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0
67장. 별의 은인(3)
천계.
태초의 신들이 모인 하늘 위의 나라.
한반도의 천계는 천지왕의 천궁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성(城)으로 이루어졌다.
일곱 개의 성은 각각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파군으로 북두칠성을 이루는 별이었다.
각각의 성은 저마다 산처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별의 가호가 닿지 않는 벽의 너머로는 정제되지 않은 태초의 기가 흐르는데,
그것이 어떤 위험한 작용을 할지는 천상의 신들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
“별의 정기는 하늘의 천계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고이지.”
앞장선 자청비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문곡성의 정기를 받기 위해 ‘별의 꼭대기’로 향하는 와중이었다.
별의 꼭대기라고 하여 어떤 곳인가 했더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탑이었다.
탑 안으로 들어오자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이 펼쳐졌다.
한데 묘하게도 공간의 폭은 무척 좁은 대신 높이는 하늘에 닿을 것처럼 아주 높았다.
사방이 깜깜한데도 탑의 내부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정말로 손님들을 바깥에 세워둘 줄은 몰랐어요.”
별을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별의 꼭대기에 온 것은 나와 자청비뿐, 다른 차사들과 바리는 지금도 문곡성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문을 지키고 선 문곡성의 지기들이 끝내 그들을 들여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자청비가 신분을 보증하여 문곡성의 정기를 채취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여 들어온 것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내가 별의 은인이 되어야만 손님 자격으로 들여보낼 수 있다던가.
“좀 유난해지긴 했다.”
자청비가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돌아봤다.
“천상의 화원이 습격당한 이후로 경계가 한층 더 삼엄해졌지.”
역시 천계도 저승이나 용궁처럼 인간들의 습격을 받은 것일까?
마침 염두에 두었던 말이 나와서 물어보려는데 그녀가 먼저 짓궂게 입술을 비틀었다.
“뭐, 하늘 위의 놈들이야 그 전에도 하늘 밑의 놈들을 괄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말에 차마 습격에 대해 묻지 못하고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
천계는 이번이 처음이라도 천신들의 유별남은 나도 익히 들어왔으니까.
당장 가까이 지냈던 서천꽃밭의 사라 일가도 천계라면 학을 뗐고.
천신이란 창조신 마고할미가 세상을 열면서 탄생한 태초신들이다.
하늘의 기 그 자체인 천지왕과 북두칠성의 의인화 칠성신을 비롯하여,
해, 달, 비, 바람, 구름 등 여러 자연신들과 생불왕 삼신할미를 비롯한 운명신들이 천신이라 불렸다.
이승의 운명신들이 천신으로 여겨지는 것은 명이란 결국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데 가장 먼저 탄생한 신들이기 때문일까.
천신들은 자기네들이야말로 신들 중의 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태초의 천신들이 세상을 열고,
그다음에야 바다에서 용신들이 올라와 짐승의 시대를 열었으며,
하늘에서 삼신과 염라가 내려오고서야 비로소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자신들이야말로 세상의 근원이라는 주장이었다.
태초의 신들이니 세상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으로 하여금 신들 사이에서도 천출을 따진다는 것이었다.
천신들은 바리공주나 강림 형처럼 인간에서 신이 된 이들마저도 같은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라가 고향인 천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 원강아미와 아들 할락궁이가 바로 그 인간 출신 신이었으니까.
서천꽃밭이 천상의 화원에서 비롯되었음에도 하늘을 찾지 않은 지가 이미 오천 년이 넘었다던가.
“하기야 새 염라 너도 영감탱이들이 썩 곱게 보진 않을 게다.”
자청비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특히 너는 그것까지 품었으니 말이다.”
가슴께를 가리키는 손짓에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멋쩍게 웃고 말았다.
인간 출신인 데다가 인간의 탯줄까지 그대로 남긴 나다.
우리 대왕님은 생불왕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셨다지만, 그 아들이라는 나는 아마 천신들의 인정은 받지 못하겠지.
이렇게 보니 단군이 아직도 하늘의 신화를 얻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인간 출신 신도 꺼리는 마당에 신도 아닌 인간은 오죽할까.
