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3
68장. 하늘의 신화(3)
천지왕의 황금 가마가 비었다니.
뜻밖의 사태에 모두가 어리둥절해서 가마를 바라보았다.
이상함을 느낀 몇몇 천신은 급기야 저들끼리 무어라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함에도 천지왕의 네 충신은 아랑곳 않고 빈 가마를 왕처럼 극진하게 모실 뿐이었다.
“흥, 내 저리될 줄 알았지.”
지켜보던 자청비가 코웃음을 쳤다.
“세상이 뒤집혔을 때부터 살기가 일곱 별을 어지럽히니, 하늘의 기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구나.”
문곡성의 살기가 폭주할 때 보였던 냉소적인 얼굴이었다.
“천지왕이 현현하지 못할 정도로 천계가 무너졌다는 말이더냐?”
사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천지왕은 하늘을 지탱하는 기 자체였으니, 하늘의 기가 약해지면 천지왕도 더 이상 신으로 현현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저승은 저승의 기였던 대별왕이 실종되면서 그가 지탱하던 저승까지 무너지고 말았는데, 천계가 무너지면서 천계의 천지왕이 사라진 것과 원인과 결과는 바뀌었어도 원리는 결국 같았다.
“그래, 겁쟁이 영감탱이들이 어떻게든 감추려고 했지만 결국 이리 드러나게 되는군.”
자청비가 가늘게 뜬 눈으로 빈 가마를 노려봤다.
“이제 와서 하늘의 신화를 계승하겠다는 것도 사라진 천궁의 가호를 되살리기 위해서였으니까.”
“뭐야, 천궁의 가호도 꺼졌어?”
잠자코 듣던 호구별성도 놀란 눈을 했다.
“내 전에 말했지 않느냐. 천궁을 지키는 가택신들에게 지상에 내린 가호를 전부 거두게 했다고.”
“맞아, 그랬었지.”
호구별성이 기억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업경의 재료를 얻기 위해 찾은 귀목 던전에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집집마다 깃든 가택신들은 모두 하늘의 천지왕궁을 지키는 가택신들의 화신인데, 지금은 그 힘을 모조리 거둔 상태라고.
“별의 정기가 흐트러지고 하늘이 흔들리니, 천지왕의 천궁도 기가 약해져서 대신 가택신들의 힘을 끌어모았지.”
자청비가 설명을 이었다.
“하나 이제 그마저도 한계가 보여 하늘의 신화를 찾는 게야. 하늘의 신화를 계승해서 천궁의 기를 바로 세우면 천지왕의 힘도 돌아오고 하늘을 지탱하는 천지왕의 권능도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지.”
한데 설명을 듣자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하늘의 신화에 그런 힘이 있나요?”
내가 이미 바다의 신화를 얻었지만, 딱히 그런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분명 대단한 권능이 있기는 했다.
그 신화를 사용했을 때 나가로 변해버린 남해의 용신들을 마치 내 수족처럼 움직였으니까.
어쩌면 그 신화를 사용하면 남해의 용신뿐만 아니라 다른 용신들까지도 그런 식으로 조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친구가 된 고등어 왕자와 용신들을 상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시험해볼 생각조차 없었지만.
그러니 만약 하늘의 신화에도 바다의 신화와 똑같이 신들을 움직이는 권능이 있다면,
그것을 손에 넣은 자는 하늘의 천신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내가 얻은 바다의 신화가 정상적인 신화가 아닌 만큼, 이번에 계승하는 하늘의 신화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
내 물음에 자청비가 팔짱을 꼈다.
“전해지는 말은 그저 그냥 모든 별을 아우르는 하늘의 왕이 탄생한다는 것뿐이야.”
네 개 바다를 아우르는 왕이 탄생한다던 바다의 신화와 맞닿는 설명이었다.
“하늘의 왕? 그건 그냥 천지왕이잖아.”
호구별성이 그게 뭔 소리냐며 코를 씰룩였다.
“그래서 저 영감탱이들은 하늘의 신화를 계승하면 천지왕의 기가 완전히 돌아온다고 해석하고 있단다.”
자청비가 시니컬하게 말을 받았다.
“물론 그래놓고 자기네들도 그게 진짜 맞는지 불안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여기까지 온 게지만.”
“염병, 이제 보니 하늘, 땅, 바다 중에 하늘이 제일 개판이었구만.”
