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
솜털이 서는 듯한 기분.
스키마 유저만이 느낄 수 있는 스피릿 존 특유의 자극이었다.
‘마법사다! 어디지?’
오른쪽 다리가 저리는 기분을 느낀 루카스는 황급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거의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정통으로 맞았으면 무릎이 끊어졌을 터였다.
“큭!”
지상에 착지한 루카스는 곧바로 뒤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물러섰다.
스피릿 존의 반경을 짐작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거리를 벌려 두는 게 대마법사전의 정석이었다.
마법사의 전투(2)
루카스의 시야에 두 줄의 섬광이 번뜩이더니 네이드와 이루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빛에는 적개심을 넘어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감히 선생님을…….”
루카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멀쩡한 놈들도 있었잖아? 하여튼 마법사들이란.”
명색이 대마법사라는 자가 표적을 놓치는 실수를 하다니.
게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건 그의 경험상 늘 뒤끝이 좋지 못했다.
“그 여자가 선생이었냐? 미안하군. 지금쯤이면 거의 도착했을 거다. 땅바닥에 말이야.”
말이 끝나는 순간 절벽 아래에서 시이나를 끌어안은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올라왔다.
그의 눈빛도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얼마나 타락해야 사람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릴 수가 있을까?
“당신, 용서하지 않겠어.”
루카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일이 늘어나는 상황이 짜증 날 뿐이었다.
“어이, 어쩔 거야? 이것도 작전에 포함되어 있는 거냐?”
잔금을 치를 때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루카스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카니스가 앞으로 나섰다.
“아린, 물러서 있어.”
“하지만…….”
“너까지 싸울 필요 없어. 사람들을 통제하는 임무에 집중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수백 명에게 정신 지배를 건 상태에서 전투까지 치르는 것은 무리였다.
아린이 물러서자 비로소 홀가분해진 카니스가 시로네 일행에게 걸어갔다.
“너희는 뭐야? 어떻게 정신 지배에서 빠져나왔지?”
이루키가 말했다.
“파훼법 정도야 널리고 널렸지. 암흑 계열이라고 해 봤자 이미 시대에 뒤처진 마법 아닌가?”
카니스는 속지 않았다.
“헛소리하지 마.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다면 다른 놈들도 걸리지 않았겠지.”
‘그건 그렇지…….’
이루키가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카니스는 고개를 들어 태양의 위치를 살폈다.
여전히 빛이 강한 시간대였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제자가 고작 마법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조건을 따질 필요는 없을 터였다.
팔짱을 낀 루카스가 소리쳤다.
“어이, 어떡할 거야? 이건 계약에 없었다고. 돈을 2배로 준다면 대신 죽여 줄 수도 있는데.”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내가 처리한다.”
“그럼 그러시든지.”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섰다.
마치 나서지 않겠다는 투였지만, 속셈은 정반대였다. 관심 없는 척 기다리다가 뒤에서 베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카니스가 걸음을 옮겼다.
“빨리 덤벼라. 너희들 따위에게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거리가 좁혀지자 시로네 일행이 동시에 물러섰다.
공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카니스의 스피릿 존은 대략 직경 50미터의 구체로, 시로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 시로네가 후퇴를 멈추며 말했다.
“내가 할게. 너희들은 저 검사를 막아 줘.”
네이드가 물었다.
“혼자서 괜찮겠어? 분위기를 보니까 검사 쪽은 나서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절벽으로 떨어뜨린 비열한 놈이야.”
친구들을 돌아본 시로네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저 녀석이 하는 어떤 말도 믿지 마.”
이루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완벽한 실전 태세로 들어간 시로네의 사고는 극도로 냉정했다.
‘걱정할 필요 없겠어.’
친구들이 루카스 쪽으로 향하자 시로네는 그제야 스피릿 존을 세부적으로 조율했다.
두 사람의 스피릿 존이 스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기분이었다.
카니스와 눈을 맞춘 시로네는 미간을 구겼다.
‘뭐지, 이 녀석?’
