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84
체감하기로 6톤이 넘는 무게.
‘포기하지 않아!’
달라붙은 자들을 떨쳐 낼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단순한 것.
‘움직여. 두 다리를…….’
어떤 인간도 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에 천재라는 게 있구나.’
오젠트 가문의 훈련장에서 시로네에게 진검 승부에서 패했을 때, 리안은 깨달았다.
‘나는 절대로 이렇게 되지 못할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정.
‘조금은…… 씁쓸한데.’
라이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패배감 속에서 리안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환청이 들렸다.
-시로네를 질투하는 거겠지. 너는 그저 시로네가 너무 빛나 보여서, 곁에 있고 싶은 것뿐이야.
“아니야.”
-사실은 죽이고 싶을걸. 누군가 너에게 시로네를 죽일 수 있는 힘을 준다면, 너는 그 힘을 받고 말 거야. 왜냐면 시로네를 질투하니까.
“시로네는 시로네일 뿐이야.”
리안이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은…….
“크아아아! 가지 마! 가지 마!”
리안이 14킬로미터를 질주하는 동안 뒤편에는 거대한 인간의 덩어리가 끌려왔다.
“같이 죽자! 같이 죽자고!”
추정 질량 94톤.
“마음대로 지껄여라! 나는 절대로 멈추지 않아!”
리안이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
모든 고통을, 모든 훈련을, 모든 절망을 딛고 마침내 도달한 미래의 오젠트 리안.
“잡아! 잡아!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게 해! 모두 일어서! 잡으란 말이야!”
추정 질량 187톤.
“키아아아! 여기 파묻혀라! 너도 우리와 똑같이 벽이 돼서 살아가는 거야!”
리안은 끝없이 다리를 움직였다.
‘그래, 방해해라! 얼마든지 두들겨 패라! 아무리 짓밟아도, 너희들이 죽어라, 죽어라 고사를 지내도!’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리안이 현재의 리안에게 대직도를 겨누었다.
“나는 멈추지 않아아아아!”
추정 질량 302톤.
그럼에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흑승들은 계속해서 물러섰다.
-공격하자. 지금이라면 해치울 수 있어.
사방에서 달려드는 흑승들이 부정박이 담긴 리안의 일 검에 휩쓸려 나갔다.
“덤벼! 무슨 짓이든 해봐!”
가속도가 줄어들면 끝이다.
사슬에 걸린 하중이 기하급수로 커져 가는 것을 느끼며 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
매일매일 강해진다.
“나는.”
더 이상 실패할 수 없을 때까지 실패한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을 반복하고, 그것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거야.’
그리고 그 하루하루를 다시 1초처럼 압축시켜…….
“나는!”
거대한 시간을 도약한다!
“이야아아아!”
게헨나의 사슬이 붉게 달구어지더니 달라붙은 인간들의 몸에 불이 붙었다.
“키아아아! 안 돼! 안 돼!”
절대로 리안을 보내고 싶지 않은 자들이 사슬을 온몸으로 끌어안았으나.
“아파! 아파아!”
리안이 짊어진 것을 그들이 짊어지기에는, 불꽃의 온도가 너무나 뜨거웠다.
‘왔다!’
미래의 리안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에게 돌진했다.
리안이 대직도를 쳐들었다.
“너를 죽인다.”
그 자리는 이제 내 것이니까.
-피해!
사슬에 달라붙은 인간들이 재가 되는 것을 바라보며 흑승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적초월.”
마침내 한 지점에서 만난 2명의 리안이 서로를 향해 대직도를 휘두르고.
“……!”
미래의 리안이 베이며 전방에 있던 모든 것들이 위아래로 나뉘었다.
-키에에에! 이, 이건……!
흑승들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소멸한 곳에, 통곡의 벽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도착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옥상을 박차는 순간, 왼쪽에서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안!”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리안을 향해 손을 흔드는 표정은 참으로 해맑았다.
“시로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나의 태양이다.
‘그래도.’
시로네에게 미소를 지은 리안은 고개를 돌려 시원하게 뚫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달리고 있다.’
반쯤 붕괴된 통곡의 벽과, 불타고 있는 통곡의 벽이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카르마 관리부는 정적에 휩싸였다.
“…….”
넋이 나간 얼굴로 화면을 지켜보던 레테가 의미 없이 자리를 맴돌았다.
“아…….”
비로소 생각할 정신이 돌아왔으나, 치미는 두통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피해,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야?”
뒷목을 주무르며 묻자, 비비안이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략 830억 데스 정도 되는데요.”
“오호.”
