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9
닥터 그레인.
제노사이드 소속 의사이자 임상 시험 전문가로 뱀파이어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남자였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는군. 설마…… 뱀파이어는 아니겠지?”
흔한 농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일행의 반응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데려왔어요. 이 남자, 마하의 기사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물론 자칭이지만.”
“호오? 그렇다면 더욱 의심스럽군. 1만의 마족을 베는 건 생물의 영역이 아니지.”
“시답잖은 말은 그만하고 확인해 줘요. 심장이 멈춘 인간이 되살아날 수 있어요?”
그레인이 설명을 구하듯 리안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사실은…….”
아지트로 오면서 그레인이란 사람에 대해 들었기에, 리안도 자신의 궁금증을 토로했다.
“흐음, 스밀레라는 환청이 들리면 상처가 재생된다는 거지. 심지어 사망 상태에서조차도.”
“네. 이제는 죽는 법을 까먹은 것 같아요.”
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일이군. 하지만 특별한 현상은 아니야. 영생이란 본래 생물 고유의 특징이기도 하니까.”
“죽지 않는단 말입니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돌이 깨진다고 죽었다고 표현하지는 않아. 생물도 무기물에서 나왔지. 태초의 생물, 원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사망이란 개념은 없네.”
리안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영생체로 진화하지 못했는가? 바로 바이러스 때문이지.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은 것들이 특정 정보를 감염시키거든.”
그레인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정보의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하는 거야. 돌연변이만으로 방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그래서 생물은 정보 결합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차용했지. 암과 수의 결합으로 새로운 정보를 만든 다음, 기존의 정보를 폐기하는 거야.”
“그것이 죽음이군요.”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한 낡은 정보는 폐기되어야 하고, 새로운 정보는 끝없이 생산되어야 해. 동물이 근친상간을 싫어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지. 낡은 정보와의 결합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그레인이 리안을 가리켰다.
“스밀레의 환청, 자네의 할아버지도 들었다고 했지. 하지만 자네는 스밀레가 누구인지 모르고.”
“네.”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설령 기억에는 없어도 자네의 유전자에는 각인되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야.”
“유전자요?”
“미립자의 세계로 들어갈수록 알게 되는 건, 이 세계에 아날로그는 없다는 거야. 생명 또한 최소 단위의 정보 집합체에 지나지 않아. 내 생각에 자네의 현성은, 특정 자극에 반응하는 아주 오래된 유전자 정보일 수도 있어.”
제니아가 물었다.
“그 정보가 발동되면, 죽지 않는다고요?”
“가능하지. 아까 말했듯이, 죽음이란 본래 생명이 가지고 있던 기능이 아니야.”
리안이 물었다.
“그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를 머릿속으로 끄집어내는 게 가능합니까?”
알고 싶었다.
의 주인은 누구였는지, 어째서 이미르는 오젠트를 알고 있었는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듣는 환청 또한 유전자 레벨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침투한 것이니까. 하지만 더 자세히 들어가려면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복잡한 과정이라면?”
“유전자 정보는 인간의 문자가 아니야. 하지만 뇌는 완벽한 통역 장치지. 특정 자극이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자극의 방향성과 강도를 달리해 보면 될 터.”
그레인은 전문가였다.
“아마 생물이 감당할 영역이 아닐 거야. 아무리 재생이 된다고 해도 고통은 현실의 것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디까지 경험해 봤나?”
“글쎄요. 심장이 멈추는 정도는 질리게 경험해 보았죠.”
그렇게 말하며 제니아를 돌아보자, 그녀도 이제는 믿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목이 잘린 적은?”
“완벽하게 분리된 적은 없습니다.”
그레인이 푸르르 입술을 떨었다.
“내가 자네를 실험한다면, 일단 목부터 잘라 볼 거야. 회복의 한계치를 알고 싶으니까.”
“뇌가 부서진 적은 있습니다만…….”
그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달라. 육체란 어디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핵심 기능들의 조합이거든. 핵심적이지 않은 건 이미 도태되었기 때문이지. 경험이 없다면 위험한 시도야. 자네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테지.”
스밀레의 환청에 대해 알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최후의 수단이지. 이곳에 머물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보도록 하세.”
리안이 물었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는 뭐죠? 그들도 유전자 단계에서 영생을 발동한 건가요?”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그레인이 리안을 돌아보았다.
“엄밀히 따졌을 때 놈들은 생물이 아니야. 바이러스지. 인간에게 특정 정보를 주입시켜 지배하거나, 그들의 정보를 흡수하여 몸을 재생하는 것. 모든 게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어.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반신반혼의 존재.”
