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9
“갑자기 무슨 짓이야?”
리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시선은 테스가 서 있는 자리에서 2미터 떨어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뭐지?’
마치 그 자리에 불을 피운 듯 12개의 검은 구멍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어쩌면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것만으로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아니야. 분명 뭔가가 있었어.’
비정상적인 현상이 이곳에 존재했었다.
“끼이이이이이!”
그 순간 마족의 진영에서 한 마리의 괴조가 날아와 기묘한 울음소리를 냈다.
‘퇴각 신호.’
달의 위치를 확인한 나타샤가 말했다.
“다음에 또 놀자.”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육체가 증발하고, 하비츠가 리안에게 다가왔다.
“흥미롭군. 이데아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지켜볼 가치가 있는 놈이야.”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느낄 수 없다.
“언젠가는 내가 모든 링크를 장악할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비밀을 파헤쳐 두는 게 좋아.”
사탄의 속삭임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난 하비츠가 반경을 넘어 화신술을 풀자, 테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이럴 수가……!”
사방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보자 비로소 모든 정황이 맞물렸다.
“하비츠가 있었어.”
그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고, 부하들을 죽였으며, 심지어는 함께 말을 타고 여기에 왔다.
“어떻게,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아니, 알고 있었어. 나는 알고 있었다고! 리안!”
리안 또한 침을 꿀꺽 삼켰다.
“하비츠…….”
시옥이 있었던 자리에 생긴 12개의 구멍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보였다.
배수진 (2)
***
테스의 부대를 급습했던 별동대는 특별한 전과를 세우기 전에 후퇴했다.
그로부터 2일 뒤.
“급보입니다! 서북쪽 에어리어에 마족의 군대 2천만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보고! 북부 산맥에서 4천만의……!”
쏟아지는 비보.
이루키는 3차원 전략지도에서 마족 전군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면전이군.’
2일 전의 급습으로 적의 반응을 확인하고 군중기로 완벽한 동선을 설계한다.
중부 대륙을 삼킬 셈이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공멸의 각오로 싸우는 이루키의 입장에서도 적을 끌어들이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시간이야.’
원소 폭탄이 실전에 배치되려면 최소한 10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버 드라이브.’
이루키의 눈에 전기가 튀면서 초인적인 속도로 사고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 방법으로 12시간 벌 수 있고.’
수많은 전략이 결합과 폐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48시간 정도인가…….’
코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에 수행 비서인 아로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사고일 것이다.’
이루키만이 가능하다.
그럴수록 뇌의 내구력은 급속도로 떨어질 테지만 당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4일 벌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해.’
앞으로 최소 6일 동안 마족의 군대가 토르미아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거다! 이것으로 5일! 그다음에는…….’
생각에 심취한 이루키는 이제 눈에서까지 피가 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분 뒤, 이루키가 눈을 번쩍 치켜뜨더니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총군사님!”
수건을 들고 달려온 아로미가 피를 닦았으나 이루키가 만류하며 일어섰다.
“전략지도를 재편성해 주세요.”
지휘관들이 새로운 전략지도를 펼치자 이루키가 정신없이 걸어 다니며 부대를 이동시켰다.
그가 내놓은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는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이런 방법이…….”
이루키가 우뚝 손을 멈췄다.
“여기까지가 7일.”
지휘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보는 배치가 정확히 7일째의 군세가 될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것이 한계죠.”
“그럼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이루키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남은 3일을 버는 방법은, 아주 극단적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모두가 다시 지도를 살폈고, 생각이 빠른 몇몇 인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 설마…….”
이루키가 대군을 이동시켰다.
“인근에 있는 모든 병력을 카니안 고원에 배치시킵니다. 여기서 3일 동안 발을 묶어 둘 수 있어요.”
말인즉슨.
“하지만 총군사님, 카니안 고원은 인간에게 불리한 지형입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깨달은 지휘관이 입을 다물었다.
“네.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예상 피해 규모는 최소 20만 명 이상. 하지만 여기서 막아 내지 못하면 정상적으로 번 7일의 의미도 없어요.”
이루키의 머리에서 나온 전략이라면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봐야 한다.
‘가장 힘든 건 총군사님이다.’
이루키가 부연했다.
“나쁜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불리한 싸움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죠. 하지만 여기서 막아 내지 못하면 인류는 마족에게 전멸당할 겁니다.”
“……투표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반대하기 위한 투표가 아니었다.
“아뇨. 투표는 없습니다. 책임질 사람은 적을수록 좋아요. 그러라고 있는 총군사의 자리겠죠.”
“하지만…….”
이루키의 잘못이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더라면, 당장 뇌가 타들어 가는 한이 있어도 그 길을 찾았을 것이기에.
