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3
그럼에도 리안이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상아탑 후보인 시로네의 기사이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알고 있나? 이제부터는 네 잘난 주군도 너를 지켜 주지 못해.’
물소리를 내며 쌍검이 빠져나오고, 리안이 대직도를 한 손으로 겨누었다.
“들어와라.”
일단 완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딱히 두드러진 장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빈틈이 제법 있는데?’
천부적인 재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위그였기에 경계보다는 호전성이 앞섰고, 곧바로 스키마를 발동하며 튀어 나갔다.
“타하!”
검술 시연과는 차원이 다른 정교함이었고 리안도 놀란 표정으로 몸을 뒤틀었다.
‘뭐야?’
반격까지 대비했으나 최초의 반응 또한 약간은 어설펐다.
‘설마…… 진짜로 허풍선이인가?’
곧바로 시험에 들어갔고 질풍의 검술이 사정없이 리안에게 가해졌다.
어떻게든 막거나 회피하고 있으나 기술적으로 어설프다는 것은 순식간에 파악되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그 어설픔이 오히려 위그를 놀라게 했다.
‘스키마를 못하는 것 같은데?’
육체를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키마는 중요하다.
검을 한 번 휘두르는 데에도 무게중심, 자세의 조율, 근력의 분배 등 수많은 감각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지만 리안의 동작을 관찰하면 그냥 본능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딴 게 마하의 기사라고? 내가 보이기는 하냐?’
스키마의 다음 장부터는 효율이 2분의 1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네 장의 스키마를 운용하는 그에게 리안의 검술은 초심자나 마찬가지였다.
‘휘두를 때마다 궤적이 달라. 자기가 어떻게 베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야.’
어설픈 승부는 언제나 뒷맛을 쓰게 한다.
살짝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위그는 끝장을 내기 위해 리안에게 파고들었다.
“5분이다.”
리안의 말에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헛소리하고 있네.’
마하의 기사가 엉터리라는 것을 까발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타하아아아!”
위그가 쌍검을 수평으로 든 자세로 돌진하는 그때, 리안의 몸이 여태까지의 반응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회전했다.
완벽.
위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지나간 단어였고, 언어로 정립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 속에서 문득 불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오직 지금의 기술만이 완벽하다.’
체득.
수없이 반복한 끝에 육체에 각인되어 버리는 것.
대부분의 성인이 ‘걷는 행위’를 체득하고 있다면, 지금의 동작 또한 걷는 것에 준하는 횟수로 연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막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위그의 유일한 오판이었고,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대직도의 넓적한 면이 쌍검을 후려친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기절의 말미에 깨달은 것은 스키마로 설명할 수 없는 검격의 속도와, 이대로 날아가면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마하…….’
화살처럼 쏘아진 몸이 건물의 벽에 처박히는 순간에도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거미줄처럼 벽이 갈라진 아래로 위그가 추락했다.
“위그 씨!”
시로네가 튀어 나가 위그의 상태를 살펴보니 다행히 호흡은 문제가 없었다.
리안이 대직도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기절하기 전에 목을 당겼어. 조금만 충격이 늦었으면 죽었을 거야.”
뒤통수가 박살 났을 것이다.
“미안하다. 적당히 할 수가 없었어.”
“아니, 이 정도라서 다행이야. 솔직히 나도 출정하기 전에 서열 정리는 제대로 하고 싶었거든.”
분명 상처도 없고 일격에 기절시켰으나 자리로 돌아간 리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겼을 뿐이다.’
단지 이기는 게 전부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위그처럼 기술력을 앞세운 자와 겨루고 나면 뒷맛이 썼다.
“시로네, 계속하자.”
위그가 길드원에게 실려 나가고 평가가 이어졌다.
실버링 쪽에서는 콘이 합격 판정을 받았고 전쟁마차에서 1명, 블러드로즈 쪽에서도 1명이 추가로 합격했다.