“바이러스가 진화했단 말인가요?”
“아니. 처음에는 생물이었지.”
그레인의 사고가 시간을 거슬렀다.
“아주 먼 옛날에…… 화신을 깨달아 인간의 몸을 갖게 된 박쥐가 있었네.”
오래된 일화였다.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는 영생에 집착했고, 결국 영생을 얻었지.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어. 수명이 아무리 무한해도 개체의 소멸은 막을 수 없으니까. 내가 자네의 목을 자르지 못하는 이유야.”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생물은 소멸될 수 있다.
“그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존재하고 싶었네. 그러다가 생물의 근원을 거슬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거야.”
“바이러스군요.”
“그래. 반신반혼. 그는 실체의 절반을 포기하는 대가로 절대로 죽지 않는 바이러스가 될 수 있었어.”
그레인의 눈에 살의가 담겼다.
“그게 뱀파이어의 시초지. 현재 십로회 서열 3위, 진마 파우스트 말일세.”
“……천국에 대해 알고 계시군요.”
“자세히는 몰라. 내가 아는 건 뱀파이어의 계보를 추적하며 얻은 정보들이지. 진정한 영생을 얻은 파우스트는 당연히 생식능력을 잃었지. 대신에 송곳니에서 나오는 특수한 프리온을 주입해 복종하게 만들어.”
“순혈을 말하는 겁니까?”
“진마가 우리들의 세계에 머물렀을 때 인젝션을 당한 인간은 3명. 그들이 뱀파이어 사회를 지배하는 로드들일세.”
그레인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계보를 그렸다.
“로드는 수십 명의 알마스 계급을 만들었고, 알마스는 수천 명의 베시카를 만들었지. 계보가 내려올수록 진마로부터 멀어지게 되지. 그런데 어느 날, 베시카 계급의 누군가가 돌연변이를 일으켰어.”
“어떤 돌연변이죠?”
“생식능력이 생긴 거야.”
“…….”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진 그 베시카는 그녀와 동침해서 아이를 낳았네. 놀랍게도 그 아이조차 뱀파이어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 우리는 그들을 반마라고 부르지. 하지만 순혈들은 이렇게 불러.”
그레인이 검지를 세웠다.
“잡종.”
제니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많은 잡종이 세상에 퍼졌어. 말도 못 할 정도로 다양한 이종교배로 늑대인간 같은 것들이 나오고. 물론 반마들끼리의 번식은 훨씬 흔했지.”
그레인은 제니아를 흘끔 살폈다.
“그 과정에서 순혈의 뱀파이어조차 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탄생했네.”
“어떤……?”
“바이러스가 고유의 파장을 가지고 있듯, 뱀파이어도 특별한 파장을 가지고 있지. 그 파장을 정확히 감지해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야.”
뱀파이어를 소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인간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엄청난 능력이군요.”
“맞아. 그렇게 탄생한 거야, 뱀파이어 헌터는.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은발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실버 본이라고 부르지.”
그제야 리안이 제니아를 돌아보았다.
“흥, 뭐?”
그레인이 말했다.
“맞아. 제니아가 실버 본이야. 자외선에 피부가 타들어 가고 은을 해독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지지만, 피를 통해 신체가 재생되고 뱀파이어에 준하는 육체 능력을 갖추고 있지.”
그때 기관실에서 건너온 여자, 엔지니어 파세트가 의료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피 대신에 인간의 음식을 먹고, 생식능력도 갖추고 있죠. 박쥐의 화신도 없고요.”
뱀파이어의 능력 중 하나인 박쥐 의태는 진마 파우스트의 화신이 대대로 전해진 것이었다.
“파세트, 일은 끝났나?”
“실탄 세는 게 무슨 일이라고. 어쨌건 이번 건으로 돈이 좀 들어와서 합금에 은의 비율을 높였어요. 마비 효과가 기존 대비 10퍼센트 증가될 거야.”
파우러가 주먹을 맞부딪쳤다.
“으하하! 빨리 쏴 보고 싶어! 얻어맞은 뱀파이어의 표정이 보고 싶어 죽겠거든!”
파세트가 리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오해는 풀린 것 같네. 나는 엔지니어 파세트. 화력기를 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어.”
“화력기?”
약물 전문가 카테인이 말했다.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야. 화력기, 약물기, 금속기. 모두 약점을 파고들지.”
파세트가 이어서 설명했다.
“화력기에는 은을 사용해. 뱀파이어의 회복을 더디게 만드니까. 약물기는 그레인 씨가 제조한 안티셀이라는 약물을 쓰지. 그리고 금속기는…….”