레테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한번 움직인 고개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830억. 830억 데스면 어디 보자…… 한 공작령 2개 정도 날아간 거네?”
“네, 뭐.”
레테의 발이 쿵 하고 땅을 찍었다.
“이 거지 같은 인간들이 진짜! 가뜩이나 회사 사정 안 좋아 죽겠는데 나에게 이런 피해를 줘? 안 되겠어! 내가 직접 가야겠다! 부실장 다시 불러와!”
비비안이 황급히 말했다.
“피해 복구부터 하셔야죠. 지금 상황에 레테 님까지 부재중이면 회사 마비돼요.”
“…….”
숨이 거칠어진 레테가 생각에 잠기더니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진짜 신이 있기는 한 거야?”
흑승(3)
***
감정병 케이스, 넘버 4-312.
토르미아 왕성을 둘러싸고 있는 지저 산맥에는 흉악한 괴물이 살고 있다.
“하악! 하악!”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아파. 아파 미치겠어.”
살인마 리체라, 4년 동안 총 23명의 부녀자를 납치 살해한 흉악 범죄자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몰아넣은 그도 자신의 고통은 견디지 못했다.
“으아아아!”
돌부리에 발이 걸리는 순간 발가락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아파! 빌어먹을!”
감정병이 중기에 이르렀을 때의 통각은 정상치의 무려 200배에 달한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면 잠시 동안은 고통을 유예시킬 수 있겠지만…….
“흐윽! 흐으윽!”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배, 배고파.’
허기마저 200배로 느껴졌으나, 계엄령이 선포된 도시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엉금엉금 산을 기어오른 그는 자신의 은신처인 동굴로 몸을 집어넣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비상식량이라고 지정한 마지막 희생양이 포승줄에 묶인 채 떨고 있었다.
“닥쳐.”
손가락 마디가 잘린 뭉뚝한 손에 쥐인 칼날이 인질의 생명을 끊었다.
살인의 쾌락 따위는 잊은 지 오래.
“먹자, 뭐라도 먹어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시체의 살점을 베어 허기진 배로 전달하는 순간.
“크아아아!”
목구멍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웠다.
인육을 포기하는 것으로 감정병 초창기를 버텼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야, 아니야!’
고통을 느낀다는 건 여전히 인육을 사랑한다는 증거였고, 그럴 경우 감정병의 역치는 급격히 치솟는다.
“으아아아! 아파! 제발 그만!”
그의 절규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고, 메아리가 송곳처럼 고막을 찔렀다.
“히익! 히익!”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그가 칼을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다.
‘차라리…….’
목으로 가져간 칼날의 끝이 부르르 떨리더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싫어. 죽고 싶지 않아.”
타인의 생명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마저 하찮은 건 아니기에.
“흐으! 흐으!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리체라는 칼을 내려 자신의 손가락 마디에 대고 단두대처럼 뚝 하고 끊었다.
“……!”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통증에 고개가 쳐들리고, 이어서 괴성이 터졌다.
“으아아아!”
그래도 감정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손가락 하나 따위로는 잠복기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중증.
“죽, 죽고 싶지 않아!”
손가락 한 마디, 또 한 마디, 그렇게 리체라는 가혹한 자해를 되풀이했다.
“으아아아!”
그로부터 3일 뒤, 세계보건기구는 토르미아 순찰대의 협조를 받아 시체를 인계했다.
당시 세리엘이 확인했을 때, 리체라의 사체는 눈 뜨고 보기 끔찍할 정도였다고 한다.
***
월면에서 튕겨 나가 행성으로 추락하는 손유정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크아아아!”
분노한 손유정의 얼굴은 너무 야생적이라 인간보다 원숭이를 연상시켰다.
월면에서 내려다보며 나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깨달음을 얻고 오너라.”
대기권에 진입한 손유정의 몸에서 성냥처럼 확 하고 불이 타올랐다.
옷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죽여 버린다! 내 친구만 구하면 반드시 돌아와서 너를 죽여 버릴 거야!”
애초에 지옥에 가는 게 목적이었으나 부처와의 전투로 머리꼭지가 돈 상태였다.
나네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군.”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자 손유정의 눈에 불이 켜졌다.
“너……!”
쿠쿠쿠쿠쿠쿠!
그 순간 세계의 풍경이 변하면서 푸른 하늘이 화염의 구름과 중첩되었다.
“지옥.”
명치에 박힌 설법의 검이 유리처럼 깨지면서 그녀의 목에 황금빛 띠가 채워졌다.
“크으으으!”
수 킬로미터를 그대로 추락하는 손유정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 운석이 떨어지는 듯했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을 들은 주민들은 지평선 쪽에 순간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