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
아린이 말했다.
“카니스, 다 됐어. 출발하자.”
촉수형의 그림자에 묶인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교정을 빠져나간 뒤에야 시로네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전교생을 어딘가로 끌고 갈 생각인 듯했다.
“대체 누구지? 전교생을 생포하다니. 아니, 게다가 선생님들까지 붙잡혀 있잖아.”
“생각할 시간 없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시로네가 말했다.
“여자애가 시전한 마법은 정신 계열 마법인 것 같던데, 그럼 지금 상황도 저들이 벌인 짓일까?”
“그럴 가능성은 적어. 촉수형을 구사하는 실력은 인정하지만, 기억이 사라진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건 누가 전교생의 기억을 지웠느냐는 거지.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시전하려면 일단 스피릿 존의 크기부터 엄청나게 커야 돼.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우리 또래고, 한 놈은 무기를 든 것으로 보아 마법사가 아닐 가능성이 커.”
“또 다른 흑막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고 봐야겠지. 물론 저 중에 엄청난 실력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추적에 집중하자. 만약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아.”
“마법학교를 장악하다니, 정신 나간 놈이야. 더군다나 암흑 마법이라…….”
불길한 느낌을 한가득 품은 채, 시로네 일행은 불청객의 뒤를 밟아 나갔다.
***
수련관에서 좌선하고 있는 에텔라는 어제와 똑같은 복장, 똑같은 자세였다.
가부좌를 튼 채 미동조차 없던 그녀의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 이어서 미간이 구겨지고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어금니를 강하게 깨문 그녀의 목에 핏줄이 일어서고, 급기야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흐으으으……!”
에텔라의 몸을 따라 건물이 흔들렸다. 벽면과 천장이 진동하면서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마침내 번쩍 눈을 뜬 그녀가 거친 숨을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새벽녘에 불현듯 들이닥친 심마와 밤새도록 사투를 벌인 그녀의 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대체 뭐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머릿속에 침투해 기억을 차단하는 종류였다.
물론 암흑 마법 또한 정통 학파에 속하지만 마법에 담긴 악의는 에텔라의 경계심을 극단으로 끌어 올릴 만큼 강렬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율법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기억을 잃고 말았을 터였다.
‘암흑 마법. 하지만 교내에서 엄금하고 있을 텐데.’
에텔라는 시간을 확인했다.
여름이라 대낮처럼 밝았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12시간 이상 심마에 갇혀 있었어.’
수도사의 지고지순한 정신력을 고려하면 놀랍도록 강력한 마법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수업을 완전히 빼먹었는데도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만 당한 게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에텔라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수련관을 뛰쳐나갔다.
어둠의 불청객(4)
***
마법학교 상공에 공간 이동 마법의 굉음이 들렸다.
한 줄기 섬광이 자석에 이끌리듯 지상으로 휘어지더니 충격 없이 사드가 착지했다.
“제길! 늦었나!”
지리적 포인트를 기억하는 크레아스에 도착하자마자 공간 이동을 연계하여 학교 정문에 도착한 그였다.
아치를 지키는 경비들이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자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암흑 마법이다.’
그것도 굉장히 높은 수준의.
‘스승님부터 찾아야 해.’
사드가 교사 숙소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또다시 공간 이동의 굉음이 들렸다.
바짝 긴장한 사드가 스피릿 존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에텔라가 착지했다.
“사드 선생님! 오셨군요!”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제 막 출장에서 돌아온 사드가 학교에서 일어난 사태를 알고 있다는 건 의아한 일이었지만 에텔라는 생각을 접었다.
그 정도의 맥락이 아니고서는 현재 마법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 설명되지 않았다.
“암흑 마법에 당한 것 같아요.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전부 기억을 잃었어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사드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리 미쳤어도 그렇지, 왕국 5대 명문 중의 하나인 알페아스 마법학교를 급습하다니.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상황부터 설명해 주세요.”
에텔라가 뒤편의 산을 가리켰다.
“스피릿 존으로 탐색해 보니 전교생이 산을 올라가고 있어요. 방향을 봐서는 건널 수 없는 다리 쪽인 것 같아요. 인솔자는 3명이고, 그들을 미행하는 3명이 있어요. 교사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저만 빠져나온 것 같아요.”
아케인의 암흑 마법은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지만 에텔라 또한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이니 그녀의 정신을 지배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 사드가 아는 것을 설명했다.
