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7
아르테의 부채가 탁 소리를 내며 접혔다.
“타인을 조롱하는 말도 결국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 생각이 거기까지라면 그쪽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지.”
“…….”
흑강시는 침묵했으나, 어떤 전쟁보다도 무서운 살기의 전투가 두 사람 사이에서 휘몰아쳤다.
쯔오이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아라카는 117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진땀을 흘렸다.
‘이래서 모이면 안 된다니까.’
고집을 넘어 주관을 극한까지 관철시킨 자들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면 대형 사고가 터질 공산이 컸다.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허리를 반대로 접어 두 발을 어깨 앞으로 넘긴 여자가 마치 거미처럼 기어오고 있었다.
흑발의 생머리가 땅에 끌렸고, 창백한 얼굴에 눈썹과 속눈썹이 없었으며, 입술은 살색이라 피부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상아탑 2성급 주민, 성 모라이 보르보르.
별칭은 연체동물.
단지 육체가 유연해서 연체동물로 불리는 게 아니다.
균형부 소속인 그녀의 주관은 주관이 없는 것이며, 심지어 미생물과도 감응할 수 있는 초월적인 정신적 유동성을 가진 정신 계열 마법의 대가였다.
쯔오이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뭐야, 보르보르도 있었어? 남방에 갔다고 들었는데? 마족 테러 사건은 해결한 거야?”
“아니, 그게…….”
보르보르의 정수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오라고 했지.”
유심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엄지손가락 크기의 여자가 보르보르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너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생김새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지만 분명 미인이었다.
상아탑 2성급 주민, 성 트웰브 미니.
별칭은 초超거대인.
통합우주관리부의 주민으로, 스케일 마법을 전공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보르보르와 붙어 다니는 외로운 소녀였다.
쯔오이가 인상을 쓰며 미니를 굽어보았다.
“그렇다고 임무 수행도 포기하고 오라고 하면 어떡해?”
“괜찮아. 보르보르가 괜찮다고 했거든.”
“아니, 그게 아니지. 보르보르는 누가 부탁하든…….”
미니가 보르보르의 정수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절친이니까. 그렇지, 보르보르?”
“응? 어, 맞아. 우리는 절친이지.”
만족스러운 대답에 함박웃음을 지은 미니가 아르테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멋지네요, 아르테 씨. 나랑 잘래요?”
그때까지도 흑강시와 기 싸움을 벌이고 있던 아르테가 부채를 펼치고 얼굴을 가렸다.
“사양하죠. 익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그가 아라카에게 시선을 넘겼다.
“이 정도 숫자면 다 모인 것 같은데요? 출발하시죠.”
“나를 빼고 가면 태성께서 서운하실 텐데?”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 정장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파이프 담배를 물고 다가오고 있었다.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은 것도 그렇지만 꿈에서 보던 복장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민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루버 씨까지……?”
“특별히 부르셨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인 게지.”
상아탑 4성급 주민, 루버.
별칭은 몽인.
통합우주관리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본적은 드리모이며 현재 인간의 꿈을 관리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4성급 주민을?’
아르테가 부채 너머로 루버를 주시하며 생각에 잠기고, 흑강시도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심각했다.
보르보르가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이제 올라가죠. 다 왔죠? 안녕하세요?”
“아직…… 1명 더 오는 것 같구먼.”
루버가 고개를 돌린 곳에,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크기의 뇌가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뇌일 뿐이었고, 그렇기에 이름도 뇌였다.
“…….”
상아탑 4성급 주민, 성 뇌.
별칭은 정체 모를 누군가의 뇌.
인류안전집행부 소속으로, 환영 마법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대화를 나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뇌가 마법을 시전하자 이마를 훤칠하게 드러낸 생머리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꼭 내가 있을 때만 예쁘게 변하더라.”
미니가 투덜거렸으나 뇌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승강기를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루버가 말했다.
“이제 다 모였군요. 태성께 전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아라카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몽인의 시간에는 비할 게 아니었다.
‘그나마 루버 씨가 와서 다행이군.’
꿈을 통제하는 몽인이라면 3성급이라도 태성 앞에서 방종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 터였다.
“태성이시여, 별들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부름을 기다리는 동안 쯔오이가 물었다.
“운석이 충돌하는 것만큼 큰일이라면, 정말 제단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요?”
흑강시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야. 십로회 쪽에서도 특별히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어.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상아탑 테스트 때문인 것 같네만.”
미니가 말했다.
“나네 말하는 거죠?”
보르보르가 눈동자를 위로 치켜올렸다.
“나네 위험하지. 검화劍化도 대단하고. 하지만 그게 운석 충돌과 비교할 만큼 심각한 건가?”
“어쩌면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르테가 말했다.
“기존에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빨라요.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테스트를 치르기도 전에 해탈할 겁니다.”
쯔오이가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시로네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몽인 루버가 반응하듯 고개를 돌리고, 미니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말했다.
“헥사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지만, 나네보다 크지는 않을 텐데?”
“시로네에게 한 표를 행사한 사람이 태성님이라는 소문이 있었잖아. 물론 의례적인 투표이기는 하지만…….”
“에이, 그건 아닐 거야. 솔직히 나조차도 나네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인걸.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얼마 전까지는 쯔오이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시로네를 만나 보고 느낀 건데…….”