상대의 눈에서 어떤 시그널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짐승처럼 그저 검은 동공이 박혀 있을 뿐, 인간의 눈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저런 눈이 되는 것일까?
스피릿 존이 서로를 겨누는 가운데 카니스가 먼저 어둠의 권능을 시전했다.
발밑의 그림자가 양탄자처럼 출렁이더니 지면에서 떠올라 사선으로 쇄도했다.
시로네는 광자 출력으로 맞섰다.
섬광이 그림자의 일부분을 불태웠으나 본체의 어둠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출력을 이겨 낼 수 없었다.
‘빛을 견디는 어둠이라니.’
태양 아래에서 그림자를 띄우는 것은 물론 광자 출력까지 버티는 것은, 카니스의 정신적 근력이 순리를 역행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었다.
시로네 또한 수천 번의 리바운드를 통해 완력을 높인 적이 있기에 단련의 정도를 직감했다.
“큭!”
순간 이동으로 자리를 피한 시로네는 땅을 구른 뒤 섬광을 연사했다.
그러자 카니스도 섀도 월을 시전하여 그림자 벽을 일으켜 세웠다.
섬광이 부딪칠 때마다 파문조차 내지 못하고 빛이 스며들었다.
시로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어때?’
신의 입자가 빛을 집중시키면서 손바닥 안의 구체가 엄청난 밝기로 불타올랐다.
‘포톤 캐논!’
심상치 않은 기운으로 쏘아지는 섬광에 카니스는 황급히 섀도 월의 두께를 키웠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잠시, 섀도 월의 중심부가 뻥 하고 뚫리면서 섬광이 밀고 들어왔다.
‘뭐야, 이건?’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본능이 먼저 다크 스킨을 발동했다.
육체가 전부 검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포톤 캐논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컥……!”
다크 스킨의 흡수 한계치는 충돌 순간에 이미 넘었고 충격파가 내장을 흔들었다.
“크으으으!”
몸이 반으로 접힌 채 뒤로 날아간 카니스가 숲속에 처박히자 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카니스!”
다크 스킨을 파괴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이 통째로 날아가다니.
빛은 순수한 에너지일 뿐이다. 만약 물리력이 담겼다면 태양 빛이 닿는 모든 행성은 박살이 났을 터였다.
아린은 비로소 시로네를 살폈다.
‘누구지? 마법학교에 이런 마법사가 있다니.’
백면서생들이 모인 곳이라는 아케인의 평가가 썩 와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
건널 수 없는 다리에서 800미터 떨어진 산맥의 어디쯤에서, 에텔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비공인 3급 대마법사에 오른 빌토르 아케인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아케인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휴식을 취했더라도, 어비스 노바를 시전하면서 소진한 정신력이 6할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아케인은 자신을 가로막은 여성의 진가를 깨닫고 눈을 가늘게 떴다.
‘오호, 이것 봐라?’
꺼벙하게 보이는 안경과 발달한 가슴은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순한 양 같은 외모였다.
하지만 심안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기운은 육체의 모든 기혈이 막힘없이 흐르는 대하를 연상케 했다.
특히나 아케인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눈동자였다.
팔정(희로애락구애오욕)을 초월한 자가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선인의 정신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구도자였다.
그것도 마법학교의 교사로 있기에는 너무 뛰어난.
‘내 마법을 파훼할 만하구먼.’
에텔라가 예의를 표했다.
“고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어디 수도회인가?”
수도사라는 건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이어진 대답은 그의 생각을 상회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에텔라라고 합니다. 일찍이 암흑 마법으로 이름을 날린 분이 어째서 이런 참혹한 짓을 저지르시는지요.”
“비숍이라.”
아케인은 허허 웃었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비숍의 직위를 갖는다는 건 그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면 저 아이가 유별난 것이거나. 하긴…… 어느 시대에나 천재는 있는 법이니.’
카르시스라면 교구가 2천 개에 이르는,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수도회였다. 또한 비숍은 하나의 교구를 책임지는 직위로 영향력은 한 도시의 수장과 맞먹었다.
“알페아스는 어디 있나?”
에텔라는 침묵을 지켰다.