“달라질 것은 없어요. 조금 더 어려운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고 전쟁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3일을 번다는 전제하에 최선의 전략을 짤 것입니다.”
이루키는 그제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세부적인 전략 회의가 30분 뒤에 있을 겁니다. 각 부서에 전달해 주세요.”
이루키는 휴식이 필요했다.
지휘관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유일하게 자리에 남아 있는 아로미가 말했다.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루키는 미소만 지었다.
“누구도 독단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의 생각이 인류의 생각. 혼자서 감당할 필요 없습니다.”
이루키만큼 사고할 수 없다면 최소한 책임이라도 같이 지고 싶은 것이다.
“나눈다고 가벼워질 무게가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할 비난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루키는 지도를 살폈다.
‘미안하다.’
모형에 불과한 지형이지만, 그 지형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 모습이 눈에 보였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대신에…….”
이루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1명, 인사이동을 요청해도 될까요?”
제2군단 예하 마법사단.
발키리 사령부에서 급하게 내려온 지령에 군단장 가르시아가 직접 나섰다.
대대장 이상의 간부들이 모두 모였고 에이미도 말석에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7일 동안 제2군단은 카니안 고원으로 급속 행군한다. 자잘한 교전은 생략해도 좋다.”
메모하던 지휘관들의 펜이 갑자기 멈췄다.
“카니안 고원 말씀이십니까?”
“조금 전에 그렇게 말했다. 집중 안 하나? 그러고도 자네가 여단장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카니안 고원은 제2군단 관할이 아니고, 전략적으로도…….”
가르시아의 눈에서 살기를 읽은 여단장이 입을 다물고 상체를 세웠다.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군기는 엄숙했으나 간부들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배수의 진이다.’
현장에서 사령부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갈아 넣을 생명이 필요한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에이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군을 쉽게 희생시킬 이루키가 아니야. 반대로 생각하면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얘기.’
인류가 이길 수 있는 전략이 나온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가르시아가 말했다.
“이기는 전쟁만 하는 건 군인이 아니다. 용병이지. 군인에게 목숨이란 또 하나의 전투력.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다. 싸우러 가는 것이야. 이것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자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라.”
누구도 거수하지 않았다.
“각 부대에 지령을 하달하라. 점심을 먹고 바로 대형 포진을 형성한다. 놓치지 마라. 급속 행군이다.”
“네!”
간부들이 서열순으로 빠져나가는 가운데 가르시아가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마법부대 제6대대장.”
“네! 중령, 카르미스 에이미!”
“자네는 잠시 남게.”
사제지간이라고 해도 군사 회의장에서 독대를 요청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말이 없자 말석에 앉은 에이미가 고개를 돌렸다.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음, 상부에서 너에 대한 인사이동 요청이 있었다. 대대로 돌아가면 짐을 싸라.”
“네? 인사이동요?”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부로 너는 마법부대가 아닌 토르미아 수도 방위 사령부 소속이다. 공간 이동 마법진이 허가되었으니 점프해서 바슈카로 가라.”
‘토르미아?’
잠시 눈을 깜박이던 에이미는 급격히 치솟는 수치심에 테이블을 내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군단장 앞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으나 가르시아는 그녀를 이해했다.
“모든 부대가 위험한 임무를 하러 떠나는데 왜 저만 후방으로 차출된 거죠? 이유가 뭐예요?”
“상부의 내용은 이렇다. 카르미스 에이미의 부대 교육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스승님!”
에이미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
가르시아가 전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전의 높으신 분들 중에서, 네가 죽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나 보지.”
에이미는 1명을 떠올렸다.
‘이루키!’
이가 뿌드득 갈렸다.
“인정할 수 없어요! 이런 식으로 병력을 후방으로 빼는 건 특혜이자 월권이에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가르시아가 손을 뒤집었다.
“상관없지. 너는 유능한 인재야. 이런 식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저죠!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도 제2군단에는 얼마든지 많다고요!”
“나한테 말해 본들…….”
정답은 본인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항명합니다! 저는 떠나지 않겠어요! 제6대대를 이끌고 행군할 겁니다!”
“그건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
가르시아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명령은 생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죽으라는 명령에 따르는 게 군인이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일개 대대장이 지휘 체계를 거스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스승님. 저더러 비겁자가 되라는 말이세요? 부하들에게는 뭐라 말하죠? 나는 도망칠 테니까, 열심히 사지를 향해 뛰어가라고 할까요?”
“그것도 네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내가 말해 주고 싶은 건 빨리 바슈카로 돌아가라는 거야. 명령이다.”
두 주먹을 움켜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던 에이미가 빠르게 돌아섰다.
“다시 돌아올 겁니다.”
가르시아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