“빨리 말씀드리죠. 이번 일을 저지른 자는 빌토르 아케인. 오래전 세상을 어지럽힌 대마법사입니다.”
“빌토르 아케인.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째서 마법학교에……?”
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페아스의 좋지 않은 개인사였다.
하지만 현재 의지할 사람은 에텔라뿐이었고, 그녀라면 편견 없이 받아들여 줄 터였다.
“빌토르 아케인은, 교장 선생님의 스승입니다.”
에텔라는 눈을 깜박거렸다.
하지만 사드의 바람대로 편견은 작용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자들 중에 아케인은 없는 것 같아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학생들부터 구하는 게 좋겠어요.”
“안 됩니다. 에텔라 선생님도 느끼셨겠지만 정신 마법에 걸리면 쉽게 풀 수가 없어요. 학생들을 하나씩 구하려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말 겁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잖아요.”
“미행하는 세 사람이 있다고 했죠?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시로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시로네요?”
에텔라의 말을 듣는 순간 사드도 퍼뜩 떠올렸다.
아케인의 마법이 시전된 시점은 대략 24시간 전후일 것이다. 그사이에 공식적으로 학교 밖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정학을 당한 시로네 일행뿐이었다.
“세부 형태까지 느낀 것은 아니라서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기질로 봤을 때는 시로네, 네이드, 이루키 같았어요.”
“아마도 맞을 겁니다. 그 아이들이 추적하고 있다면 당분간은 괜찮을 거예요. 머리가 좋은 애들이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있겠죠. 차라리 아이들에게 맡기고 에텔라 선생님은 아케인을 찾아 주십시오. 그자를 잡지 못하면 학생들을 구할 수 없어요.”
“사드 선생님은 어쩌시려고요?”
“저는 교장 선생님을 찾겠습니다. 스승님을 찾아서 암흑 마법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에요.”
에텔라는 수긍했다.
“그럼 저는 아케인을 찾을게요. 그가 어디에 있을지 짐작 가는 곳이 있나요?”
사드는 산등성이를 돌아보았다.
“수백 명이 동시에 당했습니다. 이 정도의 대형 마법이라면 정신력을 상당히 소진했을 겁니다. 인적이 없는 곳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산을 중심으로 찾는 게 빠를 겁니다. 에텔라 선생님은 조너시죠. 인물 탐색이 가능한 범위에서 스피릿 존을 확장했을 때 반경이 얼마나 되죠?”
“음, 대략 2킬로미터 정도요.”
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군데 정도 포인트를 잡으면 괜찮을 겁니다. 훈련장을 기준으로 순찰해 주세요. 저는 학교로 가겠습니다.”
“네. 이쪽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케인을 꼭 붙잡아서 학생들을 구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아케인은…….”
사드는 말을 삼켰다.
상대가 강하다는 말을 해 봤자 그녀의 사명감만 불태울 뿐이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이자 국가가 인정한 조너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아닙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페아스의 제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사드는 스승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에텔라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저도 이 학교의 교사인걸요. 학생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어요.”
“네. 그럼…….”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사드가 순간 이동을 시전해 학교 쪽으로 날아가자 에텔라도 산 쪽을 돌아보았다.
수열식이 초고속으로 올라가고, 스피릿 존이 엄청난 속도로 퍼지더니 반경 2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것들이 느껴졌다.
‘제26훈련장으로.’
에텔라의 몸이 빛으로 변하더니 무려 1킬로미터 떨어진 산 정상으로 날아갔다.
마법사의 전투(1)
카니스 일행은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스타트 지점에 수백 명을 집결시켰다.
임무를 끝낸 아린의 얼굴은 창백했다.
어비스 노바에 걸린 상태라고 해도 수백 명의 인간을 정신 지배로 이동시키는 일은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수풀에 숨어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네이드가 물었다.
“왜 하필 이곳일까? 다리하고 절벽뿐인데.”
“누구를 기다리는 거 아닐까?”
이루키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절벽, 정신 지배, 악당. 이 세 가지 요소로 추리할 수 있는 답은 하나지. 전부 추락시키려는 거야.”
“뭐어?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 학생을 떨어뜨려 봤자 득이 될 게 없으니까. 하지만 감정적인 문제라면 어떨까? 원한이나 복수 같은 거 말이야.”
시로네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해. 어쩌면 싸워야 할지도 몰라.”
친구들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10분 동안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정신 지배에 당한 상태로 서 있을 뿐이었고, 카니스와 아린은 절벽을 살피며 아케인을 기다렸다.