궁수, 생존 및 함정 전문가, 창술사, 회복 마법사까지 더해지자 용병대가 얼추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번 쿠안은 검을 뺄 필요도 없다는 듯 기운만으로 아리아를 의자 아래로 떨어뜨렸고, 마침내 마지막 2차 평가의 마지막 응시자인 메이레이가 들어왔다.
전부터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시로네는 잠시 평가를 제쳐 두고 물었다.
“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죠?”
“네.”
“지금도 들을 수 있나요?”
메이레이는 대답 없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네, 들려요.”
라의 목소리가 전기적 신호로 떠도는 이유는 알 수가 없으나 당장은 어떤 말인지가 궁금했다.
“라의 목소리는 언제나 잘 들리지 않아요. 수많은 소음에 뒤섞여 있죠.”
“어떤 소음인데요?”
“비명.”
메이레이는 미간을 좁히며 소리를 분석했다.
“고통의 절규, 분노의 괴성 같은 것들. 언제나 그는…….”
그녀가 눈썹을 꿈틀하더니 말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잠시만요. 그가 말하고 있어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메이레이가 들은 것을 전했다.
“카르테 무 씨엘르, 카르티시온 베 라베카 퍼벨.”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어요. 처음 듣는 말인데요.”
“고대어예요. 아주 오래된. 뜻은…….”
나를 찾고 싶다면, 네 안의 지옥을 찾아라.
오감불충분 (4)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서 메이레이의 언어를 해석한 시로네는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라 에너미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내 안의 지옥.’
그곳에 라 에너미가 기다리고 있다.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상아탑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에 핵심적인 정보였다.
“신의 주파수라는 건 어떤 능력이죠?”
“갈론 왕국이 믿는 테라포스는 수많은 우주의 정복자예요. 교리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우주보다 훨씬 먼 곳에서 왔죠.”
신화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실제로 시로네 또한 천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혹시 가이아인?’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나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일 리가 없어.’
가이아는 이미 광자계를 이탈했고 마지막 남은 거핀이 떠나는 것으로 종족의 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테라포스의 신탁은 꿈을 통해 이루어져요. 저 또한 일곱 살 때부터 신탁을 받았죠.”
메이레이가 손짓을 섞어 가며 설명했다.
“꿈속에서 신탁을 받는 곳은 언제나 같아요. 어두운 곳이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수직으로 그어진 빛이 열리고, 그 속에 신의 실루엣이 있어요.”
메이레이가 손을 내렸다.
“꿈에서 깨어나면 대부분의 기억이 사라지고 단순한 몇 가지 정보만 떠올라요. 신관이 그 정보를 전해 주면 테라포스의 국민은 거기에 따르는 거죠.”
“하지만 결국 꿈이잖아요?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종교는 증명의 영역이 아니니까요. 실제로 갈론에서도 신탁을 거부하는 이단들이 혁명을 꾀하고 있어요. 교황청의 힘이 강력해서 딱히 위협은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메이레이가 다시 모두를 주목시켰다.
“제가 이단이 되어 갈론을 떠난 이유, 그것은 제 능력이 교황의 권한을 넘어섰기 때문이에요. 여느 때와 똑같이 잠이 들면서 신탁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역시나 꿈에서 그 공간이 나왔죠. 그리고 빛의 문이 열렸을 때…….”
메이레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꿈에서 깨 버린 겁니다.”
“꿈에서…… 깼다고요?”
“어쩌면 그것조차 꿈일 수도 있지만, 분명 모든 신경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신탁이라 생각했던 꿈들이 사실은 전부 현실이었다는 것을.”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빛의 문이 활짝 열렸고 그들이 다가왔어요. 생김새는 기억나지 않고 흐릿한 이미지가 전부예요. 저를 유심히 살피더니 이상한 신호로 대화를 나누더군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아마도 ‘이것은 좀 특이하군.’이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메이레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저에게 많은 것을 시도했어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그러다가 의식을 잃었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술대 같은 곳에 누워 있었어요. 살려 달라고 소리치자 그들이 다시 이렇게 말했죠. 정말 특이한데? 어째서 깨는 거지?”
메이레이는 다시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죠. 제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현실을 알게 된 이후예요.”
