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84
베르디가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엄마를 돌아보았다.
“이 칼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거야.”
“너 미쳤어?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돼!”
“잘 생각해 봐. 이 단도만 있으면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아무도 괴롭히지 못할 거야!”
무기류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S급 오브제라는 사실을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전부 없앨 거야. 우리 가족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벌을 줄 거야! 아니, 이고르를 없애 버릴 거야!”
“너 정말 미쳤어?”
엄마가 화를 냈으나 이미 베르디는 이 가진 마력에 홀린 상태였다.
“칼아, 너는 할 수 있지? 끝까지 지켜 줄 거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우리 가족을…….”
문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거기까지야.”
끼이익, 잠근 것이 확실한 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열리고 로브를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누, 누구세요?”
군복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한 것도 잠시, 두 구의 시체를 보고도 태연한 모습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사망. 그것도 회생이 불가능한 치명상.’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린 시로네가 로브를 벗으며 베르디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단도를 가지러 왔어. 나에게 넘겨주지 않을래? 네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야.”
베르디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오빠가 누군데 이걸 달라는 거죠? 이곳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나가요!”
항구도시 도르미카를 제외하면, 북에이몬드의 어느 지역에도 이방인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벌써 2명이 죽었어. 사망자가 더 늘어나기 전에 나에게 넘기는 게 나아.”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어요! 저들이 우리 엄마를…… 그리고 나를……!”
베르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절대로 줄 수 없어요! 이게 없으면 또다시 지옥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아니, 안 줄 거야!”
“그 단도의 이름은 이야.”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빼앗긴 기분이었다.
“너에게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법과 비슷한 거야. 인과를 뒤틀어 살인을 유발하지.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흉악한 무기야.”
“흉악하다고…….”
“단지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죽이는 것은 천지 차이지. 하지만 은 그 차이가 없어.”
베르디는 황급히 단도를 숨겼다.
“흉악하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 칼이 엄마를 살렸어요. 아무도 우리 가족을 지켜 주지 않았어!”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 은 정말로 간절해야 발동하니까.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거지?”
“흐윽. 흐으으윽.”
베르디가 흐느꼈다.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나는 진짜로…… 그냥 엄마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은 너처럼 착하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자. 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칼이 아닌 네가 한 게 되는 거야.”
시로네는 베르디를 쓰다듬었다.
“분노로는 가족을 지킬 수 없어. 이런 흉악한 것에 의지하다가는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돼.”
베르디가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을 쏟아 냈다.
“으아아앙! 엄마! 엄마아아아!”
“…….”
아이의 손목을 들어 올린 시로네는 단도의 날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을 회수했다.
악의 교리 (2)
***
성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구스타프 하비츠 17세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회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각국 대표들은 말이 없었다.
‘정말로 전쟁을?’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임에도 심장이 뛰는 이유는, 상대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기 때문이다.
성전 개최국인 코트리아 공화국의 바사리 통령이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걸 믿어야 합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비츠가 병력을 출진시킨다면 첫 번째 타깃은 구스타프에서 가장 근접한 코트리아 공화국이었다.
“하비츠의 생각을 분석하기란 불가능. 하지만 욕망에 충실한 그라면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같은 성전의 대표라도 우오린의 말은 특별했고, 바사리 통령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다.
“대체 왜요? 이길 수도 없는 전쟁 아닌가요? 성전도 타격을 입겠지만 구스타프는 멸망할 것입니다.”
파라스 왕국의 카사르타크 국왕이 말했다.
“자국에서 계산한 구스타프 제국의 승률은 발키리를 포기한다는 전제하에 10퍼센트 아래였소. 단순히 미친놈이라면 설령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도 밟아 주면 그만.”
“미치지 않았어요.”
성전의 모두가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물론 구스타프가 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극히 적죠. 하지만 어떤 상황을 가정한다면, 90퍼센트 이상이에요.”
진천 제국의 황제 진강이 물었다.
