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83
-정화되지 않은 자, 시련을 당하리라.
사슬을 타고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빨려들자 벽을 이루는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끅! 끄윽……!”
잠시 후.
“으아아아아아!”
벽 전체가 진동하면서 엄청난 마의 에너지가 흑승의 몸으로 빨려들었다.
-죄인을 잡아라!
아래에서 밀려드는 굉음에, 수직으로 질주하는 리안의 얼굴이 구겨졌다.
“크으으으!”
통곡의 벽은 정말로 높아서, 거의 비행의 속도로 뛰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야훼여! 어찌하여 지옥을 교란하는가!
한편 반대편 벽으로 도망친 시로네는 흑승의 사슬을 피하며 날아올랐다.
리안보다 빠르게 벽의 꼭대기에 도착한 시로네는 늪처럼 질퍽한 바닥에 착지했다.
“으으으. 으으으으.”
사람들이 반쯤 파묻혀 있었고 하늘의 검은 구름에서는 점처럼 작은 인간이 계속 떨어졌다.
강풍을 일으키며 시로네의 뒤를 따라온 24명의 흑승이 허공에 떠올랐다.
‘아가페의 빛!’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자 머리 위에 떠오른 찬란한 빛의 구체가 폭발했다.
“으아아아아!”
다시 빛이 사라졌을 때, 시로네를 중심으로 거대하고 얕은 홈이 파여 있었다.
‘역시 안 돼.’
마치 열에 녹은 듯 인간의 벽이 짓뭉개져 있었으나 마족에 비해 위력이 작았다.
순수한 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승은…….’
히든 코드의 능력이 분명한 검은 사슬을 칭칭 감은 채 멀쩡히 버티고 있었다.
“야훼여.”
음성을 내뱉은 흑승이 사슬을 거두고 액체 같은 망토를 크게 퍼트렸다.
낫을 든 해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가 너를 배척하는 이 세계에서 대체 어디를 떠돌고 있는 것인가?”
“이 세계의 관리자를 만나러 왔다. 쉽게 보내 준다면 복잡하게 굴진 않겠어.”
“……이유는?”
“현실의 마계를 없애기 위해. 너희들이 만든 코드로 수많은 인간이 죽어 가고 있어.”
흑승은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말은 그럴듯하지. 하지만 야훼여, 알고 있는가? 인간의 죽음이야말로…….”
뒤를 따라 도착한 수많은 흑승이 동시에 산개하며 시로네를 덮쳤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검은 망토에 모습을 감춘 흑승의 움직임은 율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었다.
‘혼돈.’
계산할 수 없다.
망토의 펄럭임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공간이 흑승을 따라 일렁거리는 듯했다.
-정화시켜 주마.
검은 사슬이 미끄러운 소리를 내며 쏘아지는 순간 시로네의 몸이 비틀렸다.
-뭐지?
수백 개의 사슬이 어느 하나 적중하지 못하고 시로네를 스쳐 지나간 상태였다.
‘양자적 움직임.’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구사하는 알고리즘은 히든 코드에 준할 정도로 기괴했다.
-방심하지 마라. 놈은 야훼다.
흑승들이 주위를 맴돌면서 시로네를 검은 사슬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동시에 옥상에도 사슬을 박아 넣은 흑승들이 정화의 코드를 발동했다.
-우오오오오오!
시로네의 아가페와 인간의 탁한 감정을 결합시켜 중화하려는 속셈이었다.
-온다! 온다!
야훼의 사랑에 전율하며 고개를 쳐든 흑승의 눈에 핸드 오브 갓이 보였다.
“…….”
거대한 빛의 구체가 진동하는 순간, 사슬 안쪽에서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톤 캐논.”
수직의 섬광이 통곡의 벽 우측 옥상에 처박히고.
“어어어어! 어어어어!”
외벽이 풍선처럼 부풀자 벽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안……!”
그리고 마침내, 폭발과 동시에 3천 개가 넘는 구멍 속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흑승(2)
***
화공사의 부실장 보이드.
호출을 받고 카르마 관리부에 도착한 그는 레테의 지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네. 네.”
모노라스와 달리 보이드는 일 처리가 확실했고, 심지어 물욕도 없었다.
“라비에트에 도착하면 비서실장부터 만나. 일이 생겨서 조금 늦는 모양인데……. 어쨌든 그런 다음 대공에게 가서 내가 말한 대로 전해 줘.”
“알겠습니다.”
성질 같아서는 전권을 보이드에게 넘기고 싶었다.
‘어휴, 그 미운 돼지 새끼.’
하지만 모노라스가 받을 수치심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그녀였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 비서실장 잘 보좌하고. 착오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
“……네.”
모노라스와 함께 일을 할 생각을 하니 앞날이 깜깜했으나, 그래 봤자 레테만 하겠는가?
‘제가 돕겠습니다, 사장님.’
보이드에게 레테는 지옥에서 가장 합리적인 분이자 모든 마족의 어머니였다.
‘모노라스만 모르지.’
차가운 눈빛으로 보이드가 자리를 떠나자, 레테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후우, 그럼 나는 잠시 눈 좀 붙이고…….”
“사장님!”
비비안이 소리쳤다.
“분류 번호 4984! 통곡의 벽에서 사건 발생! 리안이 있는 곳입니다!”
잠이 확 달아난 레테가 몸을 틀었다.
