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9
“알겠습니다.”
검을 휘두를 수만 있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이는 발칸의 핵심 말이었다.
가이를 출진시킨 발칸이 임시 막사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엑스마키나, 그리고 . 제길! 처음부터 전부 정해진 수순이었던 거야.’
아벨라에게 들은 것은 카샨에서 하비츠를 죽이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는 얘기뿐이었다.
‘그녀마저 속였겠지. 하비츠 암살은 이제부터다.’
막사에 들어간 발칸이 소리쳤다.
“전군 퇴각할 준비를 하라! 가용 인원을 전부 투입해서 황제 폐하를 모셔 와!”
“네? 하지만 어째서 지금 퇴각을…….”
발칸은 부하가 반박할 틈을 주지 않았다.
“황후마마는?”
“귀족 거처에서 쉬고 계십니다.”
빠르게 무장을 끝낸 발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의 천막을 걷었다.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
제이스틴이 말했다.
“두려웠어.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등에 지면서도, 그냥 외면했어.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어.”
대상 박탈이 일어난 은 목적을 잃은 채 끝을 알 수 없는 증오만을 머금게 된다.
“고마워,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제이스틴이 을 손에 쥐었다.
“이게 그 단도구나.”
살의가 단도에 스며들자 하늘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도 이것이, 어린 시절 미네르바 씨의 절규.’
끔찍했다.
“시작할게.”
시로네가 마테리얼로 만든 원자시계를 꺼내 율법을 저격할 시간을 측정했다.
“이루키가 설계한 좌표까지 41.331초 남았어요.”
전광판의 숫자가 30초 아래로 떨어졌다.
“정확히 맞출 수 없을 거야.”
제이스틴이 저격에 능하다고 해도 1천분의 1초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예요. 이루키와 통신하면서 율법을 조율할 겁니다.”
미네르바가 덧붙였다.
“그러니 시간은 생각하지 마. 우리가 너에게 원하는 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증오야.”
“그건 자신 있지.”
10초를 남겨 두고 제이스틴이 눈을 감았다.
‘하비츠.’
그녀의 심상에서 하비츠는 거대한 불꽃이 되어 악마의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야.’
그것은 증오가 아니므로.
‘오직 내 개인의 원한. 그러니까…….’
심상의 불꽃이 펑 하고 폭발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제이스틴의 얼굴이 탄생했다.
‘죽어!’
시로네가 말했다.
“4초.”
이를 악문 제이스틴이 단도를 움켜쥐며 두 다리를 앞뒤로 크게 벌렸다.
“이야아아아아아!”
목이 찢어질 듯 괴성을 내지르며 상체를 튕긴 그녀가 을 뿌리듯 내던졌다.
“……아아아아아아!”
증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
쾅!
천둥이 치듯 공기가 폭발하면서 의 궤적이 빨랫줄처럼 쭉 하고 뻗어 나갔다.
“출발!”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을 추적했으나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엄청난 속도다. 이건 대체…….’
14년의 울분을 담은 의 비명 소리만이 뒤늦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시로네! 타!”
미네르바가 평소와 달리 제트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옆으로 다가왔다.
“최고 속도로 비행할 거야. 내 허리를 잡아.”
“더 빨리 날 수 있었어요?”
“응.”
시로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날았어요?”
“진동이 너무 심하거든.”
아래를 살핀 미네르바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해맑은 미소를 드러냈다.
“한번 맛보면 멈출 수가 없어서.”
“…….”
잠시 멍해 있던 시로네가 고개를 흔들면서 미네르바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이번에는 멈춰야 해요.”
“참아 볼게. 그리고 허리 잡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을 테니까.”
더욱 잡기 싫어지는 이유는 뭘까.
제트가 잔진동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으으으으으!”
소닉붐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미네르바가 고개를 쳐들며 신음 소리를 냈다.
“하아아아…….”
시로네가 일갈하려는 그때, 그의 머릿속에 이루키의 음성이 들어왔다.
-시로네! 들려?
근 1년 동안 연습한 텔레파시 마법이었고, 이탈형의 장점으로 원거리 통신이 가능했다.
“들려. 그런데 노이즈가 좀 섞여 있어.”
-거리가 멀어서 그래. 스피릿 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은 어때?
시로네가 고개를 돌린 곳에 제트와 나란히 비행하고 있는 이 보였다.
“탄은 무사해. 이제 어떡하면 돼?”
-약간 빨랐어. 의 속도를 초속 80센티미터 정도 늦춰 줄 수 있겠어?
“해 볼게.”
야훼의 빛을 띄운 시로네가 정면에 얇은 공기의 막을 만들자 의 진동이 심해졌다.
-그렇지. 조금만 더. 됐어.
바슈켄으로부터 98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의 숲으로 들어가자 시로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다 설계했단 말이야?’
