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5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홀로 땅을 밟고 서 있는 상태였다.
“크악!”
짧게 터진 마족의 비명.
고개를 돌리자 작전조 전원이 목이 떨어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
그리고 그 핏빛 풍경의 중심에서, 한 남자의 등이 시이나의 눈에 들어왔다.
외팔이였다.
선택할 수 없는 것(2)
외팔이라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단정 짓기에는 성급했으나, 시이나는 심장으로 알았다.
“쿠안?”
검을 갈무리한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오른쪽 눈을 감고 있는 것 말고는 시이나가 생각하는 쿠안의 모습 그대로였다.
“괜찮으십니까?”
시이나는 쿠안에게 달려갔다.
안기고 싶은 것인지, 시원하게 뺨이라도 때려 주고 싶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쁜 놈.’
뺨이다.
‘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
어깨에 힘을 밀어 넣은 그녀가 걸음에 가속을 내는 순간 쿠안의 얼굴이 보였다.
오른쪽 눈에 새겨진 검상.
사선으로 짧게 그어진 상처는 피부를 벤 것이 아니라 눈을 찌른 게 분명했다.
‘진짜 나쁜 놈이야.’
온 힘을 다해 팔이 휘둘리고, 그보다 먼저 그녀의 얼굴이 쿠안의 가슴에 파묻혔다.
“왜…….”
뜨거운 눈물이 쿠안의 가슴팍을 적셨다.
“왜 그렇게 어리석어…….”
그녀가 경험한 마족의 무력은 여태까지 싸운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쿠안의 검술은 그들을 월등히 초월하는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런 상처였다.
한쪽 팔로 그녀의 등을 감싼 쿠안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며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지키지 않았는가?
한쪽 눈을 잃은 대가로 그녀를 지킬 수 있다면 싸게 먹힌 셈이겠지만…….
‘이 정도로는 안 돼.’
적들의 강함을 알기에, 쿠안은 더 많은 것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가시죠.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죠?”
시이나의 눈매가 사납게 치떠지더니 쿠안의 가슴을 떠밀며 말했다.
“그게 끝이에요? 말도 없이 떠나 버리고는, 갑자기 돌아와서 한다는 얘기가?”
“그렇습니다.”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황당했다.
“그럼 왜 왔죠? 왜 이런 지방까지 내려온 거예요? 당신이 싸울 곳은 차고 넘칠 텐데.”
모르겠다.
시로네가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시이나였다.
‘뭘 기대한 거지?’
아직은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의 형태지만,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쿠안의 머릿속에는 사지조차 절단되어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자신의 미래가 보였다.
“전략의 일환입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건 없어요. 시이나 씨도 마음을 접으십시오.”
“어…….”
말을 하려고 입술을 뻐끔거리던 그녀가 이내 입을 다물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작전조의 폭음을 듣고 달려온 마족들이 전방을 까맣게 채웠다.
“크크크. 뭐야, 넌?”
신장은 3미터 정도, 피부가 없는 근육질 몸에 수십 개의 입이 달린 아귀들이었다.
한 장의 부적이 얼굴을 세로로 가리고 있음에도 역겨운 느낌을 잠재울 수 없었다.
여단장 케르에르.
아귀의 등급을 나누는 것 중의 하나는 입의 개수로, 케르에르는 무려 237개의 입을 가지고 있었다.
“물러서십시오.”
쿠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1귀인가.’
보통의 아귀는 빵 하나를 2초 만에 소화시키는 에너지 효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배가 고픈 것이지만…….’
일단 배가 불렀을 때의 아귀는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마족 중의 하나였다.
쿠안이 검을 뽑아 들었다.
“최대한 멀리 유인할 테니 자리를 피하세요.”
“아뇨. 나도 싸우겠어요.”
“거북괴보다 강한 놈들입니다. 지금 당신의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차요.”
“상관없잖아요, 당신한테는.”
앙금이 남아 있는 차가운 말투에 쿠안이 인상을 쓰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난 팔이 하나뿐이야.”
비통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당신을 안고 싸울 수 없다고.”
“…….”
시이나의 눈썹이 슬픈 팔자를 그리는 그때, 케르에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헤헤헤!”
전신의 입에서 혓바닥이 무지개처럼 튀어나온 광경에 구토가 치밀었다.
“그런 거구만. 너는 죽어도 저 여자만은……. 응? 하지만 어쩌지? 나는 무조건 저 여자부터 먹을 텐데. 푸헤헤헤!”
부하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 웃어요. 우리까지 배고파지잖아.”
케르에르가 정색했다.
“그래, 빨리하자.”
육식살인귀의 무리에서 마족의 기운이 피어오르자 시이나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최초의 마魔.
생물이 탄생한 순간부터 존재했던 섭식의 욕망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도망쳐야 돼.’