그녀 또한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조차 정보가 될 수 있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솔직히 말해도 상관없네. 알페아스 그 애송이가 순순히 내 마법에 당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환갑이 넘은 알페아스를 애송이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아케인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새삼 느껴졌다.
“교장 선생님은 왜 찾으시죠? 은원 관계라면 직접 만나서 푸는 게 도리라고 봅니다. 학생들을 정신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물러가 주신다면 제가 자리를 주선하겠습니다.”
“껄껄껄! 내가 없는 동안 애송이가 꽤나 평판을 쌓았나 보구나. 하지만 아이야, 알페아스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놈이지.”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지금의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아케인은 장난스럽게 턱을 쓰다듬었다.
따지고 보면 그의 기억 속의 알페아스는 한창 청춘을 불태우던 20대의 청년에 국한되어 있었다.
“궁금하구나. 대체 그 애송이가 무슨 짓을 했기에 존경을 받는단 말이냐? 어디 말이나 한번 들어 보자.”
에텔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해가 떨어질 시간이었다. 암흑 마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었다.
“어둠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만두시죠. 교사로서 더 이상 악행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뭐라?”
아케인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120살이나 덜 먹은 어린애가 감히 자신을 수작이나 부리는 삼류 마법사로 취급하다니.
“하여튼 요즘 것들은…….”
어둠의 권능이 발동되면서 아케인의 그림자가 나무들을 타고 올라갔다.
나뭇가지가 우수수 흔들리더니 모조리 한곳을 향해 휘어지기 시작했다.
“고작 해 따위가 떴다고 너에게 겁을 먹은 것 같았더냐? 그렇다면 이 아케인을 아주 우습게 본 것이니라.”
에텔라는 위를 살폈다.
수백 미터 반경에 있는 나무들이 전부 기울어지면서 네트처럼 얽힌 거대한 돔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하늘이 닫히자 사위는 밤처럼 어두워졌다.
“죽어라. 괘씸한 것.”
아케인의 육체가 자신의 그림자 아래쪽으로 쑥 하고 꺼졌다. 암흑 마법의 이동 기술인 다크 포트였다.
그림자의 2차원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거리 개념을 지워 버리는 것으로, 어둠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오버 파워 마법이었다.
무엇보다 기척이 없다는 것이 다크 포트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에텔라의 후미를 제압한 아케인이 손을 내미는 순간 에텔라의 몸이 섬광으로 변해 멀어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아케인이 만든 수십 개의 그림자 손이 허공을 할퀴다가 본체로 흡수되었다.
“흥, 쥐새끼처럼 잽싸구나.”
아케인의 몸이 다시 아래로 쑥 꺼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초고속 이동전이 벌어졌다. 복잡한 숲에 수십 명의 아케인과 에텔라가 있는 듯했다.
잔상이 점멸하면서 점차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더니 어느 순간 아케인이 에텔라를 좁은 곳에 몰아넣었다.
“벌써 끝인가? 싱겁군.”
아케인이 내민 손을 따라 수십 개의 그림자 손이 뻗어 나오자 에텔라의 눈이 커졌다.
“큭!”
에텔라는 수십 회의 순간 이동을 제자리에서 되먹였다.
각기 다른 동작을 취하는 상체의 잔상이 부채처럼 펼쳐지고, 그림자 손이 실체 없는 에텔라를 관통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과연 제법이다.’
여태까지 노기를 품고 있던 아케인도 조금 전의 반응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의 거대함은 자신에게 못 미치지만 기술과 감각은 연령을 훨씬 초월한 경지였다.
“크크.”
아케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약한 부분을 찔러 주어야겠지.”
어둠의 권능.
수천 개가 넘는 그림자 손이 사방의 어둠에서 동시에 날아오자 에텔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무 많아.’
가히 끝을 알 수 없는 마법력.
조너의 탐지 능력은 그 자체로 마법이라 불릴 만하지만 수천 개의 손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나뭇가지에서 내려온 그림자에 손목이 붙잡히자 에텔라의 동작도 멈췄다.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