말이 끝나기 전에 승강기에 빛의 기둥이 떨어지더니 별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
미궁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쳤다.
“침착하십시오! 안드레 관광사업부는 테러대응반을 운용하고 있으며 국토관리부에서 지원하는……!”
가이드가 진정시키려고 해 봤지만 공포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출구로 내달렸다.
“리안, 준비하자. 막아 내지 못할 거야.”
세계에서 가장 넓은 카샨 제국에서도 S급의 위치에 있는 마가 도적단이라면 테러대응반도 속수무책일 터였다.
키도가 말했다.
“괜찮겠어?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스피릿 존은 유지되어야 하잖아? 본체는 남아야 해.”
1만 9천 명으로 증식한 상태에서 본체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일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시로네는 괜찮을 거야. 나도 남을 테니까.”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전투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리안이 대직도를 뽑아 들었다.
“가라. 이곳은 내가 지킬 테니 봉인을 풀어.”
리안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부탁할게. 키도, 너도 조심해.”
시로네가 미궁의 깊숙한 곳으로 몸을 날리자 가이드가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어디 가는 거예요? 이쪽에 비밀 통로가 있어요!”
“우리는 안 나가요!”
황당한 대답을 들은 가이드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리안과 키도를 돌아보았다.
“당신들도 안 나가요? 도적단이 쳐들어왔다고요!”
관광객이 떨어뜨린 물통을 전부 끌어 담은 키도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손을 휘저었다.
“그쪽이나 도망치셔. 조만간 미궁의 봉인이 풀릴 테니까. 그때는 지옥이 뭔지 알게 될걸.”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그녀가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려가자 리안이 출구 앞에서 상황을 살폈다.
“확실히 뛰어나군. 낙오자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40명에 가까운 마가 도적단이 테러대응반을 순식간에 격퇴하며 안드레로 달려오고 있었다.
“십로회인가, 그 여자도 왔어?”
리안은 쉬지 않고 물통의 뚜껑을 돌리고 있는 키도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많이 마셔? 배가 출렁거려서 어떻게 싸우려고?”
“응? 아, 미안.”
키도가 강아지처럼 혀를 빼물고 걸어오자 평소와 다름을 느낀 리안이 되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목이 말라서. 사막을 횡단해서 그런가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계속 목이 마르지?’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진짜 미치겠네. 또 마시고 싶어.’
마치 배가 터진 아귀처럼, 혹은 가뭄에 말라붙은 대지가 대자연의 빗물을 갈구하는 것처럼.
“온다, 키도.”
리안의 옆에 서자 모래로 범벅이 되어 있는 박녀를 위시한 마가 도적단의 모습이 보였다.
“지친 것 같지도 않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시로네가 최소한 7일이라고 했잖아?”
7일 동안 마가 도적단을 막아야 한다.
“그때까지 갈 것도 없어. 베어 버릴 테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 여자가 얼마나 괴물…….”
키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안에게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야차의 투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녀석, 진심이잖아?’
리안의 신적초월은 평소에도 강력하지만…….
‘반드시 지킨다, 시로네.’
시로네를 지키는 순간의 화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간다아아아아!”
신적초월-디나이.
율법을 부정하는 의지가 마하처럼 밀려들며 리안의 육체가 박녀를 향해 튀어 나갔다.
1만 9천 세계 (3)
벤다.
거대하고 거대한 율법의 힘은 윤리의 톱니바퀴를 어그러뜨리듯 리안을 박녀의 눈앞에 데려다 놓았다.
‘벤다!’
따라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대직도의 힘은 속도나 충격량으로 계측할 수 없는 초월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끝낸다!’
다음의 사건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생 필사의 일격 앞에서 박녀는 뇌가 마비되는 경험을 했다.
‘천적인가?’
무언가를 완벽하게 둘로 쪼개었을 때 인간은 이쪽과 저쪽을 선택할 수 없게 되고.
‘신념은 짐승의 윤리에 위배.’
박녀의 흉물적 감각은 그 지점에서 파괴된다.
“끼야아아아아!”
괴음을 내지른 박녀가 V-12기통 엔진에서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동력의 힘으로 물러섰다.
“피했어?”
세상이 꺼지는 듯한 허탈감도 잠시, 시로네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을 불태운 리안이 다시 돌진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키도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안드레로 들어가! 마법사를 죽여라!”
이미 박녀에게 지시를 받은 수십 명의 마가 도적단이 키도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단지 싸우는 거라면 죽으면 그만이지만, 키도가 밀리게 되면 그다음 타깃은 시로네였다.
꿀꺽하고 침이 넘어갔다.
‘목말라.’
목이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
***
시로네가 도착한 곳은 안드레의 입체 모형으로 확인했던 미궁의 중심부였다.
스피릿 존에 1만 9천 개의 출입구를 모두 담는 게 관건이었고 어림하기로는 아슬아슬했다.
‘이 상태에서 퀀텀 슈퍼포지션을 발동하면…….’
감각의 통합이 아닌 독립적으로 획득한 울티마 시스템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사건이 늘어날수록 통제는 불가능해지고, 의도하지 않은 경험들은 시로네의 자아를 오염시키게 될 것이다.
‘할 수밖에 없어.’
운명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핀을 노려보듯 시로네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마법을 시전했다.
퀀텀 슈퍼포지션-공겁의 수레바퀴.
처음에는 2중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