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38
“제10감을…….”
테라포스는 이를 무태無態라 불렀다.
파멸의 일격 (1)
찰나의 시간을 끝없이 쪼갠다.
그 과정에서 시로네는 이 세상이 결코 연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은…….’
시계의 초침은 0에서 60초의 구간을 빈틈없이 채우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절되어 있다.’
0에서 1초 사이를 끝없이 쪼개다 보면 결국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空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본래 무無.’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건 인간의 착각일 뿐이라던 피쇼의 말이 떠올랐다.
‘마치 영상 기록 장치처럼.’
초당 수십 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기면 뇌는 화면 속의 단절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느끼는 시간 또한 마찬가지였고, 시로네는 이것을 시간의 징검다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조합해 보았을 때…….’
만물이 존재하는 이 세계는, 실체가 아닌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 공급되고 있는 전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다.
“…….”
시로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우주가 켜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확신하지 말자. 내 마음대로 뚜껑을 열고 상상하면 불가능한 게 없어진다.’
닫혀 있는 것만이 진짜다.
‘다만 정말로 공급의 주체가 있다면…….’
지금의 우주를 운용하는 데에 필요한 전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터였다.
‘스케일이란 그런 것.’
우주는 인간에게 거대할 뿐, 공급의 주체에게는 손바닥 크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같은 항렬에 수천 개의 우주를 만들 수 있겠지.’
즉, 시로네가 사는 우주 바깥에 이곳과 유사하거나 전혀 다른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
‘그리고 공급의 주체가 사는 세계마저 상위 차원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것이라면…….’
병렬로, 직렬로, 새로운 우주가 창조되면서 끝없이 공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무한하다.’
섬뜩했다.
‘거핀은 어디까지 갔을까?’
가이아인은 광자계를 이탈했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이 종착지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계속 이탈한다고 했을 때 결국 도달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는 거지?’
피쇼는 무한무라고 말했다.
‘조금은 알 것 같아.’
시로네와 사과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
시로네는 사과를 보았고, 사과가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없음. 이것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無.’
그런데 애초부터 사과를 보지 못했다면, 시로네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시로네의 머릿속 상태는…….
‘진실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착각의 주체조차 없는 착각이 흐를 뿐이다.
‘결국 모든 게 무에서 쌓아 올린 것.’
시로네는 조금 슬펐다.
‘나네가 옳았어.’
감각을 개방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수록 이 세계의 진실은 명확해졌다.
‘하지만, 나도 틀리지 않아.’
나네도 그렇게 말했다.
‘이 세계가 정말로 공허하다면, 마음이 깃든 곳이야말로 유일한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세계의 진실 앞에서 공과 애는 분리된다.
‘나는 싸울 거다, 나네.’
생각을 마친 시로네의 눈앞에 테라포스 전투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달했는가?”
질문은 두서가 없었지만, 경지에서 그들을 넘어선 시로네는 이해했다.
“이제 그만하자. 싸우고 싶지 않아. 왜 나를 적대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을 뿐이야.”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테라포스에게 싸움이란 사어死語다. 오직 우주의 질서를 위해 행동할 뿐.”
“그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겠지.”
테라포스 전투원들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너는 인간이니까.”
천지를 진동시키는 음파가 쇄도하는 순간, 시로네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느려.”
어느새 모든 전투원들의 등 뒤에 도착한 시로네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 멀다고 해야겠지.”
테라포스 전투원들이 빠르게 몸을 틀었으나, 이미 시로네는 그곳에 없었다.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시로네가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것도 무한히 멀다.”
혹은 영원히 느리다.
“초광속인가…….”
테라포스 전투원에게 표정이 있다면 아마도 패잔병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빛보다 빠른 건 없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야.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
시로네는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신호가 광자를 베이스로 전달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에 정보가 구현되는 속도. 우리는 그 속도를 시간으로 변환해서 느끼는 거야.”
이론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시로네의 눈빛은 담담했다.
“따라서 빛보다 빠르다는 것은, 시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인식한다는 뜻이겠지.”
속도의 문제가 아닌, 인지의 문제였다.
“나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느낀다.”
시로네가 무태의 감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여태까지 뇌가 인지한 것과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없어.’
보고자 하는 곳에 테라포스가 있을 뿐, 그 바깥에는 건물도 땅도 없는 무의 영역이었다.
‘인지하지 않으면…….’
테라포스 전투원 너머에 있는 광활한 바다가 시로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시로네의 의식이 닿는 순간, 특정 신호가 빛의속도로 풍경을 구현시킨다.
‘그것이 율법의 정체.’
이제는 시로네도 알고 있다.
감각으로 의식하지 않는 한, 자신의 뒤편에는 그 어떤 세상도 존재하지 않음을.
“하지만 또한 존재하는 이유는…….”