“그게 뭐지?”
“세상이 엉망진창이 될 확률.”
각국 대표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비츠가 생각하는 건 단지 전쟁 같은 게 아니에요. 구스타프 제국이 군사를 일으켜 대륙으로, 동방으로, 남방으로 뻗어 나가면 심령권을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마족들이 바리케이드를 뚫고 세상으로 튀어나올 것이고…….”
그때부터는 혼돈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거군요.”
우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츠는 본능으로 움직이지만 구스타프 4기예는 이미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예요. 확률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라면 해볼 만하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하비츠의 비정상적인 사고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가용한 모든 것을 소모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이면 세계를 이용하려는 구스타프의 전략은 탁월했다.
‘하비츠 17세. 무서운 남자다. 생각하고 판단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 거슬려. 그냥 느끼고 있는 거야.’
진실로 믿어 버리면, 결국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간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인가?”
1등룡 블리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전의 일원으로 여기까지 들었으면 격식은 맞춘 것이겠지. 이제부터 우리 용족의 안건을 전하겠다.”
사뭇 오만한 말투였으나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는 이유는 블리츠에게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키는 12사도. 그중에서도 전투력에 있어서는 최강이라는 뇌익룡.’
그가 용족을 대표하여 성전에 출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대표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부로 용족은 성전을 탈퇴한다.”
“…….”
구스타프처럼 대가를 치른다면 누구나 탈퇴할 수 있지만 회장에서는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아직은 인간에게 알릴 시기가 아니었다.
“용족이 성전에 가입한 이유는 앙케 라의 리셋으로부터 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제 라의 의지는 나네에게 전해져, 이제 시간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에게는 악보다 먼저 막아야 하는 것이 공이다.”
애와 공의 방향성이 새롭게 생기면서 더 이상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진짜가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나네와, 지금 우리가 마음을 던지는 곳만이 진짜라는 시로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수많은 자들이 율법의 나침반에 의해 새롭게 자신을 정의할 거야.’
구스타프 제국을 따르는 나라가 생길 것이고, 이는 성전의 국가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정족의 대표 에녹스가 물었다.
“성전에서 탈퇴한다고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요정족 대표잖아. 인간에게 붙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였으나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뉘앙스는 감출 수 없었다.
“흐음.”
칠왕성의 대표들이 굳은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오직 우오린만이 확신하고 있었다.
‘성전에 남을 것이다.’
천국의 요정과 인간계의 요정은 페어리와 엘프라는 이름으로 구분된다.
엘프는 페어리만큼 정신력이 강하며 무엇보다 인간에 가까운 육체를 가지고 있다.
‘마법의 경지는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천국의 요정과 노르인 간의 결합으로 추정되며, 이는 먼 옛날 끔찍한 실험이 있었음을 뜻했다.
“성전에 남을게요. 전쟁이 나면 수많은 생명이 죽을 텐데, 당연히 요정족이 도와야지요.”
우오린은 섬뜩했다.
‘대체 어떤 종족이 자신보다 약한 종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단 말인가?’
이것 또한 선이라면, 너무 ‘인위’적인 선이었다.
“요정의 대표시여, 그대의 선택으로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 같습니다.”
에녹스가 홍조를 띠며 혀를 내밀었다.
“헤헤, 칭찬받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요정은 예전부터 인간을 도왔으니까. 고귀하신 용족과는 다르죠.”
“흥.”
차갑게 돌아선 블리츠는 문을 나서기도 전에 육체를 변화시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장의 벽을 뚫고 사라지자 알이 굵은 돌덩어리들이 원탁이 있던 자리에 후두두 떨어졌다.
“……최악의 성전이군.”
***
시로네는 단도를 품에 넣었다.
‘이건 재구성할 수 없겠지.’
마테리얼이 이론상 어떤 물건이든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물질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 의의는 물질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정신에 있기 때문에 모방이 불가능했다.
‘그저 똑같은 모양의 단도를 만들 뿐이야.’
