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4
“하하하! 맞아. 죽을 놈 죽고 살 놈 사는 게 인생 아니겠어? 저것도 다른 의미로는 결벽증이라니까.”
“저놈을 좋아하는군.”
미네르바가 제트에 이마를 기대며 내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야훼를 부정하는 자는 두 부류밖에 없지. 끔찍하게 미워하거나, 끔찍하게 사랑하거나.”
“전자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
“어차피 같은 말이야.”
마족은…… 어째서 야훼를 증오하는 것일까?
“후후, 꼴에 사단장이라 이거지?”
미네르바가 제트를 붙잡고 빙빙 돌리자 베슘이 사지를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크으으으…….”
제트에서 손을 뗀 미네르바는 곰방대를 물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완벽하고 싶지.”
고통이 멀어지는 것을 음미하며 베슘이 다시 동공을 하늘로 돌렸다.
“연필을 가지런히 놓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름다워.”
미네르바의 곰방대가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완벽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지. 집을 짓고, 층수를 늘리고, 나는 행복해야 돼, 내 삶에 결점은 없어야 돼.”
그림이 연기로 풀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지. 정말로 완벽해질 수 있는 건가?”
“인간은 멍청하군.”
“맞아. 완벽을 향한 열망만 남고 자신은 사라지지. 그냥 조금 포기하고 살면 되는데 말이야.”
미네르바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이 세상에 하나의 고통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결벽증일 거야.”
마라두크의 검에 찔린 2,458번째 시로네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괜찮아. 나는 본체가 아니니까.’
사실은 모두가 시로네.
“그래서 화가 나는 거야. 전체를 사랑하는 야훼의 마음은 고결하지만…….”
미네르바의 담배 연기가 길게 퍼져 나갔다.
“시로네, 그 전체에 너는 어디에 있지?”
시로네를 모조리 베어 버린 마라두크가 마침내 본체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크크크, 가소로운 야훼.”
미네르바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길 수 없는 거야.”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박애라면 그것 또한 희생에 대한 오만일 것이다.
“완벽에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가능한 확률로 떨어져 버린다.”
시로네는 강하지만, 잘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을 가져가서 극악을 처단하고, 세계를 구원하고, 제단을 닫고, 1명의 희생자도 없이…….”
그런 시로네가 좋았다.
“하지만 내려놔.”
어떤 성자 앞에서도 숨길 수 없었던 더러움도 시로네의 앞에서는 평등해지는 것 같아서.
“상관없잖아, 오늘 다 죽어 버린다고 해도.”
그래서 나네보다 시로네가 조금 더 좋은 것이다.
“네 탓이 아니야, 시로네.”
하지만 깨닫지 못한다면, 이쯤에서 나네에게 세상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네르바는 베슘을 내려다보았다.
“극락왕생하기를…….”
이미 죽어 있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시로네의 생명 줄을 두 손으로 가득 쥐고 있는 마라두크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름다운 외모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잔인한 마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야훼의 우는 얼굴을 볼 줄이야.”
발할라 액션의 채무에 묶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시로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모두들…….’
세상을 지키지 못했다.
‘나 때문에…… 내가 약해서…….’
제이시가 남편을 잃은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은 없는가? 마족의 역사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겨 주마.”
에이미.
유언이란 말에 처음으로 시로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에이미의 얼굴이었다.
‘보고 싶어.’
시로네가 더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때 네 말을 들었더라면…….’
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꿈속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었더라면.
“이렇게 기록하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마라두크가 말했다.
“야훼는 찍소리도 못 했다라고.”
시로네가 부르르 몸을 떨며 고개를 세웠다.
“내가 박애를 깨달은 이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오직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시로네의 목을 붙잡은 마라두크의 팔을 타고 범접할 수 없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죽어라! 가증스러운 것!”
마라두크가 목을 부러뜨릴 듯 온 힘을 밀어 넣었으나 그보다 거대한 힘이 손가락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 이건……!”
시로네의 몸이 그 자체로 발광하면서 퀀텀 슈퍼포지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이 드러났다.
“그래, 시로네. 네가 진정 야훼의 빛으로 세상을 구원하고 싶다면…….”
멀리서 지켜보던 미네르바가 중얼거렸다.
“만滿을 초월해야 한다.”
생물이 도달할 수 있는 제9번째 감각, 공진이 시로네의 몸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파멸의 군주 (4)
***
“들은 얘기다.”
우오린이 만난 사람의 숫자는 범인을 초월하기에 간도는 굳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의 감각이 있다.”
우오린이 두 검지로 테이블을 그렸다.
“이를 테면 카드 게임 같은 거야. 다섯 장의 카드를 조합해서 이런저런 규칙을 정의하지. 물론 생물에 따라서 카드의 개수도 다르고,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가도 달라.”
“정의하는 룰도 달라지겠죠.”
“그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규칙을 정의한다는 것은 말이야, 게임을 시작하겠다는 뜻이거든.”
우오린이 머리를 두드렸다.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합의 패턴은 끝없이 누적된다. 그러다가 깨닫게 되지. 가지고 있는 다섯 장의 카드 외에, 가질 수 없는 카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시간.
“오감이 받아들인 경험은 하나의 감각, 공감각으로 통합되어 기억 속에 저장된다. 이 공감각이 축적되는 속도를 시간이라 부르는 거야.”
시간 또한 오감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시간을 다르게 느낄 때가 있어.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는.”
“감각의 축적 시간이 달라진 거군요.”
우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모든 시간대에 존재한다. 다만 오감의 존재라서, 공감각이 쌓이는 순간만을 현실로 느낄 뿐. 그런데 어떤 존재는 인간보다 더 빠르게 감각을 축적시키지.”