“정말로 꿈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메이레이가 고개를 틀더니 귓바퀴 위쪽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머리카락이 나지 않은 자리에 절개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바로 확인했죠. 그들이 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뭔가를 이식한 것 같아요.”
메이레이가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때부터 생긴 능력이에요. 청각을 차단했을 때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수집할 수 있어요.”
그것이 메이레이의 규정외식, 신의 주파수의 정체였다.
“사실 귀를 막는 것만으로는 완벽하게 소리를 차단할 수 없기에 노이즈가 조금 섞여요. 제 생각에 귀를 잘라 내면 더욱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고 루피스트 씨가 반대했어요.”
시로네도 벌써부터 귀를 제거하여 소통의 장점을 포기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다.
“루피스트 씨가 저에 대해 말해 준 건가요?”
“갈론에서 토르미아로 망명하도록 도와줬죠. 제가 시로네 씨와 힘을 합하면 라 에너미를 제거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저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 이유도, 어쩌면 테라포스의 설계인지도 몰라요.”
그다음 이야기는 루피스트와 나누는 게 좋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어차피 합격이라는 것은 메이레이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평가장을 나섰다.
아리아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네. 라 에너미도 그렇고, 테라포스도 그렇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기회조차 없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이죠. 막아 내지 못하면 우리가 사는 곳에 위기가 닥칠 거예요.”
아리아 또한 토르미아의 관료로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용병대를 꾸리는 것은 문제없을 것 같아. 응시자들에게 개별 통보하고, 저녁에 회의하도록 하자.”
***
그날 밤.
시로네의 방으로 핵심 멤버들이 집결했다.
리안과 아리아가 참석한 가운데 에텔라와 쿠안, 메이레이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응시 번호 28번과 29번이 들어와 가면을 벗었고, 당연히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당히 잘 꾸렸더군. 합격자 명단 말이야.”
우선 시로네를 칭찬한 루피스트가 설명했다.
“대충 알고 있겠지만 이번 임무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라둠을 폐쇄하는 것. 둘째, 라 에너미의 의도를 파악하고 가능하면 제거하는 것.”
에텔라가 손을 들고 물었다.
“샤갈은 어디에 있죠?”
“협회 쪽에서 수색하고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왕국을 떠났거나 라둠에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라둠에 있겠네요.”
샤갈은 대정화기의 후嗅에 해당하는 인물.
라 에너미의 흔적을 따라 토르미아까지 흘러들어 왔다면 그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샤갈은 제가 맡겠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어쩌면 죽여야 할지도 모르지만, 에텔라는 복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허락한다. 다만 이용할 가치가 있는 놈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거기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시로네가 물었다.
“가능하면 제거한다고 했는데, 어떤 방법이죠?”
“이제부터 설명해 주지.”
루피스트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스펙트럼의 수장인 베네치아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라는 과거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라둠의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따라서 왕국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라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선 라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존재한다. 시로네, 네가 생각하는 과거의 정의는?”
“음, 특정 사건의 이전 아닐까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싶다. 과거라는 것은, 오감의 기억이다.”
“아하.”
“우리가 겪은 일들은 전부 오감으로 재구성되어 뇌에 기록되지. 따라서 라 에너미가 과거를 지배하는 방식 또한 오감 이상의 것으로 확장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니까요.”
루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렇다면 과거의 감각을 현실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현실이다. 시간 또한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인지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시불상폭매가 가능하다.
“베네치아는 삼뇌족의 능력으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과거 또한 인지의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따라서 라는 실체가 없는 망령이 아니다. 다만 과거.”
루피스트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과거에 존재할 뿐이지. 시로네, 조금 전에 라가 이 방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의하나?”
“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확신하지 못하지?”
“오감의 기억이 없으니까요.”
“바로 그거야. 현재에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현재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루피스트는 탁자 위의 컵을 들었다.
“만약 인간이 지금의 모습이 아닌, 실제로는 특별한 액체에 잠겨 있는 뇌에 불과하다면 어떨 것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