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9
69장. 동맹(3)
여기서 주몽과 마주치다니.
생각지 못한 등장에 긴장한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특정 던전을 먼저 공략하는 이상 언제든 경쟁자와 부딪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막상 첫 번째 던전에서부터 적과 맞닥뜨리게 되자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검지 끝에 모았던 물을 가볍게 튕겨내며 주몽이 말했다.
“걱정 마요. 여기는 나밖에 없으니까.”
“당신밖에 없다고요?”
나는 긴장을 놓지 않고 물었다.
“다른 신들은 동행하지 않은 겁니까?”
“음, 우리 보스는 워낙 자신감이 넘쳐서.”
내 물음에 그가 가면 너머로 눈을 휘었다.
“우선해서 공략해야 할 던전이 7개잖아요. 그냥 따로 흩어져서 바로 4개를 먹어버리자더라고.”
다른 도전자한테 뺏기기 전에 던전을 각개 격파하겠다는 건가.
확실히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쉬이 떠올리기 힘든 작전이었다.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효율적인 작전도 없겠지만.
“그래서 난 문곡성으로 골랐어요.”
재밌다는 듯 키득거리던 주몽이 불쑥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턱을 감싸 쥔 그가 내게 바짝 다가섰다.
“나 주몽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
나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당신을 알아볼 줄 몰랐다는 겁니까?”
“응. 가면 벗고 짠~ 하는 순간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벌써 알고 있잖아?”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문득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이런, 혹시 연회장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알았던 거예요?”
“……??”
나는 또다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겨우 물었다.
“내가 알아본 걸 알고 그…… 하트 표시를 한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 아니었는데?”
어처구니없던 손가락 하트를 되짚었더니 그가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는 그냥 내 가면이 멋있어서 본 줄 알았지.”
“…….”
장난하자는 건가?
자꾸만 시답잖게 걸어 오는 농담에 그를 쏘아보았다.
“이야, 염라는 염라구나. 거짓말을 못 해.”
그는 그런 내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키득거렸다.
“휴, 어쨌든 뭐 다 알고 있으니까 이대로 벗어도 되겠는데?”
그러더니 불쑥 얼굴을 가렸던 변검 가면을 손으로 잡아끌었다.
“화려한 게 나름대로 멋지지만 역시 답답하거든요. 이걸 대체 어떻게 하루 종일 쓰고 있는지 몰라.”
가면에 가려졌던 눈꼬리가 장난스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쪽이 본모습이었군요.”
나는 가면을 벗은 그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나 확실히 전에 봤던 얼굴보다는 몇 살 더 많아 보였다.
경지에 이른 도사는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신체가 고정되니 이쪽이 진짜 그의 얼굴일 터였다.
“무슨 소리예요, 본 모습이라니.”
내 말에 주몽이 정색하며 눈썹을 굽혔다.
“이렇게 우락부락한 몸뚱이가 진짜 내 몸일 리가 없잖아요!”
언성을 높인 그가 신경질적으로 제 몸을 가리켰다.
“이건 그냥 우주가 멋대로 고정한 몰골일 뿐이라고요!”
“…….”
우주 만물은 원래 다 우주가 점지해준 몰골로 사는 걸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말하지 않고 그를 살폈다.
확실히 천벌 때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체격도 단단해져 있었다.
그렇다 한들 딱히 우락부락하다고 표현할 몸은 아닌지라 떨떠름할 뿐이었다.
“너무 크고 굵다고요!”
짜증스럽게 말하던 그가 내게 바짝 손가락을 대었다.
“휴, 나는 정말……! 이 정도가, 진짜 이 정도가 딱 좋은데……!”
“알았으니까 그만하시죠.”
계속 듣고 있자니 피곤해져서 말을 끊었다.
“진짜 내 몸으로 싸우면 힘이 깎인다고 자꾸 이 몸을 강요하잖아요.”