대표적인 예로 천사가 있었다.
“인간의 현재에 비해 천사의 현재는 훨씬 크다. 우리의 기준으로 봤을 때, 마치 현실의 시간이 폭발을 일으켜 팽창해 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지.”
생물이 도달할 수 있는 여섯 번째 감각.
“이걸 시폭이라 한다. 광천사의 화신을 가진 시로네는 우리가 느끼는 현재보다 더 큰 현재를 느끼는 거야.”
“……인간답지 않군요.”
“그렇게 시로네는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었다.”
규칙이 달라지는 것이다.
“감각이란 사물처럼 정확한 것. 시간을 감각으로 느끼는 시로네는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깨달았다.”
간도는 창밖을 돌아보았다.
“심령계.”
“인간들도 예민한 사람은 가끔 느낄 수 있어. 누군가 옆에 있는 것 같다거나, 문틈 사이로 보이는 이상한 눈동자 같은 것들……. 물론 박지는 그런 수준이 아니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은 감각이 아니니까요.”
우오린은 만족스러웠다.
“시폭에서 박지로, 그리고 초에니 바르도에 도달하면서 제7감마저 완벽하게 통합되었지. 이 시점에서 시로네는 정신을 사물처럼 감각하게 된다.”
우오린이 양팔을 벌렸다.
“남은 것은 확장성.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시로네는 초인지의 감각을 여는 것으로 제8감 입도에 들어갔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감각할 수 있게 된 거야.”
“돌아올 수 없을 뻔했죠.”
“야훼의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하지만 결국 무한의 마법사가 되었어.”
“더 남은 것이 있습니까?”
“스트링.”
우오린이 검지를 들었다.
“시폭은 광자를 감각하고, 박지는 양자를 감각한다. 입도는 광양자를 감각하지.”
순서대로 시공간, 비실체, 정보를 정복해 나갔다.
“정보라는 것은 고유의 개성이 담긴 신호. 그렇다면 그 신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녀의 검지가 구부러졌다.
“특정 형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정보는 진동이 만드는 무한한 형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가 전부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단 한 번.”
검지를 구부린 우오린이 엄지에 걸고 튕겼다.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단 한 번…….”
“그래. 최고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누군가가 길을 걷다가 팽팽하게 당겨진 실이 보인 거야. 그래서 그냥 톡 하고 튕긴 거지. 그게 끝이야.”
간도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얼마나 강하게 튕겼는지는 몰라. 그 강도에 의해 우주의 결과물은 무한대로 쪼개지겠지만, 어쨌거나 실은 진동했고 그 진폭이 만드는 확률에 의해 시간이, 공간이, 실체와 비실체가, 모든 정보가 특정 형태로 결합되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지.”
우오린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 가닥의 실이 진동하는 진폭 속에서, 그 힘에 기대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그것은 영겁의 세월을 산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까마득히 먼 날의 일이지. 멈추기는커녕, 진폭이 줄어드는 시점조차 언제인지 몰라. 물론 그때쯤이면 이 우주도 막을 내려야겠지만.”
간도로서도 상상할 수 없는 스케일이었다.
“진동만이 전체다. 극과 극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모든 정보가 진동하고 있지.”
“그렇다면 공진은…….”
“그래.”
우오린이 간도를 돌아보았다.
“초인지를 깨달은 자가 탐색할 수 있는 세상은 더 이상 고정되어 있지 않아. 그저 한 번의 힘에 의해 발생하는, 끝없이 요동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8개의 감각이 스트링과 결합된다는 것은…….”
부채를 펼친 그녀가 근엄하게 읊조렸다.
“세계의 진동과 공명할 수 있다는 뜻이니라.”
“…….”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간도는 알 수 없는 경외감에 고개를 숙였다.
***
“크으으으으!”
시로네의 목을 양손으로 조이고 있던 마라두크는 거친 진동에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뭐냐, 너는?”
진정 두려운 것은 진동이 아닌, 그 전동을 통해서 느껴지는 수많은 진동이었다.
마치 온 세상이 시로네의 진동을 따라 흔들리는 듯했고, 마라두크의 시야도 위아래로 무섭게 흔들렸다.
“가증스러운 야훼!”
시로네의 목을 강하게 비틀자 진동이 만들어 내는 시로네의 잔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그 표정을 통해서 마라두크가 깨달은 것은 잔상의 숫자가 만 단위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냔 말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뜨리고 싶지만, 야훼의 빛이 마의 기운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두꺼운 팔근육이 폭발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자 시로네의 진동이 더욱 심해졌다.
족히 10만 명의 시로네가 있는 듯했고, 온갖 표정의 중첩 속에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옥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흐으으으으.”
그 우주적인 현상 앞에서, 마라두크는 생애 처음으로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피눈물을 흘리는 시로네, 절규하는 시로네,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시로네.
“……날 조롱하는 것이냐?”
그 잔상 사이로 웃으며 혀를 내미는 시로네, 황홀해하는 시로네, 폭소를 터뜨리는 시로네가 보였다.
“감히 군단장을 조롱해!”
파멸의 기운을 끌어 올린 마라두크가 생명을 소진할 각오로 손에 힘을 주는 그때.
‘잔상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는 똑같은 반응으로 공명하는 것이었다.
수만 명의 시로네가 수천 명으로, 다시 수백 명으로, 급기야는 수십 명으로.
“으으으으으으!”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내는 똑같은 표정의 시로네가 그저 빠르게 전후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흔들리는 게 아니야.’
1명이 이 정도의 속도로 흔들렸다면 이미 뇌는 두개골 안에서 죽이 되어 버렸을 터였다.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