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4
문경의 시야가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더니 나네로부터 20미터 떨어진 지점의 바닥을 내리쳤다.
‘어떻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성음이 나네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내 부하를 모독하지 마라.”
공을 깨달은 나네에게 모독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으나 성음의 능력은 흥미로웠다.
“멋진 깨달음이다.”
“흥! 높은 곳에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에테르 파동-대나곡.
그녀와 나네의 주위를 이루는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방향성이 완벽하게 뒤틀렸다.
‘자, 무엇이든 해 보아라.’
어떤 공격이든 나네에게 들어갈 터였다.
“공간이라.”
나네가 두 팔을 내밀어 서로 다른 수인을 맺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시커먼 검이 나타났다.
“중력이여.”
대나곡으로 휘어진 공간이 모조리 검에 빨려 들고.
“파동이여.”
무형의 검이 정수리 위로 높게 치솟더니 강력한 진동을 일으켜 에테르 파동을 교란했다.
“그리고…….”
나네가 너그러운 표정으로 합장하자 오색찬란한 수천 개의 검이 광배에 활짝 펼쳐졌다.
“모든 것이여.”
설법-극락왕생.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소들의 검이 원을 그리며 펼쳐지더니 성음에게 모조리 쏘아졌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저절로 떠오른 의문은.
‘신인가?’
빛의 검이 가장 먼저 찌르고, 이어서 각각의 개념을 담은 검들이 성음을 난도질했다.
‘어?’
생명이 꺼진 상태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로네의 모습이었다.
“난 죽었는데?”
“죽지 않았어.”
찰나의 순간에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것은 생과 사의 경계선, 초에니 바르도였다.
“박지인가?”
극락왕생이 실패했음에도 나네의 마음에는 일말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죽음을 멸하라.”
설법이 검화로 발동되면서 시커먼 검이 이면 세계의 장막을 뚫고 시로네와 성음을 겨누었다.
‘이거였어.’
쇄도하는 검을 노려보며 시로네는 폭발의 감각을 막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바로 나였던 거야.’
이모탈 펑션.
정신이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발할라 액션이 또 한 번의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켰다.
“이번엔 시폭?”
나네가 수인을 바꾸었다.
“시작도 끝도 없음이라.”
창백한 광채를 지닌 검이 미꾸라지처럼 유영하더니 시간을 초월하여 시로네의 결과를 뒤쫓았다.
‘신이야?’
시로네도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화신술-지박령.
“으아아아아!”
키도가 시로네의 앞을 구르며 지박령을 발동하자 시간이 검이 미세하게 틀어지면서 동굴의 벽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앙!
두꺼운 흙벽이 완전히 뚫려 버린 모습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데 나네가 공격을 멈췄다.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단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모두가 흠칫하는 그때 문경의 부축을 받은 리안이 합류했다.
“무엇에 집착하는가?”
세상에 내놓으면 어느 자리에서도 최고를 다툴 5명이건만, 나네의 한 걸음에 일제히 물러섰다.
‘강하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야. 이건…….’
뭐라 형용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으면 끝나 버리는 세계가 아닌가? 어찌하여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가?”
시로네가 용기를 내어 마주 섰다.
“이유 따위는 없어. 살아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살아야 하는 자격은 충분해.”
모든 것을 깨달은 나네에게 시로네의 말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예고하고 있었다.
시로네가 틀렸거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너에게 오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또한 너에게 약속을 지키게 함이다.”
“무슨 약속?”
나네의 카르 수치는 지금도 완벽을 향해 올라가고 있지만 99.99999……퍼센트의 끝없는 여정이 계속될 뿐이었다.
“너에게는 남겨진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나네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나는, 어째서 신이 될 수 없는가?”
잠시 미궁에 정적이 흘렀다.
“신…….”
키도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였지만, 솔직히 나네라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시로네, 나는 거의 옳다.”
나네의 머리 위로 붉은 빛을 발하는 한 자루의 검이 수직으로 떠올랐다.
“그렇기에 돌이킬 수 없는 업보를 짊어지고 이 세계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옳기에, 너에게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만약 나를 부정할 수단이 없다면 그것으로 이 꿈을 끝내겠다.”
아마도 그러한 개념이 담긴 검일 것이다.
“시로네, 물러서 있어. 저런 사이비 교주 같은 놈은 내가 박살을 내 버릴 테니까.”
리안이 아픈 몸을 이끌고 검을 들었으나 시로네는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정답인지는 모르겠어.”
기억에 없는 것까지 더하면 시로네가 이 질문을 듣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는 그 검을 절대로 꽂을 수 없을 거야.”
나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알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게 빠졌지. 대답해라. 어째서 꽂을 수 없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일행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리안, 키도, 성음과 문경.