예를 들어 시로네가 유기질을 결합하여 인간의 육체를 만든다고 해도 생명을 넣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베르디가 진정되자 엄마가 일어섰다.
“집을 치워야겠어요.”
시체를 보는 건 그녀에게도 끔찍한 일이지만 자칫하면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걸레를 빨아 올게요. 일단 피부터…….”
“소용없어, 엄마.”
베르디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다들 알아차릴 거야. 수금하는 집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까.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잡혀갈 거라고.”
을 설명한들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형보다 두려운 건 진상 파악을 노리고 집요하게 가해지는 고문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시로네가 베르디와 엄마에게 다가왔다.
“은 없지만 내가 지켜 줄 거야. 그러니 함께 방법을 강구해 보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잠시 희망의 표정을 드러낸 베르디였으나 이내 눈동자에 절망감이 담겼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오빠처럼 강한 사람이 왜 우리를 도와주죠? 어차피 엄마랑 나는 아무 쓸모도 없잖아요.”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결국 떠날 거라는 거 알아요. 시간이 없어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귀찮아져서…….”
각박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평화로운 세상의 어른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떠나지 않아.”
시로네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베르디를 쓰다듬었다.
“너와 가족을 위협하는 수단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게 박애라면, 시로네는 이곳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정말로…… 지켜 줄 거예요?”
모두를 지켜야 하는 숙명은 고통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당연하지. 절대로 귀찮지 않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과 감정 앞에서 베르디와 엄마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었기에 시로네는 냉정함을 되찾고 엄마를 돌아보았다.
“가족은 이게 전부인가요? 혹시 부군은…….”
“아뇨. 남편은 지금 노역 중이에요. 군사시설에서 한 달 정도 일을 하고 돌아와요.”
엄마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무슨 일을 시키는지, 아무리 물어도 말을 하지 않아요. 알게 되면 가족이 전부 몰살당한다고. 그런데…….”
“그런데?”
“정상적인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집에 돌아오면 3일 동안 먹지도 않고 잠만 자는데…… 이상한 잠꼬대를 해요. 악몽을 꾸는 것 같아요.”
“어떤 말을 하죠?”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한 말인 듯 주저했으나, 엄마는 결국 순순히 털어놓았다.
“괴물의 아이를 낳지는 않을 거야, 라고.”
“실례지만 남편분은…….”
“네, 물론 남자예요. 베르디의 친부고요. 그런데 그런 꿈을 꾸니 이상하죠. 아침에 물어보니 물건을 던지며 화를 냈어요. 가족들에게 화내는 성격이 아닌데.”
몇 가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굳이 베르디와 엄마 앞에서 꺼낼 얘기는 아니었다.
“좋아요. 일단 부군을 찾으러 가죠.”
군인들의 시체를 방치한 상태로 시로네는 베르디와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후드를 썼다고 해도 금세 의심을 받을 것이기에 산을 타고 크게 우회하여 군사시설에 들어갔다.
‘정말 삼엄하구나.’
제단을 봉인하면서 몇몇 국가를 경험한 시로네지만 이 정도로 군기가 엄격한 곳은 처음이었다.
“정말 따라가도 괜찮아요?”
시로네의 뒤에 바짝 붙은 베르디와 엄마는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했다.
“제가 남편분의 얼굴을 모르니까요. 혹시 남편분이 아니더라도 아는 얼굴이 보이면 말해 주세요.”
철통같은 경계를 피하면서 7동 정도를 지나가자 베르디의 엄마가 전방을 가리켰다.
“저기, 알바스 씨예요.”
시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눈빛이 죽어 있는 남자가 썩은 음식이 풍기는 수레를 질질 끌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친구예요.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그녀가 기억하는 알바스는 한 달 전만 해도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다.
“불러 줄 수 있어요?”
남편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베르디의 엄마가 용기를 내어 그늘 밖으로 나갔다.
“알바스 씨. 알바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