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83
하지만 우오린도 이제는 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는 예상하고 있겠죠. 구스타프 쪽도 무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괜찮아. 내가 죽는 거 아니니까.”
하비츠를 지탱하는 강력한 나르시시즘 앞에서 우오린은 실속을 택했다.
“그렇다면 현재 발키리에 소속되어 있는 구스타프 쪽의 병력은 남은 국가에서 흡수시키겠습니다.”
“흐음.”
내정왕 스모도가 처음으로 턱을 문지르고, 전쟁의 신 발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츠 17세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일 테지만, 선대 황제인 하비츠 16세는 천국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발키리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한 상태였다.
‘발키리를 포기하면 제국의 힘은 17분의 1이 약화된다. 이 상태로 세계전이라. 시간, 인력, 물자가 안정적으로 충당되는 세금 인상률은…….’
스모도의 생각이 무섭도록 빠르게 돌아가는 가운데, 하비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가져. 발키리 없이 하면 되지 뭐.”
성전이 충격에 휩싸였다.
인간의 박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블리츠와 에녹스마저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심입니까?”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때 여기까지 밀어붙이면 구스타프도 당장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카샨의 분석관들이 밤을 새워서 분석한 결과 구스타프의 승률은 10퍼센트 아래였다.
“광장에 모였으면 말이야…….”
하비츠가 짜증 난 듯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하루 종일 정하기만 하다가는 해가 저물어 버린다고. 집에 가야 돼. 나는 그냥 아무거나 빨리 하고 싶어. 그러니까 시간 끌지 말고 전쟁이나 하자고.”
계산 따위 고려조차 하지 않고, 머릿속에는 그저 엉망진창으로 놀고 싶다는 욕망뿐.
발칸이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크, 역시 전하. 탁월한 판단이십니다. 아무렴, 사람 죽이는 일인데 밥 먹다가도 튀어 나가야지요.”
우오린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광장이라 했는가?’
우오린 또한 이 거대한 광장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광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
하지만 가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는 사람.’
하비츠가 아이처럼 말했다.
“신나게 놀아 볼래요.”
“…….”
각국 대표들이 질려 버린 가운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탁을 붙잡았다.
“아직도 정하지 못했나? 그럼 내가 깔끔하게 정리를 해 두지. 이제부터 구스타프 제국은……. 흐읍!”
하비츠가 있는 힘껏 힘을 주었으나 무거운 원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허허! 서운합니다, 전하. 이런 재밌는 일은 저와 같이 하셔야죠.”
발칸이 하비츠의 옆으로 다가와 원탁을 붙잡았다.
“이제부터!”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동시에 두 팔을 활짝 쳐들었다.
“전쟁이다!”
발칸의 거력에 원탁이 10미터 높이에서 회전하고, 나타샤가 고개를 쳐들고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핑글핑글 돌아가며 떨어지는 원탁 너머로 각국 대표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화끈하게 죽여 보자고!”
쿵 하고 성전의 원탁이 박살 나는 순간 우오린의 눈빛에 처음으로 살기가 돌았다.
‘극악이다.’
악의 교리 (1)
제48군사시설은 이고르 통령의 지시에 따라 특별한 실험을 감행하는 장소였다.
그런 만큼 최정예 요원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사령관 또한 수도 파시아에서 직접 선출한 기장급의 인물이었다.
탁! 탁! 탁! 탁!
벨트 고리에 군도를 걸고 징이 박힌 군화를 신은 그들이 순찰을 돌 때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너! 이리 와!”
“저, 저요?”
군인의 눈에 살기가 돌자 멀쩡히 길을 걷고 있던 남자가 황급히 뛰어왔다.
도착과 동시에 군인의 주먹이 남자를 강타했다.
“윽!”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차마 그들을 올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얼빠진 자식이 다 있나. 우리들이 힘들게 순찰을 도는 것을 보고도 이고르 통령에 대한 경배를 안 해?”
북에이몬드의 군법에 그런 조항은 없지만, 군인이 법이라는 내용을 담은 조항은 300개가 넘었다.
무언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었을 것이고, 여기서 저항하다가는 군도에 무참히 목이 떨어져 나갈 터였다.
“죄송합니다! 이고르 통령 만세!”
벌떡 일어난 남자가 수장궁이 있는 북쪽의 하늘에 대고 두 팔을 쳐들었다.
“……가 봐.”
군인이 차가운 눈으로 말하자 남자는 목이 붙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후다닥 멀어졌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파트너가 물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저기압이야?”
“별로. 애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졌어. 제단이 열린 이후로 말이야. 이래서야 무슨 나라의 기강이 서겠어?”
“수금이 잘 안 돼?”
제48군사시설에 주둔하는 80명의 군인은 1,200명의 도시민들에게 일종의 수고비를 받고 있었다.
“요즘 들어 앓는 소리를 하더라고. 딸이 아프다나 뭐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하하하! 거 재수 없게 걸렸네. 하긴,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눈이 돌아가지.”
“웃을 일이 아니야. 고향에 돈 부쳐야 하는데, 이번 달에 술집에서 너무 많이 써 가지고 말이야.”
파트너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내가 받아 줄까?”
“방법이 있겠어? 때리고 부숴도 안 내놓던데. 우리 기수에서 이상한 소문 돌면 사령관님이 싫어하시잖아?”
“이래서 짬밥이 무서운 거라니까.”
파트너가 손가락을 흔들며 주민들 구역을 가리켰다.
“딸이 아파도, 죽는 거보다야 낫잖아?”
북에이몬드 공화국민으로 살고 있는 열두 살의 소녀 베르디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열병에 걸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녀는 아침부터 쳐들어온 군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애 하나 잡을 필요 없잖아?”