“그리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
“안 돼! 시로네!”
리안이 무언가를 깨닫고 소리치는 순간 시로네가 나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이게 바로, 내 대답이야.”
이모탈 펑션.
마법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을 끌어안는 마음으로 정신을 개방하자 시로네의 육체가 십자가의 형태로 빛을 뿜어냈다.
“뭐, 뭐야?”
동시에 안드레에 봉인된 세계의 입구들이 흔들리면서 열꽃처럼 빛이 피어올랐다.
“저건…….”
1만 9천 개의 십자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두 개의 시선 (4)
***
미궁 안드레-제1번 세계.
시로네의 육체가 거대한 십자가의 광채를 내뿜으며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역사가 뒤틀리면서 사라진 수많은 존재들을 되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
‘지나간 생명도, 앞으로 태어날 생명도.’
모두가 소중하다.
점차 빛으로 사라져 가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무등룡 카라토르사가 몸을 낮추었다.
“너로 인해 우리가 존재할 것이다.”
하늘에 떠 있던 수많은 드래곤들이 카라토르사의 뒤편에 내려와 그의 행동을 모방했다.
“너로 인해 우리가 존재할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눈물을 흘렸다.
“시로네…….”
이것으로 역사는 제자리를 되찾을 것이고 그녀 또한 훗날 제국의 여황이 될 수 있었다.
“이 빛을 기억해라, 블리츠.”
하늘을 가득 채운 빛의 입자를 눈에 담으며 카라토르사가 블리츠에게 전했다.
“이것이 생명이다.”
블리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기억은 변형되지 않은 채 그의 머릿속에서 유구한 시간을 견디게 될 터였다.
미궁 안드레-제283번 세계.
신의 징벌이 꽂히자 가네트 왕국을 침범한 군대개미들의 육체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마, 마법사.”
메로트가 더듬이를 바르르 떨며 두려워하자 시로네가 그녀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무것도 무서워할 거 없어.”
이 세상은 누군가의 꿈.
그렇기에 시로네는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감아 이 모든 것을 외면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행복을 바라는 마음마저 허상이라면,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게 잘될 거야.”
메로트를 데리고 시로네가 향한 곳은 가네트 왕국의 주인, 여왕이 있는 방이었다.
“13번째 밤이……!”
입구에 도착하자 메로트가 소리쳤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
화신술을 발동하면서 바닥을 구르는 13번째 밤은 6개의 다리 중에 이미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 알고 있어.”
시로네는 강력한 군대개미를 상대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13번째 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에게 가네트는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정보를 가진 수많은 개체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
우리는 우리를 닮은 것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그렇게 영원히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갈 것이다.
“크아아아아!”
군대개미에게 둘러싸인 곳에서 터져 나온 13번째 밤의 비명 소리가 동굴에 퍼졌다.
여왕의 방을 빠져나올 수 없는 가네트는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뿐이었다.
‘고통. 끔찍한 고통.’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섭식과 번식을 반복하며 행복을 위한 여정을 계속하게 될 터였다.
‘그래, 이러면 되는 거야.’
“어머니! 어머니!”
메로트가 분노의 페로몬을 터뜨리며 달려들자 군대개미에게 짓눌린 13번째 밤이 소리쳤다.
“오지 마! 여기서 빠져나가!”
메로트는 무사히 콜로니를 빠져나가 새로운 콜로니를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시로네는 그들 모두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미물의 생명 또한 다르지 않으니까.’
이모탈 펑션.
시로네의 육체가 강렬한 빛을 뿜어내자 동굴에 가득 찬 개미들이 동시에 싸움을 멈췄다.
“이건…….”
생명의 빛이었다.
***
“뭐, 뭐야?”
1만 9천 개의 십자가가 안드레의 미궁을 가득 채우자 키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정말로 심각한 것은 현재 미궁에 있는 시로네의 육체 또한 같은 형태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음은 비로소 깨달았다.
‘설마 안드레의 세계를 전부 탐색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성음이 공간을 지배하듯 시간을 지배하는 시로네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1만 9천 개의 세계를 떠도는 상태로 자신의 일 보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경악스러웠다.
“이런……! 무너지겠어!”
수많은 세계의 입구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 동굴의 지반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야.’
애초에 시공의 감옥이라 불린 이유를 상기하면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릴 터였다.
“일단 피해야 한다!”
성음이 눈을 부릅뜨고 에테르 파동을 시전하려는 그때.
“시공의 감옥.”
나네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맥클라인 거핀이 정의한 1만 9천 개의 세계.’
앙케 라의 꿈을 삼킨 나네였으나 거핀에 대해서는 막연한 가정만이 가능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