이야기를 듣던 호구별성이 쯧쯧 혀를 찼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의 시작은 결국 별의 정기를 더럽히는 살기 때문이었는데,
정작 문제가 된 살기는 임시방편으로 막아두기만 하고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한심하게 여길 법도 했다.
“저, 그런데 아까부터 말씀하시는 영감……님들은 대체 어떤 분들이신가요?”
조금 망설이다가 두 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신들이 말하는 영감탱이들이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늘 위의 수많은 천신들 중에서도 가장 높으신 분들이라고 적당히 알아듣고 있을 뿐.
“칠성신의 자식들이란다.”
자청비가 바로 대답해주었다.
“원래 하늘의 일은 일곱별의 칠성신들이 결정했는데, 그네들이 살기에 맞서 가호를 내리느라 현신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자식들이 하늘의 일을 보고 있지.”
천지왕이 그러하듯 북두칠성의 칠성신들도 별을 지탱하는 기 자체인데, 그들도 더 이상 현현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문도령께서도 포함되시겠군요?”
무심결에 문도령을 돌아보며 물었더니, 그가 고운 입매를 당겨 웃었다.
“뭐, 죽기 전까지는 그러했소.”
“아…….”
그는 짧게 대답할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이 그려졌다.
다른 별들이 외면하는 와중에도 천상의 화원을 지켜냈으나, 수장인 문도령이 죽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천상의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못하게 된 문곡성이.
그러한 형편이니, 자청비를 비롯한 문곡성의 천신들이 다른 별의 천신들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갖는 것도 십분 이해되었다.
하물며 문곡성은 하늘의 계승전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눈총까지 받는 상황이었으니까.
“저기 영감탱이 하나 나왔다.”
호구별성이 퉁명스럽게 상석을 가리켰다.
“여전히 때깔 하나는 재수 없게 번쩍거리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중앙에서 천신 하나가 무어라 개회사를 하고 있었다.
젊어 보이는 문도령과 달리 수염을 길게 기른 그는 별의 자식답게 훤칠한 체격에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남자였다.
하늘의 형벌을 관장하는 염정성의 신성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가 염정성의 아들 염정도령인 듯했다.
도령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중후한 모습이긴 했지만.
“천지왕의 자리는 결국 비워 두려는가 보군.”
염정도령의 개회사를 지켜보던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의 말대로 천지왕이 앉아야 할 상석은 아무도 앉지 않은 채였다.
천지왕의 네 충신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왕을 호위하듯 서 있을 뿐.
“근데 그럼 오늘은 결국 집구석이 무너지기 직전에 보수공사 하겠다고 부른 거네?”
호구별성이 뚱한 얼굴로 식탁 위의 온갖 진미들을 가리켰다.
“뭐 좋은 일이라고 이렇게 차려 놨대?”
말이 좋아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지, 천궁이 무너질 위기에 잔칫상을 차리는 허세가 우습다는 태도였다.
【그리하여 이제 하늘의 신화에 도전할 이들의 천거를 받겠소.】
짧지 않은 개회사가 끝나고 염정도령이 신언으로 주위를 환기했다.
【도전자는 천기(天機)의 권능이 깃든 풍문을 하나 이상 지녀야 하며, 셋 이상의 천신에게 천거를 받아야 하오.】
천기의 권능이 깃든 풍문이라.
문득 탯줄을 끊기 전에 얻었던 원천강의 풍문이 떠올랐다.
효과가 하늘의 신화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었으니, 원천강의 풍문 외에도 천기의 권능이 깃든 풍문이 여럿 있던 모양이다.
전부터 줄곧 하늘에 뜻을 두었던 단군이야 당연히 필요한 풍문을 얻었겠지만,
얼마 전에 뛰어든 벽하원군은 그녀를 지지하겠다는 천신들에게 양도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자, 누가 하늘의 신화를 계승하시겠소?】
염정도령이 연회장에 모인 천신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곡성의 무도령이 벽하원군을 천거하오.】
맞은편에서 풍채가 거대한 천신 하나가 손을 들었다.
천둥번개를 주관하고 하늘의 감옥을 지키는 무곡성의 아들 무도령이었다.
곧게 몸을 일으킨 그에게서 무곡성의 신성이 별빛처럼 뿜어져 나왔다.
“정신 나간 영감탱이, 저기서 기 싸움을 거네?”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예를 갖춰 천거하는 상황에 굳이 저렇게 신성을 발하는 것은 분명 필요 이상의 과시였으니까.
【파군성의 파군낭자가 벽하원군을 천거하오.】
【탐랑성의 탐랑도령이 벽하원군을 천거하오.】
뒤이어 파군성과 탐랑성의 자식들도 짙게 신성을 발했다.
