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5
‘이제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영생을 얻기 전의 박녀가 메카족의 천재 공학자이자 지독한 속도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아미타는 반대할 테지만.’
십로회는 영생자가 되기 전의 습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로네.”
박녀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나랑…… 끝까지 가 줄 거야?”
섬뜩한 기운을 느끼는 것도 잠시, V의 화신이 불꽃처럼 타오르더니 박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제길!’
시폭과 박지를 총동원하여 공격을 피해 보지만 솔직히 버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통제는 되는 건가?’
전쟁터가 되어 버린 뱅가드를 지켜보던 모모도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 돼! 내가 어떻게 지킨 뱅가드인데!”
멀쩡하게 있던 벽에 갑자기 펑 하고 구멍이 뚫리더니 내부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먼지구름을 밀어내며 상가들이 순서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따라잡힌다!’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 백 가지 마법이 무소용.
급기야 시로네보다 7배나 더 먼 거리를 우회한 박녀가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시로네!”
리안이 앞을 가로막으며 대직도를 휘두르자 박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내가 맡을게! 라투사를 데려와!”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겠어? 저 여자는…….”
언제나 리안을 신뢰하는 시로네지만 이번만큼은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이미 싸워 봤으니까.”
아포칼립스에서의 전투를 떠올리면 아직도 섬뜩했다.
“걱정 마. 죽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여기서 이길 자신은 없어.”
리안의 말에 판단이 명료해졌고, 시로네는 초에니 바르도를 통해 자리를 벗어났다.
“두 번째로 보는군.”
박녀가 검을 늘어뜨리고 다가왔다.
“달려 볼까?”
리안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리안과 박녀의 액싱이 뱅가드를 초토화시키는 소리가 키도의 귀에 들렸다.
“쳇! 우리는 고작 고블린인가?”
마가 도적단이 도착했을 때, 키도는 10개의 발가락으로 붙잡은 창대 위에 서 있었다.
“너희들은 뭐냐?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네가 죽는 일을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부단장이 칼을 뽑아 들고 다가오자 신경이 타들어 갈 듯한 살기가 키도의 전신을 감쌌다.
‘엄청나군, 이것들.’
중부 사막에서도 위세가 등등한 뱅가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 조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 하나하나가 드락커였고, 특히나 리안과 싸우는 여자는 인간의 경지를 까마득히 초월해 있었다.
“크크, 크크크크.”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리는 키도의 모습에 부단장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미쳐 버린 건가? 뭐가 그렇게 웃기지?”
“이제야 좀 정신이 맑아지네.”
당장 죽을 상황에 직면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운명 따위…….’
하나 쓰잘머리 없다는 것을.
“그렇지, 시로네?”
키도가 두 발로 잡고 있는 창을 튕기면서 내려오자 하늘로 솟구친 창대가 휘리리리 피리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시 눈앞으로 떨어지는 순간, 키도의 몸이 창의 회전속도와 똑같이 돌면서 옆으로 굴러갔다.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
키도가 창을 수레바퀴처럼 굴리며 아파트를 수직으로 내려가자 마가 도적단이 뛰어내렸다.
“쫓아! 뱅가드에서 잡아야 한다!”
한편 리안을 몰아세우던 박녀는 저 멀리 시로네가 벽을 타고 넘는 것을 포착했다.
‘라를 만나는 것을 택했는가?’
시로네를 보낼 수 없는 박녀가 근처에 있는 배사 장치로 달려가 탱크를 붙잡았다.
“잠깐만! 그건 건드리면 안 돼!”
모모도의 외침이 허무하게 바람에 쓸려 나가고, V-12기통의 실린더가 박녀의 몸에 동력을 전달했다.
“크으으으으!”
RPM이 미친 듯이 치솟으면서 탱크가 부르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저런…….”
점점 격렬해지는 진동 끝에 우지직 소리를 내며 철이 끊어지고.
“끼야아아아아아아!”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지른 박녀가 허리를 뒤틀자 탱크가 원심력을 받아 크게 휘돌더니 시로네를 향해 날아갔다.
“100톤인데…….”
멍한 표정을 짓던 모모도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큰일이야! 외벽이 무너지면……!”
“시로네! 피해!”
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시로네는 거대한 탱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100톤의 탱크가 굉음을 내며 벽을 붕괴시켰다.
“아욱! 뭐야.”
뱅가드 바깥으로 굴러떨어진 시로네가 엎드린 자세로 사막의 모래를 움켜쥐었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불에 타는 듯한 바람 소리였다.
‘온다.’
사막의 저 깊은 어둠에서 거대한 것이 밀려들고 있었다.
“제2탱크 가동하고 방풍벽을 보수해! 초기에 막지 못하면 전부 박살 날 거야!”
모모도가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으나 둑에 구멍이 뚫린 듯 강력한 바람이 뱅가드로 밀려들었다.
모래가 흩날리면서 이중창이 덜컹덜컹 흔들리고, 건물의 파편에 맞은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망루에서 뛰어내린 부하가 소리쳤다.
“관리자님! 노스카르타……! 아니…….”
단지 적도풍의 이름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말을 바꿨다.
“사막의 신이 옵니다!”
정신을 차린 시로네가 샤이닝 마법을 시전하자 달이 떠 있는 곳에서 카이드라가 괴조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다행이다. 근처에 있었구나.’