나뭇가지 하나만 걸려도 율법을 뒤바뀔 테지만, 은 수많은 빈틈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옹달샘의 물을 마시는 사슴의 머리 위로, 살쾡이가 토끼를 덮치는 아랫배 밑으로…….
-이건 약과야. 대부분의 데이터가 수도에 집중되어 있어. 80킬로미터 지점부터 우리가 할게.
엑스마키나가 있는 마을을 지나가는 지점에서 이루키의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나도 따라가겠어.”
결과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구스타프 병력이 쫙 깔렸어. 마력 제어장치도 풀가동 중이고. 수도 입구에서 빠져나와.
“알았어.”
몇 개의 도시를 지나 마침내 수도 바슈켄의 외성 문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루키, 병력이 포진하고 있어.”
-상관없어. 이미 하비츠가 죽는 결과를 내도록 율법을 조절했으니까.
조율 외적인 연산은 엑스마키나가 하기에 이루키도 병력의 면면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누가 온다!”
이루키의 목소리가 다시 탁해졌다.
-……괜찮……. 어차피…… 율법…….
은 전체 병사들이 지키는 유일한 틈새를 따라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성문을 관통했다.
“뭐, 뭐야?”
병사들이 황당한 듯 돌아보는 그때, 2미터가 넘는 철갑의 기사가 검을 빼 들었다.
“이야아아압!”
땅이 터지는 광경만 봐도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다.
“피해!”
미네르바가 제트의 머리를 뒤틀자 바람이 밀려나고, 그 풍압을 뚫고 가이가 장검을 내리쳤다.
시로네는 정신이 아찔했다.
‘이건……?’
순간 이동으로 피하는 와중에도 섬광에 새겨진 상대의 의지를 똑똑히 확인했다.
‘오젠트의 검술?’
굉음을 내며 땅이 갈라지고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착지했다.
“어라? 피했어?”
거구의 기사가 허리를 펴며 장검을 어깨에 걸쳤다.
‘말이 장검이지…….’
리안의 대직도보다 길고 두꺼웠다.
“역시 구스타프에 들어오길 잘했어. 군사의 옆에 있으면 재밌는 전쟁을 많이 할 수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투구를 벗는 순간, 시로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리안?”
아니, 골격이 조금 더 강했고 나이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흑발이었다.
가이가 두꺼운 눈썹을 꿈틀했다.
“희한하군. 여기서 내 동생의 이름을 들을 줄이야.”
“동생이라면…….”
테무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오젠트 가이?”
“호오?”
가이가 흥미롭다는 듯 시로네를 쳐다보았다.
“너, 누구냐?”
무시무시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
“우하하하! 나는 거지다!”
발칸을 제외한 구스타프 4기예는 민가로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해쳤다.
죽이는 기술이야 나타샤가 우위지만 제타로의 행위는 끔찍했고 스모도는 사악했다.
“이 멍청이들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발칸이 아벨라를 대동하고 달려왔다.
“전하는? 하비츠는 어디 있어?”
나타샤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내기했어. 아마 저쪽 민가에 들어갔을걸.”
아니나 다를까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제길! 빨리 퇴각 준비해! 떠난다!”
“벌써 전쟁이 끝났어?”
“아니. 성은 함락 직전이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빠지고 보자.”
발칸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인데?”
대답을 할 여유도 없이 발칸은 아벨라를 데리고 비명이 터진 곳으로 갔다.
“하비츠를 설득해 주십시오! 수도를 떠야 합니다.”
“알, 알겠어요.”
비명이 있는 곳에 하비츠가 있기에 길을 헤맬 필요 없이 곧장 민가의 문을 열었다.
“이리 와! 내가 술래다!”
집 안은 난장판이었고 대장간에서 가져온 투박한 검을 들고 하비츠가 가족을 뒤쫓고 있었다.
“여보! 이쪽으로!”
어린 자식을 품에 안은 엄마가 다락의 계단을 뛰어오르자 방향을 틀던 하비츠가 넘어졌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끌어안고 비는 가운데 하비츠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래 봤자 막다른 곳이지.”
발칸이 소리쳤다.
“전하! 빨리 피해야 합니다! 장담하건대 지금 수도를 뜨지 않으면 죽을 겁니다!”
가족의 얼굴에 기적과도 같은 안도감이 깃들었다.
‘살았다. 우린 살았어.’
하비츠가 엎드린 상태로 뒤를 돌아보았다.
“죽는다고?”
그의 눈동자가 무서운 열망으로 빛나더니 허겁지겁 계단을 기어올라 갔다.
“꺄아아아악!”
가족들을 도륙하는 하비츠의 모습에 발칸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군.”
자신의 죽음보다도, 안도감에 휩싸인 가족을 죽이는 게 더 재밌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아벨라가 소리쳤다.
“여보! 빨리요! 이상한 무기가 당신을 죽일 거래요!”
발칸이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