“그래도 문곡성 안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을 게다. 인간의 딸인 내가 문곡성의 안주인이지 않느냐.”
이어지는 말에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자청비는 인간의 몸으로 문곡성의 시험을 통과해서 천신의 자격을 얻었다.
그러니 적어도 문곡성의 가호를 받는 문곡성의 성내에서는 그녀와 뿌리가 같은 인간 출신 신들을 눈에 띄게 박대하지는 않을 터였다.
“다 왔구나.”
대화를 나누며 계단을 오르기를 한참, 자청비가 걸음을 멈추었다.
탑의 꼭대기로 이어지는 쇠문이 어느새 그녀의 앞을 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문 앞에 선 그녀는 볼캡을 벗어 몇 번 부채질하더니 날 돌아보았다.
“죽음의 신성을 한 겹 두르거라. 이 앞으로는 육살(六煞)의 기운이 가득해.”
그녀의 경고에 곧바로 검푸른 신성을 발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사기(死氣)로 살기(殺氣)에 맞서는 게다.”
그녀가 두꺼운 쇠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아…….”
쇠문 너머로 펼쳐지는 광경에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탑이 또 있네요?”
놀랍게도 탑의 꼭대기에는 여섯 개의 탑이 또 있었다.
탑에 오를 때는 분명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폭이 좁다고 느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탑의 꼭대기는 몹시 넓었고, 그 터에 여섯 개의 석탑이 더 솟아 있었다.
“육살성(六煞星)의 정기가 모이는 탑이야. 우리는 육살성 중 화성에 가야 한다.”
육살성은 문곡성에 깃든 여섯 개의 살벌한 기운이었다.
각각 경양(擎羊), 타라(陀羅), 화성(火星), 영성(鈴星)의 네 살성과 천공(天空), 지겁(地劫)의 두 흉성을 말하는데 화성은 이름처럼 불같은 화(禍)가 따르는 살성이었다.
“빛은 곧 불에서 비롯되니, 화성의 화기로 문곡성의 별빛을 살려내는 거야.”
함에도 자청비는 별빛은 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성큼 화성의 탑으로 향했다.
하긴 육살성을 잘 제어하면 문곡성의 가호가 배로 따른다고 하니, 어쩌면 화복(禍福)이란 결국 서로 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성의 탑을 오르자 꼭대기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울긋불긋한 방진이 그려진 가운데 돌로 만든 제단이 놓인 방이었다.
자청비는 제단 앞에서 다시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제 화성의 정기를 모을 테니, 그동안 네가 살기의 방해를 막아다오.”
제단에서 무언가 의식을 치러야 정기를 받아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야. 탑을 오르는 것으로 이미 필요한 대가는 치렀으니.”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늘의 별을 딸 때 제일 어려운 것은 하늘의 별에 손이 닿는 것이랄까.”
끝없이 계단을 올라야 했던 것도 무언가의 조화였던 모양이다.
“네, 정기를 모으실 때까지 화기를 막아드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대답하며 재차 검푸른 신성을 발했다.
그녀는 잘 부탁한다며 내 등을 몇 번 도닥이고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자청비가 치성을 드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불화살이 여럿 날아왔다.
촤아악!
촤아아악!
죽음의 신성을 불어넣은 검으로 곧장 화살을 베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불화살은 쳐낼 때마다 조금씩 수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별다른 스킬 없이 검으로도 수월하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것 때문에 나를 찾으셨던 걸까.”
가만히 서서 화살을 쳐내자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다소 귀찮기는 하지만 이것이 살기의 전부라면, 자청비를 도와주는 게 굳이 나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그런데 불화살만 날아오기를 한참.
불현듯 사방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인영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눈이 있을 자리에만 구멍이 뚫린 기묘한 화염 인간들이었다.
“불화살만이 아니었구나!”
화염 인간을 돌아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덩치도 제법 커서 그것들에 둘러싸이자 약간의 압박감마저 들었다.
“이것도 검으로 쳐낼 수 있으려나?”