제니아가 시커먼 금속질의 세검을 뽑아 들었다.
“묵금. 옵스큐라B가 첨가된 합금으로 만들어.”
“옵스큐라라면…….”
영상 기록기에 들어가는 재료였고, 그 희소성으로 국가에서 취급하는 품목이었다.
“뱀파이어도 옵스큐라B는 투과하지 못해.”
파세트가 말했다.
“엄청나게 비싼 거야. 초저온의 암실에서만 발생하는 광물인 데다가 연금술로도 못 만드니까. 그래서 화력기로 쓰기에는 엄두도 못 내고 금속기에 사용하는 거지. 실력 좋은 검사라면 화력기보다 훨씬 효율적이니까.”
제니아가 흔하게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안티셀은 어떤 효과입니까?”
“기본적으로 혈액을 응고하고 세포를 파괴하지. 세포 단위의 공격에는 뱀파이어도 무방비야.”
그레인이 주사기를 들었다.
“그래도 놈들을 상대하려면 여러 준비가 필요해. 내가 개발한 파워 팩을 맞으면 진통 효과에 근력도 증강되지. 신경계통 강화로 민첩성도 늘어나.”
부작용도 있을 터였다.
“모두 저걸 맞고 싸우는 건가요?”
“아니, 제니아는 예외야. 반마에게는 파워 팩보다 훨씬 효율적인 게 있으니까.”
제니아가 가느다란 기계장치를 꺼냈다.
“블러드 큐(멘솔).”
혈액을 열로 쪄서 증기를 흡입하는 도구였다.
그들이 사는 세계 (1)
“사용 방법은 간단해. 버튼을 누르면 철심에서 열이 발생하지. 이 열이 피를 증발시켜.”
블러드 큐를 쥐고 있는 제니아가 엄지로 버튼을 누르자 끄트머리에서 대롱이 올라왔다.
“이걸 빨아들인다.”
대롱을 입에 넣고 흡입하자 그녀의 은발이 몇 가닥 일어서고 눈빛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피를 먹는 거군.”
아무리 형태를 바꿔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나 또한 절반은 뱀파이어야.”
그녀의 입에서 멘솔의 시원한 향이 섞여 있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레인이 말했다.
“피를 마시는 건 아무래도 역해서 증기 상태로 흡입하도록 설계했어.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지. 모세혈관을 타고 바로 스며드니까.”
“피는 어디서 구하죠?”
“인간에게서.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말이야.”
불법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은 하지 않겠네. 하지만 블러드 큐를 흡입한 상태에서 제니아의 감도는 100배 이상 강화되지. 반경 2킬로미터 내의 모든 뱀파이어를 추적할 수 있을 정도니까.”
제니아가 블러드 큐를 다시 흡입하자 머리털이 더욱 곤두서고 몇 가닥은 파르르 떨렸다.
“서북쪽 700미터 지점에 뱀파이어 일곱 마리. 남쪽 900미터 지점에 세 마리. 동쪽에도 있어.”
파우러가 이를 갈았다.
“아주 박쥐들 텃밭이군.”
“근래 들어 숫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어. 우리가 확인한 알마스의 숫자만 해도 벌써 4명이나 되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리안이 답했다.
“로드.”
“그래. 뱀파이어의 지배자, 3명의 로드 중에 1명이 이곳 로데닌에 있다는 뜻이야. 다르게 말하자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기회가 왔다는 거지.”
인젝션을 통해 수를 불려 나가는 뱀파이어를 전멸시키려면 반드시 뿌리를 처단해야 한다.
그레인이 말했다.
“우리와 함께 싸워 주게. 대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자네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 적극 협조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만든 죽음에 책임을 지기로 이미 맹세했으니까.”
마하의 기사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대검호의 후보 명단에 오르내리는 인물.
강력한 아군을 얻은 제노사이드 일행의 표정이 밝아졌으나 제니아는 예외였다.
“나랑 이야기 좀 해.”
제니아가 1층으로 올라가자 그레인이 말했다.
“팀의 리더로서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구먼. 이것만 기억하게. 그녀는 뱀파이어가 아니야.”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인간도 아니지.”
제니아는 실버 본이다.
“알고 있습니다.”
역한 피를 증발시켜 흡입하는 블러드 큐야말로 그녀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도구일 터였다.
일행을 의료실에 남겨 둔 리안은 제니아를 따라 오두막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가 옵스큐라B가 섞인 검을 뽑아 든 채로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 말이 뭐야?”
제니아가 돌아섰다.
“마족과 싸우는 이유가 뭐지? 증오인가? 복수?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반마의 물음으로 적당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제니아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