“뭔데?”
비비안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통곡의 벽이 폭파되는 상황이 화면에 비쳤다.
“야훼.”
붕괴되지는 않았으나 수천 개의 구멍이 뚫린 상태로 인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 자식이 미쳤나! 갈 거면 곱게 가지 왜 창고는 부수고 지랄이야! 대체 손실액이 얼마야?”
“흑승하고 충돌한 것 같아요. 손실액도 크지만 그보다는 시스템 오류가…….”
비비안이 리안을 가리켰다.
“이거, 어떡하죠?”
화면을 뚫어지게 지켜보는 레테의 얼굴에서 점차 핏기가 사라져 갔다.
“조금만 더!”
좌측의 벽을 수직으로 오르던 리안이 마침내 끝을 발견하고 도약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음에 몸을 틀자 치즈처럼 구멍이 나 있는 통곡의 벽이 보였다.
“리안!”
시로네가 소리쳤다.
“끝에서 보자!”
화자원관리공사로 가기 위해서는 통곡의 벽을 넘는 게 유일한 길이었다.
광익을 펼친 시로네가 흑승을 피해 질주하자 리안도 전방을 살폈다.
시로네가 상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흑승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게헨나?”
정화 대상이었다.
“열화의 고통에 얽매인 존재여, 너는 본디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되는 존재. 어떤 교만한 술수로 사슬을 끊고 돌아다니는 것인가?”
리안은 대직도를 겨누었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업이란 원인에 대한 결과라서,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가 없는 코드였다.
‘가능한 일인가?’
흑승의 입장에서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강도의 충격.
“……정화시켜.”
흑승들이 연기처럼 밀려들었다.
-죄인을 벌하라!
검은 망토는 액체처럼 출렁거렸다가 연기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며 공간을 잠식했다.
검은 사슬이 리안을 향해 쏘아지고, 망토에 감춘 낫이 찰나에 번뜩였다.
“이야아아!”
리안의 대직도가 부정박의 일 검을 내지르자 전방의 어둠이 쭉 하고 갈라졌다.
-크으으으! 어떻게……!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단칼에 차단하자 흑승 부대의 경계심이 치솟았다.
“조심해라. 일격의 극치다.”
마치 제타 함수.
수의 무한함에서 소수의 패턴을 찾지 못하듯 리안의 리듬 또한 아직 정의가 불가능했다.
‘확실히 지옥에도 없는 리듬이다. 신조차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엉망인데.’
검술이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하나의 직선에 담고 있는 것이 부정박.
‘어설프게 접근하면 바로 썰리겠어.’
공간이 아닌 시간의 기술이었고, 그렇기에 재능이 아닌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이야아아!”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며 전진하는 리안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흑승들이 애를 먹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바닥에서 인간의 손이 올라왔다.
“가지 마.”
발목을 휘감은 팔이 뜯어져 나갔으나 이제는 너도나도 리안을 붙잡았다.
“지금이야! 빨리 해치워!”
불행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시로네의 말을 떠올리며 리안이 땅을 박찼다.
“비켜!”
리안이 달리는 곳을 따라 일어서는 손들이 마치 갈대밭처럼 흔들렸다.
급기야 몇몇 인간들이 벽에서 뜯어지며 리안의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상체만 남은 인간이 척추를 덜렁거리며 소리쳤다.
“가지 마! 너는 갈 수 없어!”
“으아아아!”
리안이 뿌리치며 달리려는 그때, 가슴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크윽!”
게헨나의 사슬이 명치에서 튀어나와 통곡의 벽에 팔방으로 박히는 순간.
우오오오오오오!
뇌를 폭발시킬 것 같은 절규가 들렸다.
“크으으으!”
그 절규가 낱개의 감정으로 분리되면서 리안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왜 너만 자유롭지? 우리는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어째서 너는 행복한 거야?
“닥쳐!”
-같이 죽자. 같이 고통받자. 네가 자유로우면 내가 견딜 수가 없어.
게헨나의 사슬이 뽑혔다.
“닥치란 말이야!”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사슬을 따라 수백 명의 인간들이 덩어리째 끌려 나왔다.
-너도 똑같잖아. 너도…… 우리와 같잖아.
그들의 목소리는 마음 깊은 곳까지 침투했고, 리안의 숨겨진 본성을 일깨웠다.
“흐으으으!”
이를 앙다문 리안의 목에 핏줄이 올라오고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오젠트 라이라고?’
둘째 형이 검살을 성공시켰을 때, 검술 가문의 모든 지인들이 말했다.
“그에 비하면 리안은…….”
재능이 없어.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하더군. 아예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모양이야.”
검술 훈련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리안은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너무 차이가 나니 가주도 힘들겠군. 왜, 그런 경우 동생이 엇나가잖아. 나중에 형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포기하는 게 좋을 텐데.”
“…….”
환청이 들렸다.
-라이가 밉지. 죽이고 싶었겠지. 왜 그에게는 주어진 재능이 나에게는 없는 것인가?
“라이는 라이일 뿐이야.”
리안이 정말로 죽이고 싶은 사람은…….
흑승을 베어 가며 달리는 리안의 뒤편으로 3천 명의 인간들이 끌려왔다.
“이야아아아!”
사슬을 붙잡은 인간을 또다시 누가 붙잡으면서, 수는 끝없이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