공간 이동의 전지와 전능이 결합되기 직전, 케르에르가 눈앞까지 쳐들어왔다.
“…….”
시이나의 망막에 마족의 얼굴이 비쳤으나 아직 뇌까지 신호는 전달되지 않았다.
‘응?’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곳에 있지 않았고, 찰나에 벌어진 모든 일들이 밀려들었다.
‘쿠안.’
유일하게 휘두를 수 있는 그의 한쪽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시이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 때문에…….”
“정신 차려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 말에 고개를 쳐든 시이나의 눈에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마족들이 보였다.
‘이걸 쫓아온다고?’
평범한 아귀의 에너지대사조차 인간의 30배에 달하며, 육식살인귀는 무려 240배였다.
“저기다! 저기!”
소리는 멀리서 들려도 어느새 지척에 다가와 있는 묘한 기분을 느끼는 그때, 쿠안이 말했다.
“의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시이나가 입을 여는 순간.
어릿광대 피에로-초超기움.
풍경이 70도 이상 기울어지면서 평탄한 땅이 세상만큼 거대한 절벽으로 변했다.
“흐읍!”
중력이 배 속을 흔들고, 가속도에 따라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충격이 가해졌다.
“흐으으으!”
세계가 회전했다.
그 풍경 속에서 마족들의 잔상이 망막 위를 엄청난 속도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에서 시이나는 반강제적으로 풍경을 받아들였다.
하늘과 땅이 수직으로 맞물리더니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추락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중력.
“아…….”
하지만 그녀의 발밑에서 기다리는 풍경은 하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었다.
하늘에 빠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쿠안이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
‘너무나 삐뚤어져서.’
사랑을 고백하거나 손을 맞잡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시이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함께 바라보는 하늘의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쿠안 씨, 나…….”
자신의 각오를 내뱉으려는 순간, 시이나의 배 속이 경련을 일으켰다.
“읍!”
구토 작용에 볼이 부풀어 올랐으나 차마 쿠안에게 내뱉을 수 없는 그때.
“시이나 씨.”
풍경이 반 바퀴를 돌더니 비로소 땅에 서 있는 무게감이 전신으로 퍼졌다.
아마도 그리 멀리 올라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참아 내는 것이 중요했다.
“욱! 욱!”
쿠안이 등을 두드렸다.
“토하고 싶으면 토하세요. 중력가속도가 계속 변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는 참아 냈고, 사납게 속삭였다.
“지금 그게 문제예요? 마족은…….”
말을 멈추자 사방에서 쿠안과 시이나를 찾는 적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나와! 어디 있는 거야!”
“비겁한 자식! 빨리 나오라고! 우리가 이 정도로 배고플 것 같아?”
흩어진 마족들의 한복판에 있었고, 어떤 적도 쿠안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건 서커스네.’
쿠안이 말했다.
“에너지를 급격히 소모했으니 전처럼 싸우지는 못할 겁니다. 이제 처리만 하면 됩니다.”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 모두 어깨가 쳐져 있었고, 급기야 목소리마저 잠겼다.
“내가 할게요.”
공을 가로채는 성격은 아니기에 쿠안이 감은 눈을 더욱 찌푸렸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미소를 지으며 말한 그녀가 눈에 힘을 주더니 사방으로 얼음 마법을 난사했다.
굵은 고드름이 육식살인귀의 벌어진 입속에 정확하게 처박히면서 비명이 터졌다.
시야가 열리자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던 케르에르가 비로소 쿠안을 발견했다.
“감히 나를 조롱해!”
땅을 박차는 자세까지는 좋았으나 처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느렸다.
“크으으으!”
케르에르의 배 속에서 천둥소리로 착각할 만큼 강렬한 공복의 울림이 들렸다.
“기다려라! 씹어 먹어 주마!”
아직 생존한 부하를 붙잡은 그가 두 팔로 끌어안자 전신의 입이 움직였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참아. 복수해 줄 테니.”
수백 개의 입이 쪽쪽 살점을 빨아 대자 시이나가 다시 역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좀 살겠군.”
말라비틀어진 부하를 바닥에 던진 케르에르가 쿠안에게 눈을 부릅떴다.
“그냥 죽이지는…….”
쿠안이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케르에르의 시야에서 땅이 기울더니 급기야 180도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런……!”
하늘로 떨어지는 상황에 두 팔을 쳐들고 손을 흔드는 동안에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쿠안에게 베인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으…….”
얼굴이 핑글핑글 돌자 세상이 돌았고 참을 수 없는 멀미가 치밀었다.
“으아아아!”
쿵 하고 떨어진 얼굴이 바닥을 뒹굴었다.
“…….”
케르에르의 몸이 여전히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시이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만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