키도와 리안이 출구 쪽으로 달려가고, 정확한 타이밍에 포톤 캐논이 철문을 날렸다.
“리안! 키도! 빨리!”
시로네가 손을 흔들며 재촉하고, 멀리서 보고 있던 부단장이 출구를 지키고 있는 부하에게 소리쳤다.
“막아! 괴조에 타지 못하게 해!”
오메크에 타고 있던 단원들이 칼을 치켜들고 좌우에서 달려들자 키도가 걸음을 멈췄다.
“쳇! 먼저 가 있어!”
“고블린부터 잡는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오메크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키도가 있던 자리를 우두두 밟아 댔다.
“키도!”
시로네에게 도착한 리안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크아아아앙!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다리가 잘린 오메크들이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광경이 보였다.
공처럼 몸을 굴려 빠져나온 키도가 짐승의 다리 한쪽을 물어뜯으며 출구로 달렸다.
“푸헤헤헤! 어때? 나 잘했지?”
“그만 좀 먹어!”
시로네의 핀잔에 다리를 집어 던진 키도가 카이드라에 올라타서 고삐를 잡았다.
“내가 운전할게! 여기도 볼 장 다 봤어!”
전원 오메크에 탑승한 마가 도적단이 채찍을 휘두르며 카이드라를 향해 돌진했다.
“단장님! 추격합니까?”
우오오오오오!
거친 바람 소리에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끝까지 간다.”
고삐를 틀어 방향을 바꾼 박녀가 선두에 서자 부단장이 뒤를 돌아보며 지시를 내렸다.
“북을 쳐라! 소리로 위치를 파악한다!”
둥! 둥! 둥! 둥! 둥!
북소리를 들으며 카이드라가 날아올랐다.
“제길! 진짜 엄청난 바람이잖아!”
하지만 워낙에 바람의 저항이 심해 쉽사리 고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 소리는 끝을 모르고 커져 갔고,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도적단조차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 이걸 뚫고 가겠다고?’
바람의 세기로 직감한 키도가 소리쳤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굉음에 시로네가 고개를 트는 그때, 리안이 전방을 가리켰다.
“시로네! 저기!”
노스카르타.
무려 높이 2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의 해일이 지평선 끝까지 잠식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로네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지상을 달리는 단원들도 거대한 모래의 장벽을 발견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각오 단단히 해! 먹히면 끝장이다!”
둥! 둥! 둥! 둥! 둥!
박녀는 피부를 찢어발기는 것 같은 강풍을 맞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대자연의 바람이다.’
유일하게 걸치고 있는 소복을 훌러덩 내린 그녀가 상체를 활짝 펼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아아아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안쪽으로 흰자가 보이고, 오메크의 율동에 맞추어 허리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말 그대로 동물.’
박녀의 부드럽게 솟아오른 등 근육을 바라보며 부단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짐승이 되어도 상관없다. 저 사람이라면…….’
설령 동물의 영역으로 추락하더라도, 기꺼이 박녀를 왕으로 삼아 목숨을 바칠 것이다.
키도가 고삐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 충돌한다!”
시로네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거대한 모래 폭풍을 노려보며 사막을 지배하는 율법의 이치를 깨달았다.
‘바람이 아니야.’
박지를 통해 전달되는 노스카르타의 실체는, 영겁의 세월 동안 스러져 갔던 수많은 생명들의 허무.
그아아아아아앙!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 낸 우연일까?
사막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래 입자들이 거대한 해골의 형상을 이루며 괴성을 내질렀다.
‘허무 따위에게 삼켜지지 않아!’
설령 비참한 결말만이 남아 있는 운명일지라도, 끝까지 세상과 싸워 나갈 것이다.
“리안! 키도!”
모래의 장벽에서 튀어나온 해골이 앙상한 두 손을 내뻗으며 카이드라를 덮쳤다.
“가자!”
동시에 리안이 대직도를 수직으로 휘둘렀다.
“우아아아아!”
신적초월-마하.
퍼어어어어어엉!
리안의 의지가 세상을 양분하면서, 모래의 벽에 새겨진 해골의 얼굴이 폭발하듯 둘로 쪼개졌다.
마침내 사막의 폭풍이 카이드라를 집어삼키고.
“이야호오오오오!”
키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놓치지 마라! 우리는 마가 도적단이다!”
둥. 둥. 둥. 둥. 둥.
사막의 신은, 허무를 삼키며 온다.
1만 9천 세계 (1)
남부 아카드 사막에서 발생한 노스카르타는 중부 사막을 거쳐 북부 사막의 초입에 이르러서야 소멸했다.
사막 해일은 생물이 남긴 흔적을 모조리 쓸어버렸고, 작열하는 태양에 사막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시로네, 물. 나 물 좀 줘어어어.”
시로네 일행은 모래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채로 광활한 황무지를 걸어가고 있었다.
“또 마셔?”
시로네가 마법을 시전하여 수통에 물을 담아 주자 키도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몰라. 마법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갈증이 안 채워지네.”
1리터의 물을 통째로 들이마시자 키도의 튀어나온 배가 더욱 불룩해졌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 라투사를 보내고 벌써 2시간째 걷고 있잖아. 거의 다 왔다고 하지 않았어?”
노스카르타의 위력은 가히 대단해서, 사막 해일을 뚫고 나왔을 때는 카이드라도 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어. 조금만 참아. 눈에 보이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마법으로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