긴장하며 흘끗 자청비 쪽을 돌아보았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나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정기를 모으는 동안 주변에 대한 감각이 차단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우선은 다가오는 화염 인간부터 베어냈다.
상체가 베인 화염 인간은 놀란 듯이 잠시 주춤하더니.
화르르륵!
베였던 틈으로 더 큰 불꽃을 발하며 내게 팔을 뻗어 왔다.
“윽……!”
훅하고 끼쳐 오는 선연한 열기에 인상을 찌푸리는 찰나.
-멍멍멍!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하얀 털뭉치가 가슴에서 튀어나왔다.
내게 달려들었던 화염 인간들의 불꽃이 털뭉치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화기가 빨린 화염 인간들은 한동안 더 크게 타오르더니,
멍군이 계속해서 화기를 삼키자 이내 촛불이 꺼지듯 볼품없이 사그라들었다.
-멍멍! 멍멍멍!
화염 인간들의 화기를 삼킨 멍군이 하얀 털을 부풀렸다.
‘간식.’
‘썩은 맛.’
“앗, 맛이 엄청 없구나.”
업경으로 밀려드는 멍군의 감정에는 드물게도 우울함이 섞여 있었다.
고구마를 굽는 불도 가리는 멍군이 나를 위해 맛없는 불을 잔뜩 먹어줬다니, 미안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멍멍멍!
털을 부풀린 멍군이 화염 인간을 불태운 자리로 달려갔다.
“응?”
녀석이 무언가를 입에 무는 것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목각 인형?”
화염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게 그을린 목각 인형이 남아 있었다.
인형을 입에 물고 온 멍군이 보란 듯이 그것을 뱉어내었다.
“못이 박혀 있어.”
멍군이 뱉어낸 인형을 살피며 인상을 썼다.
“철상지옥의 못이야.”
사물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왜곡된 철상지옥의 권능이 화염 인간을 부리고 있었다.
“누군가 문곡성의 정기를 받아갈 것을 알고 일부러 장치해 둔 걸까?”
-멍멍! 멍멍멍멍!
생각에 잠기려 할 때 다시금 멍군이 다급하게 짖었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사방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가득 메웠다.
[ (!) 해태 멍군이 화기를 삼킵니다. ]그나마 멍군이 어느 정도 불을 빨아들이면서 나와 자청비에게까지 화염이 미치지는 않았다.
한데도 불길이 몹시 거세서 이대로 멍군에게만 의지해서 불을 뚫고 나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런, 화성의 살기가 폭주하고 있구나.”
그때 마침 정기를 갈무리한 자청비가 몸을 일으켰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건 무리다. 탑에서 나가기도 전에 살기에 삼켜질 게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불을 빨아들이는 멍군을 흘끗 내려다봤다.
“어쩐지. 꼭 염라를 대동해야 한다더니 이런 이유였군.”
“……?”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는데, 그녀가 먼저 탑의 창문을 가리켰다.
“저리로 나가야겠다.”
“저쪽으로요?”
깜짝 놀라서 창문을 돌아보았다.
계단을 통할 수 없다면 창문밖에 없겠지만, 여긴 탑의 꼭대기인데?
파앙!
그때 녹색 신성이 번쩍이면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펄럭!
귀에는 귀여운 꽃핀을 꽂고 하얀 두루마기 코트를 걸친 수리부엉이였다.
자청비가 꺼낸 신수였지만 이런 차림의 신수는 아마 세상에 하나뿐일 것이다.
“공군?”
뜻밖의 등장에 공군을 올려다보았다.
펄럭!
공군은 내게 인사라도 하듯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고는 곧장 이쪽으로 날아와 곧게 뻗은 두 발로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나는 이 날개옷으로 가겠다. 너는 그 신수를 타고 내려가거라.”
내게 공군을 보낸 자청비가 인벤토리에서 얇은 비단을 꺼냈다.
“다 알고 있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재수 없긴 해도, 이런 상황에는 결국 그놈밖에 없단 말이지.”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더 이상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함에도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을 남자를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