아린이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학교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알페아스는 데려오지 못했잖아.”
“어쩔 수 없지. 스승님도 알페아스를 만나면 특히 조심하라고 했잖아.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돼.”
“그래도…… 왠지 혼날 것 같은데.”
카니스가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린, 스승님은 합리적인 분이야. 이런 일로 절대 혼내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몇 걸음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카스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거액을 준다는 말에 따라오기는 했지만 마법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른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계약금을 더 올렸을 터였다.
무엇보다,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케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어이, 너희들 스승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혹시 도망친 것은 아니겠지?”
다름 아닌 왕국 5대 명문을 급습한 사건.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류 귀족임을 감안하면,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난다고 해도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터였다.
천하의 대마법사라 해도 도망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스승님을 함부로 평가하지 마라. 너 따위가 감히 입에 몰릴 분이 아니니까.”
“하아.”
루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을 고치고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독사의 눈빛으로 카니스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너,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정상치를 넘어선 적의가 밀려들자 정신감응력이 뛰어난 아린이 물러섰다.
반면에 카니스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눈빛이라면 라둠에서 수없이 당해 본 바였다.
‘사안蛇眼인가.’
시선으로 살기를 보내 상대의 간뇌를 타격,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훈련보다는 실전 경험과 타고난 성향을 통해서 발현되는 스키마 기술 중 하나였다.
사안을 구사한다는 것만으로도 루카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리다고 봐주는 건 끝이다. 지금부터는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계약이 어쩌고 하더니,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너희들 쪽이잖아?”
카니스도 이번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어째서 스승님이 오지 않는 것일까? 누구보다 오늘을 기다렸던 그가 시간에 늦는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카니스가 침묵을 지킨 채 투지를 거두자 루카스도 사안을 해제했다.
어쨌거나 아직 한 팀이었고, 무엇보다 잔금을 받아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쳇, 처음부터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루카스는 어비스 노바에 걸린 자들을 돌아보았다.
신진대사는 정상이기에 이들이 근력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스태미나가 약한 사람들부터 쓰러지면 처리하기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이봐, 차라리 지금 죽여 버리는 게 어때? 기절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일일이 집어 던지기도 귀찮고.”
루카스의 임무는 전문 칼잡이였다.
다수의 생명을 거두는 데에는 마법사가 좋지만, 생존자들의 목을 하나하나 따기에는 칼잡이만 한 게 없었다.
결국 체력이 고갈되면 루카스의 몫이 늘어나니 미리 숫자를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스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안 돼. 알페아스가 보는 앞에서 몰살시키는 게 작전의 핵심이다.”
“쳇, 그럼 즐기기라도 하자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전부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들이잖아.”
카니스의 눈에 역함이 담겼다.
하지만 라둠 출신인 그는 루카스 같은 인간이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돌변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하고야 말 것이다.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쓰레기 같은 놈.”
결국 카니스는 내뱉고 말았다.
루카스의 걸음이 우뚝 멈추더니 몸이 천천히 돌아섰다.
이미 사안이 발동되어 있었으나 충격에 적응하는 뇌의 특성상 같은 대상에게 반복하는 것은 효과가 떨어졌다.
“크크크, 내가 왜 너를 싫어하는지 알아? 무슨 대단한 신념이라도 있는 척 군다는 거야. 너나 나나 범죄자일 뿐이야. 오늘이 지나면 너도 수백 명을 몰살시킨 살인자가 되는 거라고.”
“나에게 신념은 없어. 오직 스승님의 뜻에 따를 뿐이다. 그냥 너 같은 인간이 역겨운 것뿐이야.”
“하하! 그래? 진짜 역겨운 게 뭔지 알아? 약하면서 입만 산 놈들이지. 네가 어쩔 건데?”
인파 쪽으로 성큼 걸어간 루카스가 빠르게 주위를 살피더니 시이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다리가 뜰 정도로 들어 올리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상태로 절벽으로 이동한 루카스가 말했다.
“일단 1명 죽이고 나면 알게 될 거야. 너도 나하고 다를 바 없는 쓰레기라는 걸 말이야.”
루카스가 절벽 밖으로 팔을 내밀자 시이나의 두 다리가 대롱대롱 흔들리고 입에서 컥컥 소리가 터졌다.
“이 여자도 괜찮네. 죽이긴 아깝지만, 뭐…….”
그렇게 시이나를 떨어뜨리려는 순간, 루카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