내가 말을 끊든 말든, 그는 우주가 고정시킨 몸이 정말 못 견디게 억울한 모양이었다.
나는 받아주는 대신 한숨이나 한 번 쉬고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정말로 벽하원군을 따르고 있나 보군요.”
내 물음에 툴툴거리던 주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다.
“예쁘더라고요.”
그 말에 그가 농담을 가장하면서도 줄곧 나를 떠볼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잠깐 본 얼굴이 제법 취향이라, 당분간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어요.”
내가 주몽과 벽하원군의 관계에 의문이었던 만큼이나, 그도 나와 벽하원군의 관계가 흥미로웠던 것이겠지.
“어쩌다 엮이게 된 겁니까?”
그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고 물었다.
“음, 아무한테나 해줄 얘기는 아닌데.”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한 물음은 아니었다.
한데도 그는 마치 비밀 얘기라도 해준다는 듯이 속삭여 왔다.
“평양에만 가만히 있으려니까 너무 심심해서 잠깐 해외여행을 갔거든요.”
가벼운 표현이었지만 담긴 의미는 마냥 가볍지 않았다.
우주질서 보존회의 시스템에 따라 해외로 가는 길이 막힌 상태였다.
단군과 바리공주마저 복잡한 주술을 거쳐야 다른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그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차가 한 백 년쯤 됐나? 재밌었어요.”
“백년이나 거슬러 갔단 겁니까?”
“뭐, 우주가 보내주는 대로 다녀오는 거죠.”
내 물음에 그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상관없어요. 우주가 나를 이 시점에 이 공간에 살아가게 한 이상, 세월을 얼마나 떠돌게 되던 결국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그 말에 나는 불현듯 그에게서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기묘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아는 도사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도사는 단군과 바리였다.
두 사람 모두 무슨 일을 겪든 그것이 우주의 뜻이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했다.
한데 주몽에게서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우주의 뜻이 곧 자신의 뜻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느껴졌다.
단군과 바리가 그저 우주의 뜻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라면,
주몽에게는 우주의 뜻이 곧 자신의 뜻이며,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제 형입니다.
-그리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도사죠.
그 믿음을 이해하자 단군이 주몽을 왜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모든 도사는 우주의 뜻을 따르며 살아간다.
그러한 도사들이 최종적으로 이르는 경지는 결국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그가 세 번째 방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헤아리게 되었다.
애초에 자신이 비는 소원이 곧 우주가 선택한 미래라고 여기기 때문에 대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대가를 치르든 그것은 결국 우주의 뜻에 따라 벌어지게 될 일이니까.
세 번째 방법으로 빌지 않았어도 어차피 겪었을 일이니까.
우주가 정해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장난스럽게 투덜거리지만,
그는 기실 누구보다도 우주의 뜻을 따르며 살고 있었다.
“뭐지? 갑자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데?”
그것을 실감하는데 문득 주몽이 장난치듯이 속삭였다.
“혹시 나한테 반했어요?”
“…….”
나는 그의 농담을 흘려들으며 숨을 삼켰다.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일지니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없는 남자.
그 믿음에 근거가 있든 없든, 그런 마음가짐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범상치 않은 자였다.
“아무튼 그래서 백 년 전 대륙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랑진군이랑 싸움이 붙었거든요.”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 이겨서 이랑진군의 권능까지 흡수하게 되었는데, 하필 또 거기서 벽하원군이랑 마주친 거야.”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가 말하는 시점이 백 년 전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럼 결국 헌터시대가 열리기 전에도 신은 계속 존재했다는 뜻인가?
내가 기억하는 신이 없던 세계와는 다르게?
“이랑진군도 겨우 이겼는데 더 강한 신이 오다니 이제 정말 죽었구나 싶었죠.”
깊어지는 의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벽하원군이 이랑진군의 권능을 가져갔으니까 이제 네가 새로운 이랑진군이라길래…… 그냥 그렇게 따르기로 했어요.”
