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8
귀여운 웃음 안에 뱀의 사악함을 담고 있었던 학생.
마야를 일방적으로 구타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 오랜만이에요, 시로네 형.”
아이더가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으나, 이미 실체를 파악한 이상 반갑게 맞이할 수는 없었다.
“에이, 설마 아직도 그때 일을 담아 두고 있는 거예요?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주제도 모르고 까불었죠.”
가끔은 시로네도 아이더에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강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회한이었다.
“그래. 얘기는 들었어. 졸업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당연하죠. 저도 졸업반이잖아요.”
시로네도 심정은 이해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처음부터 다시 1년을 되풀이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재활 테스트를 돕기로 했어.”
아이더의 트라우마의 원천은 시로네였기에 적임자였다.
“네.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는 동안 시이나와 의무 교사는 구석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재활은 성공적이에요. 악몽도 꾸지 않고 빛을 보는 환영도 사라졌죠. 다만…….”
“다만?”
“너무 깔끔하게 사라졌어요. 면담에서는 이상한 점을 잡지 못했지만, 의사의 촉이라고 할까?”
“아이더가 속이고 있다는 건가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시로네를 부른 거죠.”
고개를 끄덕인 시이나가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 테스트를 할 거야. 시로네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면 의무 교사가 아이더의 상태를 체크하는 거지.”
아이더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당시의 상황요?”
“걱정하지 마. 진짜로 공격하는 건 아니니까. 할 수 있지?”
“네, 물론이죠. 다 나았는걸요.”
그렇게 최종 테스트가 시작되었고, 아이더와 시로네는 재활실의 끝과 끝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아타락시아.’
머리 위에 오색찬란한 마법진이 탄생하자 자신만만하던 아이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괜찮아, 아이더. 두려움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야.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교사의 입장에서도 여태까지 열심히 해서 졸업반까지 올라온 아이더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었다.
시로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포톤 캐논.’
눈앞에 금빛 구체가 펑 하고 탄생하며 진동하는 순간 아이더의 얼굴근육이 감정 그대로 뒤틀렸다.
“으아아아아!”
자리를 이탈한 아이더가 구석에 머리를 박고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빛이, 빛이 보여요! 선생님!”
환영은 사라졌으나 현실의 빛까지 이겨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포톤 캐논과 아타락시아를 소멸시킨 시로네는 씁쓸한 표정으로 의무 교사를 돌아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젓더니 개인 정보란에 재활 요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
“고생했다.”
졸업반 28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콜리가 말했다.
“이로써 졸업반 1년의 과정이 전부 끝났다.”
박수도, 환호성도 들리지 않았다.
30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신을 단련했던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토할 것 같은 긴장감뿐이었다.
“알다시피 현재 졸업반 티오는 두 자리가 남아 있다. 일주일간의 선별 끝에 고급반에서 2명의 학생이 올라왔으니 반겨 주도록.”
콜리가 고개를 돌리자 고급반의 서열 1위와 2위인 마크와 마리아가 단상에 올라왔다.
“안녕, 마크다. 늦었지만 함께 졸업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
“안녕하세요. 마리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졸업반에서는 선후배라는 개념이 없지만 마리아는 성격대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평가는 끝났고 진검 승부만이 남은 시점에서 관계 따위야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고급반 1위와 2위라. 너무 무리한 거 아냐?”
졸업반 1년의 평가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저 두 사람은 사드 선생님에게 개인 교습을 받아 왔으니까.”
공인 6급의 마법사가 손수 지도했다면 고급반 수준의 훈련만 소화했을 리가 없었다.
‘시로네 선배님.’
마크는 시로네와 눈을 마주쳤다.
졸업반 시험을 미리 경험한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지만 심리적인 위험 요소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마크가 졸업반행을 택한 이유는 시로네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시로네와 다시 자웅을 겨뤄 보겠는가?
클래스 세븐에서 클래스 포의 1위까지 초고속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도 시로네의 뒤를 따라 달려왔기 때문이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선배님. 그리고…….’
마크는 마리아를 돌아보았다.
‘저희는 이번에 졸업할 겁니다.’
그게 바로 마리아를 설득시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사드의 특훈으로 가다듬은 콤비 플레이라면 상위권은 아니라도 최종 순위 10위는 사정권에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럼 내일 일정을 설명하겠다.”
마크와 마리아가 단상을 내려가고 콜리가 공문을 들었다.
“출발은 아침 6시, 준비는 새벽 5시까지 끝내라. 기상 시간은 4시다.”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의 보안 규정 때문이었다.
“의복은 전원 정장을 입는다. 치마의 기장은 반드시 무릎 아래 5센티미터로 맞춰라. 남자는 흰색 와이셔츠, 여자는 흰색 블라우스, 구두는 무광, 학교 배지 외에 액세서리는 일체 착용할 수 없고, 여자는 전원 올림머리를 하도록.”
사비나가 손을 들었다.
“왜 여자만 올림머리를 해요? 남자들도 머리 긴 사람이 많은데.”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만큼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여자들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님이 정한 규정이다. 불만이라면 협회에 정식으로 제소하도록.”
그것만으로도 루피스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협회에 도착할 때까지 의복은 구겨져서는 안 된다. 달리지 말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팔을 돌리는 것도 자제해라.”
가뜩이나 졸업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학생들의 눈이 퀭해졌다.
“그냥 박제해서 데려가는 게 낫겠는데요?”
