트릭스로 네이드를 쏴 버리면 흔적조차 없이 타 버릴 터였다.
위즈가 울트릭스를 작동시키자 리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네이드! 도망쳐!”
“입 닥치고 있어.”
리즈를 겁박한 마법사가 네이드에게 경고했다.
“움직이지 마라, 여자를 살리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과연 이 거래에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놀랍게도 네이드는 완전히 무장을 해제한 자세를 취했다.
“마음대로 해.”
“네이드,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리즈를 바라보며 네이드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어째서일까?”
그날의 일을 회상하는 네이드에게조차도 당시의 결정은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끝을 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위즈 씨! 빨리!”
네이드가 마음이 바뀌기기 전에 해치워야 된다고 생각한 마법사가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 울트릭스의 사출구에 강력한 전기에너지가 응축되며 당장이라도 전방의 물체를 태워 버릴 채비를 끝냈다.
“안 돼!”
울트릭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네이드의 모습을 눈에 담은 리즈는 유일한 선택을 했다.
‘내가 죽어야 해.’
화염의 동심원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불길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멍청이!”
네이드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위즈가 울트릭스를 발사했다.
“크으으윽!”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간 전기가 네이드를 강타하고, 잔혹한 위즈조차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크으으으으!”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네이드의 신음 소리에 눈을 뜨자 연금 경력 30년인 그조차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무지막지한 전격이 네이드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전기에 면역?”
인간이라면, 아니 생물의 육체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단 하나.
“설마?”
그 순간 네이드의 육체가 번개처럼 사라지면서 마법사의 불길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느새 네이드의 품에 안긴 리즈가 고개를 들었다.
“네이드?”
“크르르륵!”
얼굴이 목에서부터 올라온 핏줄로 온통 뒤덮인 모습의 네이드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는 듯 이빨을 깨물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타깃을 놓쳐 버린 화염이 힘을 잃고 꺼지자 마법사는 비로소 깨달았다.
전격 계열 최고의 이동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스파크.
하지만 광자 계열의 순간 이동과 달리 마법사의 육체마저 태우기에, 특별한 장비가 없이는 시전이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도망가. 이제…… 버틸 수 없어.”
리즈를 밀어낸 네이드는 주체할 수 없는 살의에 휩싸여 몸을 돌렸다.
“피, 피하십시오!”
위즈와 마법사가 각지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순간, 네이드가 괴성을 내지르며 들끓는 힘을 개방했다.
번쩍하고 창고가 빛나는 것과 동시에 수천 개의 전류가 철사처럼 날카롭게 꼬이며 전방을 그대로 밀어 버렸다.
***
“너…… 이 자식.”
라이트닝 선더에 맞은 네이드가 몸을 굽히고 부르르 떨더니 무시무시한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오스카는 피가 모조리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전기를……!”
네이드의 특이 현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리고 마법에 문외한인 자들은 공포에 질리지만, 마법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경악하며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마력동화?”
또는 마력일치라고 부른다.
마법사의 정신이 마법과 완전히 일치되는 현상으로, 레스 산맥에 유배된 얼음 여왕의 일화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마법사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현상이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이성이 강한 자들이고 마력동화는 정신이 자연의 현상과 일치되는, 즉 가장 비이성적인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력동화에 걸린 마법사들은 가는 곳마다 재앙을 불러일으켰고 그 말로는 언제나 비참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네이드는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과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전기를 휘감으며 다가오는 네이드의 모습은 분명 전기 그 자체였다.
“죽어라.”
네이드의 선언에 오스카는 황급히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낙뢰가 휘어지듯 떨어지더니 터무니없는 천둥소리를 내며 반경 20미터가 초토화되었다.
“으아아아악!”
충격파에 바닥을 구른 오스카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사고가 아닌 전기의 사고.
마치 전기의 정처럼 네이드에게 깃든, 떠오르는 감정은 모든 걸 파괴하고 싶다는 천연의 욕망뿐이었다.
“크으으으!”
완전히 뒤틀린 얼굴, 혈관은 전부 튀어나와 있고 눈에서는 푸른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죽는다. 정말로 죽어.’
목적 없는 파괴 본능.
대자연의 현상이 인간으로 현현하여 걸어오는 모습은 일전에 프링스가 경험했던 공포와 정확히 똑같았고, 오스카는 사지를 벌벌 떨었다.
“사, 사람 살……!”
스파크가 시전되면서 오스카의 몸이 무려 100미터나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큭!”
네이드가 나무둥치에 처박자 강력한 충격이 뒤통수에 작렬했고, 쥐어짜 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그랬지?”
그 물음을 들은 순간 오스카 또한 프링스와 마찬가지로 일말의 희망을 발견했다.
‘아직 이성이 남아 있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자명했다.
“뭘, 뭘 그랬다는 거야?”
“왜 리즈를 데려왔어? 출세가 그렇게 좋으면 처음부터 안 데려왔으면 되잖아? 그 여자한테 가 버렸으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