“결국 벽하원군이 먼저 인간한테 신의 이름을 쓰도록 했단 겁니까?”
듣다가 물었더니 주몽이 가볍게 웃었다.
“그게 이상한가?”
검은 눈동자에 나를 담아내며.
“그쪽도 인간이 신의 권능을 손에 넣고 신의 이름을 쓰게 된 거잖아요?”
“…….”
나는 그의 지적에 순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로 그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받아들여서는 아니었다.
다만 인간에서 신화적 존재가 되었던 북유럽의 헬과 오딘.
이랑진군의 권능과 이름을 뺏은 주몽.
그리고 저승의 법도에 따라 새로운 염라의 자리에 오른 내가……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흐음, 근데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생각이 잠기려는 때 주몽이 먼저 다른 말을 꺼냈다.
“원래는 시치미 뚝 떼고 이랑진군인 척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멋지게 딱 정체를 밝히고 도와줄 생각이었거든요.”
“……도와준다고요?”
뜬금없는 말에 바로 되물었더니, 그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수호천사처럼 뒤에서 도와주려고 했죠. 염라가 이길 수 있게.”
“내가 이길 수 있게?”
미심쩍은 말에 좀 더 인상을 쓰며 반문했다.
“벽하원군이 아니라 나를요?”
“뭐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내 물음에 그가 도리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여기는 한반도 하늘이잖아요?”
그러더니 불쑥 아주 어이없다는 듯이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아니, 나는 천계 자식들이 진짜 미친 줄 알았어요. 한반도 신화를 왜 대륙 놈들한테 넘기냐고요!”
그새 몹시 짙은 분노가 느껴지는 어조였다.
“이 미친 것들이 얻다 대고 나라를 팔아먹어!”
“…….”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표현에 순간 그의 뜻을 이해하고 말았다.
“한반도 토종인 내가 대륙의 이랑진군을 먹는 건 괜찮아요. 근데 대륙의 벽하원군이 한반도의 신화를 먹는 건 안 돼요.”
그다지 신뢰가 가는 작자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반도의 신으로서 어느 정도 진정성은 느껴지는 말이지 않은가.
“대륙이랑 반도가 싸우면 반도가 이겨야죠!”
“…….”
“알아들었어요?”
“…….”
감정이 격해진 듯 씩씩거리던 주몽이 팔짱을 꼈다.
“근데 또 도혁이를 돕자니까, 걘 또 날 죽이려던 애거든요.”
언제부터 하늘의 신화 계승전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제법 고민이 깊었던 모양이다.
“내가 걔 때문에 10년 넘게 평양에 갇혀 있는데 내 손으로 걔를 돕기는 또 싫고.”
입을 삐죽 내민 그가 과장되게 고개를 저었다.
“반도의 도혁이냐, 대륙의 벽하원군이냐. 환장할 선택지에 70년 애국심을 시험받는 기분이었다고요.”
뭐, 대충 나라를 팔아먹을 만큼 단군이 싫기는 했다는 거군.
……반대로 그 싫어하는 단군을 도와야 하나 고민할 만큼 나름 애국심이 투철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염라가 보여서 얼마나 반가웠게요.”
말을 잇던 그가 다시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셋 중엔 그래도 역시 그쪽이 제일 낫거든요.”
길게 뻗은 손가락이 가볍게 내 가슴께를 톡톡 쳤다.
“일단 100% 국산이고.”
“…….”
“중요하죠, 원산지.”
“…….”
진지하게 듣지는 말아야겠다.
듣고 있자니 괜히 피로가 몰려와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든 말든 주몽은 계속해서 제 할 말만 했다.
“그러니까 나랑 비밀 동맹 맺어요, 대왕님.”
그새 또 즐겁다는 듯이 빙글거리며.
“응? 도혁이든 벽하원군이든, 난 어느 쪽에도 하늘의 신화 쥐여 주기 싫으니까.”