“바로 그거다. 마치 박제한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협회에 도착해야 한다. 너희도 알겠지만, 내일 정오가 되면 왕국 5대 명문에 있는 졸업반 전원, 150명의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제야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물론 꼼꼼하게 살펴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단점은 눈에 쉽게 띄는 법이지. 절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마라. 이는 학교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다.”
다른 명문 학교보다 떨어지는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오늘은 푹 쉬어라. 일찍 자고 새벽에 보자꾸나.”
“네!”
학생들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우렁찼다.
5대 명문 (2)
***
새벽 4시에 칼같이 기상한 시로네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복도에서는 동기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생명의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우고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욕실로 들어가 따듯한 물에 몸을 씻은 시로네는 속옷만 입은 채로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좀 자를 걸 그랬나?’
하루 종일 마법에 매진하다 보면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채울 때마다 각오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리안 시로네(졸업반 최종 순위 27위).
전공 : 광자 마법의 신의 입자 계열.
특이 사항 : 이모탈 펑션. 반야. 아타락시아. 엘리시온. 시불상폭매를 통한 시간 파괴 인지 능력.
‘한 단계 더 줄일까?’
에이미는 허리 옆에 달린 치마 단추를 최대한 끌어당겼다.
1년 전보다 살이 더 빠져서, 블라우스를 안에 넣었는데도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조여졌다.
‘두 번째 졸업 시험.’
작년에 탈락했을 때만 해도 1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던 그녀다.
‘최선을 다했어.’
시간은 결국 온다.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에,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단련했던 나날들이 이제야 쾌감으로 밀려들었다.
‘이것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합격 확률은 3분의 1.
여전히 까마득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노려보며 에이미는 머리띠를 입에 물고 머리를 올렸다.
카르미스 에이미(졸업반 최종 순위 4위).
전공 : 화염 계열 스나이퍼.
특이 사항 : 잭 오 랜턴. 정령의 전지를 이용한 화인. 홍안의 자기상 백업 능력. 삼매를 통한 마력 강화.
틱, 소리를 내며 슈트의 소매 단추를 잠근 페르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정장을 입었기에 어색한 느낌은 없었다.
‘올해로 학생들 장사는 접어야겠군.’
금화륜마저 해체된 이상 학교에서 큰 수익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이제는 나갈 때가 된 것 같아요, 어머니.’
발할라 액션을 추출한 대가로 받은 거금은 수많은 고위 마법으로 탈바꿈하여 졸업 시험에서 선보이게 될 것이다.
페르미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윙크했다.
“깔끔한데?”
학교라는 수면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대어가 큰물로 나갈 시간이었다.
아르디노 페르미(졸업반 최종 순위 1위).
전공 : 규정외식.
특이 사항 : 감가상각의 거래를 통한 마법 수집 능력.
“이것으로 끝.”
아린은 카니스의 슈트에 알페아스 마법학교 배지를 달아 주었다.
마치 옷에 스며들어 있었든 듯 마도 생물체 하비스트가 그림자를 드러내며 일어섰다.
“크크크,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학교를 나가는 건가?”
“넌 지루함을 못 느끼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로 이 학교에서 1년 넘게 있었다니. 아케인이 들었으면 땅을 치고 통곡했을 거야.”
‘스승님.’
카니스는 암흑 마법의 권위자였던 대마법사 아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지막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있었기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카니스(졸업반 최종 순위 12위).
전공 : 암흑 마법의 물리 계열.
특이 사항 : 대마법사 아케인의 제자. 빛과 어둠의 서 해독. 마도 생물체 하비스트를 종속.
“그래, 반드시 합격할 거야. 우리 두 사람, 모두.”
카니스의 말에 아린이 눈웃음을 지었다.
항상 싸구려 옷만 입어서 몰랐지만 깔끔한 정복 차림의 그녀는 놀랍도록 성숙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멋있다, 카니스.”
“너도 예뻐. 그런데…… 어떻게 보이기에 멋있다는 거야?”
아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건 비밀.”
아린(졸업반 최종 순위 8위).
전공 : 암흑 마법의 정신 계열.
특이 사항 : 대마법사 아케인의 제자. 빛과 어둠의 서 해독. 초경을 통해 형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극강의 정신 동화력.
“시로네, 준비 끝났어?”
노크 소리에 이어 이루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지금 나가.”
문을 열자 말끔하게 갖춰 입은 이루키와 네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호, 멋진데?”
시로네는 물론 이루키와 네이드도 협회 규정에 맞춘 정복을 입는 것은 처음이었다.
“너희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
확실히 이루키의 얼굴은 남들이 보기에는 괴상하다 느낄 정도지만 지금은 그것 또한 개성처럼 보였다.
“현재 시각 4시 50분 32초. 나가자. 협회에서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을 열어 주는 시간은 1시간뿐이라니까.”
메르코다인 이루키(졸업반 최종 순위 5위).
전공 : 폭발 마법의 기폭 계열.
특이 사항 : 서번트 신드롬. 초고속 기폭 방정식 계산. 캔슬레이션. 더블 스피릿 존을 융합시킨 뉴클리어 퓨전.
“그래.”
시로네는 문을 나서며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괜찮겠어?”
마법협회 크레아스 지부에는 오스카가 근무하고 있다.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시점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네이드에게 독이었다.
“괜찮아. 이미 끝난 일인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