천계를 이끄는 칠성신의 자식들이 작정하고 신성을 발하자, 빛의 한가운데에 선 것처럼 별들의 존재감이 선명했다.
연회장을 달구는 묵직한 별의 신성에 그들을 따르는 천신들도 덩달아 고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호구별성의 말마따나 상대 진영의 기를 죽이기 위한 기 싸움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벽하원군이 하늘의 신화에 도전하겠다.】
한데 천거를 받은 벽하원군이 그리 신언을 내뱉는 순간.
별의 신성에 한껏 고무되었던 천신들이 한순간 찬물을 뿌린 것처럼 가라앉았다.
“세상에, 반말이라니.”
“심지어 태산?”
“대놓고 한반도의 신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들어가는구만!”
“태산의 신한테 우리 하늘을 바치겠다는 거야, 지금?”
다른 두 별의 천신들이 곧바로 불만스레 입을 모았다.
대륙의 신을 내세웠다는 것이야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신이 이렇게 대놓고 태산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벽하원군을 지지하는 파벌의 천신들마저 몇몇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했으니, 그녀의 선포는 시작부터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함에도 벽하원군은 천신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계승전을 치르는 것은 벽하원군 자신이니, 다른 천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뜻일 터였다.
【거문성의 거문낭자가 주단군을 천거하오.】
그때 거문성의 천신이 신성을 발하며 몸을 일으켰다.
【녹존성의 녹존낭자가 주단군을 천거하오.】
단군을 지지하는 두 별의 자식들이 은은하게 별의 신성을 발하자,
사늘하게 가라앉았던 연회의 분위기가 다시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생불왕 삼신이 주단군을 천거하오.】
그리하여 마침내 하얀 예복을 입은 삼신이 마지막으로 천거했을 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왕이 발하는 막대한 신성에 순간 연회장 전체가 시간이 멈춘 듯이 고요해졌다.
별빛을 꺼뜨리는 태양 빛처럼 뿜어져 나오는 광휘 때문이었다.
“이야아, 우리 할망이 아주 작정을 했구만!”
기척 없는 폭풍처럼 연회장을 휩쓰는 삼신의 신성에 호구별성이 속 시원하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그러게 하늘에 짜져 있던 영감탱이들이 덤비긴 왜 덤벼!”
신이 난 그녀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낄낄 웃었다.
먼저 싸움을 걸었던 별들이 되레 생불왕의 기에 눌려버린 게 꽤나 통쾌한 얼굴이었다.
하기야 삼신은 헌터 시대가 도래하고도 왕의 이름에 걸맞은 권능을 부리던 신이었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애가 곧 생불왕에 대한 경애였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칠성신의 자식들이라고 한들 별의 정기가 흐트러진 때에 삼신의 신성에 견줄 수는 없었다.
물론 저 삼신조차도 본래의 힘을 전부 간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생각하니 새삼 삼신의 맞은편에 섰던 염라의 권능이 어느 정도였을지 떠올리고 조금 씁쓸해졌다.
내가 저승에 왔을 때는 이미 저승의 시왕들마저도 권능이 몹시 약해진 상태였으니까.
그 힘을 이제 내가 다시 되찾아야 했고.
“생불왕이 거둔 주단군이 하늘의 신화에 도전합니다.”
그때 삼신의 옆에 선 단군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성이 실린 신언과 달리 그저 잔잔한 인간의 음성이었으나, 기이하게도 무언가 조화를 부린 것처럼 선연하게 귀에 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얗게 떨어지는 도포 자락이 가호라도 받은 양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호오, 삼신께서 아예 이름을 빌려주셨군.”
지켜보던 사라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삼신이 단군에게 생불왕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 꽤나 흥미로운 듯했다.
“이 정도면 아주 새로 얻은 아들보다 더 잘해주는 거 아니야?”
호구별성도 농담처럼 말하며 놀라워했다.
“…….”
문득 하늘의 신화 계승전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가 궁금해졌다.
바다의 신화는 보물을 모으면 따로 던전이 열리는 형태였다.
만약 하늘의 신화 계승전도 그러한 방식이라면…… 내가 어떻게 단군의 계승을 도울 수 있을까.
바다의 신화 때는 단군이 잠시 저승에 속하게 되었지만, 지금의 그는 나와 다른 소속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불쑥 단군이 이쪽을 향해 옅게 미소 지었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눈을 맞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