군인들은 수금을 하지 못해 화가 나 있었고, 베르디는 자신 때문에 엄마가 매를 맞는 것이 비참했다.
‘아프면 안 돼. 버텨야 돼.’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엄마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게 지금 장난하나! 정말로 끝을 봐야 알겠다는 거지?”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숨긴 돈을 전부 줘 버리라고 하고 싶지만,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제발! 우리 딸은 안 돼요!”
“저리 안 떨어져! 그러고도 네가 위대한 북에이몬드 공화국민이라고 할 수 있나!”
당근을 써는 손길이 더욱 빨라지더니 쾅 소리를 내며 도마를 내리쳤다.
한 달 전에 산에서 주운 단도였다.
“……죽여 버리고 싶어.”
이 발동되었다.
‘갑자기 조용하네?’
생각은 찰나에 불과했고, 금세 마루가 시끄러워지더니 군인의 파트너가 들어왔다.
“어이! 배고파 죽겠다고! 언제 끝나는 거야?”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돼요.”
황급히 양파를 도마에 올린 베르디가 빠르게 채를 썰다가 손끝을 베였다.
“아야!”
손가락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보며 울상을 짓는 그때 파트너가 발길질을 했다.
“이 멍청한 것이!”
베르디를 바닥에 쓰러뜨린 그가 양파를 확인하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병 걸렸다는 게 어디 피를 묻히고 있어.”
도마에 약간의 살점과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도마 옆에 놓인 한 자루의 단도였다.
“어라? 이거…….”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지만 새것처럼 깨끗했고 태양에 비추면 보랏빛 광택이 나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군인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거 봐. 이런 물건을 숨겨 두고 있었다고. 하여튼 앓는 소리 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니까.”
퍼뜩 생각난 듯 파트너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수금은?”
“해결됐어. 지금 돈 가지고 온대. 진즉에 이럴 것이지, 괜히 매만 번다니까.”
“큭큭, 그러게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담배 한 갑이다?”
바구니에 손을 집어넣은 파트너가 감자 한 알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여기서 요리하기는 글렀어. 이거라도 먹고 뜨자고.”
감자에 싹이 나 있는 것을 본 군인이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빠르게 되던졌다.
“줘도 안 먹어. 너나 먹어라.”
감자가 찰싹 손에 달라붙자 재밌다고 생각한 파트너가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때? 캐치볼 해서 진 사람이 먹는 거야. 그리고 담배 한 갑.”
군인이 받을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얼마든지. 던져 봐.”
“좋아, 간다!”
마치 선수처럼 자세를 취하고 부드러운 연결 동작으로 감자를 던지는 순간.
‘어라?’
파트너는 깨달았다.
‘잠깐만, 나 오른손잡이잖아?’
감자는 왼손으로 받았다.
“오른손에는 뭘 들고 있었지?”
생각에 몰입한 탓에 풀스윙으로 손을 떠난 단도가 군인의 미간에 정통으로 처박혔다.
“컥!”
베르디가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
파트너가 군인의 상태를 확인하자 눈동자가 반쯤 튀어나온 채로 즉사해 있었다.
“아,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는 베르디에게 달려갔다.
“너도 봤잖아! 우린 장난을 치고 있었어! 왜 내가 감자를 왼손으로 받았지? 오른손잡이란 말이야, 나는!”
당연히 오른손에 단도를 쥐고 있었으니까.
“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로 모르지만, 과장되게 소리치는 이유는 무의식에 남아 있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베르디! 무슨 일이야? 꺄아아아악!”
입구에 쓰러진 시체를 발견한 엄마가 보따리를 집어 던지면서 자지러졌다.
“사, 사람을 죽였어!”
“멍청아! 그게 아니야! 이건 사고야! 내가 왜 이 자식을 죽이겠어!”
강하게 부정하던 파트너가 퍼뜩 눈을 뜨더니 군인의 이마에 박힌 단도를 뽑았다.
“그, 그래! 네가 죽인 거야! 네가 죽인 걸로 하면 돼!”
단도를 내밀자 엄마가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네가 죽인 걸로 해! 뒷감당은 내가 해 줄 테니까! 이 일이 상부에 보고되면 난 끝장이라고!”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자의 말이었기에 그녀는 연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냥 내 말 들어!”
답답한 마음에 성큼 발을 내딛는데 쓰러진 군인의 손바닥이 밟혔다.
군화 밑창을 찢고 들어오는 듯한 물컹한 감촉에 파트너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으윽!”
디딤 발이 다시 떠오르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순간, 어떤 통찰이 스며들었다.
‘절대로 안 죽어!’
이성이 아닌 본능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흐윽!”
하지만 흘러내린 군인의 눈을 본 순간 다시 몸이 경직되면서 발목을 삐끗했다.
‘내,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몸을 옆으로 뒤틀었으나 이미 팔다리는 굳어 있었고 몸 전체가 뜬 채로 바닥에 추락했다.
“컥!”
팔을 구부린 자세로 추락하면서 그의 목덜미에 단도가 깊숙하게 처박혔다.
“끄륵. 끄르르륵…….”
목에서 피를 끓이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에 엄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이것이 이다.
탁월한 눈썰미를 가진 범죄 전문가라면 시신의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주목하겠지만, 결국 증거는 남지 않는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이제 어떻게 해야…….”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패닉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
“내가 죽인 거야…….”
하지만 묘하게도, 공포를 주는 대상이 사라진 베르디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얘야? 이 사람들은 사고로 죽은 거야.”
“아니, 엄마. 정확히 말하면…….”
넋이 나간 얼굴로 파트너의 시체로 다가간 베르디가 그의 손에서 단도를 빼앗았다.
“너,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