테라포스 전투원은 시로네의 등 뒤에 펼쳐진 마을의 풍경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무태인 거야.’
앙케 라가 보았고 지금도 나네의 눈에 비치고 있을 세상을, 시로네도 보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그만 물러서.”
테라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던가? 목적이 없기에 물러서지도 않는다. 우리는 필연에 의해 행동한다.”
테라포스 전투원의 건틀렛이 요동하더니 시로네의 주위에 파동의 장막을 형성했다.
“무상지대.”
대류와 전도를 넘어 복사까지 막아 내면 어떤 현상도 발생할 수가 없다.
“육체를 이용하는 건 싫지만…….”
건틀렛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빔을 뽑아낸 전투원들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어리석은 인간에게는 어쩔 수가 없구나!”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으나, 초광속을 인지하는 시로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멀어.”
어느새 무상지대의 바깥에 서 있는 시로네가 손바닥 위에 포톤 캐논을 띄웠다.
‘공간을 넘는 것처럼 쉽지는 않겠지.’
테라포스의 의식도 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신호이기에, 제압하려면 충돌이 필수였다.
‘위력을 올려서…….’
시험 삼아 손바닥 위에 포톤 캐논을 띄운 시로네가 정면의 적에게 던졌다.
콰아아아앙!
섬광이 방어막을 깨고 들어갔다.
“크어어어!”
테라포스답지 않은 비명을 지른 전투원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땅을 굴렀다.
“됐다.”
방어막을 뚫을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고, 수십 발의 포톤 캐논이 밤을 비추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폭음성이 사라지자 쓸쓸한 파도 소리가 밀려들었다.
“후우.”
테라포스 전투부대를 전멸시킨 시로네가 크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결국 알아내지 못한 건가?”
생존자를 남겨 두려고 노력했으나 테라포스는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포기하지 않았다.
“저건…….”
동이 트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로네의 눈에 메로 절벽 위의 비행체가 보였다.
“남겨 두면 안 되겠지.”
포톤 캐논을 쏘자 비행체 주변의 공기가 물결치며 충격을 막아 냈다.
위력을 높일까 고민하던 시로네가 고개를 저으며 아타락시아를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섬광이 비행체를 집어삼키더니 급기야 흔적조차 없이 소멸시켰다.
시로네는 광익을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간이 촉박해.’
최고 속도로 섬을 벗어나려던 그때, 구름 안에서 웅장한 굉음이 들렸다.
구름이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비행체의 극히 일부분이 드러나자 시로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테라포스?”
신의 계시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올라와라, 시로네.”
대법관의 음성에, 시로네는 고도를 높여 구름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도시 크기의 비행체였다.
중심부에 도착하자 문어의 입처럼 구멍이 열리더니 중력을 무시한 채 빨아들였다.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지만, 사방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문들 중에서 하나가 열렸다.
길을 인도받아 도착한 곳은 마을 크기의 공동이었다.
“또 보는구나, 시로네.”
쿵! 쿵!
같은 종족이라고 크기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만의 착각일 것이다.
테라포스 대법관이 다가오자 시로네는 고개를 끝까지 쳐들 수밖에 없었다.
“또 본다고? 우리가 언제 봤는데?”
사람의 몸도 관통할 수 있을 것 같은 긴 손가락이 시로네의 귀를 가리켰다.
“너에게 기억 전달 장치를 장착했을 때. 물론 지금은 빼 버린 모양이지만.”
시로네가 미간을 구겼다.
“당신이 나에게 칩을 넣었다고?”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요청하고 설득했으며, 내가 응한 것이지.”
“뭐?”
분명 기억에는 없지만, 설령 있더라도 그런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이유가 뭔데?”
대법관이 몸을 돌렸다.
“우선 앉아라. 상아탑으로 데려다주지.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야.”
시로네는 거인이나 앉을 법한 의자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기다렸다.
목적지를 설정한 대법관이 돌아왔다.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군. 나는 네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으나, 다른 동족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과격분자들이지. 너에게 칩을 이식한 것을 알고 전파를 해킹했다. 네가 그들의 배를 부수지 않았다면, 나도 너를 찾지 못했을 거야.”
“한마디로……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변명하려는 건 아니다. 내 실수지. 다만 테라포스 전체의 의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이해가 안 돼. 인간보다 월등한 정신을 가졌는데도 의견 조율이 안 된다니.”
“흔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 그만큼 너의 의견이 파격적이었다는 뜻도 되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대법관이 시로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주를 지배하는 우리조차,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가이아인. 유일하지.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인가? 개체의 다양성을 가진 채로 하나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야.”
대법관이 시로네의 머리를 짚었다.
“인간의 수준을 설명하자면 이 정도지. 살인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 동의할 거야. 하지만 이